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원정대,

유라시아 횡단
그 장대한 이야기

11. 인류의 재탄생과 문명탄생의 현장을 찾아서
① 아라라트

11. 인류의 재탄생과 문명탄생의 현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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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

노아의 방주는 퉁구스 이벤트?

노아의 방주는 언제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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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는 퉁구스 이벤트?

노아의 방주는 언제 있었나?

☞ 노아의 방주는 퉁구스 이벤트?

1908년 아무도 살지 않는 시베리아의 깊은 숲에 폭발이 일어났고 서울 면적의 3.3배에 달하는 2,600km2 에 걸쳐 8천만 그루의 나무가 쓰러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날 시베리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볼셰비키 정부는 사건이 벌어지고 13년이 지난 1921년 학술탐사대를 보냈다. 탐사단이 발견한 것은 충돌 중심에서 밖으로 쓰러진 수 천만 그루의 나무들과 충돌 지점으로 여겨지는 장소에서 흩어져 있는 작은 다이아몬드 알갱이들이었다. 충돌 흔적인 운석공(Metrolite Crater)을 탐사대는 왜 찾지 못한 것일까? 13년 만에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애초부터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8천만 그루의 나무를 쓰러뜨리고 불태운 주범은 무엇인가? 칼 세이건은 자신의 저서인 “코스모스”에서 혜성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카이퍼 벨트(해왕성 바깥쪽에서 태양계 주위를 도는 작은 천체들의 집합체)에 떠다니는 무수한 혜성 중 하나가 궤도를 이탈하여 시베리아에 충돌했다는 것이다. 혜성은 주 성분이 얼음이며 암모니아 탄소 알갱이 등이 일부 섞여 있다. 혜성은 대기권을 통과하며 불이 붙었고 지상 8km 지점에서 폭발을 일으켰으며 지상에 거대한 물 폭탄이 떨어졌다는 주장이다. 일시에 지상에 솟아진 물 중 대부분은 지구와 충돌한 뒤 대기로 솟구쳐올라 비구름을 만들었고 여러 날 비를 뿌려 댔다. 물의 심판이 있었던 것이다. 메소포타이아에도 비가 40일 밤낮에 걸쳐 내렸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으며 세상의 생명체를 한 쌍 식 방주에 태웠다. 방주를 제외하고 온 세상은 물에 잠겼으며 물고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생명체가 죽음에 이르렀다. 하느님은 모세와 아브라함에게 그랬듯이 노아에게 약속을 하였다.

나는 너희와 계약을 세워 다시는 홍수로 모든 동물을 없애버리지 않을 것이요,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으리라.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이행한 듯하다. 무지개는 여전히 비 온 뒤 맑게 떠오르고 퉁구스에서 일어난 사건도 인명을 해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물로서 다시 한번 벌을 주려는 충동에 싸이는 거 같다.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을까? 한번 돌아 봐야겠다. 퉁구스와 아라라트에서 발생한 물 폭탄은 신의 의지가 반영되었는지 반영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초 자연적 사건이었다. 만약 신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면 아라라트에서 신은 단호했지만 퉁구스에서 신은 갈등했던 거 같다.

“ 인간들을 어찌하지? 약속을 하였으니 어길 수는 없고, 죽여 살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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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구스 이벤트가 일어난 시베리아 (출처 : 양철호의 스토리세상)

☞ 노아의 방주는 언제 있었나?

인류는 물의 심판을 받았음에도 재 창조된 후로는 번창하여 현재 70억에 달하고 있다. 자손이 번창하여 대지를 지배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이 실현된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재 탄생한 노아의 방주는 언제 있었던 사건일까?
성경의 기록에 준해 시간을 역산해 보면 천지창조는 BC 4004년 10월 23일(춘분) 자정이었다고 한다. 이는 아일랜드 주교였던 제임스 어셔(James Ussher)가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시간별로 역산하여 창조의 날을 계산한 것이다. 그럼 물의 심판은 언제일까? 역시 성경에 기초하여 역산하면 BC 2304년이라고 한다. 계산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해인 기원전 967년을 기준으로 삼는다. 성전 건축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며 아시리아 기록에도 남겨져 있어 객관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잘 짜여진 시간 기록이지만 기록하고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성경이 기록한 창조의 시간은 최초의 고대 문명이 탄생하기 얼마 전이었다. 성경이 기록하고자 한 게 문명 탄생을 말하려는 건 아닐까? 인간에게 문명이란 게 주어지기 전, 미개한 인간은 신이 창조하고자 한 인간이 아니었음을 성경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노아의 방주는 왜 일어난 것인가?

기원전 2,650년에 이집트에선 쿠푸 왕의 대 피라미드가 세워졌다. 메소포타미아에선 수메르의 도시국가가 아키드에 의해 통합되며 최초의 거대 왕국이 들어섰다. 평화롭던 도시국가가 하나의 절대왕정 국가에 통합되는 과정은 혼란이었을 것이다. 문명의 외곽에서 두리번거리던 유대인에게도 새로운 통제와 압박이 생겼을 것이다. 물의 심판은 이때 시작되었다. 현재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과정이자 희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노아의 방주는 새롭게 시작되는 인류의 희망선(希望船)이었던 것이다.
인류의 희망을 싣고 망망대해를 떠다니다 정박한 아라라트, 그 아라라트를 마주 보며 광야를 걷는 일은 인류의 희망을 찾아가는 깊고 따사로운 걷기였다.

아두르피나르(Durupinar) – 노아의 방주가 정착한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