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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 사이먼과 가펑클은 왜 스카버러로 갔을까


기차를 타러 갔을 뿐인데, 지명이 익숙하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노랫말에 불러대던 지명이 아닌가? 두 젊은이가 스카버러로 달려간 이유가 무엇일까? 지명인지조차 모르고 따라 부를 때는 몰랐지만, 지명을 알았고 그 자리에 서 있고 보니 더더욱 궁금해진다.

택시 운전사는 ‘35년 전 동부해안의 중심지였고 런던의 젊은이들이 놀러 오던 도시였다.’고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하지만 의식 있는 가수가 단지 고향의 여자친구가 그립다는 말을 하려고 가사를 지은 거 같지는 않다. 구전민요인 스카버러 페어(Scarborough Fair)를 개작한 것이라지만 전쟁에서 죽어가는 청년이 고향의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는 아리아를 의도적으로 삽입한 걸 봐서 자유와 일탈 속에 목말라하던 시대적 요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차역
스카버러

군대 간의 전쟁은 불꽃 내며 울부짖고 장군은 병사들에게 죽이라고 싸우라고 명령하네, 오래전에 잊어버린 명분을 위해

Scarborough fair는 영화 ‘졸업’의 마지막 삽입곡이었으며 영화 ‘졸업’은 사회에 첫발을 디딘 젊은이들의 불안정한 정서와 구질서에 저항하는 자유의지를 담고 있다. 결혼식장을 뛰쳐나온 두 젊은 연인은 목적지도 모른 체 버스에 올랐고 즐거워하는 표정도 잠시 점점 표정을 잃고 어두워진다. 그때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I am going to Scarborough

그 버스는 스카버러로 향한다. 젊은 연인은 원하는 버스에 오른 것인가.. 1970년을 목전에 둔 미국은 변화에 대한 갈증과 목마름의 시대였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왜 그래야 하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I am going to Scarborough.”였다.
이유도 목적도 모르지만 가고 싶어 가는 곳, 그것이 이유이고 그것으로 충분한..

▲ 영화 ‘졸업’에 삽입곡으로 사용됐던 사이먼과 가펑클의 스카버러 페어 (Simon And Garfunkel – Scarborough Fair)
영화 '졸업'에 삽입곡으로 사용됐던 사이먼과 가펑클의 스카버러 페어

나는 스카버러에서 출발하고 요크에서 내려 런던 행으로 갈아탔다. 요크는 랭카스터 왕조에 이어 잉글랜드의 패권을 잡았던 영국의 명문 가문의 영지다. 리치몬드를 근거지로 한 랭카스터 왕조와 요크 성을 근거지로 한 요크왕조는 100년 전쟁 후 영국의 패권을 잡기 위해 격한 대립을 하였고 두 집안을 상징하는 장미의 색이 달라 이들의 대립을 장미 전쟁이라고 한다. 결국, 랭카스터 가문이 다시 패권을 잡으며 양 가문의 대결은 끝났다.

랭카스터의 왕 헨리 7세는 요크왕조의 공주를 며느리로 받아들여 랭카스터와 요크를 아우르는 튜터 왕조를 열었다. 하지만 튜터 왕조는 헨리 8세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대를 잇지 못해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이었고 그녀는 결혼하지 않아 엘리자베스 1세로 랭카스터 왕조는 문을 닫았다. 그녀는 왜 결혼을 거부했을까?

천일의 앤(으로 알려진 앤 불린)의 자식이라는 한계를 딛고 신교세력의 후광을 얻어 왕이 된 여자. 신교세력은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왕조를 원했고 튜터의 정통성을 그녀로 마감하려 한 게 아닐까?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은 건 우리들의 리그를 넘어 스코틀랜드의 왕이었기 때문이다. 왕을 넘겨주고 스코틀랜드를 품은 잉글랜드. 미래를 위한 선택으로 이보다 위대하고 결단력 있는 결정이 있을까..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스코틀랜드를 얻었으니 말이다.

무수리의 자식이었던 영조는 보수 세력의 후원을 입어 왕이 되었다. 하지만 영조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 못 하고 사도세자를 뒤주에서 죽게 했다. 사도세자 사건은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던 신진 세력을 거부한 영조의 한계였고 불행한 가족사였다.

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 역시 개혁을 주장하던 소명 세자를 독살하고 손자의 목숨마저 거두지 않았나. 조선은 보수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아들마저 죽이는 독한 부정을 보였다. 보수적 가치를 조선은 왜 운명처럼 지키려 했을까?

정 반대의 선택을 한 엘리자베스는 영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고 보수 세력과 손을 잡은 조선의 왕들은 명분만을 지키다 왕조를 잃었다. 하지만 조선의 멸망으로 명분마저 잃고 말았으니 남은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왜 조선은 머뭇거릴 뿐 앞으로 나가는 데 소극적이었을까. 소현세자. 사도세자, 광해가 꿈꾼 변화한 세상을 조선은 왜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