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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에베레스트로 떠나자

“탐구해야 할 것은 산이 아니라 인간이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오르는 것이 아니다. 난 최고(最高)의 지점에서 자신을 체험하고 싶다.”
세계 최초로 8,000m 14개 봉을 오른 라인홀트 메스너는 에베레스트로 떠나기 전 그렇게 말했다. 에베레스트로 떠나는 사람은 누구나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내면에 있다. 왜일까? 등산이 무료(無償)의 행위여서만은 아니다. 무슨 이유를 들어서도 에베레스트로 향하는 발길엔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로 알려진 세계 최고봉은 상징성만큼이나 강렬해서 3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네팔 말로는 ‘사가르마타’, 티베트 말로는 ‘초모랑마’ 그리고 영국 측량 장교의 이름에서 유래한 ‘에베레스트’ 이렇게 달리 불리고 있다. 하지만 현지어 지명을 부르는 것이 세계적 추세여서 네팔에서 시작하는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마지막 도달 지점인 칼라파타르나, 사가르마타 트레킹으로 부른다.
사가르마타를 포함하는 지역을 ‘쿰부’라고 하는데 네팔 정부는 ‘쿰부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에는 사가르마타뿐만 아니라 제 4위 봉인 로체와 6위 봉인 초오유가 있고 그뿐 아니라 쿰부의 신성 아마다브람, 눕체 등 많은 고봉이 권역 내 들어있다.
칼라파타르 트레킹은 사가르마타와 그를 둘러싼 히말라야 파노라마를 조망하는 칼라파타르 전망대를 최종 도달지점으로 한다. 칼라파타르는 검은 동산이라는 뜻으로 고랍셉 빙하 안에 자리해서 쿰부 지역의 고봉 설산을 360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전망대다. 맞은편으로는 사가르마타와 로체, 눕체, 오른편으로는 마칼루와 아마다브람, 왼편으로는 푸모리, 뒤로는 촐라체, 다우제 그리고 멀지만, 초유와 시샤팡마의 자태도 볼 수 있다.
한 지점에서 8,000m 봉우리를 5개나 동시에 볼 수 있는 지점은 세계에서 칼라파타르가 유일하다. 누구나 한 컷의 감동을 가슴에 담기 위해서는 8일간이 노력이 필요하지만, 대가로 충분하다. 그곳은 신의 땅이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 탑과 에베레스트, 로체]

