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구를 위기로 몰아넣은 나무

육지 식물이 거대한 수종으로 발전하였던 고생대 말기(3억 6천만 년 전)에 지구에는 카루빙기(Karoo Ice Age)라는 빙하기가 찾아왔다. 빙하기가 시작되기 전 지구는 거대 육지 식물이 성장하고 번창했으며 식물의 활발한 광합성에 의해 산소량이 증가하였다. 당시 대기의 산소 농도는 적정 수준을 초과하여 35%에 이르렀다. 이때 인간이 살았다면 인간은 행복했을까? 불행했을까?
맑은 산소가 적어 산소결핍 시대에 살고 있지만 3억 6천만 년 전에도 인간은 행복하지 않았다. 현재 대기의 산소는 21%이다. 그런데 3억 6천만 년 전 대기의 산소는 35%까지 치솟았다. 거대한 나무들이 더 크고 높이 성장하려고 광합성에 열중했기 때문이다. 대기의 산소 수치가 올라가면 이산화탄소 수치가 감소하게 되고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줄어들면 지구의 열을 가두는 온실효과가 낮아져서 지구의 기온이 내려간다. 3억 6천만 년이 그랬다. 지구의 기온이 낮아지면서 양 극지방에서 3km 두께의 빙하가 적도를 향해 확장했고 결국 적도까지 얼음에 뒤 덥히는 하얀 눈덩이의 지구로 변한 것이다

[카라빙기의 Snowball Earth]

아이러니하게도 빙하기는 산소량이 줄어들며 끝났다. 빙하가 지구를 덮으며 수목의 성장이 멈추었고 거대 수목이 배출하던 산소가 줄어들었다.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며 다시 지구의 열을 가두는 온실효과가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된 뒤에야 빙하기는 물러났다.
카루빙기가 끝나고 생명체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시 빙하기가 오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식물은 먼 지역까지 후손을 번식하기에 유리한 속씨식물로 변하기 시작했고 동물은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추위에 이겨내는 방안은 몸집을 키워 지방을 가득 채우는 방법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공룡의 시대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지구촌의 생명체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변신을 시작하였고 이런 변화가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이런 변화에 무덤덤하게 겉씨식물이라는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고생대의 나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
레드우드(RedWood)는 고생대의 거대 나무인 세쿼이아 종으로 고생대뿐 아니라 공룡시대부터 북반구를 지배한 나무이다. 지구에는 카루빙기 다음에도 마지막 빙하기가 한 번 더 있었고 이번에도 레드우드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생존 지역은 넓지 않았다. 빙하가 덥힌 내륙에서 캘리포니아 북부의 해안선으로 밀려났으며 그곳에서 생존을 이어갔다.
지구를 지배했던 나무에서 이제는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서식지를 한정한 작은 존재로 남아 있다. 레드우드의 영리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세콰이어종의 활발한 광합성은 지구를 위기로 몰아넣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기들에게 돌아왔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레드우드는 스스로의 활동 영역을 줄여 지구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레드우드의 삶과 트레킹

세콰이어종은 보통 10여 년에 한번 꽃을 피운다. 다량의 후손을 퍼트린다고 해도 10년에 한번 후손을 퍼트린다면 매년 꽃을 피워 나비와 벌을 유혹하는 다른 나무에 비해 절박했을 것이다. 그래서 레드우드는 후손들을 멀리 퍼트리기 위해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또 레드우드는 불폭풍도 마다하지 않는다.
봄철의 살랑거리는 바람에 씨앗을 뿌리기도 하지만 화마(火魔)가 숲을 머금고 무섭게 화풍(火風)이 몰아칠 때 씨앗을 뿌린다. 하늘로 치솟는 화풍은 씨앗을 저 멀리로 던져 버리기 때문이다. 자신을 태우는 불을 선택한 기구한 운명, 레드우드는 자신을 태우며 후손을 퍼트리는 절박한 존재다.

