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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 마야의 실종

마야는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합니다. 거대한 석조 건축물들이 더 이상 감동적이지 않을 때 마야를 떠올립니다. 마야의 미스터리는 건축물의 축조가 아니라 건축물에 기록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마야도 북에서 건너온 사람들일까요? 그 기저에는 아시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라는 말을 내포하고 있으니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전기 마야의 중심지 티칼은 이러한 질문의 해답을 주는데 있어 꼭 맞는 장소일거라 믿음을 가지고 비행기에 오릅니다.

티칼에 도착하니 자신을 마야인이라 소개하는 안내자가 정겹게 맞이합니다. 다른 여행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전통 복장을 입고 있습니다. 소란을 떨지 않아도 그의 얼굴에 마야라고 써 있는 듯 합니다. 날카로운 콧날과 슬림한 두상을 보니 나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와 얼굴을 마주한 채 사진을 찍어 봅니다. 사진 속의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나옵니다. 어찌된 일인가요, 스스로 몽고리안이라는 마야 안내자는 마야인의 98%가 엉덩이에 몽골 반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몽골 반점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고, 오똑한 콧날이 의미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마야인은 주먹코에 광대뼈가 돌출된 얼큰이는 분명 아닙니다. 그럼 아즈텍이나 잉카의 인디오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요즘도 텔레비전 카메라는 페루의 안데스 산간 오지를 뒤지며 문명이 닿지 않은 마을을 찾아 그들의 생활과 얼굴을 담아냅니다. 작은 키, 햇빛에 그을려져 깨끗하지 않은 얼굴에 체구만 작을 뿐이지 이목구비의 조화는 몽고리안과 한 울타리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합니다. 만주에서 건너와 서기 650년 멕시코 중앙 고원에 정착한 다섯 부족 중 남하한 한 부족의 후손이 이들일까요? 미국학자 엘레스 호들리카(Alex Hrdicka)는 기원전 1만 5천년인 신생대 제 4빙하기 때 바닷물이 100m 낮아지면서 육지로 연결된 베링해를 건너 몽고리안이 아메리카로 이주했다고 주장합니다. 몽골 반점과 두개골 형태가 동일하다는 점이 그의 이론을 뒷받침 합니다. 반면 프랑스 학자인 파울 리베(Paul Rivet)는 언어적 동질성을 근거로 들어 말레이, 폴리네시안 등 남태평양인들이 이주해 아메리카 원주민의 시조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MAYA 1
마야남자와 한국남자, 메부리코가 마야의 상징이라는데, 로마의 상징이 아니었나

