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원정대,

유라시아 횡단
그 장대한 이야기

4. 몽고리아 고원과 알타이 산맥

① 부르한 할둔

4. 몽고리아 고원과 알타이 산맥
① 부르한 할둔

하이라이트

몽고리아의 높이는 얼마였을까?

칭기스칸의 탄생지가 된 부르한 할둔

하이라이트

몽고리아의 높이는 얼마였을까?

부르한 할둔

☞ 몽고리아의 높이는 얼마였을까?

몽고리아는 선 캄프리아기인 16억 년에서 17억 년 전에 형성된 아주 오래된 대지이다. 시베리아 순상지 남쪽에 자리 잡고 있지만 5억 3천만 년 전에야 겨우 태동한 시베리아에 비해 연륜이나 심지어 고도에서도 큰 차이가 나는 전혀 다른 대지인 것이다. 그렇게 오래된 땅이어서 인지 몽골의 산은 아담하고 부드럽다.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산이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든 말 등에 앉아서 든 산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그것도 아침 먹고 마실 삼아 잠시 돌아보는 정도의 산이 지천에 깔렸다. 하지만 몽골은 1,000m가 넘는 고원이다.

1,750m 고원 평야였던 시베리아는 현재 잔구 만이 남아있고 아무리 높아도 600m를 넘지 않는다. 더 심한 곳도 있다. 캐나다 대지를 만든 로렌시아 순상지는 처음 마그마가 분출해 대지를 만들었을 때 높이가 12,000m였다. 세계 최고봉보다 더 높은 고원 평야가 북미 대륙의 반이나 되는 면적을 덮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캐나다 대 순상지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480m밖에 되지 않는다. 5억 3천만 년의 시간은 이토록 무시무시하고 괴력인 것이다. 캐나다 순상지를 한낱 들판으로 재단해버린 시간은 5억 3천만 년이었다. 그 시간의 3배인 16억 년이라면 어떨까? 몽고리아 고원의 높이는 측정 불가의 높이가 아니었을까?

창세기에는 에덴동산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에덴에서는 강이 발원(發源) 하여 에덴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비손 강과 기혼 강과 힛데겔 강과 유브라데강을 이루었다. ”

힛데겔 강은 티그리스 강을 말하고 유브라데 강은 유프라테스 강이다. 반면 비손 강은 인더스 강이고 기혼 강은 이집트의 나일강으로 추측되고 있다. 현재의 지형으로 볼 때 그런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덴동산이 20,000m에 위치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노아의 홍수가 끝난 뒤 세상의 모든 지형은 완전히 변경되었다고 한다. 노아의 홍수만으로도 세상이 바뀌었는데, 빙하기를 다섯 번이나 겪으며 대지가 갈려 나가고 17억 년 동안 침식과 풍화가 반복되었으니, 몽골고원이 예전 같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몽골고원의 높이는 얼마였을까?

☞ 칭기스칸의 탄생지가 된 부르한 할둔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초원에서 불어오는 몽골고원, 소년 테무친은 부인이 될 보르테의 집에서 여자 값을 치르는 노예살이를 몇 년째 하고 있었다. 고요한 새벽, 누군가 테무친을 깨웠다. 아버지 예수게이가 타타르족에게 독살당한 것이다. 테무친은 그날 밤 아무도 모르게 보르테의 숙영지를 탈출했다. 비록 보르테와 결혼할 몸이지만 아버지가 죽은 상황에서 장인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 예수게이는 용맹한 대신 사납고 잔인해서 주변에 적이 많았고, 그런 아버지 때문에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테무친은 가족을 데리고 어디로든 숨어야 했다. 삼촌들이 하나 둘 떠나고 가족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족이 숨어든 곳은 헨티산맥의 부르한 할둔이었다. 초원을 떠나 산중에 숨어 산 지 몇 년이 지나고 테무친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성인이 되었을 때, 그는 부르한 할둔의 도피생활을 청산하고 초원으로 돌아왔으며 보르테를 아내로 맞이하고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테무친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업보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 예수게이는 몇 년간의 노예생활 끝에 여자 값을 치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신혼 마차를 공격했으며 시댁으로 향하는 새색시를 탈취하여 둘째 부인으로 삼아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테무친이었다. 부족의 여자를 빼앗긴 메르키트 부족은 이를 수치로 여겼고 초원으로 돌아와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사는 테무친을 야습하여 전대의 수치를 수치로 갚으려 했다. 야습이 있던 그날 밤도 호헬룬(테무친의 엄마)은 습관같이 땅에 귀를 대고 잠이 들었다. 선 잠이 든 것인가.. 귀를 통해 작은 미동이 느껴졌다. 땅에서 전달되는 진동은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군마가 달려오는 것이었다. 야습을 알아챈 호헬룬은 급하게 테무친을 깨웠다. 그리고 호헬룬과 테무친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해야만 했다. 숙영지에는 어머니 호헬룬, 테무친, 남동생 카사르, 남동생 카쥰, 남동생 테무게, 막내 여동생 테물린, 큰 어머니인 소치겔, 배다른 동생 벨구테이, 아내 보르테의 손님인 보르추와 노예인 젤메, 그리고 유모인 코아그친까지 12인이었다. 하지만 말이 부족했다. 숙영지에 남은 말은 9마리였다. 호헬룬과 테무친은 누구를 남겨두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호헬룬은 가족의 어른이니 안되고 나중에 전투를 생각하면 남자는 희생시킬 수 없었다. 남자를 보호해야 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부인 보르테와 큰 어머니인 소치겔, 유모인 코아그친을 남기고 테무친은 숙영지를 탈출하여 부르한 할둔으로 숨었다.

