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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 의식 밖의 존재 신대륙

“우주에서 가장 큰 은하는 뱀자리에 있는 IC 1101이라는 은하로, 지름이 약 600만 광년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우리 은하의 약 60배 정도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지금껏 만들어낸 가장 빠른 속도는 보이저 1호의 초속 17km 정도인데, 총알 속도의 17배인 이것을 타고 이 은하를 가로지르는 데는 무려 60억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인간에게는 무한이고 영겁이 아닐까요?”

우주를 설명하는 어느 기사의 문구입니다. 우주를 알기 전부터 세상의 크기를 가늠하려는 인류의 도전은 끊임없이 진전되어 왔습니다. 그 안에는 질서에 대한 갈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도전과 복종 역시 존재합니다. 희랍은 알 수 없는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기 좋아합니다. 그런 정신은 유럽 정신의 좋은 자양분이 됩니다. 모르는 것을 없다라고 하지 않고, 그렇지 않은 세상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놓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지도는 세 가지의 사연이 있습니다. 첫째는 유럽의 정신이 그 안에 담겨져 있으며, 둘째는 다른 세계와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강자의 독선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지도는 유럽의 의식이며 힘입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세계 개념은 희랍의 세계관입니다. 그리스가 알고 있는 세계는 자신들이 위치한 유럽, 지중해 건너편의 선진국, 아프리카, 그리고 페르시아가 자리잡은 동쪽의 아시아가 전부였습니다. 그 밖으로는 끝이 없는 절벽이라 믿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나일강을 탐사한 헤로도투스(Herodotus) 만해도 지구는 평평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 도사관장과 지구의 반지름을 계산해낸 에라토스테네스에 이르러서는 지구가 둥글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시작합니다. 그 후 기원후 2세기경 프톨레미우스에 이르러서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런 의식이 지도에 반영됩니다. 이를 “O, T” 개념이라고 합니다. 즉, 둥근 지구를 O로 표시하고 지도 안은 T자형으로 지역을 구분합니다. 둥근 지구가 T자에 의해 분리되며 북으로는 유럽, 왼쪽은 아프리카, 오른쪽은 아시아로 구분되는 지금의 지도가 탄생됩니다. 희랍의 세계관은 라틴 정신이 지배하는 중세를 거치며 구조적인 틀은 변하지 않고 성경의 내용이 더해집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노아는 새롭게 펼쳐진 대지를 세 아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첫째 아들 샘(Shem)에게는 아프리카를, 둘째 아들 함(Ham)에게는 아시아를, 그리고 셋째 아들 야벳(Japheth)에게는 유럽을 주었습니다. 이로서 희랍에서 시작한 세상의 한계는 신의 이름을 빌려 더욱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세상의 임자가 모두 노아의 자손으로 한정되며, 그 땅에 사는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세상은 모두 카톨릭의 땅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발을 딛고 아메리고 베푸스치에 의해 지도에 없는 새로운 대륙임이 밝혀지면서 유럽은 새로운 고민에 빠집니다. 성호도 성부와 성자와 성신, 내세도 천당, 연곡, 지옥, 신과 인간의 관계도 여호아, 예수, 인간으로 연결됩니다. 심지어 헤겔의 정반합, 야만과 미개와 문명으로 표기하던 역사의 발전 단계까지 모든 3으로 구분된 사고에 묶여있다 보니 혼란이 옵니다. 셋이 아닌 넷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의 역사와 성경에 없는 새로운 대륙, 새로운 세상, 유럽은 기존의 틀 안에 아메리카를 어떻게 넣어야 할지 고민에 빠집니다. 16세기 아브라함 오르델리우스(Abraham Ortelius)가 그린 세계지도 “세계의 무대”에는 아메리카가 T자의 좌편을 전부 차지하는 큰 대륙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유럽을 지도의 중심에 놓다 보니 중국과 아시아가 적게 그려진 기형적인 지도입니다. 