제1일: 카트만두 → 루크라 → 팍팅 → 루크라 → 팍팅 / 5시간
초보자건 경험자건 트레킹은 한 걸음을 띄는 게 중요하고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이면 그곳이 어디든 최종 목적지에 닿는다.
칼라파타르 트레킹 기점인 루크라에는 비행장이 있다. 비행시간은 25~30분이지만 산악 지역이라서 취소되는 날이 많다. 따라서 사가르마타 트레킹을 계획할 때는 총 일정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여유를 두어야 한다. 비행기는 이륙하면 복잡한 카트만두를 떠나 곧 산간에 접어든다. 좁은 창이지만 아래로는 산비탈에 촘촘히 둘러쳐진 다랑논이 선명하다. 기왕이면 기내의 왼편에 자리 잡기를 권한다. 왼쪽 창으로는 가우리샹카르 산군이 한눈에 들어와 비행이 지루하지 않다.
트레킹의 출발지는 2,800m 산비탈에 자리한 루크라다. 루크라는 특이한 비행장으로 널리 알려진 산간마을이다. 산 비탈면에 활주로를 만들다 보니 트레킹 활주로가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착륙하는 비행기는 경사면을 올라오느라 자동 제동되고 이룩하는 비행기는 출력을 최대로 높인 상태에서 경사면을 달려 내려가 뛰어오르는 짜릿한 광경을 연출한다. 항공 모함의 갑판원리를 이용한 활주로다, 히말라야의 오지 2,800m 고도를 고려하면 걸맞지 않아 보인다.
루크라에 내리면 허름한 공항 청사 밖으로 사람들이 서성인다. 오늘의 일거리를 찾는 짐꾼이다. 네팔 트레킹이 행복한 건 그들이 있어서이다. 서울이나 카트만두 여행사에 트레킹을 의뢰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공항 청사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어떻게 알았는지 나를 도와줄 도우미가 다가와 이름을 건넨다. 하지만 대행사 없이 떠난 트레킹이라면 이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짐을 들어줄 포터를 수배하는 일이다.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좋은 사람 속엔 나쁜 사람도 있고 외지인이 모이는 장소엔 범죄자가 모여든다.
산간마을이지만 루크라도 강도(强度)만 다를 뿐 조심해야 한다. 흔한 실수는 포터값을 협의해서 정하고 짐을 넘기면서 발생한다. 트래커는 이런 점에 주의해야 한다. 포터 비를 협정하고 영어를 못하는 짐꾼에게 낮은 금액에 넘기는 브로커, 이런 경우엔 선금으로 일부 넘겨준 돈을 갖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내 짐을 날라다 줄 짐꾼은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더 심각한 건 악의를 가지고 접근해서 짐을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경우다. 대행사도 없고 초행이므로 쉽게 당하는 일이다. 따라서 짐을 넘기기 전에 우리나라 주민증 같은 신분증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안전장치가 된다. 공항 옆 시장통을 통과하여 마을 끝을 알리는 초르텐(불탑)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가파른 내리막이 끝나면 체플룽에 다다르기 전 지리로 빠지는 길이 왼편에 있다. 이 길은 루크라에 비행장이 없던 시절에 사가르마타로 가던 원정대가 이용하던 길고 지루한 길이다. 길이 선명하므로 자칫 잘못들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체플룽을 지나면 다음으로 가트라는 마을이 나오는 데 꽤 인상적이다. 마을 입구부터 커다란 바위에 라마 경전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그뿐 아니라 집집마다 룽따르를 세워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언덕배기에서 꼭 사진을 한 장 남기자. 주변의 고요와 불심이 룽따르에 걸린 불경같이 마음을 은은하게 한다.
오늘의 숙박지 팍팅에 이르면 마을 입구에 멋진 집이 있다. 이런 산중에 어울리지 않는 호텔인데, 탐세루크라는 트레킹 회사가 운영하고 있다. 하루에 $180 정도 하므로 묵기엔 부담스럽지만, 그냥 지나치지 말고 식당에 들어가 커피를 한잔 하자. 하루의 피로 값으로 부담 없다. 마을에 들어서면 길 양편으로 롯지가 밀집되어 있다. 마음에 드는 롯지로 들어가 주인과 흥정을 시작하며 트레킹의 첫날을 끝낸다.

TIP: 1시간 30분 거리에 몬조라는 마을이 있는데 롯지가 몇 개 안 되므로 오후4시를 넘기면 몬조로 가지 말고 팍팅에서 묵길 권한다. 방이 없어 곤란에 처할 수 있다.

