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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영국사람은 누구에게나 집을 개방한다


 “영국사람은 집을 개방한다. 그것은 남에게 간섭 받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시절 성문종합영어에 나오는 문장중 하나이다. 어린 나이에 그 내용을 이해 못해 여러 날 궁금했었다. 어떻게 집을 개방하는 게 남의 간섭을 피하는 일인가….

나는 지금 런던 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10대에 궁금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영국이라는 나라와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영국인은 누구인가? 원주민이 있었을 것이다. 원주민으로 불리는 그들도 어디선가 영국으로 건너와 정착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남긴 스톤헨지 같은 거석문화를 들어 셈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는 지중해의 몰타에서 비슷한 구조의 석조물들이 발견되었고 몰타의 원주민은 셈족인 페니키아인들(지금의 레바논 지역 거주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셈족을 영국의 선주민으로 봐야 하지 않은가? 물론 페니키아인이 도착하기 전에 영국엔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 뼈까지 장사꾼인 페니키아인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영국까지 갔을 턱이 없으니 영국엔 누군가 살고 있었고, 교역가치가 충분한 물건이 생산되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당시 영국으로 향하는 선단은 목숨을 담보로 한 항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그리 위험한 항해가 가능했을까.

그리스인들은 지중해의 끝 지브롤터 해협을 넘으면 거대한 절벽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리스인이 그렇게 믿고 있는 동안 페니키아는 지브롤터를 넘어 오늘날 스페인 세비야에 있었던 테르세소스 왕국에 교역도시를 건설했다. 이는 그리스가 해상활동을 시작하기도 몇 세기 전인 기원전 10세기의 일이다. 페니키아의 땅인 레바논은 바다에서 고도 2,000m대에 이르는 산맥까지 가파르게 치달아 고도차와 기온차가 심한 지역이고 이런 조건에서 자란 레바논 삼나무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단단한 나무로 비싸게 거래되었다.

솔로몬은 솔로몬 궁을 지을 때 이 목재를 대거 사용해서 빚에 허덕였으며 이로 인해 북부 이스라엘에 세금과 부역을 무겁게 부과해 사후에 이스라엘과 유대왕국으로 갈라서는 원인이 되었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사후 영혼의 바다를 항해하기 위한 배를 만들어 성소에 비치했으며 이때 사용한 나무도 레바논 삼나무였다. 이렇듯 레바논 삼나무는 당시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가장 비싼 교역품이었다. 그런 나무로 만든 배가 페니키아의 상선이다. 레바논 삼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테르세소스, 그리고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을 가르고 영국까지 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페니키아가 지중해를 벗어나 영국까지 다다랐다는 것은 여러 의문점을 준다. 영국은 거친 물살과 돌풍이 종잡을 수 없이 몰아치는 대서양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마젤란이 대서양을 벗어난 후 태평양에 닿아 평화의 바다라고 명명한 이유는 대서양과 달리 태평양은 잔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젤란이 대서양을 벗어나 태평양을 만난 건 페니키아 인들이 테르세소르에 첫 발을 내 딛고 2500년이 지난 후였다. 그러니 기원전 10세기에 그런 원거리 항해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젠 하나의 질문이 더 남아있다. 페니키아인들이 목숨을 걸고 사나운 바다와 다투며 영국을 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덥고 건조한 지중해 출신인 페니키아인들이 차갑고 축축한 영국에 왜 정착하였을까..

영국으로 향하는 이민족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영국을 만들었고, 그들로 인해 영국이 세계의 최고가 되었다. 오늘날 지구촌을 아우르는 문화적 규범, 철학적 사유, 과학적 실증들이 영국에서 정비되어 세상으로 퍼져 나왔기에 그래서 더욱더 궁금해진다. 그들은 누구인가? 가늠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은 짧다. 페니키아인의 영국정착은 하나의 가설일 뿐 근거가 빈약한 추측이다. 확인된 역사적 진실은 기원전 10세기에 시작된 켈트의 이주로부터 시작된다. 켈트는 알프스 자락에 거주하던 종족으로 오늘날의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를 켈트의 대이동이라고 한다. 이들은 기원전 4세기 로마를 잠시 점령하고 약탈했으며 이때부터 로마와 긴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로마는 켈트를 이탈리아 반도에서 겨우 쫓아냈지만, 한니발과 합세한 켈트의 2차 침입을 받았고 로마는 멸망의 위기에까지 몰렸다가 겨우 회생했다. 켈트는 로마의 영역밖에 거주하며 로마와 공존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팽창을 추구한 로마에게 켈트는 장애물이자 징검다리였다. 시저는 휘하의 군단을 이끌고 갈리아의 켈트를 복속시킴으로써 로마가 영역을 확장하는데 주요 이정표를 세웠다. 이때 베스킨테토릭스를 중심으로 한 강경 켈트가 로마의 지배를 거부하고 바다건너 동족의 땅 브리타니카 즉, 영국으로 도피했고 이들의 위협을 제거하고자 했던 로마는 비로소 영국에 발을 디뎠다. 그렇게 영국은 야만상태에서 당시 선진국인 로마와 만났고 로마문명의 충실한 일원이 되었다. 로마는 로마화된 켈트를 브리튼족이라고 불렀고 브리튼족은 영국의 근간으로 성장했다.

