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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편 5화 : 네로는 폭군이었나? 실패한 왕일 뿐인가?

 

아테네의 주항구인 피라우스 부두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트레일러가 몇 대나 들어갈 만큼, 크루즈선은 세월호만큼이나 크다. 승객 전용칸으로 들어가면 에스컬레이터가 맞이한다. 한 층을 더 올라가니 또 에스컬레이터.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을 더 오르니 접수창구가 나온다. 여기서 표를 보여주고 방 열쇠를 받았다. 2인실은 호텔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화장실과 샤워부스가 있고 깔끔한 침대와 테이블이 있어 부부간에 쓰긴 안성맞춤이었다.
오늘 내 옆 침대엔 누가 들어오려나.. 부부의 연을 맺을 수야 없다지만 다정다감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배가 출항하도록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횡재라기보다 씁쓸했다. 사람을 기다렸는데…한 잠 푹 자고 나니 9시간이 지나 피라에우스 부두에 닿았다. 택시를 타고 기차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코린토스(Kolintos)역에서 내렸고 다시 택시를 타고 오늘의 숙소인 해안가의 비치 호텔에 닿았다. 잠시 잠을 풀고 다시 택시를 불러 코린토스 운하를 향해 갔다. 택시운전사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 같다. 먼저 운하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큰 다리로 차를 몰아가더니 15분 줄 테니 사진을 찍고 오란다. 그리고는 크루즈를 탈 수 있는 부두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부두는 코린토스 만에서 산토리니만으로 연결되는 운하의 입구다. 코린트 크루즈는 여기서 배를 타면 운하를 따라 6.4km 지나가서 다시 배를 돌려 돌아오며 약 1시간 소요되었다. 길이는 6.4km 폭은 21m인 코린트 운하는 현대에는 너무 좁아 경제성이 없지만, 고대에는 꽤 대단한 상상이었고 도전이었다. 코린토스 운하는 고대부터 건설계획이 여러 번 제기되었고 기원후 1세기에 실행에 옮겼으나 실패했다. 그 후로도 로마의 황제들은 여러 번 이 지협에 바닷길을 만들어 펠로폰네소스 섬을 돌아오던 뱃길을 단축하려는 꿈을 꾸었다.
이렇게 볼 때 에스원이나 파나마 운하는 물론 스코틀랜드 수도의 대선배 격인 운하가 코린트 운하인 셈이다. 배가 1시에 출발한다고 해서 급히 샌드위치 하나를 사서 배에 올랐다. 점차 좁아지고 점차 높아지는 운하의 정점을 지날 때는 고대인들의 노고에 경외의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운하 공사가 끝난 건 1881년이고 지질학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용에 들어간 건 1893년이라고 하니 지금의 로마는 꿈만 꾸었지 운하를 실질적으로 만든 건 프랑스인 것이다.

[코린토스 운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연약한 사암과 충적토의 진흙토양으로 이루어진 벽]
[코린토스 운하는 1893년에야 완공되었다.]
[네로’로부터 시작된 코린토스 운하]

은을 5% 정도 줄여 화폐를 5% 정도만 더 늘리는 정책이었는데, 네로의 화폐 위조 정책은 네로의 후임자들도 이를 활용했고 로마 말기에 이르러서는 은 향유량이 원래의 질량에 1/5,000까지 줄어 쇠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렇게 되니 국가에서도 로마 주화로는 세금을 받지 않고 현물로 세금을 내라고 공표하게 되었고 시민들은 세금을 내기 위해 현물을 준비해야 하니 도시 중심의 상업, 유통이 급속히 쇠퇴하고 수공업적 농경사회로 돌아가면서 로마의 멸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시작이 네로였으니 시작이야 어떻든 네로가 책임질 일이기도 하다. 그가 세금을 더 걷어서 서민들에게 목욕탕, 공연장 등 오락시설을 더 제공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코린토스 운하라니 배에 바라보는 흙벽의 높이가 아찔하기만 하다.
이 땅이 모래층이 아닌 바위층이었다면 로마는 멋지게 길을 냈을 텐데, 운하를 완성했다면 네로는 위조화폐를 만들지 않고도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 나갔을 텐데.. 선심 좋고 대중의 사랑에 목말라한 예술가적 통치자 네로와 에바 페론(전 아르헨티나 부통령 후안 페론의 두 번째 부인), 우고 차베스(전 베네수엘라 대통령)를 생각하며 석양의 노을을 마신다. 분명 그들은 대중의 사랑을 갈구했고 대중 속에서 자신을 존재를 찾았다. 대중이 원하는 거면 무조건 해주려 했고, 무리하게 재원을 뿌리려 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었다. 가진 자가 언제 돈을 쉽게 내놓나.. 강제로 빼앗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가진 자의 재산가치를 반으로 줄이는 방법을 쓴 것이 아닌가? 그걸 흔히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한다.
아르헨티나는 에바 페론의 포퓰리즘 때문에 재정 파탄이 일어났다고 한다. 로마는 네로의 위조화폐 때문에 제국의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럼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무엇이 더 나아졌을까? 로마의 귀족들은 스스로 땅을 내놓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을까?
아르헨티나의 독과점 지주와 해외자본은 스스로 권리를 줄이고 이익을 나누려 했을까? 네로나 에바 페론이 없었어도 로마와 아르헨티나의 미래는 비슷하지 않았을까.. 잠시나마 동시대를 산 서민들은 네로와 에바 페론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좋은 시절 보낸 건 아닌가.. 모를일이다. 후대의 평가는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