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원정대,

유라시아 횡단
그 장대한 이야기

5. 이리계곡

5.  준가르 분지와 이리계곡

하이라이트

세상의 변화를 이끈 초원, 이리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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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를 이끈 초원, 이리계곡​

☞ 세상의 변화를 이끈 초원, 이리계곡

이리계곡은 동쪽, 북쪽, 남쪽을 산이 포옹하듯 막고 있고 서쪽으로만 열린 트럼펫 모양이다. 세 방향의 산맥은 시베리아에서 남하하는 차가운 대기와 타클라마칸에서 북상하려는 건조한 바람을 막는 반면 서쪽의 열린 공간을 통해서 들어오는 대서양과 지중해의 따뜻한 대기는 계곡 안에 가두어 오래 머무르게 한다. 그런 지형적 특징 때문에 건조한 중앙 유라시아에서도 유일하게 습하고 비옥해서 “젖은 섬”이라고 불린다.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한랭한 기온과 습한 대기는 말을 사육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라서 이리계곡은 명마의 고향이었다. 이런 장소로는 이식쿨 주변과 기련 산맥 그리고 페르가난 계곡이 있다. 이식쿨은 유럽을 공포에 몰아 놓은 아틸랴의 유럽훈이 성장한 땅이고 기련 산맥은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쿠샨 왕국을 세운 월지의 터전이었으며 페르가난 계곡은 한나라가 흉을 몰아내는 데 기여한 한혈마의 고향이다. 모두 명마를 기반으로 군사력을 키워 한 시대를 선도한 유목 전사들의 땅이다. 이리계곡은 누가 주인이었을까? 유라시아 대륙에는 동서로 길게 펼쳐진 대 초원지대인 스텝 지대가 있다. 스텝 지대는 헝가리부터 시작하여 만주 북부까지 이어지며 거리가 무려 8,000km에 달한다. 스텝은 알타이를 경계로 하여 동쪽과 서쪽이 분리되어 있고 알타이와 비스듬히 자리 잡은 이리계곡은 스텝 지대의 정 중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돌궐이 이리계곡에서 흥기하기까지 이리 계곡은 동부 초원과 서부 초원의 경계이자 변방이었다. 초원에 처음 유목 왕국을 세운 건 스카타이였다. 스키타이는 흑해 연안에서 신강까지 넓은 지역에서 활동했지만 알타이 너머 몽고리아에는 세력을 넓히지 않았다. 흉이 초원 동부를 통일하고 거대한 초원 왕국을 세웠지만 흉의 세력은 몽고리아와 중국 서부에 머물렀을 뿐 초원 서부로 확장하지 않았다.

유라시아의 스텝지대 (출처 –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초원 동부와 서부의 경계는 알타이였으며 돌궐이 나타나기까지 동부 초원과 서부 초원은 알타이라는 경계를 넘지 않았다. 두 초원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초원 동부는 몽고리아가 중심이었으며 인종적으로는 몽골계와 터키계가 주를 이루었다. 반면 초원 서부는 킵착과 우크라이나 초원이 중심이었고 인종적으로는 스키타이계 유목민이 중심이었다. 6세기 돌궐이 흥기하면 초원의 판도는 급격히 변했다. 돌궐은 동부 초원도 서부 초원도 아닌 두 초원의 경계인 이리계곡에서 흥기했다. 두 세력의 중간에 위치한 이리계곡은 두 세력의 경계이자 변방이었지만 돌궐이 초원의 두 세계를 최초로 통합한 뒤로는 초원의 중심이 되었다. 돌궐의 영토는 서쪽으로는 흑해 연안에서 북만주까지 광대했으며 최초로 스텝 지대 대부분을 지배한 유목 왕국을 건설했다. 돌궐은 어떻게 초원을 최초로 통합할 수 있었을까? 칭기즈칸에게 선험적 아이디어를 준 돌궐의 거침없는 확장을 생각하며 이리계곡을 가득 메운 초원을 걸어본다.

이리계곡 (출처 – 위키피디아)

산록에 자리 잡은 초지는 황폐한 몽고리아와 달리 비옥하고 윤택하다. 이리계곡은 나라티(Nalati) 초원, 탕불라(Tangbula)초원, 곤나이시 초원(Gongnaisi)으로 나뉘어 있는데, 만년 설봉 아래 펼쳐져 있어서 다각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초원의 풍경은 산릉에서부터 수직 스펙트럼으로 펼쳐진다.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으로 고산 초원, 산 초원, 산악 초원, 산악 사막 초원, 사막 평원, 강과 계곡이 순차적으로 펼쳐지고, 이 모든 경관이 한눈에 들어와 매우 고혹적이고 아름답다. 천산과 알라타우 산맥이 동쪽 끝은 맞닿아 있고 서쪽 끝은 킵착초원으로 활짝 열려있다.
V자를 옆으로 눕혀 놓은 쇄기 모양이다. 지중해의 습윤한 공기가 빼곡히 들어앉아 대기가 촉촉하고 천산에서 녹아내리는 물이 대지에 목마름을 해소해 준다. 풀도 탐스럽고 윤기가 흐른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초원이다. 성공은 갈증에서 오고 풍요는 곤궁함이 동기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가 보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환경이 도인(道人)만 낳는 것이 아니라 전사도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준 땅이다. 돌궐은 산록 초원을 뛰어노는 견실한 말을 타고 계곡을 나와 초원을 호령했다.
칭기즈칸보다 600년이나 앞서서 돌궐이 위대한 건 초원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 준 것이었다. 그 좁은 계곡에서 시작해서…

나라타 초원 (출처 : tri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