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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편-3화 : 크레타 섬의 남과 북을 잇는 협곡은 결국 길이었다.

 

오늘은 트레킹 거리가 18km라고 아침부터 바게리스가 잔뜩 겁을 준다. 그런데 어제 확인된 사실은 그보다 내가 빠르고 잘 걷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허풍에 난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넌 어떤데?”
“난 1년이면 10번도 더 걷지.”
“힘들지 않아?”
“난 괜찮아.”

난 속으로 답했다. 그럼 나도 괜찮아. 18km는 나도 툭 하면 보통 걷는 거리야, 계곡이 얼마나 험한지는 몰라도.. 계곡으로 향하는 아침, 차 안은 소름이 끼칠 만큼 추웠다. 입구에 내려서도 다들 두꺼운 폴라자켓이나 담요를 쓰고 태양이 비치는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아침 8시 30분, 해가 들어올 만한데도 해는 이제 겨우 신고식을 하는 정도다. 그리고 9시가 되었다. 사람들은 옷을 벗고 담요를 개어 반납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인다. 왠일인가.. 바게리스도 지퍼가 달린 바지의 다리 부분을 떼어낸다. 무슨 일인가.. 해가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리 부산을 떨 필요가 있나. 아직 서늘한데. 그러나 그건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알게 되었다. 나도 옷을 하나둘 반팔만 남기고 다 벗었고, 바지를 무릎 위로 접어 올렸다. 갑자기 여름이 된 것이다. 태양의 힘은 가공할만하지만 이렇게 극명하게 나타나는 건 처음 체험한 상황이라 나도 놀랐다. 태양이 대단하기는 하구나..
오늘 걷는 길은 사마리아 계곡(Samalia George)이다. 크레타 섬에서 트레킹을 꿈꾼 건 20년쯤 전이었다.
「유럽여행 13개국」 지금보면 너무 서툰 안내서를 구입해 보았을 때, 그리스 크레타 섬에 협곡 트레킹이 있다는 짤막한 한 줄을 본 게 인연이었다. 그리고 10년이 훨씬 지나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2~3년 전에야 그때 내 기억에 남은 크레타 섬의 트레킹이 사마리아 계곡 트레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마리아는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인종이다. 유대의 역사를 통해 본 사마리아는 부정적인 집단으로 여겨진다.
사마리아의 탄생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한 이스라엘 왕국(12개 이스라엘 민족 중 10개 민족이 포함된 북부의 왕국)이 앗시리아의 강요에 의해 앗시리아인뿐 아니라 타민족과의 혼인으로 만들어진 인종이다.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에게 천대를 받는 건 여러 이야기에 언급되는데, 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할 때,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예루살렘에서의 거주조차 막았다는 기록이 있다.

[바위가 굴러가지 않도록 나무로 받쳐있었다.]
[계곡 바닥은 메말라 있었다.]

예수는 천대받는 사마리아인에게 ‘신을 믿는 한 인간은 동등하다’는 아젠다를 줄 때 그 비교 대상이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런 명칭을 왜 이 계곡에 가져다 썼을까.. 나의 질문에 바게리스는 옛 지명이라 알 수 없다고 한다. 단지 계곡 안에 사마리아라는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이다. 정말 9km를 걸으니 작은 마을이 나온다. 여기가 점심 먹는 지점이라고 한다. 그럼 이 마을의 역사는..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벌목꾼들이 기거하며 시작된 마을이고, 이곳이 물이 많고 계곡의 중간지점이라서 거주지가 된 것이지. 여름에 물이 많아 나무를 강에 띄워 내려보낼 수도 있고..내 상상과 전혀 맞지 않는 대답이었다.
사마리아인이 유대인들의 핍박에 못 이겨 기원전 1~2세기쯤 팔레스타인(가나안)을 떠나 크레타 섬에 도착해서 이 꼴 저 꼴 안 봐도 되는 깊은 계곡에 숨어 살게 되면서 붙은 이름이라는 답이 나왔으면 오늘 발걸음이 얼마나 호쾌했을까.. “그게 아니고 이럴 거야.”라고 장황하게 설명해 주어도 바게리스는 끄떡하지 않는다. 정말 무뚝뚝하고 융통성이 없다. 이탈리아 사람 같으면 그렇다고 할까 하며 맞장구를 치고 넘어갈 일을 그게 아니고 이거라고 말을 하니 말이다. 맛과 멋이 이리 없는 사람이 그리스 사람들인가.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학문이 정착했고 이탈리아에선 예술이 발달했나.. 그리스 사람과 같은 기질이 독일 사람들이다.
근대의 학문은 대부분 독일에서 기틀이 잡히지 않았나. 반면 이탈리아 사람과 비슷한 기질이 프랑스 사람 아닐까?
프랑스가 싫어하려나.. 하지만 이탈리아의 바통을 이어받아 예술의 본고장이 되었으니 일면 기질이 비슷하지 않은가.. 학문은 타협과 조화의 대상이 아니지만, 예술은 교감과 소통의 실체다. 더 이상 묻지 말고 바게리스가 이거라고 하면 그냥 놔두어야겠다. 사실을 가지고 타협하려 하면 안 되지 않는가..
트레킹은 시작하면 3km, 고도로는 500m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져 있다. 반대로 걸으면 좋으련만 18km의 계곡의 마지막에 3km의 오르막이라면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여하튼 바게리스가 안내하는 대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계곡은 깊고 넓지만, 나무가 많고 폭이 넓어 어제 걸은 아기 이리니 계곡보다 맛이 덜하다. 또 길도 훨씬 거칠다. 드러난 돌이 바닥을 두껍게 깔고 앉아 있어 바닥이 단단한 가죽 중등산화가 적합했다. 점심을 먹고 어제만 못하다는 개인 의견을 피력하자 좀 참아보란다. 3km 정도 더 가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는 거다.
“그래? Really?”
기분 좋으라고 기대하는 척하고, 사실 반쯤 기대하며 3km를 내리 달렸다. 바게리스가 이야기하는 목 좋은 계곡. 한 장면을 위해 목숨 건다면 사마리아 계곡의 목구멍이라 불리는 몇백 미터의 좁은 협곡은 정말 멋진 그림이다. 그런데 하필 이놈이 중간지점에 끼어 있을 게 뭐람.. 이리가도 9km, 저리 가도 9km. 참 불편한 놈이다..

