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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코스타리카의 자연 여행

몬테 베르데, 아레날 화산, 포아스 화산으로 이어지는 3일간의 코스타리카 자연 생태 여행을 떠납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3일을 더해 카리브 해안과 마주한 안토니오 마구엘 국립공원(Antonio Maguel N’P)의 트리 하우스에서 생태 트레킹 일정이나 친환경 트리 하우스 마을로 알려진 핑카 벨라비스타(Finca Bellavista) 방문을 추가했을텐데… 그랬다면 완벽한 자연 생태 여행이 되었을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핑카 벨라비스타의 이야기는 에리카와 매트 호건(Erica and Matt Hogan) 부부가 코스타리카 남부 열대 우림에 땅을 구입하여 친환경 마을 공동체를 만들며 시작되었고, 그 뒤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오늘날의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마을은 모든 인위적 에너지를 배격하고 생활 쓰레기도 100% 재생 센터에서 분해합니다. 집도 나무 위에 지어 마치 타잔과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마을 주민들은 이웃집을 방문할 때면 공중 구름다리를 이용하거나 케노피(Canopy)라고 불리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쳐진 줄을 타고 이동 합니다. 숲과 같은 높이에서 숲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숲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자연적인 삶의 표본으로 도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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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베르데 생태 트레킹, 새를 찾아 숲을 살핀다

그런 마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조금 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산호세를 떠나 비슷한 생각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 몬테 베르데(Monte Verde)로 향합니다. 몬테 베르데는 1951년 미국 알리바바 출신의 12가족의 퀘이커 교도(Quakers)가 미국 정부 정책에 반대하여 코스타리카로 이주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주변 열대우림을 매입하고 그 곳에 퀘이크 공동체를 만듭니다. 그렇게 형성된 몬테 베르데는 열대우림의 작은 마을이 아닌 세상을 이끌어가는 생각의 중심지로 주목받게 됩니다. 이는 굽히지 않는 퀘이크 교도의 노력과 도전 정신 때문입니다. 처음 몬테 베르데에 정착한 퀘이크 교도는 정착지 주변을 파괴하며 공동체를 만들어가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은 없을까, 그 후 그들은 개발이 아닌 보존과 공존을 선택했고, 그 때부터 자신들이 훼손한 자연을 복원하며 주변 땅을 매입해 개발로부터 열대우림을 지키려는 활동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곧 자신들만의 능력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WWF에 뜻을 전하며 국제적인 모금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땅을 갖고 있는 이웃들을 설득해 열대우림을 보호하고 개발을 반대하는 연대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몬테 베르데는 개발의 파고를 이겨내고 이색 지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조류의 종이 서식을 하며, 그 외 다양한 포유류가 자연 상태에서 인간과 함께 공존하게 됩니다. 몬테 베르데에는 지금도 3,000여 명의 퀘이크 교도가 숲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모든 생명체의 주인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로써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생태 여행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록에 따르면 1970년에는 400여명이 방문한 몬테 베르데는 1980년대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2000년대에 들어서는 한 해 방문객이 5만명에 달하지만, 이들은 수입보다는 보존에 치중해 탐방인원의 제한, 방문 루트의 규제, 도로 포장 반대, 고액의 입장료 부과 등 엄격하게 생태 지역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수입은 10년간 10%밖에 증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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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많은 조류가 서식하는 곳으로 유명한 몬테 베르데 정글"

