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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 지하세계로 통하는 계단, 벨리즈


유카탄(Yucatan) 반도의 또 다른 지하행성이자 지구 내부로 통하는 문, 블루 홀(Blue Hole)을 찾아 벨리즈(Belize)로 향합니다. 인간은 우주로 향하는 꿈을 갖고 살았지만, 현실은 지하로 통하는 문이었습니다. 인류는 지하를 어둡고 형이상학적인 악으로 멀리하려 했지만 정작 함께한 세계는 지하세계였습니다. 그것은 하늘로 가려 하지만 인간이 가야 할 곳은 지하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지하로 향하는 깊은 미로, 블루 홀. 정녕 인간계와 지하계를 연결하는 통로인가요…

블루 홀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롭다고 알려진 그레이트 블루 홀(Great Blue Hole)은 벨리즈시티 해안에서 약 70㎞ 떨어진 라이트 하우스 암초(Lighthouse Reef) 지대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직경 313m, 거울 모양의 둥근 환초가 품은 푸른빛의 호수입니다. ‘지구의 눈’이라는 별칭이 붙은 그레이트 블루 홀은 1971년 자카 쿠스코가 블루 홀의 깊이를 측정하기 위해 칼립소 호를 타고 탐사에 나서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명창은 영국 작가인 네드(Ned Middleton)가 6개월을 블루 홀에서 보낸 후 그레이트 블루 홀이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그는 다이버로서 블루 홀을 탐사하였고 탐사과정에서 받은 깊은 영감과 감동을 모아 《물 밑에서 10년(Ten Years Underwater)》을 발간했는데, 이 책에서 “호주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를 가지자, 벨리즈는 평등하게 그레이트 블루 홀을 가졌다.”라 비유하면서 그레이트 블루 홀을 극찬했다는데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규모나 산호 해안의 길이는 그레이트 블루 홀을 능가하지만, 지하와 통하는 통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디스커버리 채널이 《지구에서 가장 놀라운 장소 BEST 10》을 선정하며 블루 홀을 대표해 그레이트 블루 홀을 선정한 게 훨씬 상식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블루 홀은 세계 각지에 있으며 벨리즈의 그레이트 블루 홀이 가장 깊은 블루 홀도 아닙니다. 깊이로 메긴 순위를 보면 멕시코의 타마울리파스(Tamaulipas)가 335m로 가장 깊으며 바하마의 딘 블루 홀(Dean Blue Hole)이 202m로 두 번째로 깊고 이집트의 다하부 블루 홀(Dahab Blue Hole)이 130m로 세 번째이며 벨리즈의 그레이트 블루 홀은 124m로 네 번째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레이트 블루 홀만이 ‘지구의 눈’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깊은 계곡이거나 지반이 가라앉으며 함몰된 지역에 물이 차올라 블루 홀이 된 다른 지역에 비해 모양으로 보나 물의 빛깔로 보나 무엇보다도, 지구의 역사와 같이하는 생성과정으로 보아도 그레이트 블루 홀은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블루홀

