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원정대,

유라시아 횡단
그 장대한 이야기

15. 스키타이의 터전과 슬라브의 영광을 찾아서
① 우크라이나 초원

15. 스키타이의 터전과 슬라브의 영광을 찾아서
① 우크라이나 초원

하이라이트

우크라이나의 주인 코사크

지구촌 텃밭 체르노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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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주인 코사크

지구촌 텃밭 체르노쳄

☞ 우크라이나의 주인 코사크

우크라이나 초원은 코사크의 땅이다. 코사크는 영화 “대장 브리바”에서 보듯 싸움에 능한 준 군사조직이다. 이들은 초원을 떠돌던 작은 유목 부족이었고, 투르크계 유목 왕국에 의해 군사 집단으로 키워졌다. 이들의 뿌리는 알 수 없다. 아틸랴를 비롯해서 하자르, 아바르, 불가르, 마자르, 타타르 등 너무나 많은 투르크계 유목 부족이 우크라이나 초원을 지나갔고 그 과정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초원에서 활동한 투르크계 유목 부족은 현재도 북 캅카스의 여러 자치공화국, 헝가리, 불가리아로 남아있을 정도로 큰 세력이었다.

우크라이나의 마지막 지배자는 모스크바 공국이었다. 모스크바 공국은 슬라브인들에 세운 지방의 작은 공국이었고 우크라이나에는 슬라브를 대표하는 키예프 공국이 있었다, 이들의 운명을 바꾼 건 몽골의 침공이었다. 킵착에 저항하던 키예프는 초토화된 반면 모스크바 공국은 킵착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킵착에 순응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킵착 칸국은 러시아 내 조세권을 모스크바 공국에 주었다. 조세권이란 로마시대부터 특혜성 계약이었다. 즉 정부로부터 권리를 부여 세리는 보수를 받지 않는 대신 세금을 거두어 정부에 납부하고 남는 것은 이익으로 취했다. 그러니 정부에서 정한 기준을 악독하게 적용하고 최대한 많이 거두어 이익을 챙기는 데 집중하게 된다. 로마시대부터 셈이 빠르고 문맹이 없는 유대인이 세금업자의 하수인으로 많이 고용되었으며 반 유대 정서를 만든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그 역할을 모스크바가 맡았다. 모스크바는 조세권을 이용해 부를 축척했으며 축척한 부로 군대를 양성했다. 그리고 킵착을 러시아 평원에서 몰아내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했다. 러시아의 탄생은 키예프가 아닌 모스코바에 의해 시작되었고 완성되었다.

킵착이 물러나는 혼란기에 우크라이나에는 킵착의 영향력이 사라진 반면 모스크바의 영향은 아직 미치지 못했다. 그런 혼란기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이 우크라이나를 점령했다. 영화 “대장 부리바”는 폴란드에 저항한 “복단 흐멜닛스키”의 독립투쟁과 그의 아들인 안드레이와 폴란드 귀족의 딸 나탈리아의 사랑 이야기를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영화의 결말은 코사크의 승리였으며 코사크는 키예프에서 폴란드군을 몰아내고 ‘코사크 수장국’을 건국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승리일 뿐, 폴란드의 위협에서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다. 복단 흐멜닛스키는 모스크바 공국에 보호를 요청하였고 우크라이나는 자연스럽게 러시아에 편입되었다. 러시아의 일원이 된 코사크는 스스로 러시아 황실의 용병이 되었다. 그리고 러시아 역사의 중대한 기로에서 시대에 저항하는 역할을 맡았다. 러시아 혁명의 발단이 된 피의 ‘일요일 사건’의 현장에 코사크 근위병이 있었다. 러시아 황실을 위해 시베리아뿐 아니라 캄차카, 알래스카까지 진출하여 모피 무역을 전담했으며 이 과정에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극동 진출의 첨병 역할을 하였다. 러시아 황실을 지키기 위해 볼셰비키 군에 가장 먼저 전쟁을 선포한 것도 코사크였다. 코사크는 참 충실한 군사들이었다. 이들은 어떤 배경을 갖고 있기에 시대의 변화를 무시하고 짜르에게만 충성했을까? 대장 브리바에는 명대사 가 나온다.