퀘이크는 영국에서 시작합니다. 영국인 조지 록스는 교회의 형식적인 신앙 활동에 환멸을 느끼고 형식이 아닌 신의 계시가 중요하다며 새로운 종교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 때가 1647년입니다. 퀘이크 교도는 조지 록스의 창시 이념에 따라 성직자의 예배 형식이나 지도 없이도 하나님을 내적으로 느끼고 신의 계시를 깨달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미사 형식이 아닌 내면의 빛고을에 있는 신성을 통해 하나님과 직접 소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배나 설교의식 없이 조용히 침묵하다 성령을 받으면 누구든지 일어나 신에게서 받은 영감을 말하고, 없으면 없는대로 명상으로 그날의 예배를 대신합니다. 종교는 정치의 시녀이거나 정치는 종교의 시복입니다. 둘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위치가 바뀔 뿐 강자에게 복종하고 동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스페인이 주도하는 로마 카톨릭에 대항해서 독립적인 교단으로 성장한 성공회는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이 강합니다. 성공회는 스페인을 넘어서려는 영국의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헨리 8세가 오늘의 영국을 차분히 준비했다면 엘리자베스 1세는 비로소 스페인을 능가하는 영국을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두 거인의 절대 왕정 구축에는 성공회의 뒷 받침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통치의 수단으로 견고하게 자리잡은 성공회는 국가의 부속 기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청교도 운동이 일어나고 더욱 진전되어 혁명으로 발전합니다. 이는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적 왕정에 반대하는 민주화의 과정이며 종교적으로는 종교가 국가에 귀속될 수 없다는 순수 복음주의 운동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에 퀘이크 교가 생겨나고 이들은 1681년 영국 정부의 권유에 따라 종교의 자유와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영국을 떠납니다. 그리고 당시 영국령인 북미 대륙에 정착합니다. 그 땅을 지금은 펜실바니아라고 부릅니다.

최초의 청교도는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아메리카로 건너갑니다. 이 때부터 퀘이크 교도가 영국을 떠날 때까지 60년간 영국의 상황은 로마 카톨릭을 거부했지만 로마 카톨릭을 그대로 복재한 성공회에 대한 신교의 거센 개혁 요구와 신교를 박해하는 복잡한 혼란이 지속됩니다. 미국은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정신을 발아한 땅으로 여겨졌고, 시대의 희망이자 순수의 표본이기도 했습니다. 즉, 구 대륙에 실망하고 지친 사람들은 그렇게 아메리카로 몰려갔습니다. 그들 중 퀘이크 교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다시 미국을 버리고 코스타리카를 택했을까요? 퀘이크 교도는 평화주의자이며 휴머니스입니다. 그들은 인디언과의 관계는 대립이 아닌 우호를 주장하고, 노예무역 반대, 전쟁 반대, 징병 거부, 십일조 반대 등 신생 독립국에서 강국으로 거듭나려는 미국의 정책과 배치되는 사상을 가진 집단이었습니다. 인디언 보호, 노예무역 반대는 미국이 산업 강국으로 발전하는 걸 반대하는 소리처럼 들리고 세계 1, 2차 대전, 월남전 참전 반대 등은 세계의 강국으로 발전하려는 미국의 발목을 잡는 소리같아 보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존재가 미국에서는 편할 날이 없습니다. 영국이 그랬듯이 미국도 더 이상 청교도가 꿈꾼 희망의 땅이 아닌 야망의 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소수 순혈주의자 12퀘이크 가족은 다시 미국을 떠납니다. 그리고 코스타리카 열대 우림에 정착해 자연을 개간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300년 전 영국을 떠나면서 품었던 희망을 다시 코스타리카에서 찾은 것입니다.

열심히 몬테 베르데의 정신을 캐고 보니 내용은 짜릿한데 한 10년 전에 왔어야 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몬테 베르데는 변화를 시작해 이미 식상한 볼거리로 전락하는 와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몬테 베르데로 진입하는 도로는 도로 포장에 반대한다던 원칙이 무너졌는지 배수로 공사가 한참입니다. 땅을 판다는 팻말도 여기저기 붙어 있습니다. 땅을 팔지 않고 소유해 개발을 저지한다는 정신도 사라진 모양입니다. 1951년에 이주한 1세대가 아닌 2세대는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겠죠, 자연을 장사로 받아들이는 2세들이 몬테 베르데를 관리해서 인지 열대우림엔 새 한 마리 보이지 않습니다. 도로가 깔리고 편안한 호텔이 지어지고 매혹적인 문구로 현혹하는 광고가 뒤 덮힐 쯤 방문객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판결을 내려야겠습니다. “나의 몬테 베르데는 사망했다”

