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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안나푸르나로 떠나자

 

산들은 하나의 다른 세계이다. 지구의 일부라기보다는 동떨어져 독립된 신비의 왕국이며 이 왕국에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다.” -가스통 레뷔파(Gaston Rebuffat)

인류가 최초로 오른 안나푸르나는 프랑스 원정대의 영광이었다. 알피니즘이 싹튼 샤모니(Chamonix)에는 전문적인 등산 가이드가 있다. 그들이 중심이 되어 꾸려진 프랑스, 아니 당시 세계 최강의 정예 원정대가 프랑스 안나푸르나 원정대였다. 이 원정대에 참가했던 가스통 레뷔파는 ‘雪 와 岩’이라는 책을 저술했고 설과 암은 그가 몸소 알프스에서 등반을 통해 얻은 등반기술을 집대성한 대작이다. 일본어로 된 책을 60년대 산악인들은 밤을 새워 한국어로 번역했고, 기술 등반이라는 새로운 문명에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엔 ‘엔사’로 불리는 샤모니 등산학교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문 산악 가이드를 배출하는 이곳에 한국 산악인들은 유학을 가기도 했다. 그 시발점이 가스통 레뷔파가 저술한 설과 암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이뤄낸 업적이 인류 최초로 8,000m에 발자국을 남긴 1950년 프랑스 안나푸르나 등반이다.
안나푸르나는 한국 산악인들과 질긴 악연이 있다. 1979년 은벽 산악회 김영자 씨는 8,000m 정상에 한국 최초의 여성으로 서기를 간절히 바랐고 정상 등반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다. 하지만 정상을 증명할 사진이나 자료가 부족했다. 외국 언론의 집중적인 의혹과 국내 산악계의 정상 등정 자료 요청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녀는 산악계를 떠나 나이가 지긋한 중년이 되기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에겐 어떤 고민과 고충이 있었을까?
엄홍길 씨는 8,000m 14개 봉우리 중 가장 어렵게 안나푸르나를 올랐다. 여러 번에 걸쳐 시도했고 그중 한 번은 동료 셀파의 추락을 잡다가 로프가 발목을 휘감아 복합골절을 입은 상태에서 하산해야만 했다.
그는 후에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며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다시는 산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굳은 의지로 슬럼프를 극복했고 1년 후 안나푸르나에 다시 도전했다.”
그때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여성 등정자인 지현옥 씨가 등반대에 참가한다. 정상에서 내려오던 엄홍길 씨는 정상 30분 거리에서 쉬고 있는 지현옥 씨를 만났고 조금만 가면 된다고 격려하며 자신의 등반 파트너인 다와 셀파에게 지현옥을 도와 정상에 다시 한 번 가달라고 부탁한다. 캠프 3에 도착해 쉬고 있던 엄홍길 씨는 16시 20분 지친 모습으로 캠프3에 도착한 다와셀파를 만났다.

[또렷히 보이는 북두칠성]

제1일 이동 경로: 포카라 → 나야풀 → 비레탄티 → 팅게퉁가
트레킹 구간: 비레탄티 → 팅게퉁가
트레킹 소요시간: 4시간 30분
최고고도 지점: 팅게퉁가(1,540m)
일일 고도차: 470m
주의사항: 반일거리지만 햇빛에 계속 노출되어 덥고 갈증이 심하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시작하는 나야풀까지는 차량으로 2시간 30분 달려가야 한다. 안나푸르나는 지대가 낮고 트레킹이 활성화되어 산간마을까지 이곳저곳 도로를 만드는 중이다. 담푸스는 이미 차량으로 진입할 수 있고 계획에 의하면 시울레바잘을 거쳐 촘롱 아래 뉴 브릿지까지 도로가 연결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최근 몇 년 중국 여행객이 네팔에 물밀듯 몰려오고 있다. 몇만이 아니라 몇십만 아니 곧 몇백만이 될 거라는 추측이다. 네팔인들의 생활을 향상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마음먹고 떠난 트레킹이 시장터를 다녀온 꼴이 될까 우려된다. 산이야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그대로인데 산을 가는 방법이 바뀌면 산을 즐기는 태도가 바뀔 테고 트레킹에서 얻고자 한 무엇인가가 사라질 것이다.
대중화는 양면의 칼이다. 소수의 독점으로부터 다수의 향유라는 가치전환이기도 하지만 희소성의 가치를 일반화시키는 독을 품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는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는 두 마리의 토끼에 족쇄를 걸어 양자를 일정 거리에서 만족시키려 한다.
뉴질랜드의 밀포드 트랙이 가장 대표적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보를 확대하고 시스템과 시설을 고급화하여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하는 대신 비용을 대폭 높여 적당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으면 들어오지 못하게 봉쇄하는 것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허가비가 $30이다, 현실은 자연을 지키기에 부족하다. $300으로 높인다면 어떨까?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만이 안나푸르나를 찾을 것이고 그로 인해 히말라야는 덜 북적거릴 거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호텔비나 차량비 등 도심 체재비는 계속 오르건만 산은 그대로다. 그래서 배낭여행자들은 안나푸르나로 몰려든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일주일을 보내기 위해서다.
산에 대한 예의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남루한 복장과 풀어진 정신 상태로 그저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보게 된다.
인도는 6개월 이상 체류를 못 하므로 비자를 받으러 네팔로 왔다는 그들. 비자가 발급되는 며칠간 트레킹 한다는 정형화된 코스로서의 안나푸르나…. 너무 유명해서 겪는 대가라 해도 치졸하기만 하다. 비레탄티를 출발해 왼편 길을 걸으며 트레킹은 시작된다. 모디콜라 옆으로 촘촘히 연결된 마을을 지나면 강을 건너기 전 마지막 마을에 이른다.