하지만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인들의 당혹감과 희망이 이에 나타나 있는게 아닐지 의심됩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지도에는 태평양과 아메리카 대륙은 오른편에,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가 왼편에 자리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가 마치 세계의 중심인 듯 보입니다. 유럽 사람들이 동방의 작은 나라를 배려했을리도 없는데, 조금이라도 배려했다면 해방 후 남북의 경계선을 마음대로 긋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세계지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어 보지도 않았고, 요청하지도 않았지만 우리나라를 세계의 중심에 턱하니 가져다 놓았습니다. 이는 어느 선교사의 위대한 문화 포용력에서 시작됩니다.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명나라에서 포교와 문화 교류로 한평생을 바친 성인입니다. 그는 명나라 학자들에게 서구의 문물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오르델리우스가 그린 “세계의 무대”를 보여줍니다. 이 때 명나라의 학자들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인줄 알았는데 유럽이 중심이고, 중국은 오른쪽 끝으로 그려진 걸 보고 몹시 놀랐다고 합니다. 서로 학문적 교류를 시작하기도 전에 오해로 벽이 생길걸 우려한 마테오 리치는 중국이 세계지도의 중심에 오도록 지도를 수정하여 다시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지도는 마테오 리치가 수정한 지도를 전형으로 아름다운 사연을 지닌 지도입니다. 내 것을 주장하지 않고 남을 존중하며 이해하는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지도 속의 독선은 무엇일까요? 세계지도에는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만 지도의 오른편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를 두고 독선이 숨어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배열을 조금씩 왼편으로 이동시켜 대서양과 유럽을 아메리카 대륙과 같은 구역에 넣는다고 하면 아시아 대륙이 잘려야 하니 지도로써 올바른 모양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메리카를 별개의 대륙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의지가 알게 모르게 숨어있기 때문에 의심을 한 번 해봅니다. 오르델리우스 지도에는 아메리카가 지도 왼편에 동 떨어진 채 한 면을 차지합니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비대합니다. 한 편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가 들어가고 한 편엔 아메리카만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은 그렇게 큰 대륙이 아닙니다. 아시아보다는 많이 작고 아프리카보다는 조금 큰 정도입니다. 그러니 유럽의 아메리카에 대한 의식은 처음부터 왜곡되어 있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유럽의 독선은 역사적 뿌리가 있습니다. 후안 바우티스타 알베르디(Juan Bautista Allberdi)는 “국가 건설을 위한 토대와 출발점”에서 유럽이 아메리카를 대하는 의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정복하며 이주했다. 유럽 인종을 추동한 것은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이 살던 땅을 떠나 그리스로 이동하게 만든 법, 그리스 거주민들이 이탈리아 반도로 이주해 그 곳을 문명화 시키도록 추동한 법, 나중에 그리스인들이 로마의 카톨릭을 가지고 야수성이 순화된 게르마니아를 문명화 시키도록 추동한 그 법이다.” 알베르드의 설명대로라면 유럽에서 멀리 떼어놓은 아메리카는 역사의 연장 선상에서 유럽의 구원을 받아야 하는 땅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마지막 신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도 한 켠에 떼어 놓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태평양이 중심이 된 새로운 지도에 유럽이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파우스트 레이니가는 인디아 아메리카와 서구에서 “서구 사유의 핵심은 직선적 시간성을 토대로 하는 이성이다. 서구는 이러한 이성을 중심으로 세워진다.”라고 말합니다. 유럽이 지도 속 구석진 곳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마테오 리치의 곡선적 사고가 무리 없이 받아들여져 세계지도의 전형이 된 이면에는 유럽의 독선이 숨어 있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지도 속 풀이를 하며 베네수엘라로 향합니다.