몬테 베르데에서 퀘이크 교도의 정신이 사라지겠지만 그들의 정신은 몬테 베르데를 벗어나 세상으로 감화시켰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자연주의, 녹색당, 그린피스의 생각이 주류에 편입되었고 인류는 새로운 삶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환경 보전과 개발에 대한 진진한 협의는 1946년 국제간 포경 협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현재 세대 뿐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환경은 보전되어야 한다”라고 명문화한 최초로 세대간 형평 원칙을 이룩한 생각의 전환이며 환경을 탈취의 대상에서 보존과 공유의 대상으로 전환하게 된 커다란 합의입니다. 이후 인류는 환경 보존이라는 공존의 가치를 이루려 머리를 맞댔지만 아직도 편익과 현 세대의 질적 향상이라는 아젠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2년도에 열린 리우 환경 협약에서는 “오늘날의 환경 문제는 대부분 과거 선진국이 자행한 환경 파괴의 결과임을 인정하되, 그 해결책에는 전 세계가 단결과 일치된 대응이 필요하다.”는 총론적 합의만 했을 뿐 구체적인 실천 사안이 없었고 이를 보완한 1996년 도쿄의 정서에 이르러서야 2012년까지 1990년도의 온실가스 배출량의 5.2%를 감축해야 한다는 의무 사항을 채택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의회가 비준을 거부하고 개도국인 중국과 인도는 개도국 지위 때문에 감축 의무에서 면제됩니다. 온실가스 배출 순위 1위 중국, 2위 미국, 3위인 인도가 모두 빠지고 이의 불공평을 들어 일본이 탈퇴하면서 그 뒤로 자국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캐나다, 러시아 등 자원 개발 부국이 줄지어 탈퇴합니다. 이제 남은 회원국은 전체 온실 가스 배출의 16%밖에 되지 않습니다. 즉 전체 온실 가스 중 84%를 배출하는 나라가 모두 의무 조항을 외면하는 가운데 환경 보전에 대한 주장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현재에도 환경 파괴로 인한 사막화가 심각해지고, 지표면의 40%를 차지하는 건조 지대는 사막화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인구로 보면 20억명의 인구가 건조 지대에 살고 있습니다. 20억 인구는 삶이 파괴되고 생존을 점점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들만의 일로 끝날까요? 지구의 문제가 아닐까요? 12가족의 퀘이크 교도가 꿈꾸었던 삶, 숲 보존과 자연과 공존하는 삶은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합니다.

퀘이크 교도는 몬테 베르데에서 뿐 아니라, 거주하는 지역에서 나름의 소금 역할을 지속적으로 한다고 합니다. 미국과 영국의 퀘이크 교도는 전쟁 구호 사업과 아프리카 등 빈곤 국가를 돕는 봉사 활동을 오랫동안 지속해 나감으로써 개인이 아닌 단체에게 주는 최초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드러나진 않지만 휴머니즘과 자연주의를 실천자로서 세상 곳곳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코스타리카에 간다고 해도 몬테 베르데는 찾아가지 않겠지만 그 정신은 기억할 것입니다. 세상의 소수로 남아 귀중한 가치를 지켜나가는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엔 어떤 분이 퀘이크 교도였나 찾아보니 함석헌 옹이 대표적인 퀘이크 교도라고 합니다. 학창 시절 들었던 민족과 정의를 갈구한 그 분의 강연이 기억납니다. “우리 민족에게 백가지의 가난이 있지만 가장 심각한 가난은 생각의 가난이다.” 리우 기후 협약과 쿄토의 정서를 거부한 미국, 중국, 인도, 일본의 생각이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지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미 여행의 적기가 언제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베네수엘라를 여정에 넣고 보니 베네수엘라의 엔젤 폭포에 모든 시기와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엔젤 폭포는 건기에는 강의 수량이 적어 보트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엔젤 폭포의 적기는 우기가 됩니다. 최대한 우기가 끝나는 시점이며 그렇다고 강이 아직 마르지 않았을 시기를 선택하니 11월이 가장 적당했습니다. 우기가 끝나가는 시기여서 코스타리카도 어느 정도는 괜찮으려니 했는데 코스타리카는 저의 예상을 많이 빗나갔습니다. 결국 엔젤 폭포를 위해 코스타리카를 희생한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코스타리카의 여행 적기는 11월부터 4월까지라지만 아레날 화산 북쪽은 비가 적은데 반해 남쪽 편은 태평양과 카리브해의 영향을 받아 비가 많이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2월 한 달이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안내자 로만은 설명합니다.