제2일 : 팍팅 → 남체 → 루크라 → 팍팅/ 8시간
트레킹의 아침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보통 그룹 트레킹의 경우 주방 팀을 대동하므로 주방장 이외 보조로 동행하는 현지인들이 다수 있다. 그들이 아침에 방문을 두드린다. 침낭에 누운 채 기척을 내면 방안으로 들어와 차를 한잔 건넨다. 침낭에 하반신을 넣은 채 마시는 따끈한 차가 하루의 시작이다. 물론 개인 트레킹을 하는 경우엔 이런 호사를 부릴 수 없다. 전날 밤에 사우니(롯지 여자 주인)에게 주문한 시간에 식당으로 옷을 챙겨 입고 나와야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다. 식당에 오기 전 짐을 쌓아 문밖에 내놓으면 짐꾼은 어느새 짐을 달랑 머리끈에 걸고 길을 떠난다. 짐꾼은 아침 일찍 출발해 중간중간 쉬었다 가므로 아침에 일어나면 짐을 꾸리고 밖에 내놓는걸 있으면 안 된다. 고산에서는 짐꾼의 발걸음이 트래커보다 더 빠르지만, 저지대에선 무거운 짐을 멘 짐꾼이 트래커보다 늦기 때문에 출발에 협조해야 한다.
팍팅을 출발한 후 첫 번째 휴식은 쿠툼상이 보이는 굴멜하(Gulmelha)마을이다. 철 다리를 건너면 예쁜 롯지가 두 세 개 있다. 차를 마시며 트레킹의 한가로움을 즐기기 좋은 장소다. 몬조를 지나 10여 분 가면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입구인 조르살레가 나온다. 여기서 트레킹 퍼미션을 보여주고 신고해야 한다. 조르살레를 지나 두드코시(코시는 강이라는 뜻)를 건너면 높은 다리가 걸려있다. 보통 ‘Hanging Bridge’로 불리는 다리는 높이가 약 100m에 이른다. 하늘 높이 걸린 다리는 카메라로 당겨도 부족하고 그대로 찍어도 아쉽다.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칼라파타르 트레킹은 세 곳의 오르막을 주의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오늘 올라가야 하는 남체 오르막이다. 고도차가 700m나 되는 긴 오르막인 데다 거의 반나절을 올라가야 한다. 이날은 점심 먹는 시간과 지점이 애매하다.
몬조에서 먹자니 너무 이르고 몬조를 지나면 롯지가 전혀 없다. 그래서 Hanging Bridge가 보이는 강가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반면 남체에 도착하는 시간은 늦다. 따라서 간간히 먹을 간식을 준비해야 한다. 오르막은 지그재그로 이어져 경사가 가파르지 않다. 하지만 3,000m를 처음 경험하는 트래커에겐 쉬지 않고 700m를 5~6시간 안에 걷는다는 게 힘든 경험일 수 있다.그나마 위안이라면 한 구비를 돌 때마다 마주치는 탐세루크와 캉테가의 위용이다.
남체는 사발 모양이어서 비탈길에 집이 촘촘히 지어져 있다. 좀 힘들어도 시간통을 지나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롯지를 숙소로 잡는 게 좋다. 보통 이틀을 남체에서 쉬므로 시장통에서 롯지를 잡으면 시끄럽고 불편하다. 어디에 묶을지 아이디어가 없다면 전날 묶은 롯지 주인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왜냐하면, 남체에는 호텔급의 숙소부터 아주 허름한 숙소까지 다양하게 많기 때문이다.

Tip: 남체에선 개인차가 있지만, 고산증세가 나타난다. 고산증세는 잠자는 동안 심해지므로 아침에 다이아막스 1알, 남체에서 잠자기 전 1알 먹기를 권한다. 이날부터 2~3일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고산증세를 예방하거나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단 처방전이 필요한 약으므로 사전에 의료인과 상의해야 한다.

[캉테카와 탐세루크]

