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은 우주에서 온 손님

중성자별이 충돌하거나 생을 마감하며 폭발할 때 다량의 중성자를 방출하는 데, 이때 방출된 중성자는 주변의 물질을 끌어모아 금이나 우라늄 같은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금의 고향을 지구가 아닌 우주라고 한다.
우주에서 만들어진 금입자들이 지구로 쏟아져 들어왔을 때 지구가 아직 액체나 반고체 상태였고 금입자는 핵을 구성하는 철에 이끌려 지구 중심으로 끌려 내려갔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금의 대부분은 외핵(지구의 핵) 부근에 쌓여 있고 일부가 맨틀에 남았다. 외핵에 있는 금과 인류가 지금까지 채굴한 금의 양을 비교해 보면 우리가 가진 금이 얼마나 미미한 양인지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금덩어리인 Welcome Stranger]

지구 핵 주변에 쌓여 있는 금의 양은 1조 4천 톤으로 지구의 대지를 0.5m 두께로 도금할 수 있는 양인 반면 인류가 현재까지 채굴한 금의 양은 17만 1,300톤으로 추산된다. 그러니 지구 핵에까지 갈 수만 있다면 10만 배나 많은 금을 캘 수 있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트레일은 금을 찾아 서부로 향한 꿈의 행렬이었다. 이 사람들은 강물에 떠내려온 사금만 생각했지 지구 외핵의 금맥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들이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지구의 중심부로 향하는 보다 모험적인 골드러시가 이어지지 않았을까?

2. 서부로 향하는 꿈의길

그 길은 희망만 있는 길이 아니었다. 위험과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면 “세상에서 가장 긴 공동묘지”라는 타이틀이 붙었을까?
서부로 향하는 행렬은 골드러시가 시작되는 1846년부터 25년간 주로 이루어졌다. 이 기간 길에서 6만 5천여 명이 죽었고 이들을 오레곤 트레일에 묻으면 50야드(4.5km)마다 무덤 하나가 만들어지는 거와 같다고 한다. 그런데 오레곤 트레일보다 더 혹독한 길이 있었다. 바로 캘리포니아 트레일(California Trail)이다.
캘리포니아 트레일(California Trail)은 길이 약 3,200km의 길이며, 네바다 분지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는 가장 험하고 위험한 길이었다. 반면 거리가 짧고 특히 캘리포니아 금광 지역으로 바로 연결되는 장점이 있었다. 캘리포니아 트레일이 이제 막 개척되었던 시점에 역마차 행렬이 무모하게 이 길에 들어선 무리가 있었다. 아직 사냥꾼이나 다니던 위험한 산 길이었음을 감안할 때 동부 평원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에게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이 역마차 무리는 조지 도너가 이끌고 있었다. 이들은 4월에 서부로 향했으며 보통의 역마차 행렬은 4~6개월 안에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에 시간상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너가 이끌던 87명의 행렬은 잦은 마차 고장과 사고로 많은 시간을 길에서 허비하게 되었다. 겨울이 임박해오자 초초하게 된 조지 도너는 지름 길인 캘리포니아 트레일을 택하는 것으로 코스를 변경하였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트레일은 이제 막 개척되었을 뿐 마차가 다니기에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길이었다.
캘리포니아 트레일에 들어선 도너 일행은 11월 초 시에라 네바다 산맥 아래 도너 호수에 이르렀고 폭설로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고립된 것이다.

도너 일행은 구원대를 편성해 산 아랫마을로 보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에서는 구조대를 편성했으며 첫 구조대가 2월 16일에 도착했다. 구조대는 스스로의 힘으로 산을 넘을 수 있는 24명만 데리고 목장으로 돌아왔다.
3월 1일, 두 번째 구조대가 조난자 캠프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식량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대다수가 생존해 있었고, 조난 캠프 주변에는 ‘인골’이 널려져 있었다. 구조대는 모른 척하고 12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산을 넘었다.
3월 13일, 세 번째 구조대가 도착하며 아픈 사람을 제외하고는 남은 사람을 전부 데리고 마을로 철수했다. 그때 조지 도너는 중태였고 그의 부인이 남편과 함께 남았다. 그리고 부부만 남겨 두고 갈수 없다며 루이스 케스바그가 남았다.
4월 17일, 구조대가 다시 돌아왔을 때, 생존자는 케스바그 혼자였다. 구조대는 그에게 “도너 부인은?”이라고 묻자, 그는 “거기에 있다”라며 커다란 냄비를 가리켰다. 두 개의 큰 냄비에서는 무언가(?)를 넣은 수프가 끓고 있었으며, 프라이팬에도 버터를 바른 고기가 구워지고 있었다. 그것을 가리키며 케스바그는 태연하게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서 그녀가 가장 맛있었다”라고 말했다. 구조대가 황당해서 오두막을 조사해보니 이전에 남겨둔 식량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구조대가 그를 고문했지만 시체를 먹었다고 주장할 뿐 도너 부인의 살해는 인정하지 않았다.
서부로 향하던 도너 파티는 6개월에 걸친 고립 끝에 41명이 숨졌고, 나머지 46명은 목숨을 건졌다. 루이스 케스바그는 살인자가 아닌 마지막 생존자로 환송 받으며 귀환했다.
1850년대 초, 케스바그는 스테이크 하우스를 개점하는데 선전 문구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최상의 부드러운 육질의 고기 밖에 취급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술에 취하면 “그녀는 정말 부드러운 여자였어”라고 말하며 고기 맛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서부로 향하는 희망의 길에 일어났던 도너 파티 사건, 금은 사람을 유혹하고 인간은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도 금을 마다하지 못한다. 죽음의 덫이 도사리고 있어도 인간은 피하지 않고 금에게로 다가간다. 왜 그럴까? 아마도 우주에서 온 신물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인간은 거부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도너 파티가 고립된 도너 호수에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PCT(Pacific Coast Trail)를 걷는 트레킹은 참 재미난 트레킹이다. 길이가 4,270k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트레일이고 아메리카 대륙의 백본(Back Bone)을 이루는 산맥을 걷는 길이다. 170년 전 이 산맥에 막혀 죽음을 맞이한 도너의 일행들에게 시에라 네바다 산맥은 얼마나 야속한 산맥이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전환점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는 수련의 장이 되었다. 4개월에서 6개월간 고독하게 PCT 걸으며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누구나 해결책을 스스로 찾게 되다는 진리의 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