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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 로빈섬의 선물

넬슨 만델라의 과거와 만나려는 사람들은 워터 프런트(water front) 선착장에 빼곡히 줄 서 있습니다. 로빈 섬으로 향하는 3시 배는 한 대로는 부족해 몇 분 간격으로 3대나 출발합니다.
로빈 섬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기에 저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걸까요. 로빈 섬까지 가는 45분. 바다에서 바라보는 케이프타운은 아름다운 미항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특히나 항구를 포근하게 안은 테이블 마운틴이 멋집니다. 리우데자네이루와 너무 비슷한 풍광이어서 예수상이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게 합니다.
만델라는 로빈 섬에 머무르며 전사에서 평화와 용서의 사도로 다시 태어납니다. 증오를 넘어선 인간적 승리이기에 세계는 그를 향해 위대한 가치를 구현한 거인으로 칭송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에서 만델라의 저서를 읽고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분도 대통령 재임 시절 지난 시대 잘못한 정치 세력을 복원시켜 주었고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두 분은 핍박받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되고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까지 인생 경로가 비슷합니다. 반면 현실의 결과는 상이합니다.

[로빈섬에서 바라본 테이블 마운틴]

남아공은 화해의 결실로 재미를 톡톡히 보지만 우리 사회는 지난 시대의 과오를 청산하지 못한 이유로 여러 후유증을 앓았습니다. 거기엔 한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아공이 이룩한 화해의 실체는 진실입니다. 진정한 반성을 토대로 합니다. 진실은 밝히되 죄는 묻지 않는다는 남아공의 과거사 정리를 우리는 왜 깔끔하게 하지 못한 걸까요. 그 결과 수 천억의 재산을 가지고도 지방세조차 내지 않는 전직 대통령을 가진 부끄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로빈 섬 감옥 투어는 탐방객이 너무 많아 조용히 그의 행적을 찾아보려 한 나의 생각을 불가능하게 했습니다. 겨우 묵었던 독방을 스치듯 보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만델라를 석방하라는 운동이 일어날 때 붙였던 포스터 걸게 그림이 인상 깊었습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넬슨 만델라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리더의 여러 덕목을 갖춘 분입니다. 백인 정권이 궁지에 몰릴 때 백인 정권을 궁지에 몰기보다 백인 정권이 결단을 내릴 수 있게 현명한 제안을 했으며 그로 인해 희생은 줄이고 자유의 시간을 당겨올 수 있었습니다. 명분은 그런 것입니다. 명분은 해결에 필요한 실마리를 찾는 것이지 대립의 이유일 수 없습니다.
만델라가 무엇을 제안했을까요? 저는 로빈 섬에서 돌아오는 내내 그가 어떻게 백인 정권의 항복을 받아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하루 이틀 미룬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 마지막에 몰린 뒤에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기회가 있을 때 선택할 것인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등이지 박해가 아니다. 흑인 정권하에서 백인은 재산을 보장받고 흑인으로부터 어떤 박해도 받지 않을 것이며 흑인과 평등한 삶을 보장받을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 제안하지 않았을까요? 그러지 않고 백인정권이 순순히 권력을 내려놓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직은 총과 무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만델라는 대통령이 되었지만 백인정권 때의 수상을 부통령에 임명하고 일체의 정치를 그에게 맡겼답니다.
“너희들이 하던 대로 해라. 흑인은 차별을 넘어 자유를 얻은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천천히 잘못된 것을 조정하자.”
만델라의 성인 같은 태도에 백인들도 그를 믿고 따르며 존경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탈이 없고 경제가 굳건하게 유지되어 여타의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여전히 아프리카의 최고 선진국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차별과 극복해야 할 빈부의 격차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오늘 점심을 먹은 이태리 식당에서도 흑인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반면 주방이나 카운터, 서빙하는 사람 중 백인 역시 한 명도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가 구분된 모습입니다. 그러나 로빈 섬에 가면서 보았던 광경은 하나의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고등학생으로 가득했던 배 안에는 흑인, 백인, 혼혈인, 아시아인, 인도인 등 여러 다른 얼굴의 청소년들이 가득했고 그들은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차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별이라면 여자애들에게 관심을 얻으려는 남자애들 중 관심을 얻은 애가 있고 여자애들에게 무시당하는 애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ROBBEN ISLAND 6
[아직은 존재하지만 곧 다가올 흑백의 평등]