제3일: 남체 → 샹보체 에베레스트 뷰 호텔 → 남체
고소적응 샹보체 트레킹/ 3~4시간

남체는 오묘한 마을이다. 샹보체로 가다 보면 남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데 마을의 형태가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와 같다. 한 면이 깨어져 나간 사발 형태로 사발 안쪽 면에 촘촘히 고도를 높여가며 횡으로 길이 나고 길 위로 집이 들어서고 횡으로 난 길을 종으로 난 몇 가닥의 길이 이어놓은 형태까지 매우 흡사하다. 높은 고도도 그렇다. 라파즈의 고도가 3,900m에서 3,600m까지 형성되었다면 남체는 3,500m~3,300m까지 고도차를 두고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깨어져 나갔다 해도 사발 바닥이 평평하듯 남체도 마을 아래엔 넓은 평지가 있다. 마을이 들어서기 좋은 구조다. 그래서 셀파족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셀파족은 티벳에서 건너온 장족이다. 이들이 정확히 언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땅에 정착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3번의 대이동을 추측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몽골이 티벳을 지배했을 13세기, 두 번째는 청나라가 몽골을 지배했을 16세기다. 그러나 무엇보다 민족 대이동을 초래한 건 중화인민공화국이 6·25전쟁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된 때를 이용해 티벳을 침공, 지배한 1952년 이후 달라이 라마가 티벳을 탈출했을 때다. 티벳인들은 땅을 버릴지언정 영혼을 지배당하지 않았고, 어느 땅에 살든 우주의 소통 하며 자연 일부가 되어 사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남체는 그런 셀파 족의 수도이자 마음의 고향인 곳이다.
남체는 셀파의 수도답게 주변에 여러 작은 마을이 공존한다. 히말라야를 넘어 쿰부 지역에 셀파 족이 처음 정착했던 타메, 비행장이 있는 샹보체, 힐러리 병원이 있는 쿤데, 힐러리 학교가 있는 쿰중이 이런 마을이다. 하루만 머문다면 당연히 샹보체를 갔다 오는 반일 트레킹을 권한다. 이틀을 머문다면 둘째 날 쿤데와 쿰중을 연결하는 하루 트레킹이 권한다. 3일을 머문다면 타메를 당일로 갔다 오는 것도 아주 좋은 트레킹이다. 하지만 쿰부 지역은 이래저래 볼거리도 갈 곳도 많으니 하루만 유숙하고 보따리를 정리해 다음 기착지로 가는 게 좋다.
샹보체는 쿰부의 주요 전망대중 하나다. 칼라파타르를 으뜸으로 치고, 그 뒤에 고교리(‘리’는 티벳 말로 Peak의 뜻)와 쥬쿵리가 있지만 모두 힘들고 고된 노역의 대가로 주어진다. 반면 샹보체는 절반 정도의 노역으로도 충분하다. 샹보체로 가는 길엔 유서 깊은 라마 사찰이 있다. 사원 앞을 치장한 마니휠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리고 하나 돌릴 때마다 죄가 하나씩 소멸한다고 하니 귀찮더라도 마다하지 말고 길옆에 늘어선 마니휠을 돌리며 경사진 길을 올라가자…. 사찰을 지나 마을을 벗어나면 숲길이다.

TIP: 고소적응 하는 날은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잠자는 고도보다 높은 고도를 체험하면 고도적응에 좋다. 따라서 몸이 피곤하고 힘들어도 샹보체 트레킹을 포기하지 말자. 3시간이면 충분하다. 남체엔 장비 점이 많다. 부족한 의류는 구입하자. 비록 가짜이지만 트레킹하기엔 문제없다.
– 쿰부 하이라이트 트레킹은 여기까지다. 돌아가는 일정은 다음과 같다.

