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아메리카의 인디안 문명

남미의 원주민은 발달된 무기를 갖지 못해서 전투력이 약했을 뿐 문명 수준은 동시대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규모가 크고 기능이 완벽한 도시를 건설했다. 남미의 원주민에는 못 미치지만 북미의 원주민도 5층 높이에 800개의 방을 가진 아파트형 공동주택, 가로등이 있는 도로 등 동시대에 타 대륙이 이룩한 수준의 문명도시를 건설했다. 그런데도 남미와 북미의 원주민 문명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도태되었다. 특히 북미 원주민은 보호구라는 특정지역으로 강제 이주해서 낙후된 삶을 운명처럼 수용하며 살고 있다. 그들의 화석같이 굳어버린 삶은 그들의 한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명과 같다.
동부 지역을 장악한 백인들은 원주민을 중서부로 내몰았다. 중부 평원이 농장으로 개발되고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백인들은 다시 원주민을 그 땅에서 쫓아냈다. 쫓겨난 원주민에게 미국 정부는 새로운 땅을 제시했다. 하나는 동부의 비옥한 목초지였고 다른 하나는 남부의 메마른 황무지였다.
인디언 부족 중 가장 세력이 컸던 나바호족은 예상과 달리 남부의 불모지를 선택했다. 그 땅엔 현재의 나바호 자치공화국이 들어서 있다. 나바호족이 황무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황무지라서 백인들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북미의 원주민은 사냥을 하며 넓은 지역을 자유롭게 이주하며 살았다. 이들은 정주민이 아니라서 흔히 문명이라고 하는 건축물과 기록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미개하고 비문명적인 집단으로 비추어졌다. 하지만 일부는 정착을 하였으며 정착한 인디언 부족은 북미 최초의 정주민 문명인 아나사지 문명을 건설했다. 그 땅이 ‘Four-Corners’ (유타, 콜로라도, 애리조나, 뉴멕시코가 만나는 지역)로 불리는 미국 서남부의 황무지였다. 나바호족은 선조들이 문명을 건설한 대지를 선택한 것이다.
‘Four-Corners’는 오늘날 바람에 흙먼지만 날리는 메마른 대지였다. 이런 황무지에서 어떻게 농업을 정착시키고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를 건설했을까? 어쩌면 황무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오래전 이 땅은 비옥한 대지였다. 태평양의 습윤한 대기가 적당량의 비를 뿌려주고 많은 일조량이 곡식을 탱탱하게 맺어주는 땅이었다. 그때 사냥을 일삼으며 대지를 떠돌아다니던 부족 중 3개의 부족이 정착하였고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문명을 건설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남방진동에 의한 가뭄이 닥쳐온 것이다.
남방진동(南方振動, southern oscillation)은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의 기압 진동 현상으로 이때 해수가 가열되는 엘니뇨와 냉각되는 라니냐가 발생한다. 특히 적도 부근에서는 엘니뇨가 발생하고 엘리뇨는 서 태평양에서 라니냐를 일으키기 때문에 그때의 라니냐는 아낙사지 문명을 폐허로 만든 가뭄을 몰고 왔다. 해수면의 온도가 내려가면 대기에 물방울이 맺히지 않아 비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900년에서 1,000년대까지 ‘Four-Corners’지역에는 평상시 강수량의 40%가 줄어든 가뭄이 닥쳐왔다. 가뭄이 지속되며 농업에 기반을 둔 생태적 기반이 취약해졌고 많은 사람이 대기근으로 죽었다. 원주민은 문명도시를 버리고 물을 찾아 절벽으로 생활 터전을 옮겼고 150년간 더 가뭄과 싸웠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13세기 후반 아낙사지 문명을 건설했던 원주민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렇게 사람이 사라지고 문명은 잊혔으며 대지는 폐허가 되었다. 그 뒤로 ‘Four-Corners’ 지역엔 사냥과 채집을 하며 살던 아파치족과 나바호족이 이주해왔으며 이들은 북미 인디언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들은 수렵 채집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뭄에 덜 취약했던 것이다.