제가 코스타리카를 방문한 시기는 11월 중순, 타바콘 온천 리조트에서 울부짖는 아레날 화산의 절규를 들으며 온천을 즐기려던 계획이 산산히 무너집니다. 하루종일 내리는 비와 가득 찬 안개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음이라고 넌지시 알려 줍니다. 한 때 몇 년간 화산 구경을 다녔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화산은 저를 끌어들이는 흡입력과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묘한 감동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브로모, 이젠, 필리핀의 피나투보, 타알, 마욘, 캄차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화산들, 다나킬의 에르타 알레, 달로, 안티구아의 푸에고, 그런데 아레날 화산은 이 전에 찾아갔던 화산과는 다른 독특한 맛이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 붉은 용암을 뿜어내는 생동감과 표효하는 괴성을 들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땅에서 품어져 나오는 강한 에너지는 저와 같이 기운이 약한 사람도 찌릿하게 느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레날 화산은 숨을 죽이고 아무런 화답도 하지 않습니다. 전망대에 올랐건만 안개의 바다 건너 아주 가까이 있다는 추측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화산 전망대를 떠나 세계에서 5개에 꼽히는 명품 온천 리조트 타바콘으로 이동해 온천을 즐깁니다. 아레날에서 흘러나온 자연 온천수를 담아둔 탕이 숲 속 곳곳에 30여개나 자리잡고 있습니다. 작은 탕엔 연인이 들어가 사랑을 나누기도 합니다. 타바콘 온천 리조트는 숙박자가 아니면 온천 입장료가 일인 $60이나 합니다. 그 외에도 점심, 저녁 뷔페 $60, 세트 메뉴 $90, 아침 뷔페 $40 등 모든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하루를 묵으려면 1인 30만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비싼 대가를 치루고 타바콘에 묵는 이유는 온천 때문이 아니라 아레날 화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성이 부족한지 화산은 다음이라고 말하며 어둠 뒤에 숨어버립니다. 로만은 대부분의 여행객이 아레날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고 위로합니다. 그런데 그게 위로가 되나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방문인데… 서운함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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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바콘, 온천의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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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뽀얀 연기를 밤이 되면 기이한 괴성을 내는 마그마, 세상 유일의 밤이 됩니다

타바콘 온천 리조트를 나와 스테이크 하우스라고 큰 간판이 걸린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합니다. 그런데 그 집의 스테이크는 중미 여행을 하면서 맛 본 스테이크 중 가장 맛있었습니다. 특히 RARE로 주문한 스테이크는 얼마나 숙성이 잘되었던지 랍스터 회를 씹는 듯 입 안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아레날에서 이마저도 없었더라면 정말 아쉬웠을 텐데 그나마 맛있는 스테이크 덕에 아쉬움을 털고 포아스 화산으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언제 걷힐지 모르는 안개 때문에 오리무중입니다. 안개 속에 있는 포아스는 모습을 보여줄까요? 포아스 화산은 안내문에도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활화산으로 분화구의 크기가 1.5km, 깊이만 300m나 된다. 화산 분화구는 끓어 오르는 열기로 수증기만 자욱할 뿐 태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진 않지만 찰나에 드러나는 화산의 속살은 세월의 덮개가 쌓인 듯 깊고 인상적이다.” 한마디로 멋지지만 날씨가 좋은 평상시에도 얼굴을 보여주기 꺼린다는 말입니다. 예부터 미인은 얼굴을 가리고 웃어야 미인이라고 했는데, 포아스는 화산의 미인인가 봅니다. 포아스를 갈거냐 말거냐 하는 고민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산호세로 방향을 틀어 달라며 저의 코스타리카 여행은 아쉬움을 남긴 채 끝이 났습니다. 다음에 중미로 여행짐을 꾸린다면 코스타리카를 다시 넣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몬테 베르데와 아레날은 목록에 들어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 마음에 보석으로 남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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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진 않지만 찰나에 드러나는 화산의 속살은 세월의 덮개가 쌓인 듯 깊고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