일본의 옛 문화유산 기소지(木曾路)를 걷다

  • 에도시대 옛길 답사

    ▪여행기간: 2018년 3월 29일~4월 2일
    ▪김 병 준 고문(전 대한산악연맹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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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옛 문화유산 기소지(木曾路)를 걷다

 일본은 명산도 많고 스키장도 많아 수십 년 동안 많은 산행을 해왔지만, 이번 봄 트레킹은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일본의 옛 역사문화유산 탐방과 더불어 숲길과 산길을 걷는 즐겁고 유쾌한 낭만의 트레킹이랄까?

 에나(惠那) 계곡에서 1박

흔히 일본의 역사는 배신의 역사라고 말한다. 센고쿠(戰國) 시대를 거치며 16세기 후반에 일본을 통일하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나서 재차 전국통일을 이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이 된 1603년부터 1868년 메이지유신까지 장장 265년간을 에도(江戸, 지금의 도쿄)시대라 한다. 우리는 에도시대의 남아있는 옛 문화를 탐방하기로 했다.

 오랜 수도였던 교토(京都)에서 에도로 천도한 후 전국에서 에도로 통하는 잘 정비된 다섯 길 중에서 나카센도(中山道)가 가장 아름다운 길로 정평이 나있단다. 나카센도는 교토에서 에도로 이어지는 길고 험한 산간지역의 옛길을 말하며, 나카센도 중에서도 옛 모습이 가장 많이 보존되어있는 길이 바로 기소지(木曾路)이다. 기소지는 나가노(長野) 현의 아래쪽 기소계곡을 거쳐 기후 현의 나카츠가와 시(中津川 市)로 이어지는 가도(街道)를 말한다. 일본의 옛 정취가 아직도 물씬 남아있다는 기소지 여행이 이번 트레킹의 핵심.

 우리 일행은 오전 10시 반에 일본 중부국제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새벽에 집을 나올 수밖에. 나고야 시(名古屋 市) 남쪽 해상에 인공섬을 조성해 2005년에 오픈한 깨끗한 국제공항이다. 티앤씨 여행사가 국내 처음으로 본격적인 트레킹상품으로 개발하고자 모인 소위 정찰대인 셈인데 모두 9명이 모였다. 우리는 나고야 직전 카나야마(金山)에서 점심 먹고 에나(惠那)로 향했다. 일본 최초의 수력발전소가 있으며 아름다운 협곡에 기암절벽이 많아 겨울을 제외하곤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특히 유람선이 인기 있단다. 강을 낀 경관은 그림같이 아름다운데 왠지 마스크를 착용한 현지인이 많이 눈에 띈다. 봄바람에 날리는 꽃가루가 폐에 안 좋은가보다. 우리가 머문 호텔은 자연공원 내에 있으며, 에나 강이 굽어 보이는 주변경관이 일품으로 산책하기 좋고, 음식도 좋고, 매일 남녀가 바뀌는 온천탕도 마음에 든다.

 기소지로 들어가며

마고메주쿠 입구

마고메주쿠 입구

다음날 기차로 기소지의 시작인 나카츠가와 역까지, 여기서 택시를 이용해 마고메 주쿠(馬籠宿) 입구에 도착했다. 마을가도로 들어가는 분위기가 벌써부터 범상치 않다. 마을 전체분위기가 정말 옛 모습 그대로다. 일본사람들도 “오래된 일본역사 여행은 기소지로부터 시작한다.”고 한단다. 400년 전 가도에는 곳곳에 역참마을이 이루어졌으며, 오랜 건물과 거리풍경은 소중히 보존되어 옛 정취에 폭 빠지게 한다. 옛날 냄새가 물씬 나는 상점과 음식점, 찻집, 여관 등이 이어지는 마고메 향토거리에는 예상외로 외국관광객이 많다. 서양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나 보다. 선물상점 사이사이에 조그만 박물관, 향토미술관, 민속자료관 등이 족히 열 곳은 되는 듯하고 다 입장료를 받는다. 이중엔 기소 출신의 문호 ‘시마자키 도손’의 기념관도 있다. 식사는 이곳 기소의 모리소바(메밀국수)가 유명해 대부분 소바 전문식당이다.

