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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편-6화 : 풍요로운 대지에 피어난 문명, 미케네와 스파르타

 

펠레폰네소스 섬 중앙에 자리 잡은 헤라스(Helas) 산은 나무가 풍성하고 물이 우렁차게 흐르는 로우시오스(Lousios) 계곡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계곡을 이루는 두 줄기의 산은 거대한 암릉이 아직 완전히 벗겨지지 않아 푸르름이 유지되고 있으니 그리스의 다른 산과 다른 얼굴임에는 분명하다.
그리스에서 메마른 대지만을 보았다. 들판의 푸르름이라야 올리브 농장뿐이었기에 로우시오스 계곡은 나를 몹시 설레게 했다. 트레킹을 하기 위해 로우시오스 계곡 트레킹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내일 트레킹 조인이 가능한가 물으니 몇 명이냐고 물어온다. 한 명이라는 말에 실망하는 한숨이 들려온다.
“한 명을 안내해 줄 수 없군요.”
나는 로우시오수 계곡 트레킹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호텔에 문의해 보았지만 대안이 없었다. 어찌할까 고민하던 중에 어려움이 있으면 자기에게 연락하라고 명함을 건넨 택시운전사가 생각났다.
“나는 내일 로우시오스 계곡을 트레킹하고 스파르타 유적지인 미스트라스와 미케네 유적지를 하루에 돌아보려고 해요. 얼마 정도 해요?”
그는 잠시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라며 10분도 안 되어 패드를 들고 찾아왔다.
“당신의 일정은 하루에 불가능합니다. 미스트라스는 스파르타 시에서도 아주 멀어요, 트레킹을 꼭 해야 한다면 호텔로 돌아올 때 미케네를 둘러볼 수 있어요.”
“그러면 얼마죠?”
“300유로.”
“좀 더 싸게는 안 될까요?”

결국 난 200유로로 합의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로우시오스 계곡으로 출발했다. 로우시오스 계곡은 운전사에게도 도전이었다. 그는 길을 안다는 동료 운전사와 수시로 통화하고 구글에서 내려받은 지도를 확대해가며 길을 찾아가는 데 깊은 산길로 한없이 들어간다. 그뿐 아니라 세 번이나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와야 했다. 그럴 때마다 100유로를 깎은 게 미안하기만 했다. 결국 작은 지도가 붙어있는 트레킹 시작점에 닿았고 나는 지도를 카메라에 담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계곡은 수림이 깊고 아늑했으며 우렁찬 물소리로 가득했다.
걷다가 계곡을 내려다보면 영화 ‘로스트 월드’에 나오는 다른 세상의 통로같이 오묘하다. 크레타 섬의 대협곡과는 완전 딴판인 것이다. 조용한 숲길을 따라 40분쯤 오르니 거대한 절벽에 조형물같이 멋진 프로도모스(Prodromos, 영어의 철학이라는 뜻) 수도원이 걸려있다. 외관상으로는 라사의 포탈 궁 같은 모습이기도 하고 벽에 걸린 형태적 모습은 라닥에서 본 라마유르 콤파 같기도 하다.

[다른 세상의 통로같이 오묘한 숲길]

로우시오스 계곡의 상징이기도 한 프로도모스 수도원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폈다. 절벽 벽면을 따라 3층으로 지어진 수도원은 지지공간이 없는 만큼 폭이 좁고 벽면을 따라 길게 지어졌다.
한 층을 오르면 채플 같은 공간이 나온다. 멀지 않은 마을에 교회가 있으니 이 공간은 수도사들의 기도공간일 것이다. 세상과 등지고 사는 그들은 신께 바쳐졌건만 떠나지 못하는 마음의 속세 때문에 절규하고 고통스러워 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이 공간에서 신께 매달리며 반성하고 정진했겠지? 수도원의 기도 공간은 신분적, 환경적 상처가 낸듯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나는 초에 불을 붙여 어두운 공간을 밝히는 나이든 수도사님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는 디미차나(Dimitsana)로 가려고 합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수도사는 내 말을 못 알아 듣는 게 미안했는지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다 어떤 여자 앞에 이르러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아마도 내 이야기를 한 듯하다.
“디미차이나요?
“아주 멀다고 하세요. 4시간을 걸어야 한다고 하세요. 혼자서는 가지 말라는군요.”