그레이트 블루 홀의 구조를 살펴보면 그레이트 블루 홀이야말로 과거와 이어져 있고 지하세계와 연결된 통로라는 데 공감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레이트 블루 홀이 지질학적 기록과 지구의 변화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레이트 블루 홀을 만든 환상 산호섬은 700만 년 전부터 생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환상 산호섬은 화산 주변의 땅이 깎여 내려가며 둥근 거울 모양으로 남은 게 아니고, 정상 능선을 이룬 암석층이 석회석층에 덮이면서 산호서식지로서 좋은 여건을 제공한대서 시작합니다. 물에 대지가 잠기며 산호가 자릴 잡고 서식하기 시작했고, 빙하기가 지나고 해빙기가 되면서 바닷물의 수위가 천천히 높아지며 석회암층에 자리 잡은 산호도 위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수위는 높아졌고 수위가 높아지는 만큼 계속해서 산호가 위로만 성장한 결과 바깥으로 벽을 만든 반면 안으로는 얕은 호수를 만들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환초에 둘러싸인 호수는 깊이가 10 feet(3.048m)에서 30 feet(9.144m)로 얕음에도 환상 산호섬의 벽은 수천 미터의 깊이에 달합니다. 오랜 세월 물의 높이에 키를 맞춰가며 성장 했음을 보여주는 증표이고 과거 이 지역의 수위를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유명 다이버인 Ramon Llaneza가 촬영한 “Great Blue hole-exploring mysterious bottom of Belize blue hole” 은 그가 그레이트 블루 홀의 바닥까지 내려가며 블루 홀 내부에 남겨진 지질학적 흔적을 기록한 영상물인데, 그가 찍은 영상을 보면 그레이트 블루 홀의 내부는 수심 225 feet(68.58m)까지는 석화 암반의 수직 벽(lime stone wall)이 날개 모양의 살이 돌출된 채 거대한 벽을 이루며 서 있습니다. 그런데 12,000년 전에 이곳 석회암벽은 육지였다고 합니다. 수심 290 feet(88.392m) 지점은 14,000년 전 까지만 해도 육지였다고 하고요… 카메라는 더 깊은 세상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갑니다. 수심 345 feet(105.156m)에 이르면 죽은 산호의 화석들이 실물 그대로 주변에 즐비해 마치 지하 정원의 꽃처럼 화려합니다. 산호초가 활짝 피어난 채 주변으로 넓게 펼쳐나간 걸 보면 수심이 낮은 해안이었다는 것이고 주변이 온통 죽은 산호로 즐비하다면 갑작스런 수위증가로 인해 광합성을 할 수 없었던 산호초가 집단 폐사하여 무덤이 된 것 아닌지요… 카메라는 다시 아래로 향합니다. 그리고 이번엔 수심 350 feet(106.68m)에 이르러 165 feet(50.292m) 길이의 종유석이 걸려있는 동굴을 찾아냅니다. 종유석은 액체의 침전물이 쌓여 만들어지므로 오랜 세월의 결정체일 뿐 아니라 바다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이 종유석의 나이도 수십만 년을 헤아린다고 하니 수십만 년간 육지였다가 바다가 된 땅임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빙하기는 신생대 제4기에 있었던 플라이스토세 빙하기인데, 약 백육십만 년 전~10,001년 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플라이스토세 빙하기는 기원전 11,000년 전에 녹기 시작해 기원전 8,000년에 이르러서야 끝났고 그 이후로 지금과 같은 온화한 기후가 1만 년간 이어졌습니다. 20,000년 전엔 지구의 많은 물이 얼어 있었을 테니 그레이트 블루 홀의 바닥이 육지였을 만큼 수위가 낮았을 것입니다. 빙하가 녹고 수위가 높아지는 만큼 그레이트 블루 홀의 환초도 위로 자라며 높이를 키워 지금에 이르렀으니 지구의 빙하기 역사와 함께하는 그레이트 블루 홀이라 할 만합니다. 아주 오랜 옛날의 기억만이 아닙니다. 라이스 대학과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의 연구팀은 그레이트 블루 홀과 주변 석호의 침전물을 분석한 결과, 서기 800년부터 900년까지 강수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바로 전기 마야의 실종시간이 벌어진 때입니다. 당시 유카탄 반도는 라니냐로 인한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고 이런 이유로 마야는 도시문명을 포기하고 원시의 삶으로 돌아갔다는 추론을 티칼에서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지구의 과거를 설명하는 흔적은 도처에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레이트 블루 홀만큼 아름답고 멋지지는 않습니다. 삭막하거나 모나거나 엉거주춤한 채 드러나 있을 뿐입니다. 아름다운 블루 홀을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고 지하세계를 교감하는 여행, 그레이트 블루 홀 여행은 두 가지로 접해봐야 합니다. 우선은 거울 안 블루 홀 속으로 들어가는 크루즈 여행입니다. 크루즈는 정해진 시간에 부두에서 출발하므로 환상 산호섬 안에 내려 들어가 스노클링을 하며 산호와 춤을 춰보고 용기를 내 다이빙도 도전해볼 만합니다. 다른 방법은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눈과 눈을 마주치는 여행입니다. 헬기는 4인승이며 3명의 여행객이 $1,360를 나누어 내야 합니다. 헬기를 홍보하는 팜플렛은 가장 저렴한 가격이라는 문구 아래 어느 회사도 동일한 금액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가장 저렴한 금액이라는 말을 애써 인쇄해 넣었습니다. 아마도 불공정 단합을 한 모양입니다. $420을 주고 한 시간 남짓 타는 헬기여행은 비싼 만큼 가장 멋진 여행에 꼽을 만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으면 그레이트 블루 홀과 눈인사를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하세계로 통하는 열쇠는 홍채인식일지도 모르니 저의 홍채를 미리 입력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언젠가 지하세계만이 인류의 살길인 시대가 오면 우리 가족의 무사 통고를 위해서 말이죠…

