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여행기 1. 바이칼 이야기

“바이칼 이야기”

바이칼은 바이갈이라는 몽골어에서 유래했다. ‘바이’는 크다는 뜻이고, ‘갈’은 물이라는 뜻이니 바이갈은 큰물이라는 말이다. 바이갈은 몽골 고원의 초원민족에겐 성스러운 장소로 받아들여졌다. 바이칼 주변에 사는 부랴트족은 몽골 8대 부족 중 가장 성스러운 부족이며 신성을 유지하는 부족으로 보호받았다. 그들은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고 바이칼을 돌보는 부족이었기에 신성했던 것이다.

케레이트 부족은 바이칼 남부에서 몽고리아 고원 중앙으로 남하해 큰 세력을 형성했으며 이때부터 몽고리아의 터줏대감인 콩기라트부족과 케레이트 부족은 갈등을 겪었다. 결국, 두 부족은 전쟁이 서로에게 미칠 피해를 알기에 다툼보다 화평을 택했고 부족 간에는 혼인맹약을 통해 주도권을 지키려 했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가이 바토르는 사냥을 나갔다가 들판을 지나가는 꽃 마차를 만났고 그 마차를 탈취했다. 꽃 마차에는 신혼여행을 끝내고 시댁으로 향하는 한 여성이 타고 있었고, 예수가이는 그녀를 숙영지로 데려와 두 번째 아내로 삼았다. 아내를 빼앗긴 남성은 케레이트 부족의 부족장 아들 칠레두였고, 빼앗긴 여성은 콩기라트 부족의 호엘룬이었다. 몽고리아 고원의 두 강자를 건드린 예수가이이지만 그는 몽고리아 고원에 새로이 떠오르는 40대 기수였으며 무서울 것 없는 맹수였고 그를 따르는 군소부족이 많아 케레이트 부족도, 콩기라트 부족도 쉽게 예수가이를 공격하려 하지 않았다. 아마도 예수가이를 이용해 상대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예수가이는 타타르 부족 사람들에게 독살당하고 테무진은 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버림받았다. 부족장의 아들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했고 탈출 후에는 케레이트 부족의 보복을 두려워하며 산속에 숨에 살아야 했다.

징기스 칸

테무진은 징기스 칸의 원래 이름입니다.

 

그런 그가 성인이 되었다. 원칙과 강인한 야성을 겸비한 청년은 오래전 정혼자인 콩기라트 부족의 보르테를 찾았고 그녀는 한밤중에 찾아온 정인에게 검은담비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씌워주며 남편으로 받아들였다. 테무진이 케레이트 부족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을 가족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해가던 테무진은 케레이트 부족의 야습을 받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부인 보르테를 빼앗기고 말았다. 케레이트 부족은 얼뜨기 칠게르와 보르테를 결혼시켜 전대에 칠레두가 당했던 치욕을 앙갚음했다. 테무진은 양아버지 왕칸에게 수만의 병사를 얻어 케레이트 부족을 공략해 1년 수개월 만에 보르테를 되찾아왔다. 하지만 보르테의 배는 남산만큼 부풀어 있었고 테무진은 첫아들을 손님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초원에 사는 여자의 운명이자 남자의 숙명이었던 것이다.

바이칼은 몽고리아 고원의 숙명을 떠넘긴 땅이다. 그런데 지금의 바이칼의 도시 이르쿠츠크는 노란 머리에 갈색 눈을 갖은 아기씨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바이칼 주변의 시골 마을에 가야 부랴트인들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된 건 영화 ‘닥터 지바고’와 ‘’제독의 연인’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스크바에서는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했지만, 시베리아와 극동의 군부는 여전히 홍군과 백군 중 어느 편에 설지 결정을 못 하고 있었다. 라라의 남편은 눈에 덮인 들판의 집을 찾아와 지바고에게 혁명사실을 알리고 홍군의 지시를 받아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함대를 설득하러 간다며 라라의 안전을 원하면 자신에게 넘기라고 말한다. 지바고는 라라를 떠나보내며 2층으로 뛰어 올라가 성애로 얼어붙은 창을 입김으로 녹이고, 작은 유리창으로 떠나가는 라라를 바라보며 애절하게 흐느낀다. 흐느끼는 남자의 등 뒤로 주제가인 라라의 테마곡이 흘러나오고 카메라는 주변을 휘감으며 서서히 시들어간다. 그리고 영화는 모스크바 시내를 달리는 전차 속의 한 남자의 시선을 쫓는다. 닥터 지바고, 그는 지나가는 라라를 보고 전차에서 내려 그녀를 찾아 뜀박질하다 그만 쓰러지고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를 에워싸지만, 라라는 속절없이 멀어져만 간다. 마지막을 그렇게 끝내야 한다니.. 가슴이 애절한 그 장면에서 사랑은 절절한 가슴앓이라는 생각만이 남는다.

