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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네팔 하면 히말라야, 히말라야 하면 네팔

 

산악 트레킹은 마음과 정신을 정화하는 수련
희랍 시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일단의 무리를 소요학파라 합니다. 그들은 정원을 거닐며 회의(懷疑) 하고 질문하길 즐겼다고 합니다. 가벼운 걷기는 뇌의 활동을 자극해서 사물에 대한 사유와 사고의 논리는 돕는다고 합니다.
정원을 거닐며 집요하게 몰입한 회의와 질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희랍 정신의 토대를 세웠습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사고의 원동력은 걷기였습니다. 그가 걷던 정원은 자연 상태의 대지였습니다. 자연과 교감하고 내면에 몰입할 수 있는 자연 상태의 존재. 현대인은 빛과 소리의 공해로 인해 내면과 소통하는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별도로 수련을 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때로는 사회생활과 일정 부분 단절해야 해서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생활에서 자연의 인성을 찾고 내면과 소통하는 한 가지 길로 네팔 산악트레킹이 좋습니다. 산악트레킹은 철저하게 자신만의 행위입니다. 여럿이 같이 떠난 여행일지라도 걷는 동안은 혼자입니다. 특히 고산을 걷는 네팔 트레킹은 처음 접하는 고도에서 신체가 감당해야 하는 고단함이 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며칠간 계속해서 걸어야 하는 수고도 감수해야 합니다. 왁자지껄 수다를 늘어놓을 여유가 없고, 하루 종일 온 정신을 걷는 데만 집중해야 합니다.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다는 게 어쩌면 맞는 말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충족감이 넘칩니다. 단순하고 무미건조함에도 그렇습니다. 모든 도인이 히말라야를 궁극으로 여기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네팔 트레킹은 산악트레킹의 메카이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산악트레킹
트레킹은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소달구지를 타고 하는 여행’이란 뜻으로 유럽 사람들이 대자연을 찾아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고원을 천천히 걸어 여행한 데서 생긴 말입니다. 산악인들이 등반을 위해 접근하던 네팔의 히말라야 등 험한 산악 길이 일반인에게 공개되면서 산악트레킹이라는 용어로 정착했습니다. 트레킹은 등반과 하이킹의 중간 형태이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장거리 야영 여행을 하는 백패킹(Back Packing)과 구별됩니다. 산악트레킹은 고원이나 산악지대를 짐은 짐꾼에게 맡기고 한가로이 걷는 등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악트레킹은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집니다. 히말라야를 포함한 여타 지역에서의 산악트레킹 시스템은 비슷합니다. 짐은 별도로 운반되며 트레커는 가벼운 등짐만 메고 정해진 하루 거리를 걸으면 됩니다. 하지만 네팔은 여타 지역이 갖지 못한 특별함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이 주는 감동입니다. 다른 지역은 말이나 야크, 지프로 짐을 목적지에 실어주지만 네팔은 사람이 내 짐을 지고 곁에서 동행합니다. 짐을 메면서도 항상 흥겹고 밝게 웃습니다. 그곳엔 단지 짐을 날라주는 것을 넘어 인간적 신뢰와 안전을 도모해 주는 그들의 따뜻함이 있습니다.

둘째는 산이 주는 감동입니다. 산이 거대해 하루 이틀거리의 산릉에 올라도 만년설 산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산은 멀리서 봐야 온 전체를 볼 수 있고 전체를 봐야 산의 자태와 흐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안나푸르나의 푼힐 전망대에서는 안나푸르나 연봉과 다울라기리(Dhaulagiri) 연봉, 람중히말(Lamjung Himal), 투크체(Tukche) 등 다양한 산군을 360도 돌아가며 조망할 수 있습니다. 에베레스트 가는 길의 샹보체(Syangboche)에서도 덩치 큰 산봉우리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8,000m 고봉인 에베레스트(Everest), 로체(Lhotse), 로체샤르(Lhotse Shar), 마칼루(Makalu)를 비롯하여 웅장한 아마다블람(Ama Dablam), 캉테카(Kangtega), 탐세르쿠(Thamserku)등 산의 위세에 감탄하게 됩니다. 네팔 히말라야만큼 산이 주는 감동이 강렬한 곳도 없습니다.

셋째는 이야기가 주는 감동입니다. 산을 스포츠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항상 그 이상의 무엇을 설정합니다. 산악인은 술도 많이 먹고 직업 운동선수같이 자신에 철저하지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전문 산악인을 스포츠맨 이상으로 평가한다. 이유가 뭘까요? 스포츠맨은 보상을 받지만, 등산의 무보수이고 무보상의 행위입니다. 스포츠는 생명을 담보로 하지 않지만 등산은 생명을 담보로 합니다. 정보와 장비가 발달하지 않던 초기에 산악인은 눈물겨운 사투 끝에 아름다운 죽음을 맞곤 했습니다. 산과 자신을 대상으로 벌인 끊임없는 도전은 ‘알피니즘’이란 정신을 낳았고 그 행위는 현대에 이르러 히말라야에서 꽃피웠습니다. 히말라야엔 삶과 죽음, 고통과 환희가 어우러진 인생 드라마 이야기로 산봉우리마다 걸려있습니다.

네팔 히말라야는 누구나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안내인과 도우미가 함께하는 여행. 내가 넘쳐도 상관없고 부족해도 문제 되지 않는 여행입니다. 나의 등산 도우미와 함께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면 됩니다. 일행들과 많이 떨어져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내 곁에 나의 등산 도우미가 언제나 함께 있고 지켜줍니다. 일정 일수와 어디를 가느냐, 어디까지 가느냐에 따라 산행의 강도는 차이가 있습니다. 나의 능력에 맞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히말라야는 그대로 있고 내가 얻어 가는 감동은 동일합니다. 산길을 걷는 데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가볍게 지인들과 주변 산을 오를 정도면 누구나 마음먹을 수 있는 곳이 히말라야 트레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