제2일 이동 경로: 팅게퉁가 → 고라파니
트레킹 소요시간: 7시간
최고고도 지점: 고라파니(2,750m)
일일 고도차: 1,210m
구간 특징: 1,200m를 올라가야 한다. 온종일 오르막이 이어지니 서두르지 말고 체력을 잘 분배하자
주의사항: 고라파니로 이어지는 긴 오르막

인간이 지구에 가장 해악한 존재라고 한다. 지구표면에 붙어 오글거리며 지구를 망가뜨리는 게 어쩌면 적당한 표현인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방편이라 다른 선택이 쉽지 않다. 밭을 일구어야 하고 하루 세 끼니를 먹어야 하는 조건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나 혼자가 아니라 둘이 되고 둘이 열이 되어 마을을 이루게 되면 자연히 인간의 영역이 넓어지고 인간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자연의 영역은 줄어든다.
안나푸르나를 걷는 이틀째, 풍요의 땅엔 어디에도 풍요가 보이지 않는다. 나무하나 없이 촘촘히 들어선 다락논과 인간의 영역뿐이다. 팅게퉁가에서 울레길로 오르는 긴 오르막은 특히나 그런 감정을 갖게 한다. 이런 계단 길을 걸으러 네팔에 온 게 아닌데…. 히말라야는 어디 갔는가? 반나절 계속된 오르막이 끝나면 그제야 계곡 사이로 하얀 봉우리가 얼굴을 보여준다. 마차푸차레다. 포카라 공항에서부터 시작해서 트레킹이 끝나는 날까지 늘 함께하는 안나푸르나의 주인이다. 실망은 여기까지다.
울레리를 벗어나면 인간의 거주를 제한해서 빽빽한 랄리구라스 숲이 잘 보존되고 있다. 울레리를 출발하면 곧 반탄티에 닿는다. 반탄티는 ‘반’이라는 뜻으로 안나푸르나를 트레킹 하는 동안 여러 번 반탄티라고 불리는 마을을 지난다. 쿰부에 남체~사나사간 낭만가도가 있다면 안나푸르나엔 반탄티부터 낭게탄티까지 이어지는 정원길이 있다.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만발한 밀림 속을 걸어 들어가는 기분은 향긋하기만 하다. 특히 봄이라면 정원 가도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만발한 랄리구라스 꽃이 붉은색, 분홍색, 흰색까지 변화무쌍한 얼굴을 보여준다.
정원 가도는 낭게탄티(2,430m)에서 끝나고 고라파니로 이어지는 긴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파르지는 않지만, 은근히 지치게 하는 긴 모르막이다. 울레리에서 시작한 하루는 고라파니에서 끝나지만, 몸을 노곤하게 할 정도의 피곤함이 몰려온다. 롯지에 여장을 풀고 몸 상태를 잘 살펴봐야 한다. 도착 후 1시간이 지나고부터 고산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2,750m 고도에 웬 고산증세냐고 할 수 있지만, 고도를 1,200m 이상 올렸으므로 나타날 수 있다. 몸살기나 두통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남들이 더운물 샤워를 한다고 따라 하면 안 된다. 샤워하면 그 즉시는 좋지만 빼앗긴 열을 보충할 여력이 없으면 몸살이나 두통을 동반한 고산증세를 가중한다.
다음 날 새벽 전망대로 출발하는 일정을 고려해야 한다. 컨디션 조절을 잘못하여? 전망대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제3일 이동 경로: 고라파니 → 푼힐 전망대 → 타다파니
트레킹 소요시간: 8시간 30분
최고고도 지점: 푼힐 전망대(3,210m)
일일 고도차: -200m
주의사항: 겨울 시즌엔 아이젠을 배낭에 넣고 가자.

