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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편 - 1화] 25년전 남긴 꿈을 찾아 3만리

내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 사표를 던지고 여행길에 올랐었다. 그때는 3개월간 세계 일주를 하면서도 30ℓ 작은 배낭 하나로 충분했는데, 지금은 16일 여행 짐을 꾸리는 데도 여행용 가방에 하나 가득하고도 25ℓ 배낭까지 빵빵하다. 무엇이 나의 여행 짐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25년이라는 세월이겠지.. 나이란, 참 이상한 바이러스다. 알게 모르게 슬며시 다가와 감염시키고 일단 감염되고 나면 낫지 않는다. 어느새, 나의 여행도 그리된 것이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녀야 하니 기동력이 떨어져서 공공버스는 꿈도 못 꿀 것이고, 한 발을 움직여도 택시나 차량을 대절해야 하는 여행자가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은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자연을 들여다보는 계획을 세우고 떠났다. 그런데 내심 25년 전의 추억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때 나는 30살이었고 그 아이는 19살이었다.
사회 초년생과 대학 초년생은 그렇게 만났고 좋은 감정이 싹텄었다. 정말 나의 아들이 있을까? 우스갯소리로만 받아들였었는데, 아들을 찾아보라는 덕담에 가슴이 저려온다. 그 아이는 아이를 가졌을까… 집사람에게 “아들 찾아오라는데?” 하고 말을 건네니, “한둘이 아닐 텐데, 다 찾아서 어쩌려고?” 그렇게 응수한다. 그렇지. 그때 나는 괜찮은 남자였다. 젊었고, 주머니도 두둑했었다.
반면, 이제 막 공산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난 러시아,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나는 달러의 파워를 실컷 즐겼었다. 가이드 비용이 하루 $10, 차량이 하루 $10이 가능했던 시절. 당시 나를 안내했던 대학생들은 나의 주머니를 부러워했겠지. 보잘것없는 내가 짧은 시간이지만 부러움을 받았으니 한국에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인가.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도착하여 입국 창구에 줄을 섰다가 퇴짜 맞았다. EU, EEA, CH만 설 수 있는 줄이라는 것이다. 총 4개의 창구를 열었는데. 3개의 창구가 특정인들을 위한 창구였고, 그 외 ALL PASSPORT는 한줄이니 기다림이 길어진다. EU 창구에 선 사람이 다 입국하고 나서야 나누어 줄을 설 수 있으니 불가리아의 첫 인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원망할 일도 아니었다. 입국장을 통과하고도 아직 짐이 안 나왔으니 말이다. 어차피 기다리기는 매일반 아닌가? 여행자야 손님인데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해야지. 아니면 오지를 말든가.. 늦은 시간이지만 대절한 차량으로 산간마을인 데빈(DEVIN)으로 달려갔다. 데빈은 우리나라 수안보 온천과 비교할 수 있는 산속의 작은 온천 마을이다.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하니 호텔 카운터 근무자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름까지 상냥하게 부르며 키를 건넨다.
아침이 되어 식사하려고 식당에 내려가 보니 장수의 나라 불가리아다운 면이 있다. 과일이 풍성하고 양젖으로 만든 LUKA 요거트와 햄이 다양하다. 더욱이, 벌꿀 집을 통째로 가져다 놓았다. 세계의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아침 뷔페에 벌꿀 집을 통으로 내어놓은 건 처음이었다.

[불가리아 호텔의 아침뷔페]
[통째로 내어진 벌꿀 집이 인상적이다.]
[여러종류의 치즈와 햄이 차려진 테이블]

아침을 먹고 로비로 내려오니 금발의 청년이 반갑게 맞이하며 푸른 눈을 깜빡인다. 앞으로 5일간 등산을 안내할 안내자인 ‘지브코(Zhivko)’이다. 그의 안내를 받아 대절한 차량에 올라 양고디나(Yangodina) 계곡으로 향한다.
아침 기운이 촉촉이 내려앉은 계곡은 쌀쌀하다. 계곡이 깊고 좁아 누가 이런데 사람이 살겠나 싶을 정도로, 정말로 깊고 깊은 산중으로 차는 달려간다. 이들은 왜 여기에 터를 잡았을까? 오스만이 불가리아를 침공해 지배할 때 오스만을 피해 다니다 계곡을 통해 양고디나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는 게 지브코의 설명이다.
3년 전 중국 하서회랑과 깐난지방을 여행하다 우연히 찾아갔던 자가난 마을이 연상되었다. 양쪽의 바위벽 사이로 좁은 물줄기가 흘러나오고 그런 바위틈새로 굽이치는 물줄기를 따라 비집고 들어가야만 비로소 마을이 나온다. 이런 걸 무릉도원이라 하지 않나.. 자가난 마을도 명나라에 쫓긴 몽골 병사들이 숨어들어 시작된 마을이라니, 양고디나나 짜가나나 숨는 이유는 비슷한가 보다.