베네수엘라로 가는 비행기는 노선이 복잡합니다. 산호세에서 한 번에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파나마나 보고타를 경유해서 카라카스로 들어갑니다. 다음 여정인 쿠바로 가는 항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네수엘라와 쿠바는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에 직항 노선이 있습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가 외환 위기를 겪으며 달러 반출을 제한하기 때문에 외국 항공사 입장에서는 비행기를 띄우고도 항공료를 외환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항 노선이 있음에도 운항 스케쥴이 없는 기이한 상황입니다. 베네수엘라로 들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콜롬비아에 하루 묵었습니다. 중남미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를 꼽으라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멕시코가 꼽힙니다. 이를 압축하면 콜롬비아는 보고타를 제외한 외곽은 위험합니다. 베네수엘라는 카라카스 마저도 밤에는 위험하며 에콰도르는 키토 외곽도 위험합니다. 멕시코는 북부 치와와주가 위험하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의 여행은 콜롬비아의 보고타,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 멕시코의 치와와주를 포함하니 위험과 안전의 경계선을 따라가는 여행입니다. 한 발만 삐끗하면 위험 지역이니 신경이 곤두섭니다. 콜롬비아는 위험하지만 보고타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머무는 시간이 짧아 현지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고 공항 호텔에 픽업을 부탁했습니다. 여행사에 픽업 서비스를 부탁하면 픽업 나온 직원을 따라 주차장까지 이동해야 하고, 시내에 있는 호텔로 가기 위해 장시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현지 여행사 없이 공항 호텔을 예약하니 호텔 청사 앞 도로까지 진입합니다. 주차장까지 가지 않아서 좋고, 5분이면 호텔에 도착하니 복잡한 교통 지체를 겪지 않아서 좋습니다. 호텔 식당에서 우아하게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 공항 호텔에 머문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콜롬비아 땅에 왔건만 공항만 보고 떠난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콜롬비아는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나라입니다. 콜롬비아는 남미 역사의 중요한 포스트였습니다. 스페인 식민 통치 시대에는 4개의 부왕령 중 하나인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의 중심지입니다.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에는 지금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가 이에 속합니다. 남미 독립의 아버지인 시몬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에서 무장 봉기를 일으켜 보고타에서 마지막 스페인군을 격파하고 삼국을 묶어 그란(大) 콜롬비아를 건국합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독립시킨 산 마르틴 장군과 연합하여 스페인 식민 통치의 중심지 리마를 함락시키고 남미 대륙을 해방시킵니다. 그 시발점이 바로 콜롬비아의 보고타입니다. 그는 남미를 미국과 같은 하나의 합중국으로 통합해야만 유럽과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를 위해 남미 제국을 추진합니다. 하지만 지역 패권자들 즉, 엔꼬미엔따 제도하에서 사병과 부를 독점하고 지배 세력으로 부상한 끄레올요(남미 출생 스페인계 지배 계층)들의 저항으로 결국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정계를 떠납니다. 그가 물러난 후 콜롬비아 지역 패권자들간의 대립으로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로 분리 독립되어 오늘날의 약소국으로 남습니다. 미국을 50개 나라로 나누었으면 미국이 오늘날의 강대국이 되었을까요, 미국은 합중국을 유지하기 위해 남북 전쟁도 불사한 나라입니다. 아마 영국이나 프랑스가 반대했다면 유럽의 강국과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국은 그토록 통합을 갈망했지만 남미에서는 통합을 앞서서 반대합니다. 미국을 위해 남미의 분열이 나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본래는 일본을 나누려 했지만 일본 육군성이 무조건 항공하는 조건으로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일본을 나누지 마라, 다른 하나는 전황제를 유지해 달라, 대신 731부대의 인체 실험 극비 자료를 건네 주겠다.