울레리에서 반탄티 구간에 눈이 오면 빙판길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식당에 모인다. 새벽 4시, 준비된 죽 한 그릇과 차 한잔으로 간단한 요기를 한다. 밖으로 나와 랜턴을 손으로 가리며 하늘을 본다. 가득한 별이 어두운 하늘을 덮는다. 시원한 바람이 목을 휘감아 윈드자켓의 지퍼를 턱밑까지 올리며 진저리를 친다. 왜 이 난리야, 새벽부터, 푼힐이 얼마다 대단하길래….’
10년이 넘은 옛날 산행일기에 묘사한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푼힐이 있는 한 고라파니의 하루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여기저기에 불빛은 연체동물의 몸부림같이 출렁거리면서 끝도 없다. 푼힐은 보통 걸음으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고원평야다. 이 정도의 자연조건을 갖은 능선은 많을 텐데 유난히 푼힐이 대접받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안나푸르나 5대 전망대중 4개의 전망대는 안나푸르나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안나푸르나와 주변 봉우리만 조망할 수 있다. 하지만 푼힐은 안나푸르나 주 능선이 뻗어 내린 지능에 위치해서 계곡을 사이에 두고 안나푸르나와 자웅을 겨루는 다울라기리 연봉(8,172m), 투크체(6,920m), 닐기리 연봉(7,061m), 그 너머로 겹겹이 들어선 이름 없는 티벳 고봉까지 다양한 산을 볼 수 있다. 여타의 전망대에서 조망하는 안나푸르나 연봉(1~7봉까지)과 남봉(7,273m), 히운츄리(7,426m), 람중히말산군(6,986m)은 물론이다. 강렬하기로 말하면 칼라파타르가 으뜸이지만 산의 다양한 조망으로는 푼힐을 따를 전망대가 없다. 특히 여명에 물들어가는 황금봉의 찬란한 광조는 감동적이다.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서늘한 바람에 몸이 오그라든다. 바람을 동반해 찾아오는 여명은 몸서리치게 춥다. 배낭에 방한 옷을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푼힐이 오늘 일정의 전부가 아니다. 푼힐은 오늘의 30%일 뿐이다. 거리와 시간만 그런 게 아니라 감동도 그렇다. 푼힐에 갔다 왔다고 남겨진 감동을 대수롭지 않게 보면 안 된다. 푼힐 반대편 능선으로 이어진 산길을 가다 보면 능선 위에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도 다울라기리의 장엄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푼힐에 미처 가지 못했어도 아쉬워하지 말자, 히말라야는 야박하지 않다. 포근하고 다정하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전망대를 지나면 삼림이 울창한 능선길이다.
랄리그라스가 만발한 봄에는 걷는 동안 행복감에 충만하게 된다. 울레리(윗마을이라는 뜻)에서 점심을 먹고 반탄티로 내려가는 길 역시 원시 상태의 울창한 삼림이 유지되어 있다. 이 구간은 가파른 내리막이고 그늘져있어 겨울철엔 빙판 지기 쉬운 곳이다.
겨울철엔 체인 아이젠과 스틱을 배낭에 꼭 넣어가야 한다. 나에게 필요한 장비는 포터에게도 필요하다는 걸 한번 숙지하자. 고용된 포터 중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짐을 메는 사람이 있다. 맨발이 그들 생활의 일부라고 해도 네팔 관광성이 정한 규정에도 어긋나고 외국인의 눈에 자칫 자신밖에 모르는 Ugly Korean으로 비칠 수 있다.
네팔 관광성의 규정에 따르면 눈이 있는 곳에서는 고용인(셀파와 포터)에게 등산화와 선글라스를 제공하게 되어있다. 원정대가 아닌 트레킹이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짐꾼과 계약을 할 때 등산화와 선글라스가 있는지 사전에 확인하는 건 어쩌면 gentle trekker의 의무이기도 하다. 겨울시즌이거나 5,000m를 넘는 트레킹이라면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꼭 확인하자. 그리고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당신은 안 된다고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네팔 사람도 필요한 장비를 준비할 테고 사소한 장비지만 그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Tip: 타다파니는 전망 좋은 마을이어서 항상 롯지가 만원이다. 조용하게 묶고 싶다면 촘롱 방향으로 40분을 내려가면 넓은 초원을 앞마당으로 가진 롯지가 하나 있다. 마을 이름은 추일레다. 하지만 방이 10개밖에 없어 내려갔다. 방이 없으면 1시간 30분을 다시 올라와야 하고 해 질 녘에 날파리가 많다. (단체트레킹인 경우 고용인을 내려보내 사전 확인해야 한다.)