[사마리아 협곡으로 가는 길]

물물이 훑고 지나가 반듯하게 드러난 결은 세월의 터울이 베어 있다.
사암층, 진흙암층(니암), 석회암층에 절편 호박을 넣은 듯 호박돌도 하나둘 박혀있다. 거대한 벽은 성의 문기둥 같이 위엄있게 마주 서있다. 인도네시아 힌두교의 상징은 대칭을 이루는 문기둥이고 그 위에 올려져 있는 빈 의자다. 빈 의자의 주인은 분명 신일 것이다. 저 문으로 들어가면 신을 만나는 건 아닐까? 그만 멈칫하고 들어가야겠다. 신의 땅에 왔으니 신이 되어야겠다. 그리스는 그런 오만을 받아주는 땅이 아니던가?
사마리아 트레킹을 끝내고 로우메리라는 항구에서 배를 기다린다. 5시 30분, 배를 타고 로우트로(Loutro) 항구로 이동하여 오늘 하루를 묵을 것이다. 참 궁금한 게 또 생겼다.
기원전 2,000년에 크레타 문명이 발생했다고 한다. 기원전 2,000년이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는 상당한 수준의 문명을 이룩한 선진국이었다. 당시 중국은 한나라가 있었고 인도엔 모헨조 파라파 문명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구상의 문명 지역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였다. 그런데 크레타 섬의 문명은 크레타 섬 남쪽에 성립되지 않고 북쪽에 성립되었을까? 크레타 섬 남쪽 해안을 따라 배를 타고 가면서 그 의문점이 해소되었다. 크레타 섬의 남쪽은 항구가 들어서기에도 부적합하고,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 자리로도 적합해 보이지 않다. 어쩌면 배를 타고 지나가는 해안 일부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배에서 내린 곳은 로우트로라는 멋진 어촌이다. 말이 어촌이지 하얗고 반듯한 집이 큐빅 모양으로 질서 있게 지어진 유명 관광 촌이다. 저녁 식탁 테이블에 깔린 종이가 마침 크레타 섬 전도다. 나는 바게리스에게 나의 궁금증을 이야기했다.

[물이 훑고 간 벽면]
[협곡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

헤라클리온은 그리스와 접한 북쪽의 해안이다. 크레타 문명은 해양 문명이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와의 교류를 통해 성립된 문명이다. 반면, 당시 그리스본토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왕국은 그리스 본토와 마주한 북쪽 해안에 있는가? 그는 크레타 지도의 여러 장소를 지목하며 크레타 문명은 헤라클리온이 중심지지만 남쪽과 동쪽에 여러 항구가 있었고, 이 항구를 통해 교역했다고 설명한다. 그가 집어준 지점에 동그라미를 치고 사진을 찍으니 헤라클리온을 중심로 항구가 여럿 있었다는 설명이 된다. 당시 강국이 남쪽 바다 건너 있는데. 그들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한 북쪽에 왕국을 지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교역항은 남쪽에 두고 왕궁을 북쪽 해안에 두고 항구와 수도를 연결하는 통로가 오늘 걸은 사마리아 계곡, 어제 걸은 아기아 이리니 계곡이었다는 가정을 하고 보니 이틀 간 참 의미 있는 계곡트레킹을 한 것이었다.

[식탁 테이블에 깔려있던 크레타 섬 종이 지도]
[‘사마리아 계곡’이란 이름의 사연은 무엇일까?]

사마리아 계곡도 분명 그 사연이 있을 것이다. 나의 상상대로 기원전 1~2세기에 사마리아인들이 넘어와 숨어지낸 곳이 아닐까?
정말 나는 소설 같은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가나안을 떠나 크레타 섬 남쪽 해안에 닻을 내린 사마리아인들이 가장 쉽게 숨어들기 좋고 가장 가까이 위치한 계곡이 사마리아 계곡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