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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를 찾아서

필리핀에는 타알이라는 거대한 화산 호수가 있습니다. 필리핀 여행을 다녀온 분들의 대부분은 말을 타고 분화구에 올라보았을 것입니다. 분화구에 오르면 작은 산상 호수에 큰 감동은 받지 못하고 되려 오가는 말이 풍기는 역한 먼지로 고생만 하게 됩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타알 화산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한참을 달렸던 넓은 호수가 실제로 거대한 분화구입니다. 배로 한 시간 이상 분화구 안을 달렸다고 하면 그 분화구는 얼마나 거대한 것일까요, 그리고 바다같이 넓은 분화구가 생길 만큼 산을 날려버린 화산의 위력은 얼마나 대단했을까요, 아메리카 대륙에도 그런 호수가 있는데 바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불리는 아티틀란 호수입니다.

과테말라 시티를 출발한 차는 안티구아를 거쳐 아티틀란으로 3시간을 달립니다. 그런데 오르막을 오르던 차가 갑자기 가파른 산 사면을 내달립니다. 산이려니 했는데, 산이 아닙니다. 비로서 화산의 분화구 안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직경 18km의 화산 호수를 감싸는 화구는 얼마나 거대하고 웅장한지 40분 가량을 차로 내달려서야 호수가의 호텔에 우리를 내려 놓습니다. 화구 안으로 들어선 이상 여행자는 자신의 목숨이 자기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화산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이 곳은 바로 무덤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호수를 바라보며, 그 옛날 호수를 방문한 거인을 떠올립니다. 헉슬리는 아티틀란 호수에서 새로운 세상을 구상합니다. 그가 1932년에 발표한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아티틀란 호수를 바라보면서 쓰여졌습니다. 그는 여기서 무엇을 보았기에 기술 발전으로 상실한 인간상을 그렸을까요, 소설 신세계의 한 대목은 사라진 마야를 연상하게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는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신세계의 지배자 무스타파 몬드는 어깨를 추슬렀다. “마음대로 하게”하고 그가 말했다. 재미난 대목입니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관리되는 사회에서 통제와 관리의 안정과 편리를 거부하는 야만인이 인간에 가깝다고 헉슬리는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왜 아티틀란에서 그는 상상의 이미지를 찾았을까요? 아티틀란은 마야의 고립된 12개의 마을이 호수 주변에 산개해 있습니다. 저는 오늘 호수 건너 마야의 마을을 찾아가 마야의 얼굴을 찾는 여행을 하려 합니다.

첫 마을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마을을 찾아가는 동안 배를 타고 호수를 가르는 싱그러움 이외 마야라고 할 수 있는 무엇도 보이질 않습니다. 왜 저는 오래 전 마야가 사라질 때의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자신은 현대적으로 변하면서 남은 왜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여행자의 오만이 제 몸 가득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피로하고 재미없는 여행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야의 피를 이었고, 과거의 생활 풍습을 부분적으로 지켜가고 있지만 여행자를 위해 자신을 포장하는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이 변하는 대로 자신들도 조금씩 변화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저의 실망은 여행자의 오만이었을 뿐입니다. 물론, 입장료를 턱 없이 높게 받아 마야식 생활을 유지하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그런 삶을 유지하기 원하는 사람만 마을에 살도록 한다면 여행 산업의 가치는 매우 높을 것입니다. 변화와 유지, 과거와 현재가 혼란스럽게 공존하는 오늘의 모습은 분명 여행 대상지로 그리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최근들어 나타나는 현상일 것입니다. 헉슬리가 머물렀던 그 시절 아티틀란은 고요한 마야의 삶이 평상적으로 유지되고 마을마다 문화가 반짝였을 것입니다.

마야는 스스로 사라졌고, 스스로를 유지 시켰습니다. 그래서 마야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표현을 합니다. 마야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피한 것입니다. 마야가 아즈텍이나 잉카같이 제국을 이루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한 때는 거대 제국을 이루며, 선진 문명국의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마야는 역사가들이 말하는 쇠퇴, 다른 시각으로 보면 미래에 대비한 선택에 들어섭니다. 마야의 선택이 얼마나 현명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있습니다. 아즈텍은 1692년, 잉카는 1533년에 멸망한 것에 비해 마야는 초기의 파괴 시기가 지나 어느 정도 식민 통치의 틀이 잡히고, 식민지와 본국이 공존하기 시작할 때쯤인 1692년에 멸망하게 됩니다. 초기의 파괴를 현명하게 피한 것입니다. 마야는 미래를 보았는지 스스로 사라졌고, 정글에 작은 공동체로 존재해 스페인의 공격을 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래도록 존속할 수 있었고, 마야의 정신과 문화를 지켜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자료를 통하여 본 마야의 선택은 더욱 극적입니다. 아즈텍은 멸망 당시 인구의 수가 1,600 ~ 2,000만이었고, 잉카는 600 ~ 800만의 인구였지만, 100년이 지난 17세기 멕시코의 원주민은 100만, 잉카의 원주민은 60만으로 줄어듭니다. 이를 숫자로 환산하면 약 95%의 원주민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에 비해 마야는 멸망 전 인구가 약 200 ~ 300 만명이었으나 칼 사퍼가 조사한 최근 50년 전의 마야 원주민은 125만명입니다. 혼혈로 인해 순수 마야인에서 제외된 수를 고려할 때 마야의 인구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문명과 인구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던 마야의 선택, 마야는 미래를 내다보고 스스로 사라지기를 택한 것이 아닐까요,