메르키트 병사들은 말발굽을 쫓아 부르한 할둔까지 추격해 왔으며 산을 3중으로 에워싸고 테무친이 탈진해서 내려오길 기다렸다.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혼자 남겨진 산에서 테무친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칭기즈칸은 울부짖으며 텡그리(하늘의 신)에게 매달렸다. 텡그리는 테무친을 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부르한 할둔에서 살아 돌아온 테무친은 새로운 테무친이었다. 그는 추종자를 모아 주변을 하나씩 정복하였으며 몽고리아뿐 아니라 모든 대지의 왕이 되었다. 텡그리는 부르한 할둔에서 테무친을 아들로 받아들인 것이다. 부르한 할둔은 그런 곳이다. 테무친을 키웠으며 테무친을 보호했고 테무친이 몽고리아를 넘어 세계의 칸이 되도록 힘과 용기를 준 산이다. 부르한 할둔을 떠난 칭기즈칸은 멀리 서역까지 원정을 떠났고 서하를 공략하던 중 수도인 영하에서 사망하였다. 참모들은 칸의 시신을 마차에 싣고 부르한 할둔으로 돌아왔으며 생전의 소망대로 이 땅에 묻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칭기즈칸의 영면을 방해할 수 없었다. 칸의 무덤을 비밀로 하기 위해 장례행렬과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무덤 공사가 끝났을 때는 공사에 동원된 노예들을 모두 죽였고 공사 인부를 죽인 군인들 역시 모두 죽음에 처해졌다. 또한 매장지를 위장하기 위해 강의 물줄기를 바꾸었고 수많은 말들이 무덤 위를 달리게 하여 땅을 다진 다음에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철저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인지 이집트의 파라오와 달리 현재도 편안히 영면에 들어있다.

부르한 할둔은 몽골 중앙 고원의 젖줄이자 몽골족의 고향인 오론혼 강(Onon), 켈를렌 강(Kherlen), 툴 강(Tuul), 셀렝게 강(Selenge)의 시원이다. 그래서 부르한 할둔이 없었다면 몽골족도 없고 몽골의 영광도 없었다고 한다. 부르한 할둔으로 향하는 길은 인류가 낳은 유일무이한 지배자이자 몽골의 영광과 만나는 여행이다. 부르한 할둔에 올라 칭기즈칸이 그랬듯이 몽골고원의 대평원을 바라보고 정상의 오브(Ovoo)에 가다(흰색의 천)를 걸며 세 바퀴 도는 순례 의식을 가져 본다. 테무친은 벨트를 풀어 하늘에 복종하고, 9번 절을 하며 하늘의 지배자인 텡그리에게 복종하였으며 텡그리는 지상의 주인이라는 보답을 주었다. 그렇게 몽골의 영광은 시작되었다. 유대의 위대한 역사가 시나이산에서 시작되었듯이 몽골의 영광스러운 역사도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부르한 할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