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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편 2화 : 그리스 문명은 그리스 땅이 낳은 서자인가?

 

하니아(Chania)의 석양은 아름답다. 지중해가 왜 지중해인가? 땅 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지중해가 아닌가? 땅과 땅 사이를 가르며 지는 석양은 찰랑이는 부두의 물결에 녹아내리듯 찬찬히 사라진다. 이런 분위기를 만끽하려는지 부둣가의 식당은 만원이다.
크레타의 첫날밤. 달은 은근히 작은 도시를 삼킨다. 왜 산토리니는 하얀색으로 도배를 했을까? 하니아도 산토리니만큼은 아니지만, 해안가의 집들이 온통 하얗다. 강렬한 태양에 저항하려는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크레타 섬의 안내자는 바게리스(Vagelis) 라는 30대 후반의 건장한 남성이다. 아는 것도 많다. 저녁을 먹으며 그와 나눈 대화는 왜 그리스엔 화산이 없냐는 것과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지척인데 그리스엔 대리석이 거의 없고 90% 이상이 석회암인 것에 비해 이탈리아는 세계 최대의 대리석 생산지이니 그 차이가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고, 물고기의 성 선택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 질문에 그는 끄떡없이 답을 한다. 나의 서툰 영어로도 대략의 소통이 가능하게 쉬운 영어로 설명해주는 대화가 거침없다. 그런데 바게리스나 나는 아는 게 많고 호기심이 많다. 언어가 뭐 그리 중요한가? 느낌이 살아있고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지. 유창한 영어로 잡담하는 것보다는 서툴지만 진지하게 알려고 하는 호기심이 빛나는 자리였다. 식탁에 올라온 물고기를 보며 첫 질문은 암놈일까? 수놈일까? 였다. 그의 답은 기상천외했다. 수놈이었다가 암놈이 된 물고기라는 것이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살고 있으니 물고기에 대한 지식이 나와 비교가 안 될 터지만 이런 이야기는 놀랍기만 하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책 이름을 적어준다.

 

스탠퍼드 대학의 생물학 교수 ‘조안 러프 가든(진화의 무지개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리본 장어와 흰동가리는 무리에서 암컷이 죽고 나면 수컷 중 가장 우수한 수컷 한 마리가 암컷으로 성을 바꾸어 무리의 번식을 책임진다고 한다.
누구나 암컷이 되는 게 아니고 가장 우수한 수컷 하나만이 무리 사회의 필요에 의해 성전환을 한다고 하니 기가 막힌 일이다. 용치놀래기의 경우 보통 수컷 한 마리가 암컷 3~4마리를 거느리고 번식하다가 수컷이 죽으면 가장 큰 암컷이 수컷으로 성을 전환하여 가족을 이끈다니 진화란 결국 종족보존을 위한 게 아닌가? 전체가 몸을 바꾸는 예도 있다.
감성돔의 경우 태어날 때는 모두 수컷이지만 5년 정도 자라서 몸길이가 30㎝ 이상이 되면 대부분 암컷이 된다고 한다. 이는 정자는 부피가 작아 어린 몸으로도 품고 지낼 수 있지만, 난자는 부피가 커서 성어가 되어야 품을 수 있기 때문이라니 결국 성의 선택이나 변화 모두가 종족보존과 번식의 필요에 의한 게 아닌가.
인간은 무엇인가? 종족보존과 번식이 아닌 흥미로 섹스를 하고 흥미를 위해 다양한 섹스 산업을 발전시켰으니 진화의 정점에 오른 오만인가? 아니면 아직도 진화가 미숙해서인가.. 배타적인 섬사람의 기질에 무뚝뚝한 그리스인의 기질까지 타고난 바게리스와 나는 식탁에 앉아 5분 정도 열을 냈지만 서로 필요한 말이 끝나면 또 침묵이다. 언어가 짧은 이유도 한몫하지만 그런 기질의 사람이다.

[크레타 섬의 안내자를 맡은 바게리스]

“내일 코스에 대해 설명 할까요?”
“그냥 따라가면 되지. 듣는다고 알겠어요?”
“내일은 8시 30분에 택시를 타고 아기아 아이리니(Agia Eirinis)계곡 입구에 도착해서 7km를 걷고요. 수기아 해변에서 점심을 먹고 택시를 타고 오마로스로 이동해서 숙박합니다.”

