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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편 1화 : 25년 전 그날은 괜찮았다. 

불가리아에서는 지브코라는 충실한 산악 가이드와 전용 차량이 있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편안한 여행을 하였다. 반면, 루마니아에서는 배낭여행을 하기로 했다.
배낭여행을 하려면 베이스캠프를 정해야 하고 짐을 단출하게 싸야 한다. 그래야 공공교통편 이용이 수월하고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여행 일수도 두 배는 길게 잡아야 한다. 알아볼 것도 많고 기다리는 시간도 길 뿐 아니라 나 같은 초짜에겐 실수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부크레슈티에 도착하는 첫날, 아직 12시도 안 된 시간이지만 짐을 맡겨야 해서 한가한 외곽의 라마다 호텔에 숙소를 마련하고, 시나이아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택시로도 얼마 나오지 않을 거리지만 배낭여행이니만큼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에 타고 보니 마그네틱으로 계산하는 시스템이어서 나는 어찌 계산할지 몰라 그냥 앉아있었다. 어쩌면 공짜버스를 원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거의 내릴 때쯤에 Control이 새겨진 조끼를 입은 사람이 다가와 표를 달란다.
“표? 난 오늘 도착해서 어디서 사는지 몰랐어요, 1레우면 되나요?”
“무슨 소리, 넌 법을 어겼어. 50레우를 내야 해.”
난 꼼짝없이 불법 승차범이 되어 50레우를 주었고, 그들은 종일권이라며 몇 번이든 탈 수 있다는 말을 붙이며 영수증을 하나 써주었다. 이런 봉변이 다 있나. 주변에서 아주머니들이 말을 거들었지만, 그 사람은 막무가내였고, 난 말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돈이 아니라 창피를 당한 것이다. 그래도 기차역까지 무사히 갔으니 50레우가 아깝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기차표를 사고 차우세추크가 지었다는, 아니 그보다 김일성 궁전의 모델이 되었다는 현재의 국회의사당을 찾아갔다. 종일 버스 승차권이 있었지만, 지하철을 타보고 싶어져서 지하철 역사에 들어갔다. 총 3개의 라인이었지만 글자를 전혀 알아볼 수 없으니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겨우 물어물어 국회의사당 건물까지 갔다. 의사당이야 이 나라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니만큼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장소라지만 이제는 호텔로 돌아가는 것이 큰일이었다. 나는 꽤 이름있는 라마다 호텔을 숙소를 잡았음에도 가는 길이 수월치 않다. 택시를 탔으면 편했으련만 벌금을 내고 종일권을 받고 나니 택시를 탈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배낭여행 아닌가? 그런저런 이유로 호텔로 돌아가는 나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루마니아 국회의사당]
[루마니아 국회의사당 앞 분수]

그런데 문제는 버스 편을 이야기해주는 사람, 길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일관되지 않았다. 나이 든 아주머니나 아저씨는 적극적으로 알려주려 하는 반면 눈이 어둡고 영어를 몰라 서로 소통에 어려움이 많았다. 반면 젊은 친구들은 영어를 구사하는 반면 뭐가 그리 바쁜지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라고 다를까? 출근하려 광화문역에 내리면 지도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그들도 나와 같은 입장이 아니었을까? 나도 그들이 적극적으로 길을 막기 전에는 외면하기 일쑤였다. 때론 길을 막아도 “바빠서, 미안.” 하며 지나친 적이 한두 번이었는가? 나 또한 정해진 시간이 있고 그 시간에 맞춰가느라 바쁜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루마니아의 젊은이라고 다를까? 다들 시간에 맞춰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노인들은 관심이 많지만 지혜롭지가 않고 자신들이 늘 다니는 버스 노선 이외에는 잘 모를 뿐 아니라 그동안 세상이 변한 걸 모르는지 엉뚱하게 알려주기 일쑤다. 그 덕에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한참을 벗어나서 또 다른 버스를 타고 엉뚱한 데로 가고, 그러다 겨우 호텔 근처로 왔다. 도착하기까지 3번의 버스를 갈아탔다. 그리고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지막으로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보니 호텔이 그리 멀지 않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알려준 게 그래도 나름대로 호텔로 접근하는 방안이었던 것이다.
오늘 다시 깨달은 사실은 배낭여행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젊은이의 몫이었다. 20대 젊은이의 영역을 탐하려 한 내가 잘못된 거지.. 내 사연을 들은 딸의 메시지도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그건 아빠의 놀이가 아니야. 우리들의 놀이지.”
어서 산으로 가야겠다. 도시라는 게 생리에 안 맞는다. 복잡하고 여행자를 외롭게 만든다. 도시가 다르면 얼마나 다른가?
낡은 건물 몇 개 다르고 사람 생김새가 좀 다른 것이 전부 아닌가.. 애들이야 그게 신기하겠지만, 세상 본 게 많은데, 그리 감동적일까, 그리 감동을 주지 않은 건물 앞에서 사진 몇 장을 남기는 게 전부인 도시 여행, 나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그래서 도시에 머무는 게 불편했다. 반면 자연은 단순하고 정직하지 않나?
전 세계 어느 산을 가도 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고 생각한 대로 반응하니 산이 나에게 그저 편안하기만 하다. 그러니 도시에서의 낯선 방황은 그만하고 어서 산으로 가야지.
오늘 길을 못 찾아 헤매고 나니 부쿠레슈티는 25년 전 내가 방문했던 도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5년 전 부쿠레슈티는 단순했었다. 서울이라고 25년 전이 그리 복잡했을까. 광화문 뒷골목에 차를 세우고 출근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공간이 있지도 않지 않은가.
번거롭고 복잡한 루마니아의 한복판에서 헤매는 동안, 나는 25년 전 특별한 기억의 공간 속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25년 전 루마니아 비자를 받기 위해 한남동의 영사관을 찾았었다. 영사는 몇 마디 물어보지도 않는데, 영사 부인이 나와 소란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왜 가느냐, 결혼은 했냐, 몇 살이냐 등등.. 영사 부인은 비자가 찍힌 여권을 건네주며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짙은 화장에 훤칠한 키, 너울거리는 긴 생머리는 짧은 치마와 긴 부츠와 잘 어울렸고 무엇보다 푸른 눈에 노랑머리가 화사해서 연예인 같은 아름다운 용모였다.
“루마니아의 유명 배우인가요?”
“아마 그리될걸요. 내 딸이라우.”
“한번 만나볼래요? 둘이 잘되면 좋겠다. 여기 전화번호와 주소..”