모리소바

모리소바

 마을을 벗어나 이제부터 산길이다. 산길이래야 아늑한 낭만적인 숲길이다. 츠마고주쿠(妻籠宿)까지 7.8km 트레킹이 오늘의 하이라이트. 조금 오르니 전망대가 나온다. 멀리 에나 산(2,191m)이 보이고 마고메 마을이 옹기종기 퍼져있다. 강가를 벗어나 한적한 숲길로 들어섰다. 오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한 숲길을 걸으니 마고메 고개가 나오고 내리막길도 마찬가지. 놀라운 것은 이 숲에 곰들이 살고 있단다. 성질이 포악하다고 겁을 준다. 걷다 보면 간혹 종(鐘)이 매달려있는 곳을 지나가는데 꼭 타종을 하라고 한다. 그래야 곰이 피한다고. 인적 드믄 고즈넉한 숲길 속에 옛 주막인 듯 오래된 집이 한 채 나타난다. 주인이 차(茶)를 친절히 서비스한다. 내려오면서 남녀폭포도 보고 유유히 담소를 즐기며 자연스럽게 자연과 동화한다. 우리는 츠마고 2km쯤 전에 있는 어느 한적한 옛 전통가옥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노부부가 사는데 할아버지는 요리사, 할머니는 접대를 맡았다. 실례를 무릅쓰고 나이를 물으니 손자가 20대 중반이란다. 내부시설이 산장에 가깝고 우리 일행 외에 아무도 없다. 일본의 엄격한 산장문화는 유명하다. 예약제로 일찍 자고 일찍 기상에 식사시간 엄수도 철저하고 절대 떠들지 못한다. 오늘 우리의 산장(?)은 깨끗하고 호젓한 주위분위기가 참 좋다. 새벽에 제법 추웠던 것을 빼고.

에나 산 전망대

에나 산 전망대

츠마고주쿠 트레킹

츠마고주쿠 트레킹

츠마고주쿠 근처 숙소

츠마고주쿠 근처 숙소

 카이다 고원 트레킹

맑은 하늘은 오늘도 상쾌한 트레킹을 보장하는 듯. 축복이다. 츠마고를 지나 나기소(南木曾) 역까지 6km의 거리를 걷는다. 넓지 않은 마을 길과 짧은 숲길이 이어지고, 길 곳곳에 크고 작은 옛 문화유산들이 도처에 남아있다. 여기엔 꼭 안내판이 있다. 우리 일행 중 교수가 둘 있는데 울산의대의 이재담 박사(의학역사)와 이상일 박사(예방의학) 두 교수다. 그런데 이 두 분의 여행자세가 참 진지하기 그지없다. 꼭 안내판 전문을 읽으며 옛 역사를 음미한다. 길을 걸으며 이들의 대화를 들으면 ‘문화역사 탐방은 이렇게 해야 한다.’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의사이기에 희생정신도 남다르고 애주가들이기에 특히 멋지게 보인다.

 일본은 참 마을이 깨끗하다. 시골버스정류장이나 공용화장실도 마찬가지. 여기에 인사성 밝고 친절하다. 우리가 아직 일본에 못 미친다는 느낌은 공공질서문화와 화장실에서부터 받는다. 그러나 남에게 실례 안 하는 이면엔 ‘남에게서 절대 실례 받기 싫다/’와 통하기에 그 개인주의적 철저함이 어쩌면 우리의 좀 허술하고 뭉클한 정이 메마른 듯해 나에겐 별로다. 깨끗한 나기소역 주변상가를 맴돌다가 기소후쿠시마(木曾福島)까지는 기차를 타고 여기서부터 마을버스를 이용해 카이다(開田) 고원으로 향했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 고원관광안내소 앞에서 내려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온타케 산(御嶽山, 3,067m)이 가까이 보이고, 4월 초인데 산의 위쪽은 아직 하얗다. 이윽고 산길로 접어들었는데 길이 참 운치 있다. 인적 드문 산길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밟으면 포근함을 느낀다. 산길을 걷는 게 이리 좋을 수가 없다. 우리는 전망대가 있는 시로야마(城山, 1,429m) 정상으로 향했다.

카이다고원 전망대

카이다고원 전망대

 정상 길목엔 아직 눈이 남아있고, 꽃망울도 맺지 않았다. 정상에 있는 전망대가 마음에 든다. 영봉 온타케 산의 위용은 실로 대단하다. 언뜻 보기에도 명산 중에 명산. 2014년에 화산이 터져 사상자가 많았단다. 7부 능선쯤에는 스키장이 보이는데 문을 닫기에는 아직 멀었다싶다. 동북쪽으로 북알프스 정상인 오쿠호다카다케(3,190m)가 지척에 보이고, 서남쪽으로 중앙 알프스 연봉이, 그 넘어 남쪽으로 남 알프스 최고봉 기다다케(3,192m) 정상이 멀리 보인다. 모두 하얀 눈을 뒤집어썼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다가 호주 팀과 미국 팀을 만났다. 이들은 어제부터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듯.

