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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편 4화 : 왜 그들은 떠났을까?

 

브라쇼브(Brasov)는 루마니아 관광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브라쇼브도 멋진 도시지만, 주변에 친구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카르파티아 산맥의 진주 시나이아(Sinaia), 색슨족의 도시 시비우(Sibiu), 유네스코 지정 중세도시 시기쇼아라(Sighisoara)등등..
색슨족은 독일 작센지방에 살던 부족이었다. 브라쇼브, 시비우도 역시나 이들이 세운 도시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보다 북쪽에 있는 앵글로족과 결합하여 그레이트 브리튼 섬으로 넘어가 원주민을 지배하고 오늘날의 영국을 세웠다. 그들은 왜 이 땅을 버리고 떠났을까?
켈트족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던 위대한 대 팽창은 기원전 10세기에 시작되었다. 유럽 전역에 퍼졌던 켈트족이 로마를 침공해 로마와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넣은게 기원전 4세기의 일이다. 그러니 켈트족이 무섭게 유럽을 휩쓸며 퍼져나갈 때도 카르파티아 산맥과 트란실바니아 산맥, 다뉴브 강 의지에 보호받는 이 지역은 별 지장이 없었다. 노르만족이 유럽을 휩쓸며 퍼져나간건 8세기부터니 이들과도 무관하다. 그럼 누가 색슨족을 떠나게 하였는가?

프랑크족이 라인 강 중하류에 살다 칼리아지방 즉, 지금의 프랑스 땅으로 내려가 켈트족을 지배하며 통일왕조인 메로빙거 왕조를 세운 게 5세기다. 앵그로족과 색슨족이 브리타니아(영국)으로 건너가 앵글로색슨의 나라를 세운 것도 5세기다. 색슨족은 누가 쫓아낸 게 아니라 스스로 이주를 결정한 게 아닐까.. 로마의 힘이 무력화된 5세기 프랑크족은 라인 강에서 내려와 로마와 지척인 갈리아 지방에 자리잡았다. 이보다 1세기 전, 켈트족은 로마를 점령하려 했으니 5세기의 로마는 말뿐인 로마가 아닌가. 이민족들이 대거 로마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싶은데 틀어 앉아 왕국을 꾸리던 시대였던 것이다.
브라타니아는 로마가 발을 뺀 뒤로 지배권이 공중에 뜬, 임자 없는 땅이지만 풍요롭고 비옥한 대지다. 이 임자 없는 땅을 노리고 전략적으로 이주한 게 앵글로족과 색슨족인 것이다.브리타니아로 이주하기 1세기 전, 앵글로족은 라인 강 지역에서 덴마크 중부로 이주한 상태였고 색슨족은 독일 남부에서 덴마크 남부로 이주한 상태였다. 이들이 지금의 독일 중부와 남부에서 벗어나 해안 가까이로 이주한 이유가 인구증가로 인해 심각한 식량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만약 식량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면 비옥한 영국으로의 이주는 충분히 꿈꿔볼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로마가 물러난 땅은 켈트의 한 부류인 브리튼족, 앵글로족, 색슨족에 의해 잉글랜드가 건설되었고 로마에 흡수되기를 거부한 스코틀랜드와 대립하며 한 시대를 엮어갔다. 그런데 브라쇼브는 독일 남부와도 거리가 한참이나 떨어져 있고 브라쇼브와 색슨족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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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쇼브의 흑색 교회]

브라쇼브는 현재의 루마니아를 이루고 있는 몰다비아, 왈라카야, 트란실바니아를 연결하는 요지라고 한다. 이런 교통의 요지에 15세기에 이르러 색슨족이 내려와 브라쇼브를 건설했다는 데. 친척을 따라 영국으로 가지 않고 내륙 깊숙한 카르파티아 산맥과 트란실바니아 산맥 사이에 자리한 브라쇼브에 성곽도시를 건설한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그들이 이주해왔다는 15세기를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15세기면 알함브라 칙령으로 리베리아 반도에서 유대인이 대거 추방당한 때이다. 이들은 스페인령인 네덜란드로 이주하였고, 네덜란드 총독 윌리암 3세가 영국의 왕이 되면서 대거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의 산업혁명을 일으켰다고 한다. 15세기 유대인은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후 암스테르담에서 새로운 상업을 일으켰고 이로써 스페인이 쇠퇴하고 발트 해 연안의 상업지구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즉 이전의 스페인-이탈리아 남부-이슬람으로 이어지던 기존 상업로에서 덧대 영국-발트해 연안-이탈리아 북부 상업 도시-아슬람 세계로 연결되는 상업로가 생겨난 것이다. 새로 떠오른 발트상권과 전통적인 북이태리 상권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자 중간 지점이 브라쇼브가 아닌가?
당시의 도시는 상인들이 영주의 성 주변에 거주하였고, 거 주자가 늘어나면서 거주지 주변에 담장을 쌓았다. 그렇게 상인들이 자체방어용 담을 쌓으면서 성곽으로 발전하고 상업 도시로 성장했다.
브라쇼브의 성곽을 보면 상업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누가 브라쇼브로 와서 도시를 세웠을까..유대 상권은 발트 해 북부와 독일로의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길드라는 조직의 배타성 때문이다. 유대 상권은 독일을 배제하고 발트 서부와 루마니아 그리고 이탈리아 북부를 잇는 동선으로 움직였고 그로 인해 독일의 길드 조직도 큰 타격을 입었으니 독일인의 반 유대 정서는 한두 가지가 원인이 아닌 것이다. 색슨족이 지은 도시라지만 미국도 앵글로족과 색슨족이 세운 국가 아닌가? 그런데 무대의 배우는 앵글로색슨이고 감독은 유대라고 하니 브라쇼브도 좀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브라쇼브 성 지도. 1번이 흑색교회의 위치이다.]