후손을 위해 불도 마다하지 않는 레드우드는 자신의 몸을 한없이 높게 키운다. 이것 역시 높아야 멀리 보낼 수 있는 원리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가 높아지면 중력 때문에 물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하늘 끝에 매달린 나뭇잎은 생존의 길에 내몰리게 된다. 그래서 레드우드의 나뭇잎은 뿌리가 하는 일도 일부 수행한다. 새벽 기온차에 의해 대기에 가득한 수분을 흡수하여 부족한 수분을 채우는 것이다. 뿌리와 분리돼도 살아갈 수 있으니 나무가 썩고 가운데가 텅 비어도 그래서 나무줄기가 수분 공급이라는 자기 책임을 다 못해도 개의치 않고 나무가 위로 뻗어간다. 그리고 씨앗을 맺어 멀리 토해내는 일을 반복한다.
숲을 찾아가는 길은 인생에 남을 멋진 드라이브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다는 ‘히페리온(Hyperion)’을 만나러 가는 숲길 드라이브가 압권이다.
‘히페리온(Hyperion)’은 2006년에야 발견되었으니 레드우드 숲에는 어떤 강자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다. 히페리온의 나이는 그래봐야 1억 년을 좀 넘었기 때문이다.
레드우드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서 보호를 받기 전까지 95%가 잘려나간 상태였다. 거대한 레드우드 한 그루는 1,000개의 식탁을 만들 정도로 경제성이 높았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등 서부의 도시는 모두 레드우드의 목재로 건설되었다. 한 세기만 일찍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면 공룡시대를 지켜본 나무도 있었을 것이고 공룡시대 이전을 기억하는 나무도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레드우드 트레킹은 몸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다. 지구 대기 중 산소는 21%이지만 서울의 대기 중 산소 농도는 20.8%를 조금 상회한다. 적은 차이지만 그로 인해 몸에는 불균형이 일어나고 많은 질병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것이 암이다. 암은 산소가 부족한 세포에 증식하기 때문이다. 산소가 부족해 필요한 장기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지 못하면 그 부위의 세포가 암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어쩜 암은 산소를 쓰지 않는 세포인지 모른다. 내가 희생할 테니 너희들이 내 산소까지 쓰라는 자기희생의 결과물이 암이라면 암은 또 하나의 희생물일 뿐이다.
그럼 레드우드의 산소는 어느 정도일까? 대개 큰 나무 한 그루는 성인 두 사람이 하루 동안 숨 쉬는 데 필요한 양보다 조금 더 많은 산소가 배출된다. 숲에 가득한 나무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산소를 뿜어내고 있어서 평소 산소부족에 시달리는 우리 몸이 숲에 가면 가벼워지고 마음이 행복해진다. 인간은 22%의 산소 농도에 가장 몸이 행복하다고 한다.

22%의 산도 농도를 가진 환경에 산다면 인간은 많은 질병에서 해방되어서 무병장수한다고 한다. 레두우드라면 22%의 산소 농도가 아닐까? 레드우드를 걷는 3일간 나의 몸은 가볍고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다. 짙은 숲의 청량한 기운이 몸을 풍선같이 가볍게 들어 올린다. 3일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산소부족으로 잠들어 있던 몸이 봄을 맞이하듯이 활짝 피어남을 느낀다.
레드우드의 마지막 날은 Smith River에서 카약을 즐긴다. 걸어서 접근할 수 없는 깊은 계곡을 유유히 흘러가면 자연이 주는 고요와 신비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공간엔 행복이 가득하다. 그런데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자연 상태로 놔두기를 거부한다. 무슨 부조한가?

[Smith River에서 카약 즐기기]

레드우드같이 나를 위한 자제가 인간에게는 어려운 과제이다. 그도 그럴 것이 레드우드는 수억 년을 살았고 현생인류는 30만 년 정도 살았을까? 그러니 미숙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