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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대한 이야기

8. 천산과 천산북로의 스텝초지

① 왕령 스키타이

8. 천산과 천산북로의 스텝초지
① 왕령 스키타이

하이라이트

헤로도토스가 만난 스키타이는 누구인가?

왕가(王家)를 이룬 유목민

하이라이트

헤로도토스가 만난 스키타이는 누구인가?

왕가(王家)를 이룬 유목민

☞ 헤로도토스가 만난 스키타이는 누구인가?

헤로도토스는 여행 중 인식 밖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고 헤로도토스는 그들을 스키타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가 만난 스키타이는 누구일까? 헤로도토스가 여행을 시작하기 200년 전 스키타이는 오리엔트에 갑자기 출몰하여 여러 왕국을 약탈했다. 마이다스의 손으로 알려진 아나톨리의 부국 프리기아가 거덜 났고 오리엔트 세계를 최초로 통일했던 아시리아는 수도인 니네메까지 탈탈 털리고 멸망했다. 오리엔트 세계를 재 통일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은 스키타이에게 교훈을 주려고 스키타이의 땅을 침공했으나 대패하고 돌아왔다. 이 사건도 헤로도토스에게는 50년 전의 일이었다.
오리엔트에 들어선 어떤 왕정국가도 스키타이를 넘보지 못했다. 헤로도토스는 그들이 궁금했고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헤로도토스가 기록으로 남긴 스키타이는 과거의 행적과 달리 유순하고 그리스인 거주지 외곽에 정착해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이 오리엔트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스키타이가 맞는가?
스키타이의 선조들은 킵착 초원에서 뛰어놀던 유목민이다. 지구에는 주기적으로 소빙기가 닥쳐왔고 그럴 때면 스텝은 한발로 유목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럴 때면 추위와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남쪽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남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처음엔 정주민들과 충돌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농경과 유목을 병행하는 반농 반유목의 생활을 시작했다. 헤로도토스가 만난 스키타이는 그렇게 이주해온 스키타이였다. 이들을 농경 스키타이라고 현재는 구분하고 있다.
스키타이는 킵착 초원의 동쪽인 제티수(현 알마티주)에 근거지를 두었으며 유목을 하며 살았다. 이들을 왕령 스키타이 혹은 유목 스키타이라고 한다. 오리엔트 세계를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간 스키타이는 강력한 유목 군대였고 약탈만이 목적이었다. 바람같이 나타났다 필요한 것만 빼앗고는 미련 없이 사라졌다. 이들과 헤로도토스가 만난 스키타이는 같은 사람들인가?

스키타이의 영역 ( 출처 : http://satekhealth.com/history/

스텝은 스키타이가 지배하는 하나의 세계였고 농경 스키타이는 왕령 스키타이의 부속된 하부 집단이었다. 오리엔트에 침입했던 스키타이의 주력은 초원으로 돌아갔고 일부가 남아 정착했을 것이다. 다리우스의 침공을 받았을 때 흑해 연안의 농경 스키타이는 청야 작전을 쓰며 초원 깊숙이 철수했고 갑자기 강력한 유목 군대가 나타나 페르시아군을 전멸시켰다. 다리우스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다. 그날의 주인공이 누구였든 그날부터 유목 세계는 2,000년간 정주 사회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유목민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 왕가(王家)를 이룬 유목민

우크라이나 평원에서 몽골고원을 거쳐 북만주까지는 거칠 것이 없는 스텝 평원이다. 스텝 평원에는 말이 먹을 풀이 가득하다. 그래서 스키타이는 동서를 오가며 교역과 문화 전달자 역할을 하였다. 이때부터 스텝엔 문화의 일체감인 스키타이 벨트가 형성되었다. 이는 후대 유목 왕국에도 영향을 미처 유목 세계는 항상 문화적 일체감을 유지했다.
정주 사회는 몇 개의 거대 왕국이 지역을 분점하고 단절된 체 성장한 반면 유목사회는 문화적 일체감을 유지하며 2,000년 세상의 변화를 주도했다. 구심점 역할을 한 지역은 어디일까? 그건 중심 부족이 누구냐에 따라 바뀌었다.
최초의 유목 왕국이라 불리는 스키타이의 구심점은 제티수(현 알마티주)였다. 제티수는 발하쉬에서 이리계곡까지 펼쳐진 깊고 풍요로운 초지이다.

북천산 자락

이 지역에서는 스키타이를 지배한 왕들의 무덤이 여럿 나왔다. 무덤에서 나온 유물을 근거로 신라왕조와 연결점을 찾는 일도 진척되고 있다. 파지리크(Pazyryk) 유적지의 적석목곽분은 신라 왕족의 왕릉과 양식이 동일하다. 적석 목곽 분묘는 통나무집에 시신과 부장품을 넣고 그 위에 막돌을 두텁게 쌓아 놓은 돌무덤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씩 구르간에서 출토된 여 사제의 황금갑옷
(출처 : 이키피디아)

 

이씩 구르간(Issyk Kurgan) 무덤 군에서 출토된 여 사제의 황금 갑옷은 비늘 장식으로 치장하고 있는 데, 신라 왕관을 장식한 물고기 비늘과 같아 같은 문화권으로 유추하고 있다. 그들이 한반도까지 내려온 것인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초원은 문화적 통일성을 가졌다.
스키타이 문화가 다른 유목 민족에게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제주의 돌하르방은 몽골의 풍속이지만 원래는 투르크의 풍속이다. 투르크는 전사가 죽으면 생전에 죽인 적의 수만큼 석인상을 세웠다. 몽골이나 투르크 모두 몽골리아에 터전을 둔 유목민이었으니 둘은 문화적 공유가 이루어졌고 제주도까지 전래되었다. 그럼 신라를 세우고 왕족이 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박혁거세의 재위 기간은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이다. 스키타이는 시점이 맞지 않는다. 스키타이는 기원전 4세기 킵착에서 이주한 사르마트에 패한 뒤 흡수되었다. 그래서 스키타이가 아닌 흉노라는 설이 강력히 제기된다. 북흉이 한나라와 남흉의 연합군에 패한 뒤 할하(몽골)에서 쫓겨날 때 일부가 한반도로 내려와 부족 연합체인 신라를 통합하여 왕국을 세웠다는 것이다. 흉도 스키타이와 문화적 일체성을 유지하는 부분이 많았고 그중 하나가 적석목곽분이다. 따라서 시점상으로는 북흉의 왕족이 신라를 건국했다는 설이 사실에 근접해 보인다. 주체가 누구든 신라는 당나라와 한반도를 걸고 전쟁을 게시했고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밀어냈다. 신라에는 당나라가 갖지 못한 강력한 유목 기마군단이 있었던 것이다.

유목민은 중국에서 수나라, 당나라, 청나라를 건국하고 왕가를 이루었다. 한반도에서는 신라 옷을 입고 왕족이 되었다. 유목민은 왕이 될 재목인가 보다.

석인상 https://discover-bayanolgii.com/archeological-si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