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원정대,

유라시아 횡단
그 장대한 이야기

13. 스키타이의 터전 크림반도

13. 스키타이의 터전 크림반도

하이라이트

세 늙은이의 어이없는 놀이

운명을 가르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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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늙은이의 어이없는 놀이

운명을 가르는 땅

☞ 세 늙은이의 어이없는 놀이

세계대전은 불공정하다고 느낀 독일이 나누어 먹자고 시작한 것이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북미까지 대부분을 선점한 상태에서 영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동방 루트를 개척한 뒤 이 길을 뒤따른 네덜란드도 포르투갈의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나면 나에게 돌아올 게 없으니 전쟁을 불사하고서라도 나누어 먹자고 덤볐다. 북미는 그렇게 영국과 프랑스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 남미, 중미를 통으로 지켰으니 스페인은 그런대로 만족했다. 반면 영국마저 아시아로 발길을 돌리자 포르투갈은 급속히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선발주자가 공고하게 구축한 독점 무역의 벽이 깨지고 자유무역에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자유무역의 강점은 효율성과 생산성이었고 독점 무역의 익숙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이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렇게 지구촌은 스페인-포르투갈,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라인이 다 집어먹었다. 뒤늦게 산업화를 시작한 독일에게는 가져갈 땅이 없었다. 세계대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너희만 혼자 먹지 말고 나누어 먹자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쟁을 일으켜서 빼앗으려 한 것이다.
1차,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 연합국의 리더들은 전후 처리를 어떻게 할지 협의하기 위해 얄타의 리바디아 궁으로 모였다. 주인공은 영국의 처칠, 미국의 루스벨트, 소련의 스탈린이었다. 얄타에서 회담이 열릴 때 회담의 주체인 3인의 거두는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였다. 병약한 루스벨트는 63세, 스탈인은 67세, 처칠은 71세였다. 세 늙은이는 병약했으며 회담을 장시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문안이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처칠과 루즈벨트는 스탈린에게 참전을 청하면서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여기까지와 내려와”
그렇게 한반도에는 38도 선이 그어졌고 한반도의 분단은 시작되었다.
얄타 회담의 합의 내용을 본 어느 정신과 의사는
“세 노인이 모두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다발성 경색 치매” 를 심하게 앓고 있었던 상태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만큼 회담은 대충이었고 정밀하지 못했다고 한다. 세 노인의 정신이 맑았으면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뀌지 않았을까? 크림반도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한 그런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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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회담의 주역인 세 늙은이

☞ 운명을 가르는 땅

크림반도는 운명을 바꿔준 땅이다. 혼란을 수습하고 페르시아 제국을 완성한 다리우스 대왕은 황당했다. 스키타이 애들 손 좀 봐주려고 출병한 것인데, 어디에도 스키타이는 보이지 않고 차지하는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최종 목적지는 농경 스키타이가 자리 잡고 있는 크림반도였지만 반도 못 온 다뉴브강 하구 델타에서 회군을 결정했다. 귀신과 전투를 벌인 걸 알아차린 것이다. 이때 이오이나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다리우스 대왕마저도 죽음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페르시아는 고전했고 겨우 귀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페르시아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벌어진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종국에는 알렉산더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이번엔 톡타미시가였다. 킵착의 지배를 받던 크림칸국은 킵착이 계승문제로 내분에 쌓이자 킵착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했다. 혼란을 수습한 톡타미사가는 군대를 몰고 페오도시아를 포위했다. 페오도시아는 크림반도에 제노아 상인들이 세운 상품 교역소가 자리한 도시다. 해안에 단단히 성을 쌓아 도시를 보호하는 성곽 도시였으며 중앙아시아서 건너온 진귀한 상품이 많은 만큼 성은 높고 단단했다. 칭기즈칸의 장손인 주치의 권리를 계승한 바투의 자손인 그는 황금 씨족이었으며 칭기즈칸의 후손답게 대외적으로 보여주어야 했다.하지만 페오도시아를 포위한 군영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전염병은 무섭게 확산하면 병영을 초토화시켰고 사람들은 피를 토하고 새카맣게 몸이 변하며 죽어갔다. 흑사병이 시작된 것이다. 톡타미사가는 어쩔 수없이 철수해야 했으며 권위에 도전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메시지로 죽은 시신을 투석기에 얹혀 성안으로 날려 보냈다.

성 안에서는 날아온 시신을 성벽 한켠에 쌓아 두었다. 감염된 시신 더미에 기생하던 쥐벼룩에 페스트균이 옮겨갔고 쥐의 털을 묻어살며 흡혈을 하던 쥐벼룩은 쥐 등짝에 올라탄 체 인간이 거주하는 집으로 옮겨져 사람을 흡혈하기 시작했다. 성내 흑사병이 창궐하자 제노바 상인들은 공포에 질려 이탈리아로 피신을 도모했다. 불행하게도 전염병 병균에 감염된 쥐와 벼룩도 이들과 함께했다. 얼마 후 상선 하나가 시칠리아의 메시나항에 당도했다. 이 배의 선원들은 이상한 전염병에 걸려 있었으며 당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사망하였다. 이렇게 원인 불명의 질병은 유럽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제노아 상선이 닿는 곳마다 흑사병(黑死病·Black Death)이 퍼져나가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Black death 전파과정

러시아에서는 크림전쟁의 패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무엇이 러시아에게 패배를 안겨주었을까? 고심하던 알렉산드로 2세는 러시아의 봉건적인 토지제도와 전 근대적인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개혁 군주를 자처했지만 그의 토지개혁과 농노해방이라는 사회개혁은 귀족과 지주 등 기득권의 거센 저항에 지지부진했다. 결국 농노해방과 토지 배분 등 개혁 정책은 지지부진하면서 반정부 세력의 커갔고 후일 사회주의 혁명의 기반이 되었다. 알렉산드로 2세의 토지개혁과 농노해방은 공짜가 아니었다. 정부가 80%, 농촌공동체 ‘미르’가 20%씩 분담해 지주들에게 땅을 구매하고 농민이 이를 갚는 제도였다. 하지만 러시아의 귀족은 별 흥미를 못 느꼈다.

넓은 땅을 가진 러시아 귀족은 땅을 팔지 않아도 호화로운 삶을 유지하는 데 부족할 게 없었다. 여름은 러시아에서 겨울은 로마나 파리에 머물면서 세금만 거두면 될 뿐이었다. 결국 러시아의 실패는 넓은 땅을 가진 러시아의 축복 때문이었다. 영국의 귀족이었다면 그들은 땅을 팔아 얻은 돈을 산업에 투자해 더 많은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이미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러시아는 너무 넓었고 러시아의 귀족은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자업자득이었던 것이다.

크림반도에선 세 명의 남자가 좌절을 맛봤다. 하지만 세상은 정 반대의 길로 나아갔다. 스키타이는 다리우스가 그렇게 우려하던 대로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파르티아를 세웠다. 크림반도에서 시작한 흑사병은 잠자는 유럽을 일깨우고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렸다. 결국 유럽의 시대를 연 포문이 된 것이다. 알렉산드로 2세의 좌절은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종주국의 탄생을 가져왔으며자본주의와 함께 세상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축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크림반도는 작지만 세상을 바꾼 거대한 땅이었다.

출처 : 노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