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원정대,

유라시아 횡단
그 장대한 이야기

8. 천산과 천산북로의 스텝초지

② 천산의 눈물, 이시쿨

8. 천산과 천산북로의 스텝초지
② 천산의 눈물, 이식쿨

하이라이트

에너지를 품은 이식쿨

남다른 땅, 남다른 사람들

세계의 변화를 가져다 준 땅

하이라이트

에너지를 품은 이식쿨

남다른 땅, 남다른 사람들

세계를 변화를 가져다 준 땅

☞ 에너지를 품은 이식쿨​

이식쿨 주변엔 오래전부터 왕령 스키타이가 거주했다. 스키타이가 힘을 잃고 부족 단위로 해체된 뒤에도 이식쿨은 여전히 스키타이계 유목 부족의 땅이었다. 흉에서 쫓겨난 월지가 이주해왔다. 그러더니 흉에 쫓긴 오손이 뒤따라 이식쿨로 들어왔다. 다툼을 피해 월지는 이식쿨을 떠났고 중앙아시아에서 인도에 걸쳐 쿠샨 왕국을 건설했다. 대단한 성공이었다. 월지를 쫓아낸 흉은 한나라에 무너졌다. 분열된 흉은 한나라에 패할 때마다 잔병들이 이식쿨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서흉, 북흉이 모여들며 이식쿨 주변은 스키타이와 투르크가 함께 사는 땅이 되었다. 그러나 흉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이들은 ‘아틸랴’라는 지도자를 따라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로마와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헝가리에 거대한 초원 왕국을 세웠다.
흉도 이식쿨에서 힘을 길러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위구르가 멸망하고 알타이에 거주하던 토구즈(9성) 오구즈가 이식쿨로 이주해왔다. 이들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이들은 킵착 초원을 맴돌다 후라산을 거쳐 오리엔트 세계에 들어갔으며 바그다드에 셀축 투르크라는 왕국을 세웠다. 함께 이주한 일파는 아나톨리에 오스만 투르크를 세웠다. 토구즈 오구즈의 성공은 역사에 남을 만한 성공이었으며 이들 역시 이식쿨에서 에너지를 듬뿍 받았다.

명마의 고향이자 피난자들의 땅, 이시쿨

이식쿨을 떠난 사람들은 대부분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반면 이식쿨에서 뭔가 해보려 한 사람들은 그 끝이 그리 좋지 않았다. 월지를 몰아내고 이식쿨을 차지한 오손은 유연에 흡수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위구르가 멸망하고 위구르의 일파가 이식쿨 주변으로 도피하여 카라한 왕조를 세웠다.
카라한 왕조는 한때 중앙아시아와 서역을 지배하는 거대 왕국을 건설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화북(중국 북부)으로 쫓겨난 거란(서요)에 멸망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카라한 왕조를 대신한 서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칭기즈칸에 멸망했고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스키타이의 영역 ( 출처 : http://satekhealth.com/history/

이식쿨을 지배한 최후의 민족은 키르키즈다. 이들은 누구도 탐내지 않는 예니세이 강변(일명 강거)에 살았다. 이들이 거주했던 강거는 질퍽거리는 습지가 많고 겨울에 추위가 매서운 땅이었다.
키르키즈는 이 땅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세력이 약한 키르키즈에게는 어려운 도전이었다. 키르키즈는 위구르가 내분에 휩싸인 틈을 놓치지 않고 위구르를 공략해 멸망시키고 할하(현 몽골)에 정착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거란에 쫓겨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키르키즈가 고향으로 쫓겨오고 500년이 지나 지구에는 중세 소 빙기가 시작되었다.
북극해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불어오는 바람은 샤안산맥(몽골고원과 시베리아를 가르는 산맥)에 막히며 많은 눈을 뿌렸다. 키르키즈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제2의 도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땅은 에너지가 넘치는 이식쿨이었다. 그렇게 키르키즈인은 예니세이 강을 떠나 천산산맥이 펼쳐 놓은 아늑한 산악지대에 정착했다.
이식쿨을 떠난 사람들은 성공했다. 반면 이식쿨에서 뭔가 해보려 한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키르키즈는 성공할 수 있을까?

