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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 로열 마일로와 운명의 돌

고성을 떠나 에든버러행 기차에 올랐다. 스코틀랜드는 정말로 미개한 야만인들이 문명을 이루지 못하고 살았을까? 그건 로마나 잉글랜드의 시각일지 모른다. 로마가 게르마니아의 압박에 못 이겨 브리타니아에서 군단을 철수시키며 스스로 지키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을 때. 브리튼족(로마화한 켈트족)은 스코틀랜드의 켈트족을 막아낼 수 없었다. 결국, 이들은 벨기에 해안에 거주하는 쥬트족을 불러들여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의 켈트를 막아내려 했고 쥬트족은 브리타니아의 풍요에 반해 원군이 아닌 정복자로 돌변했다. 쥬트족이 여러 지역의 게르마니아를 불러들여 함께 브리타니아를 정복하자고 제안했고, 보다 큰 부족인 앵글로족과 색슨이 바다를 건너와 이에 동참했다. 결국, 로마가 떠난 브리타니아는 게르마니아의 땅이 되었고 브리튼족은 동쪽인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로 피해야만 했다. 이때 켈트의 통일 왕국을 이루려 한 영웅이 잘 알려진 대로 웨일즈의 켈트 왕 아더다. 하지만 아더는 실패했고 브리타니아를 빼앗은 게르마니아는 각지에 정착해 독립 왕국을 세워 400년간 평화롭게 공존했다. 이를 7 왕국 시대라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켈트도 부족 단위로 소왕국을 이루며 평화롭게 살았을 것이다. 현재도 공존하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대립과 갈등의 시작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이는 브리타니아와 칼레도니아가 아닌 게르마니아와 켈트의 갈등이 아닌가?

평화롭던 브리타니아를 다시 격동의 시대로 몰아넣은 건 바이킹이다. 바이킹이 스코틀랜드에 상륙해 잉글랜드까지 정복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잉글랜드의 7 왕국은 엘프레드 대왕을 중심으로 모여 바이킹을 막아냈으며 오늘날의 잉글랜드의 초석을 다졌다. 즉 최초의 통일 왕국이 탄생한 것이다. 마치 알렉산더의 침공을 막기 위해 분열되었던 북인도의 힌두 왕국이 마가다 왕국을 중심으로 뭉쳤고 이것이 최초의 북인도 통일 왕조를 낳은 것과 같은, 모순적 성공이 가져다준 아이러니한 선물이다.

로마와 잉글랜드가 넘보지 못한 땅.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Edinburgh), 기차역에서 나와 대면한 첫인상은 놀라움이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알지 못할 향기로 가득한 멋스러운 도시였기 때문이다. 멋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하고 방문객으로 붐비는 거리는 에너지가 넘친다. 누가 스코틀랜드를 야만의 땅이라고 했나, 아무리 1,500년 전 평가라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기차역에서 출발해서 리빙스턴 동상이 지키고 선 기념탑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 에딘버러 성으로 향한다. 성으로 향하는 길은 로열 마일(Royal Mile)이라 불리는 왕가의 길이다. 에든버러 성에서 홀리루드 궁까지 이어진 1.6km의 대로로 왕과 왕족에게만 허용된 도로이다. 이 가도는 왕족이 돼보려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대로 끝에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소재가 된 카페, 모퉁이를 돌아가면 롤랑이 한적한 오후 카페에 앉아 에딘버러 성을 바라보며 헤리 포터를 써 내려갔던 엘리펀트 카페 등이 가까이 있다. 그녀는 에든버러 성을 창 너머로 바라보며 마술학교 호그와트를 구상했다는 데, 에든버러 성은 마술의 성같이 음습한 기운이 돈다.

지킬앤하이드의 모델이 된 인물과 관련된 카페
스카치 위스키 체험관
에든버러 거리의 퍼포먼스

성안에는 유명한 운명의 돌(Stone of the Destiny)이 있다. 왕의 대관식에서 왕이 왕관을 받을 때 무릎을 꿇던 상징적인 돌이다.
이 돌은 유래를 보면, 야곱은 꿈에서 야훼(Yahweh, 여호와, 하나님)를 만났는데, 야훼는 어디를 가나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였고 꿈에서 깬 야곱은 야훼의 약속을 기념하여 베고 자던 돌을 주춧돌로 삼아 기둥을 세웠다. 이 돌이 돌고 돌아 어떤 경로인지 모르지만 스코틀랜드의 스쿤이란 수도원에서 보관하게 되었다. 9세기 스코틀랜드에 통일왕조를 세운 케네스 1세는 첫 통일왕조의 왕으로 대관식을 할 때 이 돌에 무릎을 꿇고 왕관을 받았으며 이후 스코틀랜드의 상징이 되었다. 충분히 왕조의 전통성을 위해 만들어낸 상징물일 수 있지만, 가톨릭을 받아들인 스코틀랜드에 거부할 수 없는 상징이 된 것이다.

운명의 돌 복제품
CTC STORY7-2
에든버러 성
에든버러 성

야곱은 특별한 사람이다. 대천사 가브리엘과 씨름을 해서 이기고 야훼께서 꿈에 직접 나타나 축복해 주고 여러 약속을 남겼으니.. 그래서 그런지 야곱은 아브라함 이외의 신과 거래를 한 유일한 존재이고 야곱이 낳은 12명의 아들은 유대의 십이지 파의 선조가 된다. 그러니 약속의 증거물을 스코틀랜드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영광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운명의 돌을 지키지 못했다.

13세기에 들어서자 스코틀랜드는 다시 분열되었고 스코틀랜드의 분쟁에 개입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를 강제로 지배했다. 이때 운명의 돌을 잉글랜드로 가져가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사원에 보관하며 잉글랜드 왕 대관식 때 왕이 앉는 의자의 받침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700년간 잉글랜드에 머물다 1996년에야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운명의 돌은 아직도 잉글랜드 왕 대관식에 참여하는지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이 돌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왕의 대관식이 있을 때만 잠시 떠나 있습니다.”

아직도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의 정신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에드워드 1세의 통치에 대항한 사람은 영화 ‘브레이브 하트(1995)’에서 잘 알려진 윌리엄 월레스(멜 깁슨 역)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임종을 맞은 에드워드 1세에게 월레스의 목숨을 구걸하던 며느리 프랑스 공주(소피 마르소 역)는 ‘나는 월레스의 아들을 임신했으니 당신의 염원과 달리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의 혈통이 지배할 거다.‘라는 악담을 귓속말로 건넨다. 스코틀랜드를 정복한 자에게 대한 보복으로 이보다 강렬한 보복이 있을까..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영국의 왕조는 스코틀랜드가 이었다. 튜더왕조는 엘리자베스 1세로 막을 내렸고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스코틀랜드 왕이며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처형된 메리 여왕(스코틀랜드 여왕)의 아들 제임스 1세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실질적인 통합이 이루어지고 오늘날 영국의 기초가 되었으니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정신이 시작된 땅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리빙스턴 탐험정신. 애덤 스미스 실험정신, 쿡 선장의 모험정신, 롤랑의 판타지가 이 땅에서 피어났으니 말이다.

바다에 왔으니 멋진 한 끼니의 식사를 꿈꿨다. 바닷가 식당에서 해산물 모둠인 Platter와 Sea Bass Fillet을 시켜 먹고 불룩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칼라일행 기차에 올랐다. 다시 CTC에 합류해야지.. 너무 이탈하면 본질을 잊기 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