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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 탄생과 소멸의 땅, 칸쿤


 아즈텍이 무너지고 30여 년이 지난 1553년, 20세의 혈기 넘치는 프란시스코회 수도사 ‘디에고 데 라다’는 30만의 마야인을 개종시키라는 의무를 받고 신대륙에 도착합니다. 그는 신대륙에 도착하여 가톨릭 전도에 열과 성을 다합니다. 수년이 지나 그는 유카탄 교구장이 되었고 주교로 승진하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겉으로는 가톨릭을 수용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마야의 전통문화와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야인들을 보며 과연 신의 역사를 이룩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고민 끝에 ‘디에고 데 라다’는 결단에 찬 선택을 합니다. 이는 강한 신념을 가진 남자들이 쉽게 선택하는 결단이지만 오류로 기록되는 지극히 편협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1562년 7월 12일 종교적 열의와 신념으로 그는 선언문을 읽어 내려갑니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그가 포고령을 내린 후 마야의 유산인 5천개의 우상, 13개의 제단, 192개의 제기, 27권의 서적이 소각되거나 파괴되었으며 마야를 가슴에서 빼내지 못한 원주민과 전통 종교에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기록을 비춰볼 때 마야를 지우고 순혈 가톨릭을 유지하려한 엄격하고 강력한 종교적 박해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박해는 가톨릭 역사의 중심 축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은 로마의 박해를 이겨내고 로마를 지배했으며 지중해를 넘어 유럽의 꽃이 되었습니다. 개신교는 가톨릭의 종교박해를 이겨내고 대서양 시대의 신질서를 열었습니다. 역사의 프리즘으로 보면 종교박해는 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강요로 보입니다. ‘디에고 데 라다’ 주교는 어떤 생각으로 종교박해를 가혹하게 실행했을까요, 그는 종교적 박해를 통해 미개한 과거와 단절하고 성스런 세상과의 입맞춤을 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미개한 과거와 단절이고 성스런 가톨릭 세상의 개화인지 아니면 인류에게 전달된 메시지인 실종과 독선, 무지의 개화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 날의 포고령으로 사라진 마야의 유산은 마야를 지우기에 충분했고 마야는 인류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인류의 기억 속에서 마야가 지워진 날로 그날을 기록합니다. 전기 마야는 스스로 사라지는 길을 택했다면 후기 마야는 그렇게 지워진 것입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가 선포한 장소는 ‘마니’라는 도시의 산 미구엘 교회인데 ‘마니’는 마야어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 날로 마야가 끝날 것이라는 것을 마야는 알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디에고 데 라다’ 주교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도시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 날로 마야는 끝이 났고 마야의 지혜를 인류가 계승하지 못한 것은 큰 손실입니다. 높은 수학적 지식과 계산법을 볼 때 분명 인류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위대한 황제 진시황은 분서갱유로 유명합니다. 법가와 다른 생각이 다른 유가의 서적들을 불태우며 꽤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분서갱유를 겪었지만 유가는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이 주인이 된 한나라의 통치 근간이 됩니다. 즉 법치의 시대가 가고 인치의 시대를 열은 것입니다. 분서갱유를 이겨낸 유가의 힘은 무엇일까요, 유가가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 후대에 이어졌을까요, 분서갱유를 겪으며 많은 유가의 서적이 숨겨졌고 격변기를 무사히 이겨낸 후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마야가 지워진 그 날, 마야는 정녕 실종되어 버린 것일까요, 미약하나마 마야에도 몰래 빼돌려진 증거물이 있었습니다. 마야를 기록한 4권의 책이 누군가에 의해 몰래 빼돌려졌고 스페인 선원에 건네진 4권의 책은 마야를 떠나 유럽으로 건너갔고 시장에서 이상한 책으로 팔려 나가게 됩니다. 현재 4권의 코텍스는 멕시코 시티, 마드리드, 파리, 독일의 드레스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신대륙에서 건너온 이상한 책은 시간이 지나며 마야의 이야기가 담긴 진귀한 책으로 탈바꿈했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서는 마야를 투영할 유일한 책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마야의 글을 해독하지 못합니다. 그럼으로써 마야가 남긴 이야기를 알 수 없습니다. 마야에 관한 4권의 책이 마야를 떠나고 300여 년이 지나도록 이상한 책일 뿐, 그 이상이 되지 못한 상태로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기만 합니다.