어지간히 할 말이 없었는지 결국 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택시는 크레타 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을 넘기 위해 가파른 산길을 지그재그로 달린다. 그렇게 산을 넘어 다시 지그재그로 내리막길을 달린 후 1시간 만에 아기아 이리니 계곡에 내려놓는다. 등산화를 조이고 계곡에 들어서니 아늑하고 평탄한 산길이 꼬불꼬불 이어진다. 암봉을 절개하듯 양쪽의 절벽은 거대한 벽을 하고 서있다. 산을 날카로운 흉기로 내려친 듯 절개된 사면은 반듯한 절애를 이루었다. 좁게 다가온 시야를 가릴 만큼 답답한 암릉은 그렇게 7km를 달린다.
대학에 들어가 산악회 활동을 하며 설악산 동계 등반을 갔었던 1982년 겨울. 바닥이 꽁꽁 언 가야동 계곡을 걸었었다. 좁은 계곡은 물목을 좁혔다 늘렸다 하며 반나절을 걷도록 끝이 없었고 그 끝에 희운각 대피소에 닿았을 때는 해가 지려는 시간이었으니 꽤나 긴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공룡 능선과 용아장성이 만든 능선, 설악산에서도 쉽게 들어가기도 나오기도 어려운 계곡이었던 것이다. 그 높이와 절박함,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아기아 이리니 계곡이 그때의 가야동 계곡이다. 아기아 이리니 계곡이 더 크겠지만, 내가 35년 더 산에 다녔으니 대학 1학년 시절의 가야동 계곡에야 비할라야..

[위와 같은 절벽이 7km나 이어져 있다.]

계곡은 깊다. 누가 산의 속살을 파고들어 산을 자르고 지나간 것일까? 속살이 드러나도록 산을 깊게 파고든 건, 물일 것이다. 물은 바위를 뚫고 석회암질의 산을 파고들어 깊은 협곡을 내었고 계곡은 물이 지나간 길을 뒤쫓아 구불구불 이어진다. 이 계곡에 얽힌 이야기를 바게리스가 늘어놓는 데, 역시나 투르크의 침공 이야기가 나온다.
오스만 투르크의 침공을 피해 남녀가 이 계곡에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리스나 불가리아의 숨겨진 계곡은 왜 오스만 투르크에 저항한 이야기로 포장해 전설로 내려오고 있을까. 그 자체로도 멋진데 굳이..
이슬람의 통치는 자치를 기본으로 하는 현지화 전략이었다. 이전에 살던 대로 살아도 전혀 지장이 없고, 도리어 무지막지하게 걷는 지방영주의 징수권을 통제해서 생활을 낫게 해준 예가 많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짧은 시간에 영토를 확장하고 한번 이슬람에 지배를 받은 땅은 다시는 가톨릭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니 그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강압이 아닌 조화가 이슬람 확장의 숨겨진 키였다면 현재의 이슬람 원리주의와는 좀 다른 거 같다. 아마도 중세의 이슬람은 스스로가 강자였고 지금은 약자이기 때문에 조화롭게 공존할 여유를 잃은 건 아닌지..
진실이야 어떻든 불가리아, 그리스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고 오스만 투르크에 대한 저항이 민족적 긍지로 자리 잡고 있다. 뒤집어 보면 당연하지 않나. 일본에 저항한 우리의 역사가 자랑스럽듯이.. 아무 저항 없이 오스만 투르크를 받아들였다면 불가리아나 그리스가 지금 존재할까? 역사는 기억의 산물이 아니던가? 내가 기억하는 사실이 진실이건 아니건 기억에 내재된 감정이 결국 가치의 척도가 될 수밖에 없으니 가톨릭 정교 국가의 위상에 맞는 저항은 당연한 가치로 보인다.

[계곡에서 올려다본 절벽]
[바위 틈 사이로 자라난 나무]

트레킹은 아주 수월했고 계곡에서 올려다본 절벽은 거대했다. 그런 벽이 7km나 이어져 있으니 올려다보는 일을 그만두었다. 분명 그리스는 악산이고 거친 대지다.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아낸 그리스의 힘은 땅의 구조적 협조라는 말을 하고 싶다. 거칠고 까칠한 땅 그리스. 문명을 낳은 그리스의 비밀이 곤란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명이 어디 편안한 땅에서 피어났던가? 자연과 한판 붙은 결과 태어난 게 문명 아니었나.. 그리스 문명은 그리스의 자연 때문에 태어난 서자일 것이다.
내일 다시 시작될 트레킹에서 다시금 그리스의 대지를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