민족을 피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때로 난관에 부딪힙니다. 집단은 이주와 정착을 반복하며 다른 집단과 혼합이 쉽게 이루어 집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고유한 특성이 희석되기도 하고, 새로운 신체적 특성이 생겨나기도 하므로 어느 민족은 어떻다는 표현이 모호해지기 쉽습니다. 그런 면에서 리베의 주장은 보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피가 섞이고 얼굴이 변형되어도 문화적으로 습득하는 언어는 피와 무관하게 이어집니다. 그래서 혹자는 민족을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얼굴이 어떻든, 피부가 어떻든, 머리 색이 어떻든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한국 문화의 가치를 공유한다면 그는 한국인인 것입니다. 리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뮤 대륙(Lost MU Continient)’를 저술한 제임스 처치워드는 자신의 저서에서 태평양에는 기원전 7만년부터 ‘뮤’라는 대륙이 존재했으며, 기원전 1만 1천년부터 1만 2천년경 바다에 가라앉아 사라졌다는 주장을 합니다. 기원전 1만 1천년이면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해빙기에 들어서는 전 지구에 재앙이 덮친 때입니다. 빙하가 녹으며 바다 수위가 올라가고, 빙하에 눌렸던 대지가 부풀어 오르면서 화산과 지진 활동이 활발해집니다. 이 때 뮤 대륙은 바다 속으로 가라 앉았고, 대륙의 산간 지방에 거주하던 사람들만이 살아남아 그들 중 일부가 아메리카로 이주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멕시코인 콩고라(Gonggora)는 뮤가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아틀라스라고 주장합니다. 아틀라스는 대서양에 존재했던 전설의 섬이니 만큼, 뮤 대륙과 함께 증명되지 않은 가설일 뿐입니다. 그런데 저는 색다른 주장에 관심이 갑니다. 코카서스 인종이 아메리카의 선주민이라는 주장입니다. 카프카즈인이 베링해를 넘어 정착한 최초의 원주민이고 이 후 몽고리아인이 넘어와 그 흔적을 남겼다는 주장은 모든 요소를 포괄합니다. 즉, 몽골 반점은 이루에 넘어온 몽골인들과 섞인 흔적이고, 이국적인 얼굴은 코카서스 인종적 특징입니다. 거기에 더해 작고 두터운 상체의 신체 구조는 폴리네시아안과 섞인 신체적 특성이라는 설명입니다. 견강부회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성경과 역사적인 근거를 조금 더 파고들면 코카서스 인종이 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사실에 공감하게 됩니다. 성경에 의하면 노아에게는 함, 셈, 야벳이라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고, 막내인 야벳의 둘째 아들인 마곡(Magog)은 코카서스 넘어로 쫓겨나 스키타이의 선조가 됩니다. 이들은 최초의 유목 제국을 형성했고, 만주에 빗살무늬 토기를 전했을 만큼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로 아우르며 넓은 지역에 족적을 남깁니다. 그들이 만주까지 여러 흔적을 남긴 걸 볼 때 베링해를 넘어 아메리카로 넘어갔을 소지는 다분합니다. 이런 역사적 정황이 아닌 종교적 토대도 있었습니다.

콜럼버스는 그의 마지막 항해인 4번째 항해 때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처음 만났고, 그들을 배에 태워 스페인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1512년 교황청은 그들을 사람으로 볼 것인지 짐승으로 볼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 신대륙에 대한 첫 번째 종교 회의를 엽니다. 이 공회에서 교황 훌리오는 인디오를 아담의 후예로 인정하면서 ‘원죄가 없으며 지적 수준이 낮은 인간’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은 더 발전해 이스라엘 12지파 중 이스라엘과 유대를 제외하고 사라져버린 10개 지파 중 하나라고 확대하기도 합니다. 사라진 이스라엘 민족의 10 지파 중 하나이든, 마곡의 자손이든 분명 우리와 다른 반서구적 얼굴을 가졌습니다. 거기에 뒤 늦게 베링해를 넘어간 몽고리안이 엉덩이에 몽골 반점을 남긴 것일까요? 만주에서 건너간 몽고리안에서 더 발전된 견해는 범위를 좁혀 구체적으로 연해주에 머물던 해양 민족, 한반도로 이주한 민족과 동일한 온돌 문화를 가진 민족의 아메리카 이주로 정의합니다. 수렵 채집의 단계를 벗어나 신석기 문화를 이루는 과정은 정착과 군집문화 형성입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형태로 발전된 사회로는 유목과 농경 문화를 꼽습니다. 새로운 해석에 따르면 유목이나 농경보다 먼저 집단을 이루고 문화를 만들어낸 문화권이 있으니, 해양어로 문화입니다. 만주의 해양어로 문화는 연해주 해안을 따라 형성되었는데, 이 지역에서 독특한 온돌 문화가 탄생합니다. 온돌 문화는 입식과 좌식이 있는데, 중국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온돌 유적은 입식인 반면 한반도, 연해주, 알라스카에서 발견되는 온돌 형식은 좌식입니다. 다시 말해, 연해주에서 시작된 좌식 온돌 문화는 남으로, 한반도로, 동으로, 알라스카로 확대되었고 이는 고래의 이동 경로와 일치한다고 합니다. 고래는 어로 문화의 꽃이고, 고래를 쫓아가는 민족의 이동이 결국 한반도, 아메리카로 몽고리안의 확대를 가져왔다는 생각입니다. 영국 에버던대 ‘리차드 크넥’ 교수는 알라스카 알류산 열도에서 입식 온돌 유적을 대량 발견함으로써 오리무중이던 해양어로 문화의 확대를 증명했습니다. 해양어로 문화에 근거하면 다시 순서가 바뀝니다. 연해주의 몽고리안이 먼저 건너가고 난 후 스키타이 유목민인 북코카서스인이 넘어가고, 그 뒤에 부여의 잔존 세력인 고리족, 만주의 맥족이 넘어갔다는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민족의 이주가 마야의 미스터리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는 멕시코에서 이미 고민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깊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마야인은 혹 처음부터 아메리카에 살았던 사람들이 아닐까요? 몽고리안도, 코카서스인도, 폴리네시안도 아니고 해양어로 문화도, 유목 문화도, 농경 문화도 아닌 아메리카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아마도 마야 문화와 마야인에게 있지는 않았을까요?