그러다 마야를 재발견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마야가 멸망하고 300여 년이 지난 1800년대 중반 [유카탄 보고서]라는 책이 마드리드 왕립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됩니다. 유카탄 보고서는 라틴어로 쓰여진 책임에도 마야에 대한 풍부한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끌게 됩니다. 그런데 마야를 의도적으로 지우기 위해 ‘마니의 산 미구엘 교회’에서 포고령까지 발표한 ‘디에고 데 라다’에 의해 쓰여 졌다는데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카시아스가 1542년 발간한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 보고서]가 유럽의 지성을 깨우며 인디오에 대한 학살, 박해가 부정적인 인식으로 교회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디에고 데 라다’의 잔인한 종교박해는 가톨릭의 이름으로 행해졌음에도 문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더욱이 금으로 된 책과 유물까지 모두 태웠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교회 자산을 훼손한 죄목까지 더해져 종교 재판에 회부됩니다. 죄목은 원주민에 대한 혹독한 박해이지만 내용은 아까운 금까지 모두 소실한 죄가 더욱 컸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재판에 회부되면서 원주민 박해를 중지하고 원주민과의 화해를 시도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책에 기록되었을 금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원주민들이 들려주는 마야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디에고 데 라다’에게서 라틴어를 배운 아이들이 그 기록에 참여하여 마야의 이야기를 라틴어로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판에 [유카탄 보고서]라고 이름 지어진 책을 제출함으로써 사면 받게 됩니다. 그는 이율배반적인 결과를 가져온 보기 드문 인물입니다. 마야를 지워버린 장본인으로서 마야를 기록한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마드리드 왕립 도서관에서 발견된 [유카탄 보고서]는 이런 사연을 갖고 태어난 책입니다. 전말이 어떻든 그의 책으로부터 마야의 연구가 시작됩니다. 4개의 코덱스와 라틴어로 기록된 유카탄 보고서의 내용을 끼워 맞춰가며 마야어의 구조가 일부 밝혀집니다. 이로 인해 마야를 기록한 코덱스의 일부가 해석되었고 드디어 마야가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마야의 예언, 수준 높은 수학체계, 천문 지식, 그리고 신화까지 하나 둘 마야는 그렇게 인류에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집트 고대 문자를 밝혀낸 로제타스톤이 마야에서는 ‘디에고 데 라다’의 유카탄 보고서입니다. 그는 마야를 지우고 다시 살려냈으니 두 가지의 의무를 동시에 부여받은 야누스의 얼굴 같습니다.

후기 마야의 중심지를 찾아 갑니다. 후기 마야는 AD889 ~ 1546년 알바라도에게 멸망당할 때까지 유카탄 반도에 존재한 도시 국가이지만 알바라도가 코르테스의 명령을 받고 유카탄 반도에 왔을 때 마야는 거의 와해된 채 정글에 살게 된 작은 공동체에 불과했습니다. 유카탄 반도의 후기 마야는 9세기 멕시코 고원에서 유카탄 반도로 남하한 똘떼까족이 고전기 마야의 일부 세력과 연합하여 형성합니다. 중심지는 과테말라 북부에서 유카탄 반도로 옮겨져 치첸이트사(Chichen Itza), 우슈말(Uxmal), 마야빤(Mayapan)이 동맹을 맺으며 후기 마야의 중심이 됩니다. 특히 치첸이트사는 마야 연맹체의 중심으로 피라미드 등 거대 건축물을 축조합니다. 후기 마야연맹은 12세기 말 마야빤이 신마야 제국을 건설했고, 15세기 중엽까지 통치하게 됩니다. 신마야는 1450년경 동맹 도시의 하나인 마야족(마야빤)과 이짜족(치첸이트사)의 전쟁으로 혼란에 빠지고 1536년 알바라도에게 정복당하게 됩니다. 이짜족이 치첸이트사를 건설한 부족이고 마야족이 마야빤의 중심 부족이니 결국 후기 마야의 중심이었던 치첸이트사와 마야빤의 대립이 마야 연맹체의 멸망을 가져온 것입니다.