 오늘 밤은 료칸(여관)에서 잠을 잔단다. 일본에 오면 하룻밤이라도 료칸에서 자야 제격이다. 허술해 보이는 료칸이 호텔보다 훨씬 비싸다. 시즌 때는 1인 예약이 쉽지 않다. 일본은 온천이 많아 독특한 여관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나싶다. 목욕하고 유카다 입고 정원을 걷고 저녁과 아침식사를 한다. 남자들끼리 오면 밤새도록 술 마시기도 한다. 단 떠드는 것은 금물. 서양인들이 일본 료칸의 멋과 맛을 느끼면 평생 잊지 못하리라.

 토리패스를 넘어 나라이 주쿠(奈良井宿)로

일본 혼슈의 내륙지방은 산이 높고 삼림지대가 많아 목재가 풍부하다. 맑은 물의 기소 강(江)을 끼고 숲과 고원과 계곡의 미(美)가 함께 어우러져 마을조차 풍요로워 보인다. 또 곳곳에 온천이 용출하고 있다. 계절마다 다양한 야생화가 많고 겨울엔 설경이 아름다우니 계절 따라 형형색색 변하는 자연의 표정, 섬세한 전경을 마음에 그려본다. 야부하라(藪原宿)역에서 내렸다. 전형적인 조그만 시골역이다. 역전에서 나라이까지 걷는 약 10km의 트레킹도 잘 정비된 하이킹코스. 여기에도 중간 산속에는 곰 공격에 대비한 종이 곳곳에 매달려 있다. 안내서를 보면 이곳의 토리고개가 옛 나카센도 중 가장 험한 고개였다고 하니 그 옛날 사무라이들이 지나가다가 꽤나 칼싸움을 했겠구나싶다.

나라이주쿠

나라이주쿠

 앞장서는 티앤씨여행사의 정용호과장은 그 역시 초행길인데도 매사에 자신감과 기운이 넘친다. 또 겸손 진솔하다. 그를 보면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우리 일행에는 중년의 여자 셋, 남자 둘의 한 팀이 있는데 참 재미있다. 나의 룸메이트 멋쟁이신사 백의호씨와 항상 부지런하며 맑은 미소를 잃지 않는 두 여자짝꿍 추영옥, 신명순씨 그리고 한 쌍의 부부(한국희+박선희)다. 이들은 모두 세계를 여행하다가 만난 사이란다. 세상을 품에 안은 듯 시간만 나면 지구촌 곳곳을 누비고 있다. 경험도 풍부하고 화젯거리도 다양하고 다 좋은데 남자 둘이 술을 잘 못하는 결점을 지녔다.

 나라이 마을도 에도시대의 역참마을로 역사적인 볼거리가 많다. 옛날 여관, 관문의 흔적, 신사와 절, 향토자료관, 토산품가게, 식당 등이 많고, 보존 복원된 건조물에서 느끼는 독특한 분위기가 인상적. 이곳도 마고메 마을과 마찬가지로 문부과학성이 선정한 ‘중요전통건조물보존지구’로 지정돼있다. 외국관광객도 많고. 전통적인 제사나 행사가 자주 개최된다고 하는데 이번엔 그 환상적 광경을 못 봐 아쉬울 뿐. 문득 겨울눈 펑펑 오는 이 옛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인다.

 우리 일행은 나라이에서 기차로 마츠모토(松本)로 향했다. 북알프스로 통하는 관문인 제법 큰 산악도시로 나에겐 정이 많이 든 도시다. 국보인 마츠모토성(城) 등 볼 것도 많아 이번 여행의 종착지로는 마츠모토가 적격이다 싶다. 마고메 향토거리와 나라이 향토거리는 일본에서 옛 문화유산 탐방으로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있다. 또 마고메에서 나기소까지, 야부하라에서 나라이까지의 트레킹코스도 역사가치가 진하게 배어있고, 온타케 산 아래 카이다고원 또한 아름답기로 소문나서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번 4박 5일 일정은 일본의 자연과 옛 역사문화를 두루 즐기는 훌륭한 코스로 나이든 분들에게 적격이고, 젊은이들에겐 온타케 산 등정을 하루 더 넣어서 5박 6일 일정으로 권하고 싶다.

마츠모토 성

마츠모토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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