공항인 폴로레스에서 1시간 30분을 달려 티칼에 들어서자, 마야 안내인은 신비한 마야말을 늘어 놓으며 우리를 신비의 무덤으로 이끕니다. 그 세계는 보이지 않는 다리에 첫 발을 내딛듯, 믿음만이 통로인 세상의 입구 같습니다. 마야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마야라고 말하는 그 신비는 전기의 전유물입니다. 후기 마야는 멕시코 중앙 고원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마야를 본 뜬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전기 마야가 꽃 피운 도시 티칼, 이 곳에서 일어난 마야의 실종 사건은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티칼에는 그 날을 정확히 869년이라고 기록한 석주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9세기 마야의 멈춤, 티칼을 버리고 떠난 마야인들의 거대한 이주는 비밀스런 민족의 가장 큰 수수께끼 입니다. 이들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언어를 포함해 마야와 비교 할만한 것을 무엇 하나 찾을 수 없습니다. 학자들은 나름의 궁금증을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고 미스터리를 풀려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고민의 결과로 명료한 해석을 내 놓았습니다.

‘이집트나 타 문명권에서 보듯 천상의 작품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 만들어 진다’ –이바르 리스너- ‘종교를 바탕으로 한 국가가 그 고향을 갑자기 떠나게 되는 것은 신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프란츠 트레머–

두 학자의 접근은 우연한 사건 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저에 종교적 인과 관계가 있음을 말합니다. 마야가 믿은 신은 누구인가요? 그들에게 신은 싯타르타가 깨우친 우주의 질서가 아니었을까요? 그 질서를 이해하고, 질서에 순응하려던 마야인들은 질서에서 어긋나 우상과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강요 받았을 때 이를 거부했고, 절대자의 의지로 통치권을 유지하려는 지배 세력과 진리에 순응한 삶을 유지하려는 백성들과의 대립으로 티칼이 버려지지는 않았을까요? 저의 상상이 지극히 무리하지만, 티칼의 모든 건축물이 어떤 신을 위했다는 근거가 희박하고 그들이 이룩한 거대한 피라미드는 수학의 지적 성취를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사원에 부조나 조각으로 남겨진 신상을 들어 신의 영역이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겉만 보고 속은 아니 본 듯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신상은 그저 장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추앙한 것은 피라미드에 남겨진 무엇이 아니라, 피라미드를 지은 이유인지 모릅니다. 마야가 남긴 피라미드는 진리를 향한 정신이며 표현입니다. 마야가 사용한 달력과 수의 개념, 천문 인식이 마야 문명을 함축하고 있다면 피라미드는 그런 절대 진리를 향한 마야의 정신은 어디에서 침착되었을까요,