제4일이동 경로: 타다파니 → 촘롱
트레킹 소요시간: 6시간
최고고도 지점: 타다파니(2,590m)
일일 고도차: -390m
주의사항: 긴 내리막과 오르막이 이어진다. 긴 내리막이라서 무릎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츄리가 앞 능선이고 안나푸르나 주 능선은 그 뒤에 있다. 타다파니와 촘롱에서의 전망은 남봉과 히운츄리, 마차푸차레다. 안나푸르나 주봉은 머리만 조금 보일 듯 말 듯해 유쾌한 상상을 하게 한다.
타다파니에서 촘롱으로 가는 길은 처음 랄리그라스가 만발한 원시삼림지대를 지나 계곡을 건너 가파른 오르막을 두 번 올라야 닿는다. 이것도 힘든데 몇 년 전 산사태로 길이 유실되어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 해서 촘롱가는 길은 더 멀어졌다. 여행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네팔이라고 해서, 트레킹이라고 해서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해악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트레커들이 모이는 공공장소나 공공건물에 가면 종종 사람을 찾는 공고판이 붙어있다. 언제 어디서 보았다는 사람이 있고 그 후로는 그의 행적에 대해 알려진 게 없다. 언제 어디서 마지막으로 확인되었고 그 후로는 그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는 그런 식의 문구다, 그리고는 그의 소식을 알려주는 사람에게 몇천 불에서 몇만 불까지 사례하겠다는 문구도 들어있다. 가족이 애타게 히말라야 골짜기를 다니며 롯지 마다 붙였을 포스터다. 포스터를 붙인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젊은 친구들이고 사라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네팔이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던 10여 년 전 강도를 만난 미국 남녀를 도와준 적이 있다. 여자는 옷이 찢긴 상태에서 롯지로 뛰어들어와 살려달라고 했고 자신의 남자친구가 칼에 맞아 뉴브릿지 부근 숲에 누워있다고 했다. 롯지 주인과 사람들이 우르르 1시간을 뛰어 내려가 미국 남자를 만났을 때 젊은이는 팔에 칼을 맞고 심하게 피를 흘린 상태였다. 둘 다 큰 사고 없이 수습되었지만 큰일이 벌어질 수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기가 없는 뉴브릿지를 둘이 해 질 녘에 걸어간 게 잘못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뉴브릿지는 숲이 우거졌고 오가는 행인이 없어 강도들에게는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또 한 가지를 이유를 들라면 젊은 혈기에 겁이 없었던 게 화를 불렀다. 미국 친구들에게는 보호해줄 현지 고용인이 없었고 강도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강도는 그들에게 질문했다.
“혼자 왔느냐?”
이 질문의 정답은 어떤 경우든
“NO, I am belong to group trekking, so, many people behind me. (아니요, 난 단체로 트레킹 와서 내 뒤에 여러 사람이 오고 있다)”
그러니 딴 생각하지 말라는 언질을 주어야 한다.

Tip: 5대 전망대 트레킹을 계획한다면 타다파니에서 촘롱으로 가지 말고 간드럭으로 가는 게 좋다. 간드럭이나 촘롱이나 전망은 비슷하지만 가는 길은 훨씬 부드럽고 편안하다. 간드럭에서는 하루일정으로 포카라로 돌아가거나 이틀 일정으로 란드럭, 담푸스로 이어지는 트레킹을 택할 수 있다.

[하늘이 아름다운 포카라]

제5일이동 경로: 촘롱 → 도반
트레킹 소요시간: 6시간
최고고도 지점: 시노아(2,340m)
일일 고도차: +103m
주의사항: 시노아, 밤부로 이어지는 내리막이 길고 가파르다. 계속된 내리막은 무릎에 부담을 준다. 쉬어가며 가자.