클리프 해리스 & 랜디 맨 ‘Global Temperature’

☞ 남다른 땅, 남다른 사람들

“ 一杯一杯 復一杯, 兩人對酌 山花開(둘이서 마주 앉아 술 마시니 산에 꽃이 피네)”

이태백은 이식쿨에서 멀지 않은 땅에서 태어났다. 그 때문인지 그의 시문은 호탕하고 자유스럽다. 두보의 정제되고 깔끔하며 규율 잡힌 시문에 비하면 이태백은 제멋대로다.
유목민이 그렇지 않은가? 민족적 뿌리가 어떻든 그는 이식쿨 서쪽 끝인 쇄엽성에서 태어났다. 당나라가 얼마나 국제적인지는 이태백과 안록산, 고선지, 양귀비를 보면 알 수 있다.
고구려 사람인 고선지와 소그드인 아버지와 몽골계 어머니를 둔 안록산이 라이벌이었고 이식쿨에서 태어나 호탕한 이태백과 모범적인 한족 두보가 라이벌이었다. 거기에 빠지지 않는 여인이 양귀비다. 산서 출신인 양귀비는 흉노이거나 스키타이의 피를 듬뿍 받은 여자였다. 풍만한 가슴을 가진 글래머형이었으며 몸에선 노린내가 적잖이 났고 냄새를 없애려 화청지를 자주 찾았다. 그녀의 고향, 산서는 흉이 정착한 땅이다. 양귀비 몸엔 투르크계이거나 아리안계의 피가 흐르는 여자였던 것이다.

양귀비 (출처 : 디지털 조선)

흉이 해체되고 한나라에 귀화한 남흉은 삼국시대 전세를 바꾸는 주요 변수였다. 화북을 평정한 조조는 이들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5부로 개편하여 산서에 정착하게 했다. 흉은 산서에서 국경을 지키는 일에 만족하지 않았다. 5호 16국 시대를 열었으며 흉노와 흉노의 변종인 갈(羯)은 중원에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다. 산서의 태수로 있던 이고는 수나라를 멸하고 당나라를 세웠다. 그때의 주력군이 누구였을까? 역시 흉의 무리가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남흉은 흔적도 없이 중국인이 되었다. 그것도 배고픈 서민이 아니라 꽤나 잘나가는 계층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변신에 뛰어나고 권력욕이 남다른 흉이기 때문이다.

☞ 세계의 변화를 가져다 준 땅

고선지는 이식쿨이 멀지 않은 탈레스 계곡에서 카를룩의 배신을 맛보아야 했으며 결과적으로 처참한 패배를 맛봤다. 투르크계 유목 부족인 카를룩은 당나라와의 동맹을 깨고 하루아침에 압바스 이슬람의 편에 동참했으며 고선지의 배후를 공격했다. 예상치 못한 배신에 고선지는 대패했고 7만의 당나라 군중 3만만이 겨우 탈라스 계곡을 빠져나왔다. 절반의 병력을 잃은 참패였던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날을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의 출발이라고 부른다. 이때 생포된 군인 중 제지 기술자가 있었고 제제술 사마르칸트, 바그다드, 카이로, 톨레도를 거쳐 프랑스, 독일로 전래되었고 루터의 종교개혁에 불을 댕겼다. 잠자던 유럽을 깨운 게 이슬람과 중국의 충돌이었다니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가 아닌가?
이식쿨에서 가볍게 날갯짓 한번 한 것뿐인데 유럽엔 폭풍이 몰아닥쳤고 폭풍이 지나간 뒤 화창한 날씨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아이러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