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은 731부대 인체 실험 자료를 얻은 후 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했다는 뒷 소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대신 우리가 반으로 잘렸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슬픈 현실이지만 광복군 한 개 대대라도 한반도에 상륙시키지 못했는데 무슨 힘이 있어서, 무슨 한 일이 있어서 미국과 deal 할까요, 미국 입장으로 보면 그냥 떡이나 주면 달게 받아먹을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연약함이 우리의 잘못된 역사 의식에서 오는 건 아닐까요? 잘 아시는 분이 역사 강의를 듣고 와서는 흥분한 어투로 이런 말을 합니다. “중국은 북방 이민족이 중원을 차지한 시대 마저도 자기들 역사로 받아들여 남북 조선시대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우린 왜 같은 민족이고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나라를 통일 신라와 발해라고 하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대립시기를 삼국시대라고 하듯이 통일 신라와 발해의 양립시기는 남북 양립시대라고 해야하지 않나, 우리 역사로 끌어 들어야 연해주를 우리 땅이라 하지, 그렇게 갈라 놓고 무슨 연고를 주장해. 고조선, 고구려를 말할게 아니라 발해를 말해야 해 이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입니다. 중국의 5호 16국시대에 5호는 한족과 완전히 다른 북방 유목민이었고, 10개의 나라도 중국과 무관한 왕조였습니다. 그래도 중국은 이를 자신들의 역사로 받아들이고 북조라는 말로 얼버무립니다. 북조의 계승한 수와 당이 중원을 통일한 이유도 한 몫하고 당이 중국을 지향해 유목민과 한족을 뒤섞어 버린 이유도 있겠지만, 그 기저는 땅을 지키려는 의지가 아닐까요? 잘못된 역사를 중국, 일본 탓으로만 돌릴게 아닙니다. 이제라도 발해와 통일 신라를 다른 정권이 아닌 동북아의 한줄기로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남미에 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몬 볼리바르입니다. 남미 여행의 시작과 끝에는 그가 있으니 그를 모르고는 남미 여행이 그저 휑합니다. 남미가 미국같이 잘 살지 못하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어떤 답을 할까요, 카톨릭과 신교의 차이, 새로운 삶을 꿈꾸며 가족과 함께 이주해 온 북미와 한탕치고 돌아갈 요량으로 도둑놈만 건너온 남미의 차이, 앵글로색슨과 라틴의 기질 차이, 순수 백인 국가와 인디오와의 혼합 국가의 한계, 그런데 우루과이가 미국보다 훨씬 높은 98%의 백인 비율을 보이고, 아르헨티나 또한 미국보다 백인 비율이 높습니다. 라틴과 앵글로색슨의 차이도 아닐 것입니다. 식민지 시대엔 포르투갈과 스페인 국민만 남미 이주가 허가되었지만 독립 후엔 서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이민을 받아들였고, 많은 유럽인은 북미 뿐 아니라 남미행 배에 올랐습니다. 특히 아르텐티나의 경우 이민자 유치에 매우 적극적이어서 2차대전 후 1,500만의 유럽의 남미 이민자 중 대부분이 아르헨티나에 정착했으며 그들 중에는 독일인, 이태리인이 많았습니다. 한탕 치고 돌아가려는 도둑놈만 온 남미와 미래를 설계하고 꿈을 키워간 북미의 의식이 어쩌면 주요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같이 하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약속국으로 남은 남미의 분열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시몬 볼리바르는 그런 미래를 내다보고 남미의 희망을 심으려 했습니다. 하나된 강력한 남미 제국을 꿈꿨고, 유럽과 미국을 견줄 힘을 가져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그가 정치적 꿈을 실현했다면 남미는 오늘날과 같이 고난의 세월을 보냈을까요? 베네수엘라는 배고픈 남미에 동참했을까요? 콜롬비아는 파나마를 강제로 빼앗기고도 한마디 못하고 주저 앉았을까요? 콜롬비아를 해방시킨 시몬 볼리바르에게 넘기고 남미를 떠납니다. 둘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요, 산 마르틴은 시몬 볼리바르의 남미 제국이 자신의 이상보다 높다고 판단하고 힘을 실어준 것이 아닐까요, 시대는 두 명의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혼란을 피해 자리를 떠난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기만 합니다. 시몬 볼리바르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정계에서 물러나고 산 마르틴은 남미를 떠나 프랑스의 작은 시골에서 말년을 맞습니다. 산 마르틴과 함께 칠레를 해방시킨 오히긴스는 해외로 추방당하고, 볼리비아를 해방시킨 수크레는 강제 사임을 당한 후 암살됩니다. 이로써 남미 해방을 이끈 4명의 영웅은 모두 사라집니다. 꿈과 열정을 갖은 영웅은 사라지도 이제 탐욕과 지역 패권에 어두운 자들만이 남아 세상을 호령합니다. 남미의 국경을 보면 아프리카와 달리 울퉁불퉁합니다. 국경이 울퉁불퉁한 건 자기가 가진 땅만큼, 욕심을 낸 만큼 국경이 되어 그렇게 찢기고 나뉘고 독립했기 때문입니다. 통일을 이루지 못한 남미는 스페인의 충직한 소작인에서 대서양 경제의 충직한 소작인으로 바뀔 뿐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주인만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바뀐 남미의 현실에서 남미는 좌절하고, 남미를 소용돌이치게 할 혁명의 그림자는 천천히 자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