산은 가까이 갈수록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산은 멀리서 보아야 한다. 산을 오르려는 자는 다가가고 바라보려는 자는 산과 거리를 둔다. 촘롱까지는 주위를 맴돈 것이지만 촘롱을 떠나면 신성한 어떤 곳으로 들어가는 길에 접어든다. 산을 악마의 거처라고 생각한 유럽인들은 몽블랑을 두려워하고 경원시했다. 과학의 발달과 지성의 개화는 몽블랑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스위스 과학자 소쉬르가 몽블랑등반을 제안하고 28년이 지난 1786년 샤모니에 사는 목동 발마가 초등을 이룬다. 이로써 몽블랑의 신화를 깨졌고 근대 등산이 시작되었다. 몽블랑이 유럽의 신성이었다면 안나푸르나의 신성은 마차푸차레다. 네팔에서 등반이 허락되지 않는 유일한 봉우리며 쿰부의 아마다브람과 함께 네팔 히말라야를 대표하는 미봉이다. 현지인들이 말하는 신성한 어떤 곳은 마차푸차레다. 하지만 이 봉우리마저도 인간의 발에 짓밟힐뻔한 적이 있었다.
네팔 영국대사관 무관이던 로버츠 제임스(Robert Jeans)는 네팔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 정상 200m 이내는 접근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등반허가를 받아낸다. 그가 이끄는 등반대는 1957년 마차푸차레 등반에 나섰고 명예를 존중하는 영국신사답게 정상 200m 전에서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를 지켜봐야 한 안나푸르나의 주민들은 신의 노여움을 두려워하며 울분을 삭였다.
인류가 문명을 만들어낸 이후 깨달은 여러 불문율 중 하나가 내가 싫어하는 걸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자는 몸소 행함으로써 도를 전하고, 남이 싫어하는 걸 미리 살펴 조심하면 현자가 아니라도 존중받았다. 존중받으면 자기 뜻을 도모하기 쉬우니 결국은 나를 위한 게 아닌가? 친구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던 로버츠 제임스는 퇴임 후에도 마차푸차레가 보이는 포카라를 떠나지 못했다. 한평생 마차푸차레만을 바라보며 살았고 마차푸차레가 잘 보이는 침대에 누워 일생을 마감했다. 그가 끝내 마차푸차레를 버리지 못한 이유가 뭘까…. 평생 반성하려 한 건 아닌가…. 그가 오르려 한 건 산봉우리가 아니라 네팔인의 신심이기 때문이다.
촘롱을 벗어나면 시노아를 거쳐 밤부에 이르도록 마차푸차레도 보이지 않는다. 밤부를 지나며 계곡 옆으로 이어진 길은 굴곡이 심해 들쑥날쑥하다. 하지만 간간히 마차푸차레가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도반은 계곡에 자리 잡은 전망 좋은 롯지다. 깊은 계곡의 고요가 피어오르는 안개와 조화로운 곳이라서 그냥 하루 더 머물고 싶다.

제6일이동 경로: 도반 → 데우랄리
트레킹 소요시간: 5시간
최고고도 지점: 데우랄리(3,230m)
일일 고도차: +927m
주의사항: 겨울시즌 트레킹이라면 데우랄리 전 사태지역을 조심해야 한다. 먼저 주변을 살피고 일단 들어서면 신속히 통과하자.

점심 먹는 지점이 적당하지 않다. 히말라야 롯지는 1시간 30분 거리라 점심으로 너무 이르고 데우랄리는 5시간 걸리는 거리라서 좀 늦다. 단체 트레킹이 아니면 간식을 단단히 준비해서 힌쿠 오두막에서 한가롭게 먹는 게 좋다. 힌쿠 오두막은 아주 가파른 오르막의 끝이므로 어차피 쉬어가는 길목이다.
힌쿠 오두막은 바위 아래를 파고들어 간 넓은 비박(텐트없이 자는 숙박)지다. 가장 높은 정점은 숲길을 걷는 내내 답답했던 시야가 트이고 마차푸차레가 전면에 나타난다. 여기서 보는 마차푸차레는 포카라나 푼힐에서 본 모습과 달리 꼬리가 없다. 물고기 꼬리로 불리는 마차푸차레의 정상은 두 개의 봉우리가 가벼운 어깻짓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정상이 꼬리 모양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성의 계곡에서 마차푸차레는 깎아지른 삼각뿔의 단면으로 보여진다. 포카라나 푼힐에서의 본 봉우리 하나는 어디갔는가… 무엇이 마차푸차레의 진짜 모습인가…. 어리석인 질문이다. 산은 그대로인데 내가 자릴 옮긴 게 아닌가. 이를 두고 산이 자리를 바꾸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평소의 내가 그렇지 않은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바라보면 숨겨진 봉우리가 보인다. 겹쳐있어 구분하기 어려울 뿐 분명 두 개의 봉우리다. 산을 보는 나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힌두교 사두(수행자)는 수련의 절정으로 히말라야를 찾는다. 스님도 예외가 아니다. 산줄기 명당자리는 사찰이 꿰차고 있다. 도가에서 도인은 산이 집이고 산과 하나가 된 삶을 산다. 산은 그럼 뭔가? 히말라야를 걸으며 道에 한발 다가간다는 우스꽝스러운 설정을 해본다. 머리를 어지럽게 하던 잡념도 고도가 높아지면 달아나버린다. 하나를 집중적으로 사고하고 또 사고하고 어느 순간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난 무엇을 얻은 것인가…. 생각의 힘이 생겼고 생각을 지우는 힘을 얻은 것인가.. 힌쿠바위 오두막에서는 누구나 행자가 되어 마차푸차레를 바라본다.
힌쿠오두막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데우랄리에 다다르기 전 눈사태 지역을 건너게 되는데, 히운츄리에서 떨어진 눈이 주변을 휩쓸고 내려와 길을 쓸어버린 곳이다. 겨울 시즌 특히 2월에는 조심해야 한다. 불과 20여 미터 거리지만 잘못 눈사태를 맞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눈사태는 밤새 얼어있던 눈처마가 아침 햇살을 받으면 일어난다. 그만큼 아침 햇살은 강렬하다. 겨울시즌이라면 아침 햇살이 드는 9시 이후에서 정오까지는 이 구간을 지나가지 않는 게 좋다. 반면 일출 전이나 오후엔 무리 없다. 일출 전에는 히운츄리의 눈처마가 얼어 있어서 안전하고 오후엔 오늘 떨어져 내릴 건 다 떨어져 내린 후라서 괜찮다.