 벨리즈는 블루 홀이 벌어주는 관광수입 말고는 값진 목재와 치클(Chicle) 생산이 국가의 주 수입원이라고 합니다. 치클은 사포딜라(Sapodilla) 나무에서 채취하는 껌의 원료로 마야는 사포딜라 나무의 수액을 채취해 끓여서 만든 치클을 씹었다고 전해집니다. 마야는 약으로 사용했는데, 마야에서 시작된 카카오, 치클이 서구로 전해져서는 기호품인 초콜릿과 츄잉껌으로 발전되었으니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다른 건 아닌지요… 마야도 카카오와 치클뿐 아니라 자연에서 여러 약재를 채취했으니 그들의 행적을 좇는 “Rainforest Medicine Trail” 밟아가 봅니다. 마야는 자연에서 약을 구했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신경을 깨우는 고카페인인 카카오, 신경을 풀어주는 치클, 그 외 다양한 효능의 허브, 검보 림보 나무(Gumbo Limbo)의 붉은 껍데기는 다양하게 쓰였는데, 구충제 · 거담제의 효과가 있는 테레핀(Turpentine)기름을 추출할 뿐 아니라 발목이 삐었을 때 고정시키는 데도 사용하고 멍들었을 때 멍든 부위에 붙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약재의 숲길을 걷고 난 후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 되살려야 하는 게 자연이라면, 자연엔 무엇이 있어서 이지? 도시거주민은 아마존 원주민보다 몇 천개의 바이러스가 적다고 합니다. 자연분만에 비해 제왕절개로 분만한 아기의 대장엔 50여 종이나 세균수가 적다고 합니다. 대장은 세균의 보고이고 몸에 장기 서식한 세균은 유익하거나 해롭지 않으니 유익한 세균이 적다는 건 그만큼 외부 침입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낮고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정글에 인류가 잃어버린 다양한 세균과 바이러스가 산다는 것은 인류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질병에 대한 해결책일지 모릅니다. 에이즈와 에볼라가 나온 그 원시 밀림엔 에이즈와 에볼라를 죽이는 적도 있었을 테니까요… 세상에 무적은 없습니다. 무적이 나오기까지만 무적일 테고, 모든 적의 적은 어딘가에 있기 마련이니까요…

벨리즈는 마야의 심장과 그리 멀지 않습니다. 고전기 마야의 중심지인 티칼과 후기 마야의 중심지인 치첸이트사(Chichen Itza) 중간에 자리하고 있어 마치 마야의 전기와 고대의 징검다리 같습니다. 마야의 어떤 비밀을 벨리즈가 숨기고 있지는 않은지요… 마야를 찾아보는 여행은 내륙의 마야 산맥과 콕스콤브스 산악 지대에서 해안의 저지대로 이어지는 넓은 정글 속에 산개한 폐허의 도시를 찾는 일이고 종착역으로 과테말라를 넘어 티칼에 이르거나 멕시코의 치첸이트사에 이르는 육로여행입니다. 저는 과테말라 여행 중 티칼을 방문했고 치첸이트사를 거쳐 벨리즈에 왔으니 마야여행은 정글 속 폐허도시를 찾아가는 일은 그만두고 벨리즈의 마야를 찾아 가벼운 행장을 챙깁니다.

후기 마야의 도시는 유카탄 반도의 남부 정글에 자리 잡고 있어서 벨리즈는 마야의 탐험전진기지였습니다. 스페인시대 마야지역을 탐방한 군인들은 마야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개인적 편견과 과장된 감정표현, 왜곡된 오해가 주를 이룰 뿐 마야를 설명하는 기록은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마야에 대한 기록은 미스터리한 정글 도시유적에 거주하는 원시적이며 이해할 수 없는 신념에 사로잡힌 무지한 집단으로 표현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순이 가능할까요… 제대로 된 학자라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요… 도시문명과 원시인, 신념과 무지, 그건 한마디로 마야를 잘 모르겠다는 자기반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야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존 로이드 스티븐스(John Lloyd Stephens)와 프레더릭 캐서우드(Frederick Catherwood)의 중앙아메리카 탐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1839년∼1840년, 1841년∼1842년, 두 번에 걸쳐 44개의 마야 유적지를 방문하여 지도와 그림을 그리고 유적에 대해 묘사했는데, 탐사의 시작점이 벨리즈였습니다. 벨리즈에서 시작된 마야 탐사는 끼리구아(Quiriguá)→꼬빤(Copán)→꼬미딴(Comitán)→빨렌께(Palenque)→시살(Sisal)로 이어지는데, 현재의 벨리즈, 온두라스, 과테말라, 멕시코의 가장 깊은 셀바를 헤쳐 가는 길이었습니다. 두 번의 탐사가 끝난 후에 스티븐과 캐서우드는 ≪중앙아메리카 치아빠스와 유까딴 여행에서 있었던 일(Incidents of Travel in Central America, Chiapas and Yucatan)≫을 발간했는데, 이전의 어떤 책과 달리 마야의 유적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확히 묘사하고 있어 마야에 대한 혼돈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으며 두 번째 여행에서는 마야의 중요한 역사기록인 ≪칠람 발람(El libro de los libros de Chilam Balam)≫을 발견하고 이를 소개함으로써 마야학이 시작되는 계기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티븐스를 마야학의 선구자로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앙아메리카 치아빠스와 유까딴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번역한 정해주 님은 “저자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홀연히 새로운 땅에 들어서게 될 것인가?”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마야를 찾아가는 여행자의 행복이 아닌지요… 그런데 모든 여행기는 읽는 독자가 그 땅을 홀로 여행하고 있는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여행기는 어느 만큼 그 일을 하고 있는지요… 부족한 저에게 스스로 물으며 긴 여행을 끝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