‘아즈텍과 마야 신화’를 저술한 칼 토베는 “역법이란 시간과 공간을 결정하고, 그에 질서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마야의 역법은 ’13일로 구성된 주와 20일로 구성된 달, 그리고 365일로 구성된 해’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순환을 타며 시간과 공간 뿐 아니라, 운명을 예측하고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마야가 믿은 신이며 종교가 아닐까요. 마야의 높은 지적 수준이 자신들을 몽매한 수의 세계에 옭아 두었던 사실에 주목하면서 마야가 찾아낸 수의 세계를 들여다 봅니다. 얼마 전 세상을 혼란 속으로 몰아 넣었던 인류의 마지막 날 2012년 12월 21일은 마야력에 따른 것입니다. 마야는 일, 월, 년을 나타내는 세 개의 톱니바퀴로 한 주기를 계산하는데, 한 주기가 5,200년에 해당됩니다. 마야의 기록에 따르면 인류는 당시 제 5 태양계에 살고 있었고, 제 5 태양계는 BC 3,114년에 시작했으므로 끝나는 날이 2012년 12월 21일인 것입니다. 근거 없는 허무 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에 따르면 2012년 12월 21일은 은하계의 중심, 즉 은하계의 적도에 태양이 정확히 일직선으로 정렬하는 날이었습니다. 아르딘 길버트(Adrin Gilbert)가 The End Of Time에 쓴 내용을 보면 더욱 흥미 진진합니다.

마야 문명의 장 주기에 나온대로 기원전 3114년 8월 12일 창조의 날로부터 13번째 박툰이 완성되는 2012년 12월 21일에 태양은 남쪽 성문, 곧 황도가 전갈자리의 침과 사수자리 성좌에 있는 은하수의 중심을 지나는 곳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자정에 태양은 우리 은하계의 정 중앙과 일직선을 이루게 된다. 태양이 보이지 않겠지만, 밤 시간이기 때문에 남쪽 하늘을 지배하는 오리온 자리가 될 것이다. 이곳은 마야인들이 자신들의 시조인 우나푸르와 스발렌케가 왔다고 말하는 곳이다.

그런 날은 5,200년에 딱 하루 밖에 없으니, 마야인들이 천체의 운동을 알았다면 그날에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었을 테고, 그날을 피하기 위해 무던히 애쓸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런 지식을 누군가가 알려주지는 않았을까요? 정말로 마야인들이 계산해 냈을까요? 이집트 피라미드는 고대에 만들어 졌고, 시간적으로는 기원전 2650년에 해당됩니다. 마야의 제 5 태양계가 시작되고, 몇 백년이 안되는 시간 차이 입니다. 이집트 피라미드 역시 고도의 수학적 지식과 천문학적 토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피라미드가 43.5도를 유지하는데 유독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만이 52도를 유지하는 것은 왜 일까요? 기자의 피라미드 외 이집트 다른 지역의 피라미드에서는 52도는 찾아 볼 수 없다고 하니, 52도를 유지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법 합니다. 헨콕은 이를 축소된 지구의 체적과 피라미드의 체적을 일치시키려 의도적으로 각도를 높였다고 설명합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럴 필요가 있었을 텐데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시 마야로 돌아가 봅니다.