이것도 차별은 차별이죠. 모든 여자는 모든 남자를 동일하게 좋아해야 하는 법 같은 걸 만들었으면 합니다. 차별로 상처받는 어린 시절이 없게 말이죠. 꼭 저를 짚어 이야기하는 거 같습니다만 이런 차별은 세상 어디나 있는 것이니, 남아공에서 차별은 서서히 없어질 것입니다. 다른 대륙에서 이룩한 흑백의 평등보다 더 완벽하게 그리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니까요?
남아공의 흑백 평등은 여러 혜안을 가진 지도자들이 만든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만델라의 이상이 펼쳐진 데는 또 한 사람의 기여가 있습니다. 투투 대주교입니다. 그분은 흑인 정권이 들어선 후 진실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흑인을 학살한 범죄자들을 죽여야 한다는 거센 흑인 사회의 요구를 설득해가며 실질적인 화해를 이끌어 냈습니다. 즉 진실은 밝히되 처벌은 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죄질에 관계없이 누구나 정의와 양심 앞에 사죄하고 새로 태어나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투투 대주교는 무지개 국가를 주장했다죠.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나라로 인정한 것입니다. 거기엔 흑인, 백인 이 외에도 아시아인, 인도인, 모슬렘 등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들어있을 겁니다.
남아공 자체도 12개의 주요 부족이 있습니다. 부족의 이익을 대표하는 어리석음을 만델라나 투투 대주교뿐 아니라 어떤 정치인도 하지 않은 게 오늘날 남아공을 있게 한 것입니다. 로빈 섬 투어는 반나절로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오후에는 시내를 일주하는 붉은색 시티투어버스에 올랐습니다. 이어폰을 끼니 여러 나라말로 안내방송이 나오지만 한국말은 없습니다. 동양 삼국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없는데, 아무래도 남아공에 오는 여행객은 대부분이 나이 든 분들이고 단체여서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인 듯합니다. 버스는 시내 곳곳을 설명하며 돕니다.
처음 케이프타운이 시작된 성을 지나 식스 스트릿(six street)을 거칩니다. 그 외에도 제가 가보려고 했던 곳들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케이프타운 성은 인도로 향하는 상선의 보급을 위해 세운 성이지만 후에 케이프타운 개발의 구심점이 되는 역사적인 곳이고요.
식스 스트릿은 흑인뿐 아니라 말레이인, 이슬람, 인도인 등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문화의 해방구로 알려진 곳입니다. 물론 인종분리 정책 전입니다. 내려서 걸어보고 사진에 담아도 봅니다. 그리고 15분 후에 오는 다음 차를 탑니다. 투어버스는 일정한 간격으로 동일한 코스를 운행하므로 어디서든 원하는 장소에 내려 시간을 보내고 다음 차를 타면 되는 시스템입니다. 다시 차에 오르니 오전에 오른 테이블 마운틴을 지나 반대편 해안인 캠프 베이(camp bay)로 달려 내려갑니다. 아름다운 대서양에 접한 해안을 따라 부유층의 별장으로 가득한 해안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대서양이기도 해서 해안가 카페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와 47일간 이어 달린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FREE NELSON MANDELA, 만델라 석방 운동 포스터]

마지막 저녁 자리는 만델라와 남아공으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만델라는 콩고 독립전쟁에 참가한 체 게바라에게 밀지를 넣었고 두 사람 간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 자리에서 만델라는 4시간에 걸쳐 하얀 백인을 상대로 인종분리 정책의 부당함을 설득합니다. 그냥 하얀 백인이 아닌 양심을 가진 백인이어서 가능했을 겁니다. 얼마 후 체 게바라는 콩고에서 자신의 혁명 이상을 펼치지 못하고 다시 쿠바로 돌아갑니다. 남아공으로 보면 아주 잘 된 일이죠. 그는 쿠바 유엔 대사 자격으로 유엔본부에서 남아공의 인종분리 정책의 부당함과 야만성에 대해 고발하는 명연설을 했고, 전 세계는 남아공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처음 냉담했던 미국이나 영국도 세계 여론의 움직임에 따라 남아공 체제에 동참하며 남아공의 백인정권은 몰락의 길에 들어섭니다.
오늘의 남아공은 그러한 과정의 결과입니다. 만델라와 체 게바라가 합작한 작품인 거죠. 체 게바라는 혁명의 시대를 살다 혁명의 시대에서 죽었습니다. 만델라는 혁명의 시대를 무사히 통과해 화해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체 게바라도 오래 살았으면 화해의 아이콘이 되었을까요? 혁명은 몸을 불사르는 것이어서 쉽지만 화해와 용서는 마음을 불사르는 것이어서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로빈 섬의 주인 만델라는 교훈으로 남습니다. 만델라와 체 게바라의 역사적 만남은 저녁 먹는 내내 즐거운 이야기 거리였습니다. 고증되지 않은 상상 속의 역사적 만남을 이야기하며 아프리카의 마지막 밤은 더욱 깊어갑니다.
석가와 자이나의 만남, 둘은 동시대를 살았고 브라만의 기존 질서에 반기를 든 성자이고, 작은 소왕국의 왕자 출신이라는 것까지 동일한데 둘이 만났을까요? 중국에서 공자가 노자를 찾아간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구전되어오는 데, 두 거인은 만났을까요?
역사적인 만남은 이루어지기보다 이루어지지 않아 더 흥미로운 이야기로 남는다고 하지만 만델라와 체 게바라같이 세상을 바꾸는 만남이라면 더 멋졌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