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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편 3화 : 카르파티아 산맥에 안겨...

시나이아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보석으로 불리는 마을이다. 작고 정적인 분위기가 산의 모습을 빼닮은 거 같다. 시나이아와 맞수로 있는 마을이 있다. 부스테니(Busteni)라는 옆 마을이다.
부스테니에는 2,200m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있다. 이곳이라면 2,502m 오무산장이 그리 멀 것 같지 않아서 택시를 타고 부스테니 케이블카 역으로 갔다. 부스테니에서도 하늘은 여전히 어둡다. 특히 산 위로는 검은 구름이 휘몰아치고 있다. 왜 10월의 날씨가 불안정할까? 시베리아의 찬 기온이 내려와 더운 지중해 기류와 한바탕 힘겨루기를 하기 때문이란다. 곧 시베리아의 찬 기운이 대지의 주인이 될 터이고 건조하고 더운 지중해 기후는 뒷걸음칠 것이다. 그러면 맑고 쌀쌀한 시베리아 기후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까지 어중간한 시기에 여행하고 있으니 날씨 도움은 접어야겠다.
케이블카를 탈까 말까 망설이는데, 지프 여행을 하지 않겠냐고 호객을 한다. 호수와 계곡과 동굴을 보는 3시간짜리 지프 여행이라며 사진을 보여주는 데 제법 멋진 광경이다. 더군다나 한국인이라고 화답하자 자기 차는 현대 테라칸이라며 우린 인연이 깊다고 꼬신다. 나는 그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쥴리안이라는 남자의 가족과 함께 3시간의 여행을 했다. 쥴리안은 12년간 군 생활을 했고 지금은 대형트럭을 몰고 있고, 삼성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인지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 매우 높았다. 어느 정도 친밀해지자 어디를 가느냐부터 물어온다.
오늘 브라쇼브 갔다가 내일 툴세아에 가려 하는데 교통편을 몰라 걱정이라고 하자 대뜸 자기는 콘스탄차에 사는 데 멀지 않다고 같이 가자고 권한다. 이게 웬 횡재인가..”그럼 내가 점심을 모실게.”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좋은 시간을 보내며 마지막 탐방지인 이아로미테이(Ialomitei) 동굴에 닿았다. 석회 동굴 입구엔 작은 교회를 지었다. 작은 교회는 입구부터 성화로 화려하게 치장을 하여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왜 가톨릭은 성화가 발달했을까? 같은 뿌리인 이슬람이니 유대교에 비해 동방정교가 더 심하고 로마 가톨릭이 좀 덜하고, 개신교로 가면 덜 하다.
성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법만 세우면 불당에 잡풀만 무성하다고 했다. 어려운 철학으로 민생을 구도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법(法) 대신 ‘옴마니반메훔’이라는 금언과 불상이 필요했다고 한다. 가톨릭이라고 별반 다를까..

[동굴 입구에 있던 작은 교회]
[화려한 천장벽화]

특히 중세의 가톨릭은 성경의 오역을 막기 위해 일반인은 글공부를 시키지 않았고 성직자가 아닌 자는 성경을 해독하지 못하게 하는 문맹 정책을 썼다. 성경을 모르니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건 성화와 성물이고 성화와 성물은 찬란할수록 신성하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유대와 이슬람은 현명한 길을 선택한 거 같다. 유대의 토라는 읽는 것이 종교 행위였으니 누구나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기 위해 글을 깨우쳤고, 무지한 중세에 글을 쓸 수 있는 지식층이었기에 부의 창출 기회가 유난히 많았다. 이들이 그리스와 로마의 저술을 번역하여 유럽을 깨우치지 않았나.
이슬람도 유대교와 같은 길을 걸었다. 코란을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나름대로 해석을 할 수 있어야 모슬렘이다. 즉 유대교와 이슬람이 선택한 건 상징적 성물이나 맹목적인 성화가 아닌 말씀 즉 진리였으니 로마 가톨릭보다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한가지 이해 안 되는 게, 유대와 이슬람은 비슷한 선택을 하였음에도 왜 결과가 너무나 다를까? 어찌 보면 세계는 유대와 이슬람의 대립 구도가 아닌가?
이슬람은 지배지역의 현실과 융합하고 조화를 꾀했지만, 유대는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들만의 길을 갔다. 그렇게 역사의 잉여공간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변함이 없었고 결국 공간을 넓혀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슬람과 유대의 갈등이 서로 자기가 옳다는 주장에서 시작된 갈등이 아닐까?

[이에로미테이 동굴]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동굴은 거대하고 멋졌다. 깊고 웅장했으나 불가리아의 양고디나 동굴만큼 아기자기하지는 않았다. 동굴에서 시작됐다는 계곡은 차로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물이 넘쳐흘렀는데. 그 물이 흘러나왔다는 사원이 동굴의 끝이다. 그곳에 마리아를 닮은 성스러운 바위가 서 있고 물이 샘 솟는다. 무당인들 이런 명당자리를 그냥 지나쳤을까?
천 조각 걸고 촛불 밝히고 공양하고 기원하는 일이 다반사였을 것이다. 무당이 아닌 가톨릭의 이름으로도 같은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촛불만이 아니라 성화와 기원 문이 바위 틈틈이 즐비하다. 인간은 그런 행위를 통해 스스로 위무하고 보상받는다고 한다. 즉 내가 나에게 주는 위안인 것이다. 그만큼 인간은 유약한 존재인게지.. 스스로 위로할 만큼..
동굴을 나와 긴 회랑을 걷는데. 쥴리안은 자신의 부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암으로 두 번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치료 중이라고, 그런데 치료비가 비싸서 좋은 치료를 못 받는다고 안타까워한다.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싼 치료비인가 보다. 그는 대안으로 식이요법과 중국에서 백차를 들여와 마신다며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녀의 부인은 이제 38살이고 9살밖에 안 된 아들이 하나 있다. 저 녀석을 위해서라도 엄마는 강해지겠지.. 부인을 위한 이번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아니길 바라면서 헤어졌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 쥴리안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툴세아에 안가고 브라쇼브에서 이틀간 머물다 부쿠레슈티로 돌아갈 생각이네.”
“왜, 같이 가지. 툴세아까지 데려다줄게.”
“그건 너무 힘든 일이야. 나 때문에 2시간이나 더 차를 운전하지 말게. 부인도 피곤할 거야.”
“우리 부인이 같이 가고 싶어 해.”
“다음에 운이 닿으면 또 보세. 혹 마음이 바뀌면 전화할게.”

여행 중에 스치는 여러 인연을 하나라도 잡으려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다가오는 인연도 마다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여행을 이어가는 나이, 편안한 나이, 내 나이가 지금 몇인가.. 25년 전 그 아이가 살던 곳이 흑해인데, 흑해로 향하지 않는 걸 보면 그 인연도 끊은 모양이다.

[물이 흐르고 있는 동굴의 끝 물이 흐르고 있는 동굴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