제7일 이동 경로: 데우랄리 → MBC
트레킹 소요시간: 4시간
최고고도 지점: MBC(3,700m)
일일 고도차: +470m
주의사항: 데우랄리 → MBC 구간엔 롯지가 없다. 고도가 높아 시간도 많이 걸린다. 주변에 7,000m 설봉이 있어 날씨도 변덕스럽다. 배낭에는 윈드자켓과 다운패드 자켓, 그리고 간식과 충분한 물이 있어야한다.

데우랄리에서 MBC 가는 옛길은 히운츄리 능선 아래로 잘 다듬어진 길이었다. 하지만 해빙기 히운츄리에서 떨어져 나간 눈처마가 눈사태를 일으켜 4명의 유대인 트레커가 죽음을 당한 일이 있었다. 설마 하던 일은 다음 해 또 벌어졌다. 필자가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던 15년 전 10여 분을 앞서가던 독일팀이 눈사태를 맞아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났다. 그날 아침 데우랄리에서 차를 마시며 휴식을 하지 않았다면 나도 그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눈사태 구간을 건너갔을 테고 사고의 한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그 후로 강을 건너 반대편으로 우회하는 길을 만들어서 지금은 모두 안전한 길로 트레킹을 한다.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2년에 걸쳐 8명의 인명을 앗아간 인간의 아둔함만이 유산으로 남겨졌다.
강을 건너 반대편 비탈을 따라 걷는 길은 2시간 정도 돌아가야 하고 눈이 내리면 길이 미끄러워 힘이 많이 든다. 따라서 눈 사태위험이 없는 봄이나 가을에는 히운츄리 능선 아래 옛길로 가는 게 편하고 빠르다. MBC에 다다르면 돌 바닥에 MBC라는 글씨와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글씨를 보며 ‘KBS는 언제쯤 나오나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KBS는 없다. 안나푸르나에 방송국은 MBC (Machapuchare Base Camp)와 ABC(Annapurna Base Camp)만 있다.
MBC에 도착하면 점심때라 ABC로 올라가고 푼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고산증세로 고생할 수 있다. 둘째는 예약을 안 했으면 방이 없어 다시 MBC로 내려올 수 있다. 이 경우엔 MBC에 너무 늦게 내려와 MBC에도 방이 없을 수 있어서 아주 난감한 상황이 된다. 세 번째는 오후 날씨는 대체적으로 흐려지므로 전망도 없고 데우랄리부터 ABC까지 하루에 가기는 고도차이가 커 힘들다는 것이다.
무리하지 말고 MBC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을 권한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MBC까지 바쁜 걸음을 재촉했으니 발에게 반나절의 휴가를 주자…. 바쁜 일정 중에 갖은 한가로움이 때로는 트레킹의 감칠맛을 더한다.