 마야의 영광과 멸망을 불러온 치첸이트사는 칸쿤에서 3시간 거리의 정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차량이 서고 거대하게 무리지어 움직이는 인파를 따라가면 치첸이트사의 쿠쿨칸 피라미드(Kukulcan Pyramid)가 웅장하게 나타납니다. 전기 마야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신공희(人身供犧)가 후기 마야에 나타난 것은 똘떼까의 영향입니다. 똘떼까의 인신공양은 정치적 이유로 상대를 제압하고 민족을 하나로 엮는 수단이었지만 결국 인간의 도리를 넘어선 잘못된 문명이었기 때문에 종말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마야의 땅에 와서 다시 못된 짓을 합니다. 그들이 세운 도시 치첸이트사에도 인신공양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이 남긴 거대 건축은 야만적이기 보다 고도의 기술종합체여서 탄복할만합니다. 치첸이트사의 상징인 쿠쿨칸(켓살코아틀의 마야식 이름) 피라미드는 한 면이 91개의 계단으로 되어있고 4면을 가지고 있어 총 364개의 계단을 이루며 맨 상층부에는 신전을 두어 365개의 년 일수를 맞춘 의도적인 건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 년의 춘분과 추분에는 햇빛이 피라미드 계단 모서리에 걸려 그늘을 만드는데 마치 피라미드에서 뱀이 꿈틀거리며 내려오는 듯한 형상을 그려냅니다. 모든 것이 태양의 운동과 각도를 읽고 건축한 것이기 때문에 놀랍습니다. 특히 쿠쿨칸 피라미드의 유명세는 아름다운 선과 피라미드 내부에 숨겨진 또 다른 피라미드에 있습니다. 마야의 피라미드는 피라미드가 낡으면 그 부분을 보수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피라미드에 덧씌워 새 피라미드를 건축합니다. 그런데 쿠쿨칸 피라미드는 다른 피라미드와는 달리 내부 피라미드와 겉 피라미드가 떨어져있어 안에 빈 공간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또한 피라미드 안의 공간은 소리가 닿으면 울려 퍼지기 때문에 자주 음악 공연이 열린다고 합니다. 마야의 미스터리는 피라미드 외에도 끝이 없습니다. 두 번째 방문지인 마야의 공놀이 경기장으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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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미스터리, 쿠쿨칸 피라미드

엉덩이로 고무공을 쳐서 10m 위의 고리 안으로 집어넣는 마야의 공놀이는 놀이가 아닌 하나의 의식이기도 해서 숭고한 결과를 요구합니다. 각 팀은 7명으로 구성되며 치열하게 공놀이를 하고 난 후 진 팀의 주장은 목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는 놀이가 아닌 신을 위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을 걷고 있자니 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놀이를 했을지 아우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운동장을 나오면 전사의 신전을 지나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지는 우물로 향합니다. 치첸은 마야어로 우물을 뜻하므로 치첸이트사는 이사인들의 우물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멕시코주재 미국 대사인 ‘에드워드 톰슨(Edward Thompson)’은 $75를 주고 여의도의 132배인 250평방 km를 구입합니다. 치첸이트사는 그가 구입한 땅의 일부였고, 그는 우물에서 40개의 유골과 수천 개의 예술품을 건져 올립니다. 그가 우물의 존재를 알고 지위를 이용해 땅을 구입했는지 아니면 우연히 구입한 땅에서 노다지가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큰 횡재를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는 황금 유물을 몰래 미국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찾아냈으면 녹여서 엿을 사먹었을 텐데 그는 가져간 유물을 박물관에 기증해 후대의 좋은 연구 자료로 남겼다고 합니다. 우물에서 발견된 유물과 치첸이트사 주변에서 발견된 사람의 심장을 꺼낼 때 쓰였던 흑요석 칼, 인신공양 된 사람의 머리를 나무로 꿰어 쌓아두는 선반인 ’촘판틀리(Tzompantli)’가 발견된 것을 볼 때 우물은 인신공희 장소였다는 추측을 할 수 있지만 우물에서 추측할 수 없는 하나의 미스터리가 인양됩니다. 바로 주석으로 된 유물입니다. 주석은 아메리카에서 나오지 않는 광물질이고 자연 상태에는 존재하지 않는 복잡한 제련 과정을 거쳐야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남미엔 철과 주석을 사용한 흔적이 없는데 어떻게 치첸이트사에서 주석으로 된 유물이 나왔을까요, 아메리카에는 알 수 없는 사실이 너무 많으니 이정도의 궁금증은 접어두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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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공회의 장소로 추측되는 이킬 쎄노테의 우물