마야의 천문엔 그런 불행이 기록되어 있었을까, 전기 마야는 티칼을 떠난 후 지배층은 북으로 올라가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함께 후기 마야를 열지만, 순수한 정신을 이어가려한 피지배 계층은 남으로 내려가 정글 깊숙이 숨어버립니다. 아티틀란은 마야의 정신을 숨긴 그런 곳입니다. 아티틀란 호수 건너 마야의 마을을 찾아가며, 다시 한 번 마야의 선택에 대해 생각합니다. 마야는 그렇게 스스로를 지웠고 조용히 존재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름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늘 마야 마을을 기웃거리다 깨달은 건, 하루만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헉슬리가 그랬듯이 오래도록 머물며 그들의 정신을 느껴야 마야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 무언가를 알려고 했던건 욕심이고, 화려하게 겉치레한 얼굴에 집착하는 천박한 마음이었습니다. 아티틀란은 천천히 오래도록 보아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이해할 듯 합니다.

과테말라는 마야의 후예답게 22개의 마야어를 공용어로 인정합니다. 그 외, 광범위하게 쓰이는 스페인어와 다른 2개 언어를 더해 25개의 공용어를 가진 나라입니다. 남아메리카의 언어 정책은 식민지로 전락하며 새로운 위기를 맞습니다.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 3세는 칙령을 공포해 남아메리카 전 지역은 인디오 언어를 부정하고 오직 스페인어만 사용하도록 법으로 정합니다. 모든 공적 문서와 언어 교육이 스페인어로 한정되면서 신분 상승이나 도시에 정착하려는 인디오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만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는 남아메리카 전역을 스페인어로 묶는 효과는 있었지만 원주민 고유 언어가 사라지는 원인이 됩니다. 또 스페인어 권에 흡수되지 못한 효과가 있었지만 원주민 고유 언어가 사라지는 원인이 됩니다. 또 스페인어 권에 흡수되지 못한 오지 인디오 공동체는 극빈층으로 전락합니다. 다시 말해, 스페인어의 사용 여부가 신분과 부를 결정하는 사회적 결정 요인이 됩니다. 이런 정책은 남아메리카 전역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이어지게 됩니다. 즉, 신생 독립 정권은 스페인 계통의 백인들이었으므로 스페인어를 기반으로 하는 단일 언어 중심의 통합 국가를 추구합니다. 따라서 독립 후에도 스페인어에 취약한 인디오 공동체는 여전히 취약 계층으로 전락합니다. 독립 후 100년이 흘러서야 남아메리카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스페인이나 유럽이 아닌 아메리카에서 찾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문화 운동이 시작되면서 아메리카의 다양한 문화적 가치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현상에 따라 스페인어 이외 인디오 언어를 공용어로 인정하는 다 언어 정책도 자리를 잡아갑니다. 현재에도 여전히 스페인어는 남아메리카의 공용어입니다. 하지만 12개국 이상은 제 1언어로 원주민 언어를 받아들였으며, 스페인어를 제 2언어로 채택했고, 대부분의 남아메리카에서는 스페인어와 원주민 언어를 공용어로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비로소 자신들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과테말라는 그런 나라 중 앞선 나라인 것입니다. 마야의 후손들이니까요..

저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영어는 세계적으로 쓰이지만, 아시아인 특히 인도인의 영어, 영국인의 영어, 미국인의 영어가 여러 표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남아메리카의 스페인어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갔을까요, 나라가 갈라서며 서로 전쟁도 하고 적대적 관계가 되기도 한 남아메리카의 역사 전개를 볼 때 차이를 줄여나가려는 노력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여전히 스페인어로 남미 대륙 전체가 서로 통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모르는 오해는 없을까요?

초기 정복자들은 특정 지역 출신이 아닌 각지에서 모여들어 다양한 방언이 섞여 사용됩니다. 하지만 식민지 정책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 후에는 지역별로 스페인어의 특색이 자리잡습니다. 예를 들어 멕시코, 리마 같은 부왕령이 있어 왕실 영향이 큰 지역은 본국의 표준어에 가까운 스페인어를 사용합니다. 반면 무역선 출입이 잦은 카리브해 연안은 뱃사람들이 많이 활동한 안달루시아 지방 방언이 주류 언어가 됩니다. 메소 아메리카지역, 파라과이 등 본국과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지역은 초기에 전해진 그대로 스페인어의 고어적 특징이 유지되는 언어의 섬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스페인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대륙 전체가 소통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우리가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언어를 구분 하듯이 남아메리카의 스페인어도 지역별로 언어적 차이와 독립성을 갖는 정도일 뿐입니다. 스페인어 인구는 나라 수로 보면 세계 최대이며, 인구 수로 봐도 세계에서 두 번째입니다. 영어가 월등할 것 같지만 인구 수로 보나, 나라 수로 비교할 때 아랍어에도 못 미치는지 모릅니다.