2. 인디안 보호구의 자연

[미국의 인디안 보호구와 나바호 자치국]

‘Four-Corners’지역에는 많은 인디언 보호구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에는 약 310개의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으며 총면적은 225,410 km²로 한반도의 면적이며 미국 영토의 2.3%를 차지한다. 그중 가장 큰 보호구는 나바호 자치국으로 불리는 ‘Four-Corners’지역이다. 나바호족은 우수한 언어와 문화를 가졌다고 한다. 나바호족의 언어는 복잡해서 세계 2차 대전 때 미군은 나바호족 젊은이들을 암호병으로 활용하여 큰 성과를 얻었다. 이들의 활약상은 ‘윈트 토크’라는 영화에서 잘 묘사되어 있는데, 일본이나 독일의 정보부는 이들의 언어를 해독하지 못해 미군의 전략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나바호족의 예술성도 높았던 것 같다. 로렌이라는 미국 남성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가 고양이 담요로 쓰던 담요 한 장을 챙겼다. 그는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자신이 가진 담요가 나바호족의 전통 담요라는 걸 보고 담요를 경매에 부쳤다. 담요는 77초 만에 150만 달러(17억 원)에 팔려나갔다. 그 담요는 1,800년대 나바호족이 제작한 담요였던 것이다. 나바호족은 꿈에서 본 모양을 담요로 만들어서 똑같은 담요가 한 장도 없으며, 이들은 담요를 절대 돈이나 무엇과도 바꾸지 않았다. 말안장이나 옷으로 사용된 물건이라서 몸과 같이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1,800년대는 나바호족과 미국 기병대와의 전투가 치열하던 시대로 당시 나바호족의 담요는 대부분 소실된 상태였다. 한 가정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담요.. 아메리카 원주민은 담요 같은 인생 역전을 꿈꾸며 미국에 녹아든 사람도 있고 여전히 보호구안에 머물며 전통적인 삶을 고수하는 사람도 있다. 그나마 나바호 보호구는 면적이 울타리 쳐진 작은 텃밭이나 건물이 아닌 한국 면적의 70%에 해당되는 71,000 km²나 되니 미국의 스케일은 그나마 위안이었다.
나바호 자치국에 들어서면 메마름에 땅이라는 걸 실감한다. 이 땅의 역사는 길다. 9억 년 전 기반암이 형성되고 그 위에 퇴적물이 두텁게 쌓인 퇴적층이 만들어졌다. 지각운동에 의해 해저로 침강했고 다시 석회암층이 두텁게 쌓였다. 판게아 때 융기하면서 내륙이 되었고 판게아가 해체되면서 활발한 화산활동의 영향을 받아 대지엔 화산재가 켜켜이 쌓여 현재의 대지를 완성했다. 9억 년의 대지 역사는 그랜드캐년이나 모뉴먼트 밸리 등 깊게 파인 대지의 단층이 9억 년의 역사를 여실히 실증하고 있다. 그래서 그랜드 캐년을 대지의 역사를 보여주는 지질박물관이라고 한다.
그랜드 캐년보다 규모는 작지만 horseshoes back 역시 9억 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지질공원이다. 콜로라도 강이 대지를 파고 깎아 놓은 웅장한 협곡이고 무엇보다 나바호 자치공화국의 수도에 가까이 있다. 이곳의 유명한 명소는 Antelope다. Antelope 들어가면 지하세계에서 벌어지는 황홀한 빛의 축제가 펼쳐진다. 인디언의 불행한 역사는 박제된 곤충표본같이 보호구역이라는 불모지에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대지는 원주민의 불행을 무색하게 할 만큼 화려하다.
나바호 자치 공화국을 여행하는 동안 자연에 경탄할 일은 매일 벌어진다. 특히 나바호족의 영혼의 심장이라 불리는 모뉴먼트 밸리는 감동 그 자체다. 낙조에 붉게 타들어가는 대지는 나바호족의 영적 내면이기 때문이다.
나바호 자치 공화국의 거친 대지를 가로지르고 나면 아나사지 문명이 남긴 유적지와 만난다. 아나사지 문명의 잔재는 ‘Four-Corners’대지 곳곳에 존재하지만 메사 버드(Mesa Verde), 차코 캐년(Chaco Canyon)이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특히 메사 버드에 문명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원주민들의 절규였다. 물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절벽을 파고 그 안에 거주시설을 건설했으며 어떻게든 가뭄을 이겨보려는 애절함이 유적지 곳곳에 가득하다. 이들은 결국 메사 버드를 포기해야만 했다. 메사 버드를 떠난 이들의 선택은 물이 풍부한 미시시피였다.
미국의 개척시대에 서부에는 백인을 공격적으로 대한 아파치, 나바호족이 있었던 반면 미시시피 강변에 거주하는 인디언 부족은 백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백인과 평화롭게 공존하려 했다. 미국 정부는 이들을 개화된 다섯 원주민(Five Civilized Tribes)으로 불렸다. 미국의 탐욕은 이들 마저도 보호구로 쫓아냈지만 이들부족은 아파치 부족과 달리 순순히 거주지를 내어주고, 보호구로 나왔다. 메사 버드에서 그랬듯이… 자신들의 한계를 알았던 것이다.
‘Four-Corners’여행은 메마름의 땅에서 메말라가는 인디언의 삶을 만나보는 통로 같은 여행이었으며 메마름이 황홀함으로 변하는 충동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