닥터 지바고

닥터 지바고가 떠나가는 라라를 바라보는 장면

 


▲ 닥터 지바고OST: 라라의 테마-모리스 자르

지바고와 라라가 사랑했던 눈 덮인 들판의 집, 사랑은 시대의 회오리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라라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는 기차에 올랐다. 하지만 기차는 이르쿠츠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르쿠츠크를 지키던 체코 용병은 옴스크에 집결한 20만의 백군(짜르군대)가 볼셰비키 군에 밀려 이르쿠츠크로 오고 있다는 사실과 홍군의 밀사가 항복하고 홍군 편에 서면 체코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 사이에 갈등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라라가 탄 기차는 이르쿠츠크를 지나고 있었고, 이르쿠츠크를 통제하던 체코군에 의해 기차에서 강제 하차하던 와중, 인파에 파묻혀 남편과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어떤 경로인지 모르지만, 몽골로 갔고 그곳에서 딸을 낳았다. 혁명군의 장군으로 나오는 지바고의 동생은 라라의 딸이라고 여겨지는 여자애를 방으로 불러 그의 어린 시절 기억을 물으며 그 여자애가 잘 켠다는 작은 기타를 가리켰다. 누가 주었느냐는 질문과 지바고의 기타라는 이야기를 전해주며 그만 가보라고 한다. 그 시대의 사랑과 혁명의 한 토막을 그려낸 ‘닥터 지바고’는 이르쿠츠크와 어울리는 사랑 이야기이다.

이르쿠츠크에 오니 러시아의 근대사의 한 토막이 주마등 같이 지나간다. 콜차크 장군(백군의 군사령관)은 20만을 이끌고 이르쿠츠크로 향하다 백군의 깃발을 내리고 홍군의 깃발을 단 체코용병을 만났고, 체코군의 공격을 받아 바이칼에 수장됐다. 볼셰비키 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러시아에서 만든 영화 ‘제독의 여인’은 또 다른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백군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발트 함대의 제독 콜차크, 젊고 잘생긴 제독을 사랑한 여인, 안나. 간호장교로 전선을 전전하며 멀찍이서 사랑하는 남자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 여성, 그녀는 병실을 방문한 콜차크와 만나면서 소설 같은 사랑을 다시 시작하지만 콜차크가 로마노프 왕실을 되살리지 못했듯이 둘의 사랑도 완성될 수 없었다. 그들에겐 불행으로 끝난 사랑. 아픔만 남은 사랑의 도시 이르쿠츠크였다.

이르쿠츠크는 톨스토이도 거쳐 갔다. 그는 대농장주의 아들이었으며 비판적 지식인이자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렸다. 그는 80세에 가출하여 작은 역사에서 조촐한 죽음을 맞았지만, 이르쿠츠크와 깊은 인연이 있다. 톨스토이의 6촌 삼촌인 발콘스키는 데카브리스트 난에 연류되어 이르쿠츠크로 유배당했고 톨스토이는 이들의 혁명적 행동과 이상에 심취했다.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젊은이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후벼 판 게 바로 이들의 갈증과 사랑이었다. 무엇에 대한 갈증과 사랑이었을까, 자유와 평등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대면한 젊은이들. 이들은 귀족의 자재였으니 기득권보다는 이상과 러시아의 미래에 몸을 던졌다. 그것도 죽음으로 말이다. 이들이 시베리아로 끌려와 유배생활을 하고 삶을 개척해간 곳이 이르쿠츠크다. 이들이 얼마나 파리의 자유와 평등을 꿈꿨으면 이르쿠츠크를 시베리아의 파리로 만들려 했을까?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 풀어놓고 보니 이르쿠츠크와 바이칼이 새롭다.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땅. 인류는 1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아라비아 반도에서 머물렀으며 7만 년 전에는 아시아, 유럽으로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아시아로 떠났던 사람들이 4만 5천 년쯤 자리잡은 곳이 바이칼이다. 이들을 최초의 고 아시아인이라고 한다. 이들은 몽고리아 고원에서 몽고리아인과 투르크인으로 분지하여 투르크인은 서쪽 중앙아시아로 이주해 정착했고 몽고리아인은 만주를 거쳐 한반도, 일본, 동쪽으로는 연해주를 거쳐 아메리카로 퍼져 나갔으니 아시아 북방 사람들과 아메리카 사람들은 모두 바이칼의 후손이다.

