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원정대,

유라시아 횡단
그 장대한 이야기

14. 극지의 대지의 다양한 변화를 찾아서
② 피요르드

14. 극지의 대지의 다양한 변화를 찾아서
② 피요르드

하이라이트

유럽은 사냥꾼의 자식이다

피요르드는?

하이라이트

유럽은 사냥꾼의 자식이다

피요르드는?

☞ 유럽은 사냥꾼의 자식이다

코카서스 인종이라고 부르는 유럽인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지중해 중심의 남부 유럽인과 발트해 중심의 북부 유럽인이다. 남부 유럽인은 알프스에서 이주한 아리안계 인종인 반면 북부 유럽인들은 우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알프스에서 남하한 사람들이 유목과 농경을 주로 한 반면 우랄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사냥과 목축을 주로 했다. 지구에는 수 차례의 크고 작은 빙하기가 닥쳤고 그럴 때마다 대규모의 민족이동이 일어났다. 민족이동은 주로 추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스칸디나비아에 정착한 북구인들은 반대의 길을 걸었다. 이들은 무엇을 찾아 추위를 이겨내며 북쪽으로 방향을 튼 것일까..

대형 포유류는 몸 안에 고지방을 축척하며 활동 영역을 극지방으로 넓혔다. 대형 포유류의 고지방과 단백질은 인간의 생명 유지에 긴요했고 집단 사냥이 가능한 인간은 대형 포유류를 찾아 정착지를 북쪽으로 옮겼다. 북구인들의 신체적 특징인 건장한 체구, 하얀 피부, 푸른 눈, 노란 머리, 오뚝하고 긴 코는 적은 일조량과 추위에 적응하며 진화한 결과였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반도는 인구증가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들 중 일부가 스칸디나비아를 떠나 발트해를 건넜고 독일의 검은 숲에 정착했다. 로마가 만난 사람들은 그들이었다. 시이저는 갈리아를 정복하는 과정에 처음으로 이들을 접했지만 어디서 온 사람인지 몰랐다. 단지 라인강 건너편에 사는 야만인이라고만 인식했다. 그래서 라인강 동편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게르만이라고 불렀다. 게르만은 로마의 변방에 살았으나 로마를 대신해 중세의 문을 열었다. 로마를 멸망시키고 유럽을 장악한 게르만도 강한 민족이었으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그들보다 더 강했다. 게르만족은 힘이 약했기 때문에 스칸디나비아에서 쫓겨난 사람들이었고 바이킹은 게르만보다 더 강한 사람들이었다.

로마가 멸망할 무렵 유럽엔 중세 온난기가 시작되었다. 기온이 올라가며 소출이 증가하고 장원 중심의 중세 봉건사회가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게르만 중심의 중세가 열린 것이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도 이 시기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와 유럽 평원과는 대지의 성격이 달랐다. 스칸디나비아는 빈 토인 데다가 대지의 표피가 얇아 식량증산에 한계가 있었다. 인구증가가 가져온 중세 온난기에 서유럽은 식량증산과 장원 경제의 정착에 도움을 받았지만 스칸디나비아는 식량부족으로 시달려야 했다. 그런 와중에 최초의 통일왕조가 탄생했으며 이 과정에 밀려난 부족들은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바이킹의 이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4-2
다시 시작된 북쪽 사람들의 시대

바이킹의 최 전성기 영토는 로마를 능가했다. 서쪽으로는 대서양 건너 캐나다의 뉴 펀들랜드였으며 동쪽으로는 러시아평원과 우크라이나, 남으로는 지중해의 시칠리아와 이태리 반도 남부까지 광범위했다. 그 외에도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등 여러 나라에 직영지를 두었다.
유럽은 다시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으며 침체되어 있던 유럽은 북구인의 강인함과 모험심 그리고 항해술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시대에 한발 다가갔다. 대항해시대가 열린 것이다. 유럽의 역사를 펼쳐 놓고 보면 유럽은 우아한 도시인이 이끌어 간 것이 아니고 유목민이 이끌어 간 것도 아니었다. 유럽은 사납고 날렵한 사냥꾼의 자식이었고 그 시작은 스칸디나비아였다..

바이킹 지배영역

☞ 피요르드는?

