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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편 1화 :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다. 그리스는 무엇을 공유한 공동체인가?”

 

베네딕트 앤더슨은 자신의 저서 「상상의 공동체」에서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규정했다. 민족이라는 것은 실체가 아닌 유토피아적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리스는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였을까?
페르시아의 중앙집권적 거대 국가가 아닌 도시 형태의 작은 왕국들이 많게는 1,000여 개나 존재했었다. 1,000여 개의 왕국이 하나의 통치체제같이 일체감을 갖고 모여들었던 그리스. 그들에겐 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인가? 왕조 국가는 왕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 가문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씨 왕조이고, 당나라 왕조 아닌가.. 왕조가 왕국이 되려면 가문을 뛰어넘는 공동의 가치관을 실현하는 왕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는 가문이 중심이되 운영되는 1,000개의 작은 도시(폴리스)가 하나처럼 움직였으니 그리스는 왕조가 아닌 왕국이라 할 수 있지만 왕과 시민이 권력의 주인이었으니 근대 개념의 민족국가가 아니었던가. 같이 모여 올림픽의 시작으로 알려진 경기를 함께했다. 그들에게 모이라고 명령한 자는 누구인가? 있지만 없다는 것이 옳지 않을까? 명령하는 자는 신이었고, 신을 위한 위대한 회합이었고, 신을 위한 전쟁이었으니, 신이 지배하는 땅 그리스였던 것이다. 모든 신은 같은 생각을 갖고 같은 의견을 낸 것도 아니다. 신들은 서로 다투었고 그리스인들은 다투는 신들을 보며 누구 편에 들지 애간장을 태웠다. 그리고 믿는 신이 다른 이웃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그것 역시 신을 위한 위대한 역동이었을 것이다. 그리스에 닿았다.
신들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인의 첫인상은 완고하고 고집스러워 보였다. 내가 본 사람이 그리스인의 전부가 아닐 테니 더 둘러보아야겠지만, 그리스적이라고 할 만큼 외부에 무관한 모습이다. 이탈리아와 지척인데, 이탈리아반도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웃고 치근덕거린다. 상냥한 로마인과 무뚝뚝한 그리스인. 어디서부터 그들의 차이는 벌어진 걸까?

[어슴푸레한 저녁 하늘위로 달이 보인다.]

그리스에는 세 개의 문명이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2,000년경 크레타 문명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아 자리를 잡았고, 지중해의 여러 선진 문명과 교류하며 해상 문명을 키워나갔다.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 불분명한 것 같다. 뒤에 출현하는 도리아인, 이오니아인들처럼 북에서 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메소포타미아에서 건너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1,600년경 북쪽에서 도리아인이라는 사람들이 쳐들어와 크레타 문명은 멸망한다. 도리아 인은 그리스 반도에 자리를 잡고 미케네 문명을 이룩했다. 그 땅이 스파르타의 근거지인 펠로폰네소스다. 그러니 스파르타는 도리아인의 후예가 아니겠는가? 1,100년경 바다의 민족으로 불리는 해적이 지중해를 휩쓴다. 이때 도리아인이 세운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다. 미케네 문명만이 아니었다. 바다의 민족은 터키의 히타이트도 멸망시키고 이집트도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갈 만큼 지중해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로 인해 그리스에 싹튼 문명뿐 아니라 지중해의 문명들이 쇠퇴하고 긴 문명의 암흑기에 들어갔다.
바다의 사람들. 이들이 아테네 문명을 일으킨 이오니아인이다. 아테네와 소아시아에 자리 잡고 히타이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개화되어 도적에서 문명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문화 조상으로 삼는 유럽이 탄생하기도 했고.. 그리스 사람들의 얼굴에서 느낀 폐쇄적인 완고함. 이들은 강직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보인다. 로마 사람들의 유화적이고 세련된 모습과는 딴판이다. 로마는 결국 유스티아누스 대제 때 둘로 분리되었다. 큰 나라를 통치하기에는 기존의 행정조직으로 인한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럼 왜 그토록 다른 통치방식이 필요했을까?

서로마는 라틴이지만 동로마는 희랍이다. 희랍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지만, 과거 페르시아를 상대했고, 스키타이를 상대했으며, 알렉산더 때는 세상의 지배자였다. 그뿐인가? 아랍 세계와 경쟁했고 중앙아시아에서 밀려드는 훈계열의 수많은 유목 부족을 상대했다. 몽골마저도 이들을 넘지 못했으니 그리스인의 상무 정신은 투철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로마가 라틴만의 나라였다면 그리스는 벌써 로마의 영역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는 라틴만을 위한 나라가 아닌 라틴과 희랍 공동체였고 유스티누아스, 콘스탄티누스 등 통합 로마의 대표적인 황제뿐 아니라 원로원의 40%가 로마인이 아닌 로마화 된 이민족이었음을 볼 때 희랍이 로마를 거부하고 뛰쳐나갈 이유는 없어보인다.
희랍은 로마의 주요부분이었고 동로마는 이름만 로마이지 희랍이었기 때문이다.

[바다가 보이는 아테네 도심지역]

나의 첫인상으로 본 의문점 “그리스는 왜 로마로부터 독립하지 않고 동로마로 남았는가?” 이해하지 못한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그리스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희랍은 동업자였기에 로마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로마는 페르시아나 이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이 하나의 존재로 있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기억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
인간은 기억을 가지고 나와 남을 분류하고 때론 다투고 때론 화해한다. 다툼이 있고 나면 다툼에 대한 기억이 다시 기준이 되어 나의 정체성을 지배하고 새로이 자리잡은 기억의 잣대로 다시 대립과 화해를 반복한다. 규모가 크거나 적거나 역사의 법칙은 기억의 유산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이 가진 최초의 기억, 그 기억이 남겨놓은 유산을 찾아 크레타로 향한다.
아테네에서 4시간을 기다린 뒤 크레타 섬의 하니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루마니아에서와 달리 가이드와 운전사가 달린 차량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저녁과 편안한 숙소가 제공될 것이다. 나는 안내자가 들려주는 알찬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을 즐기고 역사를 상상하며 걷기만 하면 되는 여행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루마니아에서 얼마나 그리스의 계곡을 꿈꿨던가.. 그리스 문명은 본토와 멀리 떨어진 섬에서 피어났을까? 그 땅의 모양새와 기운이 기대되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