이게 웬 횡제수인가, 이런 미인을..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를 무척이나 그리워했다.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은 12월 20일. 나는 흥분한 상태로 부쿠레슈티에 도착했다. 그리고 택시에 올라앉자마자 주소를 보여주며 그리로 가자고 했다. 5층 아파트의 3층 인 주소지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고 정말로 그녀는 사진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 문을 열고 나왔다. 사진과 다른 점이라면 한 손엔 긴 담배를 들고 있었고, 집안에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는 게 나의 상상과 달랐다.
“남편입니다. 결혼한 지 이제 한 달 되었어요.”
루마니아까지 오는 데 2달하고 15일이 걸렸으니, 한 달하고 15일을 그녀가 못 기다린 것인가? 침실 겸 거실로 쓰는 공간이 전부인 작은 아파트는 구석에 작은 부스가 있고 남편이라는 자는 그 안에서 음악을 들을 뿐 밖으로 나와보지도 않는다.
서울에서 영사 부인이 준 주소는 딸이 혼자 머무는 작은 아파트였던 것이다. 거기로 찾아가서 만리장성을 쌓으라고 한 걸 보면 딸이 말썽꾸러기였던가 보다. 정말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미모와 아름다운 몸을 가진 여자이지만 이미 남의 사람이니.. 허탈하게 돌아섰다. 그날 저녁, 호텔로 찾아온 영사 부인을 만났다. 4개월 전에 비자를 받았는데, 영사 부인은 그때 그렇게 호들갑을 떨던 한국말을 모두 잊어버렸는지 한국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블라드라는 부쿠레슈티 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을 데려왔다. 나의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이다. 잘생기고, 매너 좋고, 공부 잘하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블라드를 친구라고 부르며 친해졌고 그의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내 주머니가 아직 두둑했으니 밥도 사고, 술도 사는 내가 그들도 싫지 않았는지 크리스마스 연휴를 시나이아에서 보낼 건데 같이 가겠느냐고 제안을 해왔다. 그것이 25년이 지나 다시 루마니아의 시나이아를 찾아온 이유의 시작이었다.
시나이아역에 도착한 오후, 대합실을 나가려다 말고 나는 가방을 닫으려고 애쓰는 여자애를 보았다. 불량한 가방의 지퍼를 닫으려고 조심스럽게 애쓰는 옆얼굴이 노을이 지려는 햇살을 받아 화사하게 빛났다. 고개를 깊게 숙여 머리가 흘러내렸고, 볼을 덮은 머리가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가가 그녀가 지퍼를 닿을 수 있도록 가방의 양옆을 잡아 안으로 당겨주었다.
“고마워요.”
“괜찮아요, 사진 같이 찍을래요?”

웃는 모습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수수하고 상냥한 모습이었다.
“몇 살이예요?”
“18살이요.”
“대학생인가요?”
“1학년, 유아교육과에 다녀요.”
“같이 크리스마스 보내고 가요.”
“저는 일주일 동안 쉬고, 집에 돌아가는중이에요. 미안해요.”
“집이 어디예요?”
“여기서 멀어요. 콘스탄차라고 있어요. 흑해연안이죠.”
“전화번호 적어줄래요? 나도 콘스탄차에 갈지도 몰라요.”
그녀는 머뭇거리다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이름도.”
그때, 그녀는 나의 마을을 읽었는지 흘리듯 미소를 지었었다.
“안돼요.”
그리고 우린 헤어졌다. 나는 블라드의 친구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런데 왜 허전할까? 블라드와 함께 온 두 명의 여자애들은 모델학과에 다니는 멋진 애들이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블라드, 안되겠어. 나 먼저 갈게.”
“어디로?”
“콘스탄차.”

블라드는 기차역까지 동행하며 밤 기차표를 사주었다. 나는 부쿠레슈티로 달려가서 새벽에 기차를 갈아타야 했고, 다시 긴 시간을 달려 해 질 무렵 흑해의 도시, 콘스탄차에 닿았다.
“나 콘스탄차에 왔어. 우리 걸을래?”
대뜸 전화를 걸어, 흑해 제방을 걷자고 했다.
“어딘데요?”
“호텔.”

난 너무 일찍 왔지만, 그녀는 그런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게 벌써 25년 전의 일이었다. 손 한번 잡고, 저녁 같이 먹고 헤어진 게 전부인데, 무슨 아들이 있을까.. 손만 잡아도 애가 생기나.. 하지만 마음으론 아들을 담지 않았을까.. 결국, 현실은 운명의 지배자이고, 인간은 운명의 동선을 따를 수밖에 없으니 운명을 거부할 용기가 누구에게나 있을까..
난 그런 용기가 없었는지 부쿠레슈티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그 아이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올게.”
“응.”
“진짜.”
“응, 오면 전화해.”

그리고 다시 찾아오기까지, 25년이 지났다.

[25년 전 그녀와 닮은 여인]
[부쿠레슈티에 위치한 자유 언론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