칼레도니아 산맥은 2억 5천만 년 전 떨어져 있던 대륙이 하나로 모여 초 고대 대륙인 판게아가 만드는 과정에 생겨난 산맥 중 하나다. 칼레도니아 산맥은 그 중에서도 유라시아와 북 아메리카 대륙이 하나의 대륙으로 합쳐질 때 그 충격으로 탄생하였다. 판게아는 2억 년 경부터 다시 분리되는 길을 택했는데, 1억 8천 만 년 전에는 로렌시아 대륙과 곤드와나 대륙으로 갈라섰고 그 뒤로도 대륙 간 분리 현상이 계속 지속되며 현재는 7개 대륙으로 갈라졌다.
칼레도니아 산맥은 대륙이 갈라지며 현재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뉴 펀들랜드, 아팔레시아 산맥으로 연결된 지질구조로 남아있다. 칼레도니아 산맥은 해안산맥이라서 오랜 시간 바다에 의한 침식을 받았다. 그 결과 대체적으로 지대가 낮고 해안 침식으로 피요르드 해안이 발달했다.

칼레도니아 산맥과 형성과 분리

피요르드 해안에는 바다를 운명처럼 아는 사람들이 살았다. 이들을 유럽인들은 협강에 사는 즉 피요르드 해안에 사는 해적이라는 뜻으로 바이킹이라고 불렀다. 바이킹은 산물이 부족해 교역과 약탈을 통해 부족한 물자를 조달했다. 그래서 그들에겐 항상 질문이 따라붙었다. 바이킹은 해적인가? 아님 상인인가? 바이킹의 약탈물엔 여자가 빠지지 않았다. 그랬으니 딸과 부인을 잃은 집안은 바이킹을 해적으로 보았을 것이다.바이킹은 아름다운 북구 여자를 두고 남의 여자를 약탈해야만 한 이유가 있었다. 바이킹에게는 다발성 경화증이 많이 발생했다. 다발성 경화증은 중추신경계에 생기는 염증으로 발생 부위에 따라 신경에 손상을 주어 신체의 활동력을 떨어트리는 자가면역질환으로 18세 이전이나 50세 이후엔 나타나지 않지만 아이를 낳는 연령에 주로 나타난다. 원인을 알 수 없으나 학자들의 추측에 의하면 북구는 일조량이 적어 비타민 D를 만들 기회가 적기 때문에 바이킹은 비타민D 부족에 시달렸고 비타민 D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신경계의 교란이 유전병으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위생 가설이다. 오염지역에 살면 오염으로 손상도 입지만 항체가 생겨 병원체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진다. 반면 병원체가 없는 깨끗한 환경에 살면 병원체 감염을 통해 형성되는 저항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스칸디나비아는 추운 날씨 때문에 병원체가 적고 그런 이유로 병원체에 대한 적절히 대처를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며 유전적인 인자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이든 바이킹 거주지이거나 바이킹이 지배했던 땅에서 발생 빈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아 바이킹의 유전병인 것은 확실하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할 젊은 여성이 부족하다면 여자를 납치해가는 바이킹을 탓할 수도 없다. 종족보존을 위해 여자를 소유하고자 한 전례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이킹에 잡혀간 여성은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바이킹은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였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져서 노르웨이 의회는 여성 의원 비중이 40%를 상회하며 공기업의 경우 여성 임원의 할당을 법으로 지정하는데, 그 비율이 40%를 넘겨야 한다.

피요르드에 살았던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편견과 달리 자신에게 엄격하고 모두에게 평등하며 민주적인 사람들이었다. 유럽의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탐험의 시대를 건너 대 해양의 시대를 연 건 9세기부터 200년간 유럽 전역을 침공하고 왕국을 세운 바이킹의 영향이 매우 컸다. 스웨덴 바이킹은 내륙 수로를 따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왕국을 건설하여 러시아에 토대를 세웠고 덴마크의 바이킹은 잉글랜드를 점령하고 왕국을 세웠으며 노르웨이 바이킹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남 프랑스, 스페인, 지중해의 시칠리아까지 진출했다. 바이킹은 해외 진출과 정착에서도 협의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신뢰를 하늘같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유럽을 유럽 답게 재 단장한 바이킹은 피요르드에서 온 사람들이다. 피요르드는 거칠고 불안한 대지의 끝이다. 마을은 바다 이외에는 나아갈 땅도 없는 절애의 절벽에 가로막혀 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고 자연의 웅장함에 숙연해지는 풍경이다.
여행자에게는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일생을 갇혀 사는 사람에겐 호사스럽지 않는 환경이다. 결국 바이킹은 피요르드가 만든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