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원정대,

유라시아 횡단
그 장대한 이야기

8. 천산과 천산북로의 스텝초지

④ 페르가나 계곡

8. 천산과 천산북로의 스텝초지
④ 페르가나 계곡

하이라이트

페르가나의 방문자들,,,

하이라이트

페르가나의 방문자들,,,

☞ 페르가나의 방문자들,,,

페르가나는 풍요로운 땅이었기에 방문자의 발걸음이 멈추질 않았다.
최초 지배자는 유목 스키타이였다. 스키타이가 분해된 뒤에는 알렉산더가 찾아왔다. 알렉산더의 방문은 의외였으나 그 역시 말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엔 아직 양발을 끼우는 등자(橙子-발걸이)가 사용되지 않았다. 안장에 연결된 끈이나 천에 한쪽 발을 끼우고 말을 달렸으며 그리스 기병 역시 창을 던질 때 한 발로 일어나며 던졌다. 영화에서 보듯 양발을 등자에 끼우고 몸을 돌려 활을 쏘거나 말 등에 앉아 칼이나 창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건 꿈도 못 꾸던 시대였다. 그래도 쏜살같이 뛰어다니는 말의 위력은 대단했을 테니 알렉산더 역시 말을 얻으러 오지 않았을까?
알렉산더가 살아있는 동안 지구촌엔 70개의 알렉산드리아가 생겨났다. 새로 건설된 도시는 몇 개 안되고 스스로 도시 이름을 개명한 것이다. 그렇게 젊은 영웅은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다. 그건 이전에 알고 있는 노(老) 땅과는 달리 야망과 비전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고 그리스 북방 원정군의 뒤에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가 뒤따르고 있었다. 알렉산더를 따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새로운 땅에 정착했다. 페르가나에도 그렇게 알렉산드리아 에스카테 (Alexandria Eschate)라는 그리스 정착촌이 세워졌다.
알렉산더의 방문이 잊힐 때쯤 장건이 페르가나에 방문하게 된다. 장건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군대가 페르가나를 방문한다. 명마를 확보하기 위해 한무제가 대군을 보낸 것이다. 알렉산더가 정착촌을 건설했듯이 한 무제는 교역소를 세우고 친 중국 정권을 세웠다.

페르가나 계곡

방문자의 발길은 그 뒤로도 멈추지 않았다.
쿠샨은 ‘트랜스옥시아나-페르가나-이시쿨-이리계곡-하서회랑’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신강으로 세력을 확장했고 페르가나는 중앙아시아와 중국 서역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다. 이슬람 압바스와 당나라가 한판 붙었다. 서로의 근거지에서 꾀나 먼 땅에서 둘은 충돌한 것이다. 타협해도 될 일을 맞짱을 떠야만 한 이유는 페르가나였다. 페르가나는 명마의 공급처이며 트랜스옥시아나(현 우즈벡)로 연결되는 긴 회랑이고 카쉬카르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압바스 이슬람도 당 왕조도 내어놓기 아쉬운 동∙서 교역의 연계 도시였던 것이다. 누가 페르가나를 차지할 것인가? 동서의 무역을 누가 장악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합 답은 탈레스 전투였다.
탈레스 전투에서 패한 당나라는 쇠락의 길을 걸었고 압바스는 르네상스의 원조라고 불리는 바그다드 문예부흥기를 맞았다. 그만큼 페르가나는 중요하고 페르가나를 방문한 자들은 목적이 분명했다. 페르가나의 마지막 지배자는 티무르였다. 그는 페르가나 출신이며 친척인 바부르에게 통치권을 할양했다. 하지만 바브르는 야심이 큰 남자였다. 그는 페르가나같이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땅에 안주하고 나면 이 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바부르는 페르가나를 포기하고 카불로 근거지를 옮겼으며 세력을 키워 인도를 자기 땅으로 만들었다. 알렉산더, 몽골 군단을 돌려세운 인도를 마침내 정복한 것이다.
바부르가 떠난 페르가나는 더 이상 새 주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즈벡 족장들은 코칸드 칸국을 세우고 우즈벡키스탄 연합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 페르가나의 주민이 주인이 된 것이다.
긴 여정을 방문자와 함께 한 페르가나, 페르가나는 방문자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지만 방문자 누구의 땅도 아니었다. 한혈마의 전설이 웅성거리는 초원일 뿐이었다.

페르가나 밸리의 야생양귀비 (출처 : https://www.goodfon.com/wallpaper/kastelluchcho-di-norcha-italiya-2389.html)
페르가나 밸리의 한혈마(https://www.pinterest.co.kr/pin/39216508005324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