발칸을 여행할 때 색슨족이 세웠다는 브라쇼브 성벽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독일남부 작센지방에 거주하던 색슨족은 앵글로족과 합세해서 영국으로 건너와 브리튼족과 켈트를 제압하고 게르마니아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로마가 게르마니아의 남하를 막기위해 브리타니아에서 병력을 철수시켰던 5세기에 일어난 게르마니아의 침략으로 브리타니아는 일대 혼란을 겪었고 이때의 혼란기는 켈트의 리더인 아더왕과 8인의 원탁기사로 더 잘 알려진 영국의 다이나믹한 시대였다. 로마의 쇠퇴와 함께 시작된 게르마니아의 이주는 영국뿐만이 아니라 유럽을 통으로 변화시켰는데. 프랑크족은 프랑스를, 서 고트족은 스페인을, 수에비족은 포르투갈을, 라인강변에 남은 게르마니아는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가 되었다. 이는 기원전 15세기 카스피해 북단에서 지중해로 이주하여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문명을 이룩한 아리안의 이주와 함께 유럽의 근간이 된 거대한 민족이동이었다.

유럽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또 한 번의 민족이동의 수난을 겪는데. 북해와 스칸디나비아를 근거지로 하는 바이킹의 대 이주이다. 게르만이 세운 왕국은 카알대제에 의해 하나로 통합되었던 프랑크왕국은 서로마의 법통을 이어 신성로마제국이 되었다. 하지만 카알대제 사후 세 아들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분리 독립해서 싸움을 멈추지 않았고 혼란스런 이때 바이킹의 남하가 시작되었다. 바이킹 역시 게르마니아와 마찬가지로 식량난에 시달렸다.

온화한 기후가 여러 해 지속되어 인구가 증가한 상태에서 갑자기 지구 온도가 1.6도 내려가는 소빙하기에 들어서면서 거친 북방의 민족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고 공동체는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 중 30%는 강제로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런데 고향을 떠난 이웃이 타지에서 새로운 터전을 만들고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북방공동체의 이주는 더 빈번해졌다. 그렇게 300년이나 지속된 바이킹의 이주는 게르마니아와 같이 유럽사회를 재구성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그런 대지 중 대표적인 나라가 현재의 영국이고 러시아다. 바이킹의 배는 홀수가 낮아 해수면이 낮은 연안 어디든 접근이 가능했고 심지어 센 강을 따라 파리를 세 번이나 점령하고 볼가강을 따라 흑해로 들어가 이슬람과 무역을 할 정도로 못 가는 곳이 없었다. 이렇게 활동적이고 스피드한 바이킹을 막을 왕조는 당시 유럽 어디에도 없었다. 바이킹은 초기의 약탈에서 지역을 점령하고 정착했으면 유럽의 일원으로 되었다.

영국북부에 정착한 바이킹은 그곳의 원주민인 켈트와 한 묶음이 되어 남부의 앵글로색슨 왕국과 대립했다. 종국에는 브리튼과 앵글로색슨족이 중심이 된 남부와 스코틀랜드가 평화적으로 합병함으로써 오늘날의 영국이 탄생했지만, 영국의 진정한 성장은 바이킹부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이킹을 막으려고 해군을 강화하는 정책을 써야만 했고 바이킹이 영국의 일원이 되면서 항해기술과 선박제조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으며,. 결국 이런 저력이 쌓여 800년 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바다에서 쫓아내고 해양시대 최후의 지배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어린 시절 가졌던 나의 궁금증, 영국사람은 집을 개방한다는 어느 작가의 글에 답을 찾아봐야겠다. 집을 개방하면 남들로부터 간섭 받지 않아 나만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은 사실일까..

다양한 사람들이 내 집에 들어와 주인이 되었다. 문이 닫혀 있으면 집에 들어오고 싶은 누군가에 의해 부수어질 수 있다. 문이 닫혀 있으면 먼가 값진 게 있나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려 하기 때문이다. 문이 열려 있으면 어떨까, 이 집이나 저 집이나 같을 텐데 구태여 들어가 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게 혹 이런 내용을 함축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와 공존하는 열린 사회입니다. 누구든 궁금하면 내 집에 들어오세요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영국의 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하지만 영국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온화한 머무름이 침해 받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게 영국인 것이다. 정 반대의 브렉시트(Brexit)를 선택한 이유는 무슨 연유일까? 아마도 지나쳤다는 뜻이겠지..

영국의 도시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