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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 Beach Cliff and Seven Sisters


1억 6천만 년 전 지구는 하나의 대륙이었고 치열한 다툼 끝에 공룡이 주인 자리를 꿰찼다. 공룡은 날로 몸집이 비대해지는 반면 육지는 빡빡한 숲으로 덮여서 먹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공룡들은 바닷가를 기웃거리며 먹거리를 찾다가 조개를 먹기 시작했다. 밀물에 수북이 쌓이는 조개를 공룡들은 좋아했고 조개들은 큰 수난을 겪게 되었다. 결국, 조개들은 공룡을 피해 어디론가 떠나야 했으며 어디로 가야 공룡으로부터 안전할지 용왕에게 지혜를 구하기로 하고 특사를 파견했다.

“너희 사정이 그리 절박하냐.”
“공룡이라는 놈이 자꾸 몸집이 비대해서 저희를 먹어 치우는 양이 엄청납니다.”
“참 딱하게 되었구나..”
“그래서 공룡이 없는 먼 곳으로 피하려고 합니다. 어디로 가면 안전할까요?”
“곧 땅이 갈라질 것이다. 그러면 공룡이 바다 건너 너희 있는 곳으로 오지는 못할 거다. 모든 조개에게 전해라 이스트본으로 모이라고, 거기가 너희 조개의 행복 보금자리이니라.”

절벽 앞 현무암이 즐비하다.
희한하게 생긴 돌멩이

바다의 조개는 그렇게 모두 이스트본으로 모였고 조개가 다 모였을 즈음인 1억 5천만 년에 땅이 갈라져 여섯 대륙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공룡은 섬이 된 영국의 이스트본 해안을 가지 못해 안달하다가 그만 포기하고 육지의 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9천만 년이 지난 6천만 년 전의 어느 날 이스트본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멕시코만 해안에 커다란 행성이 떨어졌다.

전 세계에 퍼져서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용왕의 말만 믿고 이스트본 해안에 모여 살게 된 조개는 한낱 한시에 모두 떼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며 바다가 펄펄 끓어오른 것이다. 겨우 살아남은 소수의 조개는 다시 용왕을 찾았다.
“용왕님 이제 저희는 어찌하나요?”
“내가 8천만 년까지는 미래를 보는데 9천 만 년 뒤에 일어날 일은 미처 몰랐구나. 기왕 이리된 거 전 세계에 퍼져서 살도록 해라. 이제 조개의 천국 이스트본을 조개의 무덤이라고 불러라.”

세븐시스터즈 해안가
세븐시스터즈 해안가

영국의 남부 해안 이스트본 해안을 걸으며 하얀 절벽에 얽힌 사연을 상상해 봤다. 1억 6천만 년부터 1억 4천만 년 사이에 만들어진 조개껍데기와 생선의 뼈, 해조류가 쌓여 하나의 암석층이 된 지형이란다. 얼마나 많은 조개가 일시에 묻혀야 이토록 거대하고 순백의 지층이 생겨날까? 조개의 의도적인 무덤이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지금도 풍화 작용으로 매년 30~40m씩 깎여 나가고 있다. 그 많은 세월 순백의 절벽은 얼마나 깎여 나간 것일까. 지금도 거대한 데, 옛날엔 얼마나 굉장했을까. 인간의 상식으로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 절벽에 인간들은 유치하게도 seven sisters라는 이름을 붙였다. 7개의 굴곡진 구릉이 바다를 향해 절대의 자세로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작명이 유치해서야..

흐린 하늘의 들판

트레킹은 Beach Head에서 시작해 7개의 구릉이 끝나는 지점까지 20km나 이어진다. 구릉을 넘을 때마다. Sister를 하나씩 지나는 것이고, 비슷하면서도 절벽을 바라보는 각도가 달라져서 지루하지 않다. 또 구릉과 구릉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져 있어서 걷는 길이 편안하다. 하나의 고개를 넘으면 지나온 만큼 첫 번째 석회암 절벽이 멀어지고 7번째 석회암 절벽이 가까워진다. 어느새 중간에 서면 앞뒤의 절벽이 긴장감 있게 눈길을 빼앗아 간다. 거대한 대지. 얼마나 많은 조개가 일시에 죽임을 당한 것일까? 용왕은 왜 9천만 년의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까. 조개의 한스러운 외침이 바람같이 울려 퍼진다.

영국의 서부 해안인 아일랜드 해안을 걸었고 영국의 동쪽 해안인 북해 해안을 걸었다. 영국의 남부 해안을 걸으면 세 해안의 감상을 떠올렸다. 아일랜드 해안은 거칠었다. 북해 해안 역시 예측할 수없이 변화가 심했다. 그런데 남부 해안은 프랑스 남부 해안을 걷는 느낌이 든다. 태양이 따사롭고 바람은 은근하며 대지의 곡선이 부드럽다. 그리고 잘 다듬어진 숙소와 버스 노선까지 걷는 자에게 환희의 그림자를 선물로 남긴다. 걷는 자에게 환희를, 휴식하는 자의 행복을 선물하는 이스트본의 석회암 절벽.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쉬운 트레킹이었다.

이스트본
이스트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