5,200년에 한 번 오는 그날, 은하계와 태양이 일직선으로 정렬되어 우주에 특별한 역학적 운동 지수가 생겨나는 날, 자신들의 시조인 우나푸르와 스발렌케가 오리온 자리 어딘가에서 왔다고 마야는 말합니다. 진실이 아닐까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우주에서 지구로 놀러와 눌러 앉은 것인가요.. 시간은 동일해도 절대적이지도 않습니다. 빛의 속도로 달리게 되면 시간은 늦어지거나 멈추게 되고, 또 중력이 센 곳을 지날 때 시간은 늦어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시간은 3차원이지만, 4차원이나 5차원에 가면 시간의 길이는 변화합니다. 마야인들이 본 시간과 그들이 본 공간적 차원은 이제 막 현대인들이 보기 시작하는 세상의 저편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공간과 시간을 알아냈을까요, 미스터리한 문제 앞에서는 모든 문제를 간단하게 단순화합니다. 그래서 마야의 시조인 우푸르 스발렌케는 우주인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자기의 별을 버려야만 한 외계인의 방문이 마야 정신의 시작이라면 인류는 마야의 미스터리를 풀어야만 합니다. 그들의 방문이 유람은 아니었을 테니 어떠한 비밀을 남겨놓고 가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우리보다 먼저 겪은 행성 종말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라도 어려운 문제에 도전할 때입니다. 어쩜 어렵게 풀어낸 답이 단순한 메시지인지 모릅니다. “사는 동안 행복해라, 그날이 멀지 않았다.” 여행을 멈추지 말아야 겠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티칼을 돌아보며, 현실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정글 한 가운데 들어선 문명이 티칼 말고 또 있을까요? 토인비는 ‘역사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 발전 할 수 있는 조건은 환경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야 한다.” 티칼은 그런 곳입니다. 열대의 정글은 문명 도시가 들어서기 좋은 조건이 아닙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풍부한 물과 일조량, 다양한 동식물, 비옥한 땅까지 갖추었으니 개간만 할 수 있다면 많은 인구가 거주 할 수 있는 좋은 여건입니다. 고대 문명이 열대 정글보다 반 건조지대의 강하구에서 탄생한 건 풍부한 물과 일조량, 비옥한 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여건이라면 한 쪽은 정글이고, 다른 한 쪽은 먼지가 날리는 건조한 땅이라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토인비의 명철한 분석과 같이 여기에 한가지가 더해져야 합니다. 그런 자연 환경을 어떻게 관리하고 극복하느냐 입니다. 나일강의 치수는 고도의 수학적 발전을 이집트에 가져왔고, 황하의 치수에 성공한 우(禹)는 순임금의 선택을 받아 왕위를 물려받고, 하왕조의 시조가 됩니다. 모두 물을 관리한 인간의 승리입니다. 마야에서 무엇을 어떻게 관리했고, 성공하였기에 인간 생존에 배치되는 정글에 문명을 세웠을까요, 우주인의 도움이라는 가정을 배제하면 미스터리 합니다. 아마존 뿐만 아니라, 열대의 정글 어디에도 티칼 같은 문명 도시가 들어선 예가 없기 때문입니다.

답을 찾으러 왔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지식의 빈 공간에 상상과 추측이 메워져 있을 뿐입니다. 나만의 질문을 가지고 천천히 유적지를 돌아봅니다. 재규어 신전인 제 1 신전, 가면의 신전인 제 2신전, 아크로폴리스 광장, 마지막으로 티칼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제 4 신전에 오릅니다. 정글 위로 머리만 빼꼼 내민 신전들이 붉어져 나와 있습니다. 티칼에 와서 건축 왕을 한 분 더 알게 되었습니다. ‘아 카카오 왕’입니다. 저는 아프리카 인문 여행기에서 5명의 건축 왕을 뽑았습니다. 진시황, 피차쿠팩, 람세스 2세, 샤자한, 루이 14세 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가장 위대한 건축 왕은 이집트 피라미드를 창조해 낸 임호텝인 듯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오늘 찾아낸 아 카카오 왕은 아닐까요? 거기에 더해 테오티우와칸을 건축한 주인공을 추가로 모셔야 할 것 같습니다.

MAYA 2
티칼의 마야 비문과 신전, 신전은 신의 역사를 비문은 인간의 역사를 감추고 있다
신전 차크 마스크 - 33번 신전

마야의 실종, 학자들은 여러 정황을 들어 설명하려 합니다. ‘인구가 늘어나 정글을 무분별하게 개간하며, 농토가 황폐해져 떠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전염병이 창궐해서 티칼을 버렸을 것이다. 지배 계급인 제사장들에 대한 반기로 도시가 스스로 무너졌을 것이다. 외부의 적이 침입해 멸망했을 것이다.’ 마야가 자신들을 설명하기 위해 무언가를 남기지 않았으니 869년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분명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한 때를 풍미했던 바람처럼 마야도 지나가버린 존재일 뿐입니다. 다만 존재와 달리 메세지를 담고 있으나 아직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았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