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여행기 8. 구름을 만드는 섬에서 구름처럼 걷다.

“구름을 만드는 섬에서 구름처럼 걷다.”


스카이 섬은 ‘Isle of Skye’라고 표기한다.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에서 왜 영어인 ‘Island of Sky’를 쓰지 않을까?
그럼 Isle of Skye는 무슨 말인가 정말로 Island of Sky와 같은 말인가? 답은 같은 말이고 게일어라는 것이다. 게일어는 아일랜드의 언어다. 아일랜드에 가면 영어로 질문하면 영어로, 게일어로 질문하면 게일어로 답한다고 한다. 그들에게도 영어가 모국어지만 아이리쉬끼리는 진정한 모국어인 게일어를 쓴다는 것이다. 마치 제주 사람이 서울말과 제주 방언을 상대방에 따라 골라서 사용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스코틀랜드는 아일랜드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고 도리어 아일랜드를 지배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스코틀랜드가 영어가 아닌 아일랜드의 언어를 쓰는 건 이상하기만 하다. 그런데 역사를 조금만 들어가 보면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같은 언어를 가진 같은 민족이다.

기원전 4,000년부터 3,500년 사이 지구 전역은 기온이 평균보다 대폭 낮아지는 소빙하기에 들어선다. 이때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고 있던 아리안이 고향을 떠나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란고원 북부에 정착했고 그들 중 일부는 알프스 이북에 정착했다. 이란 북부에 정착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문명지대로 흡수되며 이집트에 힉소스 왕국과 아나톨리아반도에 청동기시대 최강국인 히타이트(Hittite)를 건설했다. 기원전 1,500년경에 지구는 또다시 한랭한 소빙하기를 맞았으며 아리안은 다시 이주를 시작했다. 이란 북부에 정착한 사람들은 자그레브 산맥으로 남하해 정착했으며 후에 리디아,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왕국을 오리엔트지역에 세웠고 알프스 자락에 정착한 사람들은 후에 프랑스와 리베리아 반도, 영국과 아일랜드에 퍼져 나갔다. 또 일부는 남으로 내려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건설 주역이 되었다. 물론 서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인디아 대륙의 지배자가 되어 힌디왕국의 시작을 알렸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는 켈트의 땅이다. 하지만 역사적 과정에 차이가 있다. 잉글랜드는 로마의 지배와 게르마니아의 지배 그리고 노르만족의 지배를 차례로 받으며 변화했다. 따라서 잉글랜드는 귀족세력인 게르마니아와 왕족인 노르만의 권력 견제가 늘 있어왔고 게르만적인 문화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반면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통치를 받는 수준이 아닌 잉글랜드와 통합이 되면서 언어와 문화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켈트의 문화와 언어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혼합되어 존재하고 있다. 반면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에 정복되었지만, 복종만 하면 현상이 유지되는 헐거운 통치가 700년간 지속되었기 때문에 켈트의 언어와 문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

스카이 섬의 명칭은 그런 스코틀랜드의 한 부분이고 아일랜드인이 두 가지 언어와 대화하는 것 역시 아일랜드의 독립적인 역사과정인 듯하다. 그래서 더더욱 궁금해졌다. 스코틀랜드적이라는 표현은 무엇인가?
스코틀랜드 자연의 보고라고 불리는 스카이 섬으로 향하며 스코틀랜드적인 것을 유심히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여행 10일째. 비가 밤새 내린다. 마침 그날이 스카이 섬 도착한 날이니 스코틀랜드적이라는 상상이 비와 바람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지도에 스카이 섬에서 찾아갈 주요 명소를 10곳 표기하고 하나씩 찾아 나섰다. 우선 퀴랑(Quiraing) 트레킹을 시작했는데, 비는 바람을 타고 위에서 아래가 아닌 거의 60도의 경사로 뿌려대서 우산은 소용이 없고 우비와 덧바지, 스패츠가 필요했다. 퀴랑(Quiraing)의 대지는 사람이 딛고 지나간 지점은 흙이 패이고 돌이 튀어나와 분명하게 길이 되었고 그렇지 않은 대지는 물을 담은 질퍽한 습지다. 하이랜드에서 이미 경험한 길이어서 길이 아닌 곳은 조심스럽게 피하며 트레킹을 이어갔다.