Tip: 이렇게 일정을 바꾸어 하루를 단축해보자
제5일: 촘롱 → 히말라야 롯지(6시간 소요)
제6일: 히말라야 롯지 → 데우랄리 → MBC (8시간 소요)
단, 데우랄리부터 mbc 구간은 고도가 높고 오후에 일기가 나빠진다. 겨울시즌엔 눈이 쌓여 있어 시간이 더 걸린다. 단축 일정을 선택하기 전에 컨디션과 데우랄리 이후의 상태를 먼저 점검하자.

제8일 이동 경로: MBC → ABC → 시노아
트레킹 소요시간: 10~11시간
최고고도 지점: ABC(4,150m)
일일 고도차: +450m / -1,360m
주의사항: 뱀부도착 시간에 따라 시노아로 갈지 여부를 정한다.

뱀부~시노아 구간은 3시간 거리다. 4시 이후에 뱀부에 도착했다면 더 가지 말고 뱀부에서 숙박해야 한다. 새벽을 가르고 ABC로 출발한다.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이유는 푼힐에서와 같이 일출 때문이다. 안나푸르나 주 능선과 히운츄리 능선이 U자를 그리며 베이스캠프를 감싸고 있고 U자의 터진 부분마저도 마차푸차레가 막고 있어서 해가 늦게 들어온다.
계곡에 해가 들어오지 않더라도 안나푸르나 주봉에 햇살이 걸리면 빛이 반사 되서 사진 찍기가 좋지 않다. 시린 안나푸르나 남벽을 사진에 담으려면 늦어도 7시까지는 ABC에 올라가야 한다. MBC에서 ABC가 3시간 거리임을 고려할 때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게 적당하다. 그래야 식당에서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하고 일출을 감상할 시간이 된다. 빙하잔재물이 둔덕 같이 쌓여 있는 지대를 Bank라고 한다. 빙가가 만들어낸 둔덕이 안나푸르나 남벽을 만나는 최적의 장소다. 바로 앞에는 빙하지대가 펼쳐지고 빙하지대를 건너면 표고 3,000m에 달하는 거대한 벽이 있다.
히말라야 3대 남벽 중 하나인 안나푸르나 남벽이다. 2011년 박영석 남벽 원정대는 저 건너 어딘가에서 실종되었다. 눈사태에 떠밀려 깊고 차가운 크레바스 어딘가에 묻혀있을 것이다. 햇살을 받아 물들어가는 남벽에 말을 걸어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어야 만족하겠니.”
남벽은 말이 없다. 산은 사람을 잡아먹으며 유명세를 탄다. 하지만 아닐 것이다. 안나푸르나는 오라 하지 않았다. 그들이 찾아온 거다. 남벽과 다투는 일은 덧없다. 남벽을 오르려는 등반가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남벽은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 그것만이 사실이고 전부다.
ABC를 떠나면 긴 하산길이 놓여있다. MBC에서 풀어놓은 짐을 챙기고 내친걸음으로 달려 내려간다.
히말라야 롯지나 도반에서 점심을 먹고 뱀부에서 시노아로 이어지는 긴 오르막과 지루한 길을 다시 걷는다. 성스런 계곡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 트래커를 위해 운영하는 롯지만 있다. 하지만 시노아 부터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성스런 계곡의 고요는 그만 끝나고 사람 냄새가 가득 풍긴다. ABC가 그리 대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수고했다고 롯지 주인은 악수를 청한다. 그러면서 그는 한마디 더 한다. 마을 처녀들이 와서 축하를 해주어도 되느냐고…. 이런 황홀이 있는가? 당연히 받아둘 일이다.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마을 처자들과 아줌마들로 만들어진 공연단이 롯지를 방문한다. 일부는 전통 옷을 입고 일부는 그 차림 그대로지만 네팔 전통 리듬에 맞춰 부드럽게 손발을 돌리며 춤을 추고 노래도 부른다. 그렇게 1시간 축하공연이 끝날 말미엔 모자가 돈다. 작지만 그 안에 성의를 표시하면 된다. 묵고 있는 롯지에 공연단이 찾아오지 않으면 공연하는 집을 찾아가 보자. 롯지가 몇 가구 안 되니 공연을 한다면 찾아가는 게 어렵지 않다.

TIP: 시노아는 마을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가는 데 1시간 가까이 걸린다. 뱀부에서 시작되는 긴 오르막이 끝나고 처음 나오는 마을에서 숙박하자. 지친 상태로 다음 마을까지 가려면 1시간 더 걸어야 한다.

제9일 이동 경로: 시노아 → 촘롱 → 지누
트레킹 소요시간: 4시간
최고고도 지점: 시노아(2,340m)
일일 고도차: -560m
주의사항: 시노아 → 촘롱, 촘롱 → 지누 구간은 가파른 돌 계단길이다. 온종일 계단을 걷게 되니 미리 무릎 보호에 신경 쓰자.

