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원정대,

유라시아 횡단
그 장대한 이야기

9. 오아시스 교역도시를 이어가는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② 트랜스옥시아나

9.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② 트랜스옥시아나

하이라이트

불교를 세상에 알린 트랜스옥시아나

헬레니즘의 현장 트랜스옥시아나

하이라이트

불교를 세상에 알린 트랜스옥시아나

헬레니즘의 현장 트랜스옥시아나

☞ 불교를 세상에 알린 트랜스옥시아나

트랜스옥시아나는 현재 우즈베키스탄이다. 트랜스옥시아나는 이슬람 일색이지만 그래봐야 1,000년도 되지 않았다. 가장 늦게 출현했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세상에 나오기 전 트랜스옥시아나는 어떤 옷을 입고 있었을까? 초기엔 텡그리를 믿었을 것이다. 끝도 없이 광활한 초원은 하늘과 대지가 전부였다. 그래서 초원 민족은 하늘을 믿었다. 세상은 하늘과 땅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에 문화 부흥을 이끈 쿠샨 시대가 돼서야 불교는 중앙아시아에 알려졌다. 불교가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이며 교역의 중심지인 트랜스옥시아나에 전래된 건 큰 행운이었다. 동쪽으로는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전파되었고 서쪽으로는 후라산을 거치고 메소포타미아를 지나 이집트에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불교는 이집트까지 멀리 여행을 떠나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예수가 남긴 말은 여러 사람에 의해 성경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예수가 남긴 말씀은 너무나 불교적이라서 놀랐다는 학자들이 많다. 형식주의에 빠진 브라만에게 내면을 보라고 일침을 가한 붓타와 바리새파에게 기도하는 위선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라고 공격한 것은 같은 맥락이었다. 형식과 틀에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던진 두 분의 메시지가 동일했던 것이다. 예수에게는 기록이 없는 십여 년의 시간이 있다. 그동안 예수는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십수 년 만에 돌아온 예수는 왜 불교적 사고를 피력했을까?


하나님은 악인(惡人)에게나 선인(善人)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 마태복음 –

잘났다고 기뻐하는 자는 그만큼의 업이 기다리고 있고 못났다고 풀이 죽은 자에겐 기쁨이 대기하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예수의 가르침은 선택받은 유대인이나, 하나님을 믿어 구원받았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더더군다나 예수는 죽음으로서 그들의 죄를 대신하였다. 육 보 시 한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신과의 계약을 이행해서 구원받으려는 것이다. 구원은 나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너희를 위해 나를 준 것이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깨우쳐서 널리 대중을 구하는 마음을 불가에서는 보리심이라고 한다.  동일한 문맥이 아닌가?
불교는 서쪽으로 전래되어서 새로운 생각을 갖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유대교의 작은 공간에서 나와 세상의 등불이 되도록 성취하는 데, 작은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러니 동쪽에서뿐 아니라 서쪽에서도 불교는 성공한 것이다. 반면 역사는 불교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준다.
부처는 열반하는 순간까지 법(法)을 강조했지만 법을 강조한 사찰엔 풀만 무성했다. 나무아미타불만 외치라고 알려준  사찰엔 시주 물이 넘치고 번성했다. 풀만 부성한 사찰은 수행자를 위한 폐쇄된 공간이 된 반면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건 그나마 번성한 사찰이었다. 이 무슨 괴리란 말인가?
트랜스옥시아나가 불교를 동방과 서방에 전래해 주었건만 트랜스옥시아나엔 불교가 없다. 인도에서 부처가 태어나고 법을 완성했건만 인도에도 불교가 미비하다. 세상은 그런 괴리를 인정하는 불합리의 공간이 아닌가?

아소카왕이 불교를 포교한 지역 (출처 : 위키백과)

☞ 헬레니즘의 현장 트랜스옥시아나

헬레니즘 시대는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부터 로마 제국의 이집트 정복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서구적 시각에서 시작한 헬레니즘은 ‘그리스화 한 세계 문화’의 확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레니즘의 본래 뜻은 복합 문명을 가리킨다. 이질적인 문명이 융합하여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것이 헬레니즘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트랜스옥시아나는 헬레니즘의 시작이자 중심이었다.
트랜스옥시아나는 이란계 소그드인이 활동할 때는 세련된 페르시아 문명의 텃밭이었고 투르크계 민족이 대거 이주해온 뒤로는 투르크 문화의 샘이 되었으며 몽골의 통치기에는 몽골의 외투를 걸치기도 했다.
페르시아가 강국이었을 때는 페르시아 문명의 혜택을 받았고 북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걸쳐 왕국이 세워졌을 때는 인도의 정신이 스며들었다. 한나라, 당나라가 중앙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하던 때는 중국 문화도 적지 않게 유입되었다.  페르시아, 이슬람, 인도, 중국이라는 거대 정국 왕국의 변방에 위치했으며 문명대국의 문화가 유입되고 충돌하며 새롭게 개화한 장이었다. 따라서 헬레니즘을 이야기할 때 트랜스옥시아나는 빼놓을 수 없는 땅이었다.
문화는 서로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트랜스옥시아나는 그런 가교 역할에도 충실했다. 반면 자신은 빈약했다. 스스로 만들어낸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트랜스옥시아나는 파미르고원, 키질쿰과 카라쿰 사막이 대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앙아시아의 반건조지대다. 그들은 농경민으로도 유목민으로도 삶의 안정적이지 않았으며 결국 상인의 길을 택했다.
상인에게 문화란 전달해 주는 물건이지, 창고에 쌓아두는 물건이 아니다. 트랜스옥시아나에서 문화는 곳간에 있기보다 낙타와 말의 등에 있었고 동서의 이질적인 문화는 이들에 의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헬레니즘은 트랜스옥시아나에서 그렇게 탄생했다.

트랜스옥시아나인 현 우즈벡 (출처 : 세계삼한역사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