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여행기 6. 타이티닉의 숨겨진 휴먼스토리

“타이티닉의 숨겨진 휴먼스토리”

벨파스트(Belfast)로 이동하여 타이타닉 전시관을 찾았다. 놀이동산 같이 움직이는 박스를 타고 타이타닉의 건조과정을 보고 영상으로 화려한 타이타닉의 내부를 본다. 그리고 타이타닉의 최후를 찬찬히 돌아봤다. 타이타닉은 왜 불의의 충돌사고를 당했고 침몰하고 말았을까? 건조과정을 보면 강철을 사용했고 볼트 하나하나도 붉게 달구어 철을 때려 박은, 말 그대로 무적의 유람선이었다. 당시 타이타닉은 안전항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고 그 위도엔 유빙이 나타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해는 지구의 평균온도가 올라갔고 평소보다 유빙의 남하가 더 깊어진 것이다. 그로 인해 거대한 유빙과 타이타닉호는 충돌했고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단단하고 거대한 배가 침몰해야만 했는가? 영화에서는 배를 제작한 엔지니어의 회심에 찬 후회가 한 장면 나온다. 비용을 줄이고 제작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격실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배가 일부 파손돼도 격실을 만들면 물의 침수를 막아 배는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타닉엔 격실이 없었고 빙하에 부딪힌 부분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면서 거대한 배는 서서히 침몰했다. 하지만 그날 인류는 새로운 명예를 얻었다.

Taitanic museum 1

타이타닉 박물관의 모습

사고 당시 38세였던 찰스 레히틀러 씨는 이등 항해사로서 타이타닉호의 부선장이었는데, 구명보트에 승선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선원 중 유일하게 구명보트에 오른 승무원이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품위를 잃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남겼다. 당시 세계 최고 부자였던 에스터 씨는 선원 한 명이 에스터 씨에게 구명보트에 타라고 하자,
“사람이 최소한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며 한마디로 거절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자리를 곁에 있던 한 아일랜드 여성에게 양보했다. 그는 타이타닉호 10대도 만들 수 있는 대부호였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거절했다.

성공한 은행가였던 벤저민 구겐하임 (Benjamin Guggenheim) 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화려한 턱시도로 갈아입으며 말했다.
“죽더라도 체통을 지키고 신사처럼 죽겠습니다.”

미국 메이시(Macy’s) 백화점 창업자 이시도르 스트라우스 (Isidor Straus) 씨는 세계 두 번째 부자였다. 마지막 구명보트의 책임 선원이 스트라우스에게 “누구도 당신이 보트를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구명정 탑승을 권했다. 그는 단호한 말투로 “다른 남성들보다 먼저 보트에 타라는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라며 생사의 순간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스미스 부인은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한 여성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제 두 아이가 구명보트에 오르자, 만석이 되어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때 한 여성분이 일어나서 저를 구명보트로 끌어당기면서 말했습니다. ‘올라오세요.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합니다.’ 그 대단한 여성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Taitanic lifeboat

타이타닉 영화에서 구명 보트에 타는 장면

Taitanic museum 1

작에 복원된 타이타닉의 모형

희생자 중에는 억만장자뿐 아니라 사회의 저명인사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곁에 있던 가난한 농촌 부녀자와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타이타닉호의 주요 승무원 50여 명 중 구조를 책임졌던 이등항해사 레히틀러 이외에는 전부 자리를 양보하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 선미가 물에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삶과 죽음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서로에게 외쳤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날, 우리는 모두 위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타이타닉 전시관을 나오며 가슴이 먹먹합니다. 인간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자존심과 명예를 중시하기 때문인 것이겠죠. 나도 천박해지는 삶을 마다하고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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