스카이 섬의 내륙을 걷는 퀴랑 코스와 더 올드맨(The Old Man of Storr) 코스는 스카이 섬의 땅의 역사와 만나는 현장이다. 5억 년 전부터 다양한 지층을 이루며 형성된 대지는 높게 융기했건만, 오랜 세월 침식으로 깎이고 깎여 몇 개의 뾰족한 봉우리만 남기고 너른 평원을 이룬다. 대지는 이끼와 헤더, 고사리로 덮여 있고 봉우리에 다가갈수록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암석이 사면을 쌓아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암봉과 너덜지대 그리고 습지와 호수, 대지는 높이에 따라 자신의 모습 중 어느 게 적당한지 하는 듯하다. 어디를 가나 이 원칙이 바꾸지 않으니 말이다. 보드랍고 천연의 색감을 띄며 이끼와 붉게 말라 다음 삶을 기약하는 고사리가 펼쳐진 대지는 초록과 황갈색의 대비로 찬란하고, 부풀어 올라 숨을 들이켜는 초원습지는 디딜 때마다 살며시 내려앉았다 딛고 지나가며 다시 부풀어 오르는 부드럽고 포근한 트레일이었다. 나는 1km 이상을 되돌아가 차량을 반대편으로 되돌리라고 이야기해주고 걷기를 계속했다. 이런 길을 반만 걷고 주차장으로 돌아간다는 건 행복을 반만 느끼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요. 그래서 작은 능선을 돌아 해안가 도로로 이어지는 다소 긴 트레일을 밟아 갔다. 그렇게 5km를 걷고 보니 스카이 섬은 멋이 아니라 맛이라는 생각이 든다. 걷는 맛이 일품이다. 왜 시각적인 것에만 집중해야 하나. 눈이 아니라 발의 촉감도 있지 않은가…

해안도로를 따라 Mealt 폭포를 찾았다. 호젓하게 걷는 트레킹과 달리 관광지는 차량과 사람으로 북적인다. 소문난 잔치에 별것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이 폭포는 소문만큼 볼거리가 장대하다. 주상절리가 펼쳐지고 주상절리에 걸린 폭포 하나가 물을 쉼 없이 바다로 토해낸다. 스카이 섬도 하이랜드같이 암반층을 덮은 대지의 표피가 얇아 비만 오면 바위봉우리에 물줄기가 가닥가닥 생긴다. 이런 걸 피요르드라고 하지 않나.. 나무도 없고 이끼와 풀만 있을 뿐 아니라 토양층도 얕으니 물을 담지 못하고 그냥 뱉어버리고 비만 오면 장관이 펼쳐지는 것이다.

폭포를 지나 두 노인 봉우리를 오른다. 잘 닦인 길은 운동화로도 걷기에 충분한 관광 트레일이다. 반면 여기서부터 퀴랑까지 걷는다면 25km를 걸어야 한다. 이 길은 스카이 섬의 깊은 속살을 가감 없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트레일이니 제대로 등산 장비를 갖추고 트레킹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하루에 10곳을 돌아보려 한 나에게 이 트레일은 무리가 아닌가… 이 놈의 욕심. 하나라도 진정 보고 싶은 걸 보면 되는 것이건만, 유명하다고 알려진 것을 모두 가봐야 하는 어리석음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마지막 방문지로 스카이 섬의 서쪽 끝을 찾았다. 스카이 섬의 끝일 뿐 아니라 스코틀랜드 서쪽 끝이고 일몰이 아름다운 장소로 알려져 있다. 차를 몰아 좁은 길을 달리다 맞은 편에서 차가 오면 차를 세우고 먼저 가라고 손짓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 후에야 도착했다. 파도가 대지를 깎아 단단한 절벽만 남겨놓은 섬의 끝에는 등대가 하나 서 있다. 날씨가 맑았으면 노을을 한 장 남기려나 했는데. 비는 멈추질 않으니 한번 돌아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스코틀랜드의 멋은 무엇인가…

비와 바람의 대지가 맞는가? 비바람이 불다가도 잠시 잠깐 태양이 출현하기를 잊지 않는 대지? 바람과 비에 대지는 시달리고 이끼는 그런 대지를 덮어 나간다. 나는 스카이 섬에서 하늘을 보지 못했다. 대신 대지를 보았고 내가 본 대지는 스펀지같이 부드럽고 포근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보기만 좋은 땅이 아니라 걷기에도 좋은 땅이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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