아티틀란의 첫 날은 호수에 노을이 드리우며 저물어 갑니다. 호수는 종일 잔잔하다가 해질녘 ‘소코밀’이라고 불리는 바람이 불어오면서 호수 표면이 하얀 포말이 일만큼 거칠게 일렁입니다. 마야는 소코밀을 죄악을 쓸어가는 바람이라고 믿습니다.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쌓은 죄과를 소코밀에 씻어내는 아티틀란의 노을, 영혼을 맑게하고 고민을 씻어주는 노을의 향기에 귀 기울이며 노을에 갈채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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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코밀로 불리는 격랑이 일어나는 아티틀란 호수의 석양

아티틀란의 둘째 날, 산 페드로 화산을 오릅니다. 산 페드로는 호수에 면한 3개의 화산 중 가장 인상적입니다. 과테말라는 불의 고리, 즉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한 불안한 대지입니다. 현재도 30여개의 화산 중 5개의 활화산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 중 하나가 산 페드로 화산 뒤에서 연기를 뿜어냅니다. 트레킹은 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산 페드로 마을을 먼저 찾아갑니다. 커피로 유명한 마을이라 입구부터 커피 농장 벽화가 눈을 사로잡습니다. 적당한 고도, 화산재의 풍부한 무기물, 따뜻한 태양과 마야의 훈기까지 천하 제일의 커피가 여기서 재배될만 합니다. 트레킹은 툭툭이를 타고 20분을 달려가 국립 공원 입구에서 등산 안내자를 배정받고 시작합니다. 화산은 직선이고, 단선이며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입구를 출발하면서 곧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일 뿐입니다. 처음 1시간을 오르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호수를 바라보기에는 이 곳과 정상이 차이가 없습니다. 정상은 여기서 다시 3시간을 더 오릅니다. 오르는 길은 해 맑은 기운이 송글송글 합니다. 화려한 색조의 야생화, 버팀목같이 든든한 나무 숲, 거의 숲 그늘을 걸을만큼 숲이 우거져 있고, 흙은 밟기 머뭇거릴 만큼 윤기 자르르 흐르는 부양토 입니다. 그렇게 3시간을 올라 정상에 오르고 다시 긴 내리막을 천천히 걸어오면 산 페드로 화산의 숲 길 트레킹이 끝납니다. 내려오며 이렇게 많이 올라왔었는지, 새삼 느낍니다. 동일한 반복 운동은 근육을 피로하게 하니, 긴 내리막이 오르막보다 더 피곤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무릎 보호대를 하지 않은 것이 많이 후회되는 산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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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페드로 하산과 아티틀란 호수, 거대한 바다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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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페드로 하산과 아티틀란 호수, 거대한 바다같다

마을로 돌아와 한가롭게 걷다 보니 마야 문자가 새겨진 토산품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야는 표의 문자와 표음 문자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상형 문자인데, 마치 이집트의 고대 성곽 문자와 구조가 비슷합니다. 이집트 고대 문자는 로제타 스톤의 발견으로 대부분 해독되었지만, 마야에는 로제타 스톤이 없어 아직까지 30%밖에 해독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조금 더 인류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기를 마야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표의 문자와 표음 문자의 혼합을 덜 발달된 언어 체계로만 볼게 아니라 특별한 메시지로 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마야는 고무에 무화과 내피를 씌워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마야의 종이를 살펴보면 이집트의 파피루스나 메소포타미아의 양피, 점토판, 중국 후한에 발명된 종이보다 훨씬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의 종이는 사용 용도에 따라 다양한 화학 처리를 합니다. 이집트의 파피루스나 중국의 종이보다 마야의 종이가 현대적, 화학적 처리 방식에 가깝습니다. 보다 종교하고, 보다 견고한 마야의 종이는 메시지를 남기기 위한 발명품일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을을 돌아 나와 배를 타러 부두로 향하는데, 아이들이 다가와 손을 내밉니다. 돈을 줄까 초콜렛을 줄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15년 전 티티카카 호수를 여행할 때 안내했던 가이드의 말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노트와 연필을 사라, 아이들이 손을 벌리면 그것을 주어라, 초콜렛은 구강 건강에 좋지 않고, 돈을 주면 아이들이 구걸을 하게 되고, 물건을 사주면 부모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당신은 떠나지만 당신의 사소한 행동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라는 그의 말이 문득 생각나 주머니를 뒤져 볼펜을 주었습니다. 해 질 녘이 되며 호수는 격량이 심해졌습니다. 보트는 속력을 낼 때마다 파도를 치며 하늘로 튀어오릅니다. 헉슬리는 “진실함이 도덕의 핵심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아티틀란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진실함을 소설에 담으려 한 작가는 완벽한 사회를 마야에서 찾지 않았을까요. 하여튼 그가 아티틀란에서 공상 과학 미래 소설을 구상했다는 게 아이러니 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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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전통복장을 입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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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파는 국적없는 소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