“내 아들아. 내가 너의 생명을 주었으니, 너의 생명 또한 거두겠다….”

코사크는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러시아 황제인 짜르의 구원을 받았으며 자신들의 목숨을 거둘 수 있는 사람도 짜르였던 것이다. 또한 짜르 체제에서 특별대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평등과 분배를 외치는 볼세비키혁명이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혁명을 거부한 코사크는 시대의 변화를 거부한 죄로 소멸의 길을 걸었고 우크라이나 초원은 소비에트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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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 텃밭 체르노쳄

우크라이나 평원은 국토의 95%가 평지이고, 전 국토의 80%가 경작 가능하며 이 중 60%의 토지가 비옥한 ‘체르노쳄’이라는 흑토지대이다. 체르노쳄은 토양에 인산과 암모니아가 풍부한 부식토로 이루어져 있어서 씨만 뿌리면 저절로 농사가 되는 기적의 땅으로 통한다. 체르노쳄 토양지대는 강수량이 숲이 우거질 정도로 충분하지 않아 나무의 생육이 좋지 않은 대신 사람 키만 한 1년생 초본식물들이 주로 자라는데, 이런 식물들은 겨울이 되면 대지에 축척되어 좋은 비료가 된다. 따라서 토양에서 영양분을 뺏어가는 나무가 없고 반면 비료가 되는 풀이 우거져 비옥한 토양과 유목 환경에 적합한 평원인 것이다. 비가 많지 않은 건조한 기후지만 밀이 경작하기에는 적당한 강우량이었고 풀이 자라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평원은 고대부터 곡창지대로 유명했고 많은 유목 부족이 유럽으로 향하던 경유지였다. 현재는 슬라브의 땅이지만 슬라브가 정착하기 전 농경 스키타이, 게르마니인 고트족 등이 정착하여 왕국을 세웠고 많은 유목부족들이 왕국을 세웠다.

유목시대가 저물고 러시아가 유라시아 북부의 맹주로 떠오른 뒤부터 우크라이나는 밀을 생산하여 유럽을 먹여 살리는 식량창고 역할을 하였다. 현재도 전 세계에서 국토 대비 경작지 비율이 가장 높으며 미국과 함께 세계 밀 생산을 좌지 우지하고 있다. 세계가 단일화되며 우크라이나 식량창고는 유럽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에서 흉년이 들면 유럽이 굶주리고 아프리카에서 전쟁이 난다고 한다.
비옥한 대지이거나 문명이 들어선 대지엔 인구 과밀로 몸살을 앓는다. 인류는 환경이 감당할 수 있을 때 급격히 증가했고 환경이 감당하지 못할 때 한정된 자원을 두고 목숨 건 투쟁을 벌였는데, 이는 인구를 자연스럽게 감소시키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예외였다. 곡식이 부족한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의 인구밀도는 다른 곡창지대와 달리 인구밀도가 매우 낮다. 평야지대 특성상 유목 민족의 공격에 취약하고 잦은 외침 때문에 왕국이 쉽게 쇠퇴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평원은 농경과 초원이 복합된 땅이며 대부분의 시기 초원민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따라서 다른 초원지대와 같이 특정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초원에 세워진 유목 왕국은 땅이 넓었지만 인구는 적었다. 그들의 후예가 세운 스텝의 여러 나라도 인구가 많지 않다. 몽골의 영토는 우리나라의 27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300만 정도이다. 칭기즈칸 시대에도 몽골의 인구는 260만이 넘었다. 거대한 제국을 완성했음에도 인구를 늘리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풍부한 곡식을 가졌음에도 인구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가 달리 있을까.. 유목민은 목표를 가지고 인구 조절을 하였던 건 아닐까?
유목민에게 인구란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환경과 균형을 유지할 정도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왜 인구에 목멜까, 목메는 정도가 아니라 인구감소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일까? 과잉 생산에 시달리는 현대 산업사회는 인구로 부를 축척한다. 축척이 멈추며 부의 축척도 멈춘다. 그런데 그 모든게 은행에 쌓여 있을 뿐 내 생황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 보다는 지구의 자정기능이 멈추는 게 두려운 일일까,, 충분함에도 도를 넘지 않은 유목민의 땅 우크라이나였다.

풍요로운 대지, 체르노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