여의도의 132배나 되는 땅을 단돈 $75에 산 남자, 이런 횡재가 미국에만 반복적으로 해당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미국은 강국이 되도록 신의 선택을 받은 것일까요? 미국의 땅 투기 역사는 대단합니다. 전쟁을 빼앗은 것은 투기한 것에 비하면 약소한 정도입니다. 첫 번째는 미국 중부를 종으로 차지한 루이지애나입니다. 이 땅은 프랑스의 아메리카 영역입니다. 나폴레옹은 영국과의 전면전을 준비하면서 전쟁 자금이 부족하자 이 땅을 미국에게 팔았습니다. 미국 독립 전쟁의 주역은 미국 독립군이겠지만 이를 도운 프랑스인들의 공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컸습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일어난 7년 전쟁과 30년 전쟁에서 영국과 대립했으나 전쟁에서 패했고 미국 독립을 도와 명예를 회복하게 됩니다. 미국 독립 전쟁에 무기 지원을 넘어 라파예트(Lafayett)와 수천의 젊은이들이 독립 전쟁에 참여한 것만 봐도 프랑스의 도움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프랑스는 북미에서 영국을 몰아내고 현재의 미국 국토로만 봐도 23%에 달하는 루이지애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루이지애나와 뉴올리언스를 묶어 $15,000,000에 팔았습니다. 당시 미국 영토의 50%에 해당되며 땅 뿐만 아니라 미 중부 지역을 얻게 되므로 태평양으로 나가는 교두보를 차지하는 계기가 됩니다. 만약 이 땅을 나폴레옹이 팔지 않았더라면 미국이 태평양으로 확장되는 것은 불가능했고, 세계 1, 2차 대전 중 아프리카와 같이 미국도 유럽 세력의 전쟁터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오늘날과 같은 유일무이의 강국이 된 건 나폴레옹의 착각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멕시코 땅 뺏기입니다. 지질학의 대부 훔볼트는 남미 전 지역을 탐사하고 독일로 돌아가는 길에 자료를 미국 정부에 넘겼습니다. 미국은 이 자료를 통해 텍사스의 석유와 캘리포니아의 금광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멕시코와의 전쟁을 벌이지 않았을까요? 멕시코의 땅 뺏기는 이런 음모 속에 진행됩니다. 1835년 텍사스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이 멕시코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합니다. 신생 독립국인 멕시코는 당연히 이들을 공격하고 그 유명한 알라모요새 전투가 시작됩니다. 알라모요새 전투에서 몰살한 미국인들은 미국 합주국에게 도움을 청하고 미국은 텍사스를 합병하게 됩니다. 텍사스가 미국의 땅이 되었으니 이젠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으로 확대됩니다. 전쟁은 어이없게 끝이나고 맙니다. 스코트 장군이 이끄는 1만 2,000여 명의 미 해병대가 베라크루즈항에 상륙해 멕시코 시티를 점령하고 대통령까지 포로로 삼았습니다. 완패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멕시코는 어쩔 수 없이 애리조나, 뉴멕시코, 유타, 콜로라도 등 멕시코 영토의 절반이며 한반도의 10배에 해당되는 땅을 $15,000,000로 미국에게 넘겼습니다. $15,000,000이면 1803년이라 해도 한반도의 10배 크기의 땅을 사기에는 너무 적은 돈입니다.

 세 번째는 알라스카의 매입입니다.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Alexander II)는 농노해방을 단행했는데 농민은 땅을 무상으로 받는 것이 아닌 귀족에게 땅 값을 지불해야 했으며 이 비용을 정부가 80%, 농촌 공동체인 미르가 20%를 대납하고 이를 49년 기한으로 상환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차르 정부가 토지 값을 지불할 돈이 부족하자 알라스카를 미국에게 $7,200,000에 팔아버립니다.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대박이었을 것을 농민들 땅 값 대신 내준다고 알라스카까지 팔았지만 농민들은 빚만 지고 땅을 다시 귀족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결국은 볼셰비키 혁명으로 가서야 해결될 일을 알라스카까지 팔아먹고 얻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미국이 세계 최강이 되는데 기여한 위인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땅 투기를 잘해서 대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치첸이트사를 나와 점심 식사를 위해 리조트로 들어갑니다. 거대한 이킬 쎄노테(Ik Kil Cenote)로 불리는 130피트 깊이의 거대한 싱크홀이 리조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치첸이트사의 유일한 점심 식사 장소라서 그런지 차량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쎄노테는 석회암층이 지하수에 녹아 지반이 가라앉아 생겨났다고 합니다. 지하 세계로 떠난 여행자는 수영복과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만 있으면 된다고 안내자는 말합니다. 지상의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저 아래는 맑고 푸른 물이 우물같이 출렁이고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모두 깔깔거리며 물장구를 칩니다. 이 곳 리조트는 하루 물놀이하러 온 여행객들, 숙소에 묵으며 천천히 즐기는 사람들, 우리와 같이 식사를 위해 들어온 관광객들로 부지기수입니다. 치첸이트사는 마야가 기억하는 싱크홀이고 쎄노테는 멕시코가 기억하는 싱크홀입니다. 그런데 유카탄 반도에는 공룡이 기억하는 싱크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의 이정모님이 신문에 기고한 글을 인용하면 지질학도인 월터 앨버레즈(Walter Alvarez)는 400m 두께의 스칼리아 로사(Scaglia Rossa)에 1cm 두께의 진흙층이 중간에 끼어있고 진흙층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의 지층에는 현미경으로 확인이 가능한 작은 유공층이 있습니다. 반면에 진흙층에 아무런 생명체의 흔적이나 화석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진흙층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스칼리아 로사 지층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K/T 지층으로 진흙층 아래는 중생대 백악기 지층인 K층이며 진흙층 위에는 신생대 3기인 T층으로 만들어진 지층을 말합니다. 그런 중생대와 신생대를 구분짓는 진흙층이 만들어질 때 지구는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시간은 얼마나 걸렸을까, 궁금증을 갖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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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위해 찾은 칸쿤의 리조트