루마니아는 배낭여행을 하기로 했으니 다시금 단출하게 배낭을 메고 여행을 시작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브란 성. 아무런 정보가 없어 경찰을 붙잡고 교통편을 물었다. 길모퉁이를 돌아 터미널에서 22번을 타라는데, 막상 터미널에 가보니 22번 버스가 없다. 젊은 청년에게 다시 물어보니 12번을 타고 7 정거장을 가서 브란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란다. 그런데 정류장엔 12번도 없다. 참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다. 이 터미널이 아닌 것인지 궁금해 물어도 돌아오는 답이 시원하지 않다. 어제 기차역에서 택시를 탈 때, 택시정류장에서 브란가는 택시라며 호객하던 게 기억나서 기차역으로 우선 갔다. 기차역에 왔으니 내일 타고 갈 기차표를 예매하고 브란가는 택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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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쇼브 중앙 광장]
[성 안의 구도시]
[성 안의 골목길]

여행자가 우선 확인할게 비용이라서 대략 얼마 나오냐, 다른 사람과 같이 탈 수는 없냐 등을 묻는데. 그냥 타란다. 요금 많이 안 나온다고. 차는 넓고 편하고 좋았다. 그런데 미터기가 보이질 않는다. 내심 불안했지만 그래 봐야 얼마 나오겠나 싶어 한참을 가다 얼마 나왔냐고 물으니 180레우(41유로)가 나왔다고 한다. 차가 달린 것에 비해 꽤 나온 것이다. 난 화가 나서 아까 대략 얼마 나오냐고 묻지 않았냐고 따졌지만 차가 큰 차라서 그렇단다. 그러고 보니 대형세단이었다. 이제 와서 따진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난 차비로 180레우를 주고 내렸다. 그런데 내리고 보니 이렇게 막연할 수가. 브란이 어딘지 내가 있는 곳은 또 어딘지.. 난 택시운전사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콘스탄틴, 그렇다고 날 두고 가면 어떡해? 브란까지는 데려다주어야지.”
“100레우 더 내요.”
“내가 지금 네덜란드에서 온 커플한테 물어봤는데, 왕복 200레우라는 데 당신은 왜 더 받지? 관광하는 동안 1시간 기다려 주는 조건이라는 데, 너는 너무하잖아.”
“그럼 50레우만 더 내요. 그리고 돌아갈 때는 버스 타고 가세요.”
“알았으니까 빨리 와.”

오늘도 실패다. 처음부터 택시 타면 될 걸 괜히 버스 타고 기차 역가서 손해만 본 것이다. 그렇게 난 브란에 닿았다. 내릴 때 10레우를 팁으로 주었다.
“이 사람아, 자넨 나를 괴롭혀도 난 자넨 사랑할 거야. 그게 정의지. 알간?”
택시에서 내려 걷고 있는데, 차가 크락션을 울려댄다. 그러더니 옆에 있던 사람이 내 팔을 치며 택시가 나를 부른다면 손짓한다. 무슨일인가 해서 택시로 달려가 보니 카메라를 놓고 내린 것이다. 10레우의 효과였을까? 택시운전사도 웃고, 나도 웃고, 서로에게 고마움이 넘친 인사를 나누었다. 10레우의 효과로는 너무 거대하지 않은가?
오후엔 브라쇼브의 성곽 내 옛 건물들을 둘러보고 도시를 감싼 성곽을 따라 걸었다. 장원중심의 중세에 도시가 생겨난 건 상업의 효과라고 한다. 주교로 대표되는 공권력에 맞서 자본을 지닌 귀족과 상인들이 상업 도시에 모여들었고 이들이 권력을 행사하며 피렌체, 제노아, 밀라노 등 상업 도시가 생겨났다. 이들이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의 아젠다를 실행하지 않았나.. 발트 해의 개방적인 도시는 루터를 보호했을 뿐 아니라 종교개혁을 이룩했고 새로운 시민 자본주의 시대를 열었다. 그 힘이 상업이었으며 상업을 지키는 성곽도시였다. 브라쇼브는 그런 도시였고 오늘 찾아간 브란 성은 아직 개화되지 않은 영주의 성이었다.
시비우, 시기쇼아라를 가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게 못내 아쉽지만, 또 오면 되지. 25년 전에 왔었듯이.. 25년 전에는 브라쇼브 성내의 불에 탄 검은 교회와 광장만 보고 갔다. 이번엔 카르파티아 산맥과 브란 성 그리고 시나이아에서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브란 성으로 내려오는 길을 잠시 걸어보았다. 시비우와 시기쇼아라가 아쉬우면 한 번 더 오면 되지 않겠는가? 그때를 생각하며 스틱 한 번 제대로 꺼내보지 못하고 끝난 나의 루마니아 트레킹 여행을 끝낸다.

[드라큘라의 모티브가 된 블라드 체페슈 3세]
[브란 성 내부의 비밀통로]
[고문의자]
[루마니아의 공주 일레아나. 여왕이 죽은 후부터 루마니아가 공산권이 되어 소유권이 박탈당하기 전까지 브란 성의 주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