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원정대,

유라시아 횡단
그 장대한 이야기

7. 파밀과 유라시아 대산맥

④ 왕령 스키타이

7. 파밀과 유라시아 대산맥
④ 간다라

하이라이트

말머리를 돌려야 했던 알렉산더

간다라는 알렉산더의 유산

하이라이트

말머리를 돌려야 했던 알렉산더

간다라는 알렉산더의 유산

☞ 말머리를 돌려야 했던 알렉산더

알렉산더는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자 힌두쿠쉬를 넘었다. 인도 대륙에 드디어 발을 디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의 끝을 서쪽은 지브롤터이고 동쪽은 페르시아의 동쪽 끝 간다라라고 알렉산더에게 말해주었다.
“그 너머는요? ”  
“글쎄요, 낭떠러지겠죠? 아주 깊고 어두운, 그러니 그 이상은 가지 마세요”
마케도니아 궁전에서 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어린 알렉산더는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한 알렉산더는 벽화에 새겨진 사절단의 행렬을 보았다. 총 27개의 속주가운데 간다라가 있었다.
저기가 대지의 끝인가? 그다음은 없을까? 나는 대지의 끝에 꼭 가보리라,”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페르시아를 지나 트랜스옥시아나, 박트리아를 거치고 다시 인도로 향했다. 대지의 끝을 찾아서,,

알렉산더 제국의 영토 (출처 : 브리타니카)

알렉산더가 힌두쿠쉬를 넘어 인도에 발을 디뎠을 때, 인도는 풍요롭고 화려하지만 내부에만 갇혀 지내는 은둔의 땅이었다. 인도는 내부 다툼만으로도 벅차서 밖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는지, 한 번도 인도 대륙을 벗어나 남의 땅을 넘보지 않았다. 심지어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이 정권을 잡은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호전성은 어디 간 것인가? 인도에 발을 들여놓으면 누구나 평화주의자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인도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인도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었던 것일까? 그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알렉산더였다.
그는 지구의 끝을 보고 싶어 한 열병을 앓고 있었기에 멈추지 않았을 것이고 새로운 역사가 기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인도에서 말머리를 돌려야 했고 다시는 인도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만약 알렉산더가 인도를 굴복시키고 중국으로 향했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당시 중국은 전국시대로 진나라가 체제를 정비하고 부국 강성의 길에 들어서던 시기였지 시황제가 통일 대업에 나설 만큼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다. 또 진나라를 견제하는 6국이 엄연히 존재했다. 초원에도 강자가 없었다. 다만 선우가 흉을 최초로 통일하고 왕국의 토대를 쌓는 정도였다. 주변 정세를 고려할 때 알렉산더가 인도를 지나 중국으로 향했다면 세계 통일이라는 알렉산더의 꿈이 그리 허망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인도 대륙을 정복하기 전에 말머리를 돌려야 했고 바빌론에서 생을 마감했다.
알렉산더가 말머리를 돌린 땅, 간다라에서 알렉산더의 비탄과 아쉬움을 주섬주섬 담아본다.

실크로드를 달리는 트럭, 낙타에게 치장했듯 짐을 나르는 트럭에도 치장을 한다.

☞ 간다라는 알렉산더의 유산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 왕은 텍실라를 포함하여 전 국토에 108개의 아소카 석주(PILLA)를 세우고 석주에 부처의 사리를 보관함으로서 300년 전 영면한 부처를 불러 세웠다. 이는 불교가 간다라를 중심으로 세계적 종교로 발돋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텍실라에서 불교는 잠에서 깨어났을 뿐 아니라 새로운 문화적 교합의 시동을 걸었다. 그 시작 역시 아소가 석주였다.
나무가 풍부했던 인도는 건축에 나무를 사용했으나 아소카는 처음으로 돌로 된 탑을 세운 것이다. 아소카가 세운 108개의 석주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석주였다. 텍실라에서 불교라는 매개를 통해 문명의 교합이 시작된 것이다. 아소카는 왜 그리스적 건축을 받아들였을까? 그리고 힌두교가 아닌 불교로의 전환을 꾀했을까?
인도에서 불교는 얼마 가지 못했다. 불교가 쇠퇴하며 쿱타 왕조도 쇠퇴했으며 불교는 인도를 뛰쳐나가서야 빛을 보았다.

아소카 석주 (출처 : 위키백과)

인도 대륙은 모든 걸 흡수했으며 하나도 인도 밖으로 내놓지 않았다. 그나마 인도의 것을 인도 밖으로 옮겨 놓은 건 그리스의 합리성이었으며 중국 서역에서 이주해온 쿠샨 왕조의 적극성이었다. 인도의 흡입력에 저항했던 간다라의 사람들, 그들은 누구인가?

간다라에서 출토된 긴 머리, 높은 코를 가진 부다.

알렉산더가 죽고 제국은 사분 오열되었으며 박트리아엔 그리스계 왕조가 들어섰다. 하지만 월지가 트랜스옥시아나에 정착하고 박트리아에 압력을 가할 때 많은 그리스인이 힌두쿠쉬를 넘어 간다라에 정착했다. 이들은 인도의 힌두 왕조가 아닌 중앙아시아의 유목 왕국인 쿠샨의 지배를 받았으며 북쪽으로부터 압력을 받을 때마다 조금씩 남으로 정착지를 옮겼고 광활한 펀잡에 넓게 정착했다. 파키스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펀잡인들은 인도 사람들과 쉽게 섞이지 않는다. 멀리 발칸반도에서 알렉산더의 열망을 믿고 여기까지 동행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교차로이자 교역의 교차로에서 이들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를 어딘가로 이끌고 갈 알렉산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