아버지 루이스 앨버레즈(Luis Walter Alvarez)는 진흙층이 주변 지층에 비해 이리듐이 1만 배나 많은데에 의문을 품고 이리듐이 지구보다 1만 배나 많은 유성과의 충돌을 가정합니다. 그리고 이리듐의 농도를 측정해 진흙층이 형성되는데 필요한 시간을 계산해 냅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행성은 직경 6 ~ 14km, 3,000억 톤의 무게, 이 행성의 충돌로 운석공은 직경 200km, 40km의 깊이로 분공이 생겼을 것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부자는 1980년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으나 지구상 어디에도 그런 분공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하나의 가정으로 끝나고 맙니다. 지질학도인 할더 브랜드는 방학을 이용해 루이스앨 버레즈가 가설을 세운 분석공을 찾아 나섭니다. 그는 유카탄 반도의 해상에서 중력 이상(관측된 중력에서 표준 중력을 뺀 값 – 지형의 고저 기복이 있는 경우 나타남)이 둥근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학교로 돌아가 지도 교수에게 말합니다. 지도 교수와 탐사대를 꾸는 할더 브랜드는 유카탄 반도의 ‘칙술룹(Chicxulub)’이란 마을에서 1991년 직경 180km의 찾아낸 운석구멍을 말합니다. 8000만년 동안 퇴적되며 운석 구멍의 크기가 줄어들었을 상황을 고려하면 루이스 앨버레즈가 계산해 낸 운석 구멍의 크기와 거의 동일합니다. 현대 과학은 이 비밀의 시간을 결국 계산해 냈고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아냈습니다. EBS 다큐팀이 발간한 대멸종에 따르면 “6,500만년 전, 지름이 약 10 ~ 15km인 유성이 지구와 충돌했으며 그 충격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의 약 5천 배의 규모가 된다. 운석 구덩이는 지름 170km(이는 서울 ~ 구미 간의 거리), 깊이는 15 ~ 20km(에베레스트 산 높이의 2 ~ 3배)이었다. 쓰나미의 높이는 100m가 넘었고, 육지로 20km 이상 침투해 들어갔다.” 그 날의 충돌로 지구 생명체의 75%가 사라졌으며 그 중 공룡은 멸종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구가 다시 정상을 되찾기까지 1만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 월터 앨버레즈가 가졌던 의문, 1cm의 진흙층이 만들어지는데 소요된 시간은 얼마일까, 60년이었습니다. 결국 60년 동안 지구에는 진흙비가 내렸고 하늘을 덮은 먼지가 없어지고 사라진 생명체가 다시 회복되는데 1만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전기 마야는 스스로 사라졌고, 후기 마야는 ‘디에고 데 라다’에 의해 실종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카탄 반도가 기억하는 실종 사건은 6,500만년 전 해맑은 하늘을 검게 물들인 사건이었습니다.

지구는 다섯 번의 대멸종 사건을 겪었고 그 보다 더 많은 횟수의 작은 멸종을 겪었습니다. 그 때마다 지구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번 멸종이 지구를 덮칠 때마다 지구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다시 대멸종의 시간이 온다면 그랬듯이 지구의 주인은 바뀔 것입니다. 인간만이 지구 사용권을 가졌다는 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인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인류를 위해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줄 다음 주인의 시혜를 바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