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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편-2화 : 미지의 땅은 없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뿐이다.

[불가리아 산맥의 위치와 지역]

어제 저녁에 마신 한 잔의 와인이 문제인가, 안 마시던 커피를 3잔이나 마신 게 문제인가.. 아침부터 장이 꼬이고 설사로 고생이다. 자꾸 목이 쉬고, 이물질이 끼어서 병원에 갔더니 역류성 후두염이라면서 내려준 처방이 3개월 동안 약을 정성스럽게 먹으라는 것이다. 약만 먹으면 좋으련만 단서가 줄줄이 길다. 술, 커피, 초콜릿,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수면 3시간 전부터 음식물 섭취 금지, 과식 금지에 꼭꼭 씹어먹고 규칙적으로 식사량과 시간을 정해 식사하라는 요청까지 지키기 어려운 것뿐이다.
유럽으로, 남미로, 아프리카로 출장이 줄줄이 잡혔는데 식사시간을 어찌 지킬 것이며 외로운 밤의 술 한잔마저 빼앗아가다니, 하지만 목을 50년 이상 사용한 결과라니 3개월은 참아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남은 30년을 위해서라도..

[불가리아 전통 음식과 불가리아를 닮은 고혹적인 주인 아주머니]

마을을 지나 산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깊은 숲 속에 심하게 굽이치는 산길을 30분 달려 산장에 닿았다. 오늘은 어디를 갈 거냐는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이었음을 알았다.
29살의 지브코는 클라이밍, 스키, 산악자전거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친구다. 그러니 그의 생각이 나와 많이 다를 텐데,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걸 깨달았다. 지브코가 가장 좋다고 안내한 트레킹 코스는 한 손을 써야 할 만큼 가파른 너덜 길이었다. 즉, 정상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인 것이다.

[정상까지 가장 빠르지만 가파른 너덜길]

피린 산 최고봉에 오르는 데 3시간, 정상을 일주한 후 다른 길로 돌아 내려오는 데 3시간. 도합 6시간이 소요된다는 지브코의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이런 길을 3시간이나 간다고? 나는 한 시간 반쯤 올라가다 멈추었다. 이런 길을 계속 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자네 나이엔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이젠 그리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구만. 왜 이 길을 가야 하지?
“난 그만 하산해야겠어.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멀지 않은 곳에 좋은 길이 보이지 않는가?
“저리로 가면 될 거 같은데 왜 이 길로 가는 거야?”
지브코는 머리를 긁적이며 길이 있는지 알아보겠다며 갔다 왔다
“저기에 길이 있네요..”
내가 제대로 본 것이다. 산악 가이드라고 모든 길을 다 아는 것이 아니고, 늘 하던 버릇처럼 내가 앞서가지 않았나.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든 건 나고, 지브코는 내 뒤에서 걸었으니 길을 잘못 든 건 나의 책임이다. 그러니 그를 탓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좋은 길에 들어서니 아프던 배앓이도 멎고, 힘도 덜 들어 걷기가 수월하다. 그래서 맘이 바뀌었다.
“저기 능선까지만 가보세.”
그렇게 마지막 능선 전까지 올랐다.

[구름이 덮힌 피린 산]
[아름다움의 상징, 피린 산]

불가리아를 대표한다는 아름다움의 상징 피린 산의 전부는 무엇일까?
나의 궁금증은 멎지 않는다. 앙상한 돌산과 거친 암봉을 오르는 것 말고, 맑고 쾌청한 호수를 품은 전경. 그런 게 어디인가에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채근에 지브코는 앞산 뒤에 호수가 즐비하게 늘어진 고원 평지가 나온다고 알려준다.
“그럼 산장으로 내려가서 옆으로 난 평지 길을 걸으면 되는 거지, 그 길로 안내하지 왜 가파른 돌산으로 데려왔니..”라고 묻자
“멀리 발칸 산맥과 릴라 산군을 보려면 정상에 올라야 해요.”
정상을 볼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 그건 어쩌면 등산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정상은 등산의 목숨 같은 정의다. 그래서 조망의 등산이라 하지 않나. 그런데 보려고만 들면 정상이 아니고는 맘에 차지 않을 테니, 그만 맘을 바꾸면 어떤가? 산이 품은 여러 얼굴 중 하나가 정상이고 조망이지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숲이 좋은데, 에메랄드빛의 호수가 잔잔하다는 데 엉뚱하게 거친 암봉에 목을 매고 있었으니.. 탐험의 시대 미지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탐험가는 깃대를 꽂으며 외쳤다.
“신이여..”
그런데 미지의 땅이 있기는 한 건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땅이 있는 게 아닌가?
집착이 한 겹, 두 겹, 몸을 감싸다 보면 세상은 단순해지고 하나의 사실에 몰입하게 된다. 그래서 현자는 말하지 않는가? 산을 말하지 말고 산을 보라고.. 우린 산 앞에 가서 이름부터 묻는다. 왜 산이 이름을 가져야 하는가? 원래 없는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