바이칼

큰 물, 바이칼

 

이제 그만 바이칼로 가봐야겠다. 도대체 뭐가 색다르길래 바이칼은 이리도 장황한가. 샤먼의 고향이라는 표구어 만으로도 충분한데, 인류의 고향이고 한민족의 고향이란다. 그뿐이랴 세계 담수호의 30%를 담고 있는 큰물이란다. 내세울 게 하나 없어 궁색하기만 한 시대에 도대체 너는 누구냐, 바이칼아.

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가니, 긴 부츠에 말끔한 여성이 차이나(China)냐고 묻는다.

“유지노 카레스키아.(юг корейский. 남한사람입니다.)”

“아하..”

그녀는 비닐로 덮은 종이판을 보여준다. 앞장엔 중국어, 뒷장엔 영어. 두 가지인 걸 보니 꽤 중국인이 많은가 보다.. 리스트비얀카로 가는 차는 20분마다 출발하고 저녁 6시까지 운행하며, 일인 140루블이라고 쓰여 있다. 동행한 지인까지 280루블을 내고 얼른 차에 올랐다.

차는 거칠게 내달린다. 자작나무 숲을 일직선으로 낸 도로는 겨우내 얼었고 여름이 되어 녹으면 무른 대지가 퉁겨져 올라오는 일이 반복되었을 테니, 도로 바닥이 울퉁불퉁할 수밖에. 그렇게 덜컹거리는 차를 1시간 30분 달려 리스트비얀카에 내렸다. 8년 전 기억으로는 여기서 배를 타고 볼쇼이코티를 갔는데, 어딘지 정확하지가 않아서 여행사 사무실을 찾았다.

“여기가 아닙니다. 오신 길을 역방향으로 3km 걸어가면 부두가 나와요. 배 시간은 12시 55분 하루 한 편이니까 놓치지 마시고요.”

아침을 서두른 게 천만다행이다. 현재 시각 10시 15분. 내 걸음으로 3km는 40분이면 가능하니 배 놓칠 일을 없을 거 같다.
부두 앞 카페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시켰다. 통하는 말은 단 하나.

“카페 아진.(кофе один 커피 1잔)”
그리고 구글 번역기를 켰다.

“배표를 어디서 사나요?”

“거기 사람이 나오면 서류를 준비해야 해요.”

“서류요? 무엇을 쓰나요?”

“사람이 나오면 서류를 주고 타면 돼요.”

‘아. 승선카드를 쓰나 보다.’ 난 그렇게 이해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번역기가 알려준 서류는 배표였고 배표는 이르쿠츠크 매표소나 인터넷에서만 살 수 있었다. TV 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은 오류가 빈번한 번역기.

“핫도그 세 개.”를 “Hot Dog World.”로 번역하는 어처구니 없는 놈.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기에는 아직 먼 이야기 같아서 기분이 좋다. 배표가 있는 사람을 우선 태우고 남은 자리를 확인하고 2명을 더 태운다. 우리 쭈뼛쭈뼛 서 있다가 잘렸다. 배가 하루 한편이라는데, 오늘 못 가는 건가. 나의 불안을 알아차렸는지 옆에 사람이 다음 배를 타라고 알려준다. 배가 하루 한편이라더니 토요일이라 그런지 배가 한편 더 있나 보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볼쇼이코티로 갈 수 있으니..

볼쇼이코티행 배

볼쇼이코티로 향하는 배

 

ⓒGenghis Khan statue: Francois Phili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