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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시인은 걸었을 뿐인데 시가 시인에게 다가갔다.


CTC의 첫날은 해안 트레킹이었고 둘째 날은 긴 호숫가를 걷는 호수 트레킹이었다. 본격적으로 산악트레킹을 시작하는 첫날이자 트레킹 삼 일째는 로스웨이트(Rosthwait)에서부터 윌리엄 워즈워스(영국의 시인)로 유명한 그라스미어(Grasmere) 로 연결되는 긴 산악트레킹이다. 계곡을 따라 능선의 암부에 오른 후 능선 길을 2시간 걷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곧이어 인상적인 마을이 나왔다. 시인 워즈워스가 주옥같은 시를 창작한 그라스미어다. 6시간 땀나게 걷고 수선화를 사랑한 시인을 기리기 위해 조성했다는 수선화 공원을 찾았다. 한때 그토록 찬란한 빛이었건만, 이제는 덧없이 사라져 돌이킬 수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강한 힘으로 살아남으리. 존재의 영원함을 티없는 가슴으로 믿으리.. 삶의 고통을 사색으로 어루만지고, 죽음마저 꿰뚫는 명철한 믿음이라는 세월의 선물로..– 초원의 빛 –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간직한 시인은 평생을 슬픔으로 가슴앓이 했다. 휘몰아치는 감정이 잠시도 놓아주지 않을 때, 시인은 그라스미어(Grasmere)의 자연에 안겨 위안을 받았다. 젊은 시인은 매일 그렇게 울었고, 사랑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를 기다렸다. 세월은 모든 갈증을 해결하는 유일한 약이 아니던가.. 삶의 고통을 사색으로 어루만지고 죽음마저 꿰뚫는 명철한 믿음이라는 세월의 선물을 기다린 시인. 시인은 그라스미어의 호수와 초원을 반복해서 걸었을 것이다. 그렇게 걷고 또 걷고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 시인은 시를 만났다. 시가 시인을 찾아온 것이다. 시인은 시를 쓰지 않았고, 마음을 읊었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은 시였다. 그가 시였던 것이다.

워즈워스의 시 ‘초원의 빛’을 읊으며 워즈워스의 생가를 찾아갔다. 시인의 사랑은 얼마나 강렬했을까.. 프랑스 시민혁명에 갈채하던 이상주의자.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으로 치달았고 이상의 가치와 조국애 사이에서 좌절했고 이상을 공유하며 깊은 사랑에 빠졌던 프랑스 여인 A. 발롱의 이별은 가슴을 후벼 팠다. 시인은 위안이 필요했고 그라스미어의 자연에 의지했다. 세월이 시인을 진정으로 구해줄 때까지..

산과 산 사이로 길게 이어진 호숫가
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CTC STORY7
워즈워스가 평소 좋아했다던 수선화 공원
워즈워스의 생가

누구에게나 세월은 구세주일 수 있다. 거울에 나타난 자신의 얼굴을 보고 흰머리가 늘었고, 주름이 깊어졌다고 아쉬워하기만 할 일이 아니다. 그만큼 여유로워진 얼굴이 되지 않았나.. 시인이 기다린 시간의 가치를 알기에. 수선화 가든의 돌판을 하나 둘 디디며 시인의 절규에 화답을 해본다. “세월은 모든 병의 약이다. 누구에게든..”

세월을 기다린 시인의 마을에서 시인의 궤적을 따라가는 여행을 가졌다. 시인과 동생 도로시가 함께 작품 활동을 하며 살았던 생가, 시인을 기리며 바닥 가득 돌판을 깔아 놓은 수선화 가든, 시인이 걸었을 산책로. 사라 넬슨이 만들었다는 진저 브레드(Ginger Bread)빵집. 시인이 한때의 여유를 즐긴 다리 아래 찻집 등, 누군가 정해놓은 동선을 따라 빙글 돌았다. 마을의 많은 집에는 1786년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그 시간이 시인이 정착한 시간이 아닐까..

영국은 오랜 투쟁을 거치며 공화정을 채택하고 왕의 권리를 제한했다. 즉 시민계층이 지배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성취한 것이다. 영국이 백여 년간 투쟁을 통해 성취한 공화정을 프랑스는 혁명을 통해 하루아침에 얻었다. 그런데 영국은 프랑스 혁명군을 타파하는 중심에 섰다. 왜 영국은 프랑스의 혁명을 지지하지 않았을까..영국이 프랑스의 혁명을 지지했다면 워즈워스는 A. 발롱과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시대의 열망에 매료된 행동주의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시인은 그라스미어에 정착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시도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겠지..

아픔과 상실감이 내면의 깊은 고요를 깨우고 난 뒤에야 인간은 한 품 뒤에 따라오는 어둠을 보게 된다. 성공이 가져다줄 수 없는 상실의 보상이야말로 예술가의 진정한 반려자가 아닐까.. 시인은 가치의 상실, 사랑의 이별을 맛봤고 조용히 본질적인 문제에 침잠했다. 스스로 그려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향해서..그래서 시인의 삶이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수선화 가득한 시인의 뒤태를 총총걸음으로 쫓으며 다시 시를 읊는다.
하염없이 홀로 생각에 잠겨내 자리에 누우면 고독의 축복인 마음의 눈에 홀연 번뜩이는 수선화.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수선화와 함께 춤을 추네. – 수선화중에서 –

CTC
초원 위에 여유롭게 누워있는 산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