나는 걷는 게 직업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수도원을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잘 보이던 트레일 표시가 보이질 않는 것이다. 난 좀 전까지 걸었던 마을 길을 빠르게 걸었다.
숲길로 접어들더니 길이 희미해지고 큰 절벽이 나왔다. 이 길이 아닌 것이다. 마을로 돌아와 다시 다른 길을 택해 걸었으나 이 길 역시 어느 정도 가다가 길이 없어지고 아까 그 길과 만나고 말았다.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산보하는 노인을 만나 길을 물었다. 나는 디미차나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고 노인은 한참을 이야기했는데 서로 통한 건 디미차나와 수도원뿐이었다.

[로우시오스 계곡의 상징인 프로도모스 수도원]

“디미차나, 모노스트리” 그리고는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뭐라고 말한 것 일까? 나는 무얼 알아들은 것인가? 난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디미차나에 가면 안 될 것 같은 날이었다. 그만 디미차나를 포기하고 내려가야겠다 마음먹고 한 발을 떼는 데 바닥에 붉은 화살표가 보인다. 한치 건너 나무에는 길 표시가 선명하게 붙어있다. 왜 난 저걸 조금 전까지 못 봤지? 같은 자리에 몇 번을 서성였는데..
4시간을 생각한 트레킹을 2시간 만에 끝내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미케네 유적지에 잠시 들렀다. 유적지 입구에는 사자 두 마리가 힘을 겨루는 상이 상징물로 조각되어 있다. 미케네가 낳은 사자 같은 남자.. 아가메논과 아킬레스 그 둘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안내자를 따로 두지 않았으니 궁금해도 어디 물어볼 데도 없다. 미케네 유적지도 다르지 않다. 3,600년 전이면 화려한 건축이 남아있을 시기가 아니지 않은가? 돌무더기와 돌을 쌓아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터가 덩그러니 역사의 증인행세를 하고 있다.
미케네는 기원전 1,600년경 성립되었고 기원전 13세기 미케네의 왕 아가메논이 이끄는 그리스 연합군은 트로이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기원전 11세기엔 미케네도 멸망했다. 미케네가 사라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리스 반도엔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지역의 맹주로 성장했다. 스파르타는 남긴 게 별로 없지만, 아테네는 찬란한 문화유산과 유적을 남겨 그리스를 대표하는 도시가 되었다. 둘의 차이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스파르타는 역사에 헌신한 바가 큼에도 남은 것도, 남긴 것도 마땅히 없을까..

[미케네 유적지]
[쌓아올린 돌로 이루어져있다.]

스파르타를 생각하면 의문점으로 남는 게 있다.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괘씸하게 생각하여 침공했지, 손 봐주려는 대상이 스파르타가 아니었다. 그런데 스파르타는 왕국의 생존을 걸고 맨 앞에 나서 페르시아와 맞짱을 떴다. 스파르타는 왜 그랬을까.. 분명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손봐주러 왔다고 알려주었고 우방이 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전쟁을 받아들였다. 세금이나 내고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평화를 유지했어도 될 일 아닌가?
아테네는 소아시아의 해상 도시들과 상권이 겹쳐서 페르시아와 사이가 좋을 수 없지만, 스파르타는 해상국가가 아닌 육상국가였다. 펠레폰네소스를 돌아본 이틀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이 지역은 흙이 많고 대지가 풍요로웠다. 육상산업으로도 충분히 왕국이 유지될 땅이다. 아테네처럼 돌산으로 둘러싸여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테네와 운명을 같이한 스파르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
노예가 되기보다 죽음을 택한 300인의 용기. 스파르타는 왜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자기들의 전쟁이라고 생각했을까. 아테네가 도리어 협상파와 주전파의 논쟁으로 우유부단함을 보이는 상황에서..전쟁이 끝나고 그리스에 남은 건 무엇이 있었나. 아테네의 번영말고.. 혹 역사가 잘못 알려준 건 없나?
아테네는 영원히 살아있음에도 스파르타에 남은 게 없으니 스파르타의 선택에 궁금증만 더해간다.. 스파르타는 그리스 내 유일한 왕정국가였고 아테네는 가장 자유스런 민주국가였기 때문이라는 진부한 분석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