멀리 계곡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시울레바잘이다. 강 옆으로 길을 낼 법도 한데 긴 오르막 계단 길 끝에 매달린 촘롱을 지나야 하고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을 1시간 이상 내려가야 지누가 나온다. 계속된 내리막으로 다리가 후들거려 촘롱이 밉지만 오가는 길은 촘롱을 지나는 길밖에 없으니 긴 계단 길을 다시 올라가야 한다. 촘롱 주민들은 계곡 아래로 길이 생기면 아무도 촘롱을 지나가지 않으므로 마을 경제가 죽는다고 반대데모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고속도로가 생기면 구도로의 상가들은 폐허가 되어버리니 그들의 불안한 심기가 이해된다, 하지만 계속된 내리막과 오르막으로 다리가 불편하니 욕이 먼저 나온다. 정부는 촘롱의 반대를 뚫고 뱀부까지 길을 내기로 정했다고 한다. 언제쯤 길이 생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강을 따라 뱀부까지 길이 열릴 것이고 촘롱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마을이 될 거다. 그때, 촘롱에 다시 와봐야겠다. 번잡함이 사라진 촘롱은 나 같은 트래커에게 더 매력적일 거다. 지누엔 자연 온천이 있다. 물론 강바닥까지 30분을 내려가야 한다.
목욕간다고 슬리퍼를 신고 내려가면 올라올 때 힘들다. 불편해도 등산화를 신고 랜턴과 수건도 가지고 내려가는 게 좋다. 랜턴 없이 올라오다 날이 어두워지면 숲길에서 애를 먹게 된다.

제10일 이동 경로: 지누 → 시울레바잘 → 포카라
구간: 지누 → 나야풀
트레킹 소요시간: 7시간
최고고도 지점: 지누(1,780m)
일일 고도차: -710m
주의사항: 시노아 → 촘롱, 촘롱 → 지누 구간은 가파른 돌 계단길이다. 하루 종일 계단을 걷게 되니 미리 무릎 보호에 신경 쓰자.


지누에서 뉴브릿지로 가는 길은 강을 따라 평탄하다. 또 트래커들이 많지 않아 한적하기도 하다. 뉴브릿지에서 시울레바잘까지 가는 길은 다랑논 사잇길로 걷는 아름다운 길이다. 하지만 꽤 길다. 지능을 돌아서면 나올 듯하던 끝이 저만치 가 있고 다시 하나의 지능을 돌아서면 역시 저만치 멀어져 있다. 그런 길을 오전 내내 걸어야 한다. 길은 평탄하지만 거리가 멀어 지친다. 다락논 사이로 집이 하나씩 있다. 담과 문이 없는 집이어서 집 마당을 지나가게 된다. 집을 벗어나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어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 집 주인을 바라보자.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주인은 익숙하게 손짓을 한다. 집 앞을 지나가도 불편해하지 않고 가르쳐 주는데 인색하지 않는 농심이 네팔엔 살아있다.
2013년부터는 새로운 도로가 생겼다. 시울레바잘 2시간 전 큐미까지 차가 들어온다. 시울레바잘에서 늦은 점심을 먹던 이전과 달리 큐미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30분만 더 걸으면 짚차 주차장이다. 여기서 짚차를 타고 나야풀까지 1시간을 달려보자…. 4시간 걷는 일을 차가 대신하니 좁은 차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나야풀에 닿으면 현지스텝들이 카고백을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옮겨 싣는다. 이로서 트레킹이 끝난 것이다.
포카라로 돌아오면 어둑해지는 저녁이다. 페와 호수를 따라 길게 상가와 식당이 있다. 페와 호수에 내려 하나씩 생각한 일을 해보자, 집에 전화하고, 사진엽서를 몇 장 사고, 맥주를 시키자. 깨알 같은 글씨로 나에게 편지를 쓰자. 수고했다고.. 포카라엔 고급 숙박지가 많다. 작지만 전통양식의 치장이 돋보이는 샹그릴라 호텔, 골프장과 부대시설이 잘되어있는 풀 바리 호텔, 페와 호수 한가운데 자리 잡은 명소 Fish tail hotel, 그동안 고생한 몸을 생각해 하룻밤은 멋지게 보내자….

Tip: 단체 트레킹이 아니라면 나야풀에서 택시를 이용하자.
걷는 동안 일행을 만났으면 일행과 비용을 분담하고 혼자라도 앉아 있으면 운전사가 사람을 끌어와 4명을 만들어 출발한다. 페와 호수까지 2시간 3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