[5일간 등산을 안내해줄 지브코]
[숲속의 양고디나 계곡]

나의 트레킹 일정은 로도페스(Rhodope)산맥의 중심부를 걷는 일정이다. 이 산맥에 숨겨진 마을들이 골짜기마다 자리 잡고 있어 산을 넘어 다음 마을에서 숙박하며 3일간 이어지는 산행이라서 트레킹뿐 아니라 산간마을의 문화와 민속 그리고 은둔을 모두 느끼는 여행으로 알려져 있다.

[로도페스 산맥]

석회동굴인 양고디나 동굴을 탐방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숲이 우거진 산길을 따라 경사진 산 사면을 오르면 넓은 개활지가 나오고 다시 숲길이 이어지는 아늑한 트레킹이었다.
1시간 반을 걸어 양고디나 마을에 닿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트레킹을 시작했다. 숲길을 걷고 있는데 총을 멘 엽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동물을 몰고 있으니 잠시 기다리라며 우리를 막는다. 엽사가 많은 건 10월 1일부터 토, 일요일 이틀간 사냥을 허가하기 때문에 몰린 탓이란다. 우리나라도 사냥철이 있고 그때만을 기다리는 엽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끔 농민이 동물로 오해받아 총에 맞았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 엽사 옆에 꼼짝하지 않고 기다렸다. 엽사들의 사냥터를 지나 두 개의 산을 넘어 트리가드(Trigad)마을에 닿았다. 아늑하고 조용한 산간마을에서 하루를 자는 게 오늘의 일정인데. 오늘의 풍광을 되돌아보니 세상 좋은 구경이란 구경은 전부 한 한국의 트레커에게 이 먼 곳까지 올 만큼의 풍광으로는 부족했다. 유럽엔 몽블랑도 있고 돌로미테도 있지 않은가?
“불가리아가 자랑하는 산세는 뭐야?”
나의 질문에 지브코는 난감해 한다.
“무글라, 겔라로 이어지는 나머지 구간은 어때? 무글라는 혹 무슨 뜻인지 알아? 혹 몽골이라는 뜻 아냐?
인도사람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을 무굴이라고 했거든. 유럽인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무굴, 모갈, 무글라 같은 뜻일 거야. 몽골 세력이 오스만에 쫓겨 산속으로 숨어들었고 그들이 살던 마을이라는 뜻일 거야. 무글라로 휑하니 가볼까? 산을 걸으러 왔는데, 또 역사 추적이 되어버렸다. 트리가드나 무글라나 산줄기를 타고 가기 전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계곡 상류의 마을이다. 계곡 입구는 물줄기만 겨우 지나갈 만큼의 틈새지만, 강제로 산을 깎아 자동차 길을 내어 마을을 이었다. 오스만인들 이들의 존재를 알았을까? 존재를 알았다고 한들 이들을 지배하려 했을까? 그냥 놔두는 게 더 나은 지배였을 텐데..

이제 하나의 궁금증이 더 남는다. 로도페스 산맥은 그리스로 이어진다. 그리스의 산도 이렇지 않을까?
유럽에서 손꼽는 깊은 계곡 역시 불가리아와 만나는 그리스 북부에 있다. 이런 석회암질의 거친 암릉이 물에 녹아 깊은 절벽을 만들었고 그렇게 그리스 내륙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그리스가 유지된 게 아닐까?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가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침공해 들어왔을 때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테르모필라이의 좁을 협곡을 막고 페르시아의 대군을 막았었다. 300명으로 페르시아의 대군을 막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양고디나 계곡에 들어서고 보니 가능하다는 걸 금새 알게되었다. 장비 혼자서 조조의 20만 대군을 막아낸 장판교 이야기와 무엇이 다른가. 다리 하나를 막아 20만을 이겨냈듯이 좁은 계곡을 막아 20만의 페르시아 정예병을 을 막아냈으니 말이다.
그리스 국경이 멀지 않은 이 땅에서 그 옛날 페르시아의 한 서린 아픔을 느껴본다. 역시 트레킹은 그 땅을 걸어보아야 한다. 책만 보고서야 그 뜻을 어찌 이해할꼬..

[양고디나 계곡의 입구]
[하늘도 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