제4일 : 남체 → 텡보체 고소적응 트레킹/ 3~4시간
남체를 벗어나면 낭만 가도로 불리는 길이 전개된다. 산 사면 8부에 만들어진 길은 평지에 가까울 뿐 아니라 전망이 매우 좋다. 계곡 건너엔 아마다브람이 반겨주고 계곡의 굽이진 모퉁이를 돌면 입이 벌어질 광경이 펼쳐진다. 이곳에 에베레스트 등정 50년 기념탑이 있다. 라마백탑은 히말라야와 같은 색이라 잘 어울린다. 배낭을 내려놓고 자신을 카메라에 담아보자, 여기서 찍은 사진은 한가롭고 행복할 뿐 아니라 기대와 흥분이 고스란히 녹아 보인다. 기념탑을 지나서도 낭만 가도는 사나사까지 계속된다.
사나사는 고교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고교는 촐라라를 넘어야 칼라파타르로 갈 수 있으므로 칼라파타르 고전 루트보다 한결 힘들다. 반면 트레커가 적어 한적하고 촐라체의 위엄과 고교리에서 바라보는 호수와 초오유, 시샤팡마 등 색다른 전망이 매력적이다.
사나사를 지나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 씨가 세운 학교가 있다. 엄홍길 씨는 8,000m 14개 봉을 등반하는 괴정에 유명을 달리한 셀파의 가족을 돕는 일을 개인적으로 하다가 수년 전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네팔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산간마을에 학교를 지어주는 사업으로 현재 1개의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3개의 학교가 설립 중이거나 계획 단계에 있다. 또한 사나사 뒤에는 풍기텡가로 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산길을 내려가다 보면 지붕이 붉은색의 산뜻한 건물이 보인다. 역시 트레킹 회사인 ‘탐세루크’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다. ‘탐세루크’는 네팔의 영웅인 여성 산악인 ‘라무셀파’의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다. 그녀는 외국등반대에 고용되어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정대를 조직하여 등반에 나서고자 했다. 그녀는 3번에 걸쳐 사가르마타 등반에 나섰지만, 정상 직전에서 악천후로 후퇴했으며, 4번째 등반에서 정상에 오른다. 하지만 하산 중 동행한 남자 셀파가 고소로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그를 버리고 내려오지 않고 남봉 아래에서 함께 비박을 했으나, 둘 다 밤을 견디지 못하고 8,000m의 고도에서 영면했다.
셀파는 히말라야 고산등반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뛰어난 고산 능력으로 길을 안내하고 짐도 짊어져준다. 등반대가 성공하는 데 그들의 역할은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셀파는 돈을 받고 등반하는 고용인이기 때문의 무상의 행위라는 등산철학에 어긋난다 하여 등반인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힐러리 경과 텐징 노르게이는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누가 먼저 올라갔는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두 사람은 우정을 과시하듯
“손잡고 같이 올라갔다. 누가 먼저 올라간 건 중요하지 않다. 우린 둘이 힘을 합해 같이 이루었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셀파도 최근엔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도전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Everest Competition’으로 불리는 이벤트다. 즉, 사가르마타 최단시간 등정 기록 경쟁이다. 셀파만이 할 수 있고 셀파만이 가능하다고 믿는 이벤트를 벌임으로써 스스로 고산의 진정한 강자가 누구인지, 세상에 대고 소리치고 있다. 실질적으로도 셀파는 10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을 갔다 왔다고 하니 설악산도 아니고…. 그들의 고산능력은 실로 놀라울 뿐이다.
풍기텡가는 고도가 낮고 물이 풍부해 곳이다. 한낮의 해가 따가우면 모자에 숨겨둔 떡 진 머리를 감아보자. 점심을 먹고 텡보체까지는 고도 600m 긴 오르막이다. 두 번째 고산증세가 나타날 수 있는 지점이므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야 한다. 텡보체 남체만큼이나 인상적인 마을이다. 능선에 자리 잡아서 전망이 좋다. 하지만 도착하는 시간이 4시 이후라서 산은 구름에 감춰져 있다. 산은 다음날로 미루고 텡보체의 두 가지 명물을 둘러보자.
하나는 쿰부 제일의 라마사원이고 다른 하나는 전설 속의 설인 예티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4시 30분경 문을 닫으므로 정상적으로 걸으면 박물관은 문을 닫았을지 모른다.

Tip : 텡보체는 숙박 경쟁이 심하다. 그리고 숙소도 시설이 떨어진다. 숲길을 따라 30분 내려가면 도브제라는 마을이 나온다. 그곳에는 좋은 시설의 롯지가 2~3채 있다. 한번은 붐비는 텡보체에서 묶고 한번은 한가한 도브제를 고려해보자. 사원 맞은편 능선으로 전망대 가는 길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늘에 별이 많으면 일출을 보러 가자…. 좀 귀찮기는 해도 멋진 장관이 기다린다.

제6일: 딩보체
1안: 마을 앞 고개의 가벼운 트레킹으로 컨디션 조절/ 왕복 1시간 30분
2안: 비브레(Bibre 4,740m)까지 반일 트레킹/ 왕복 4시간 고소가 심한 경우엔 피하는 게 좋고 컨디션이 괜찮은 경우 권한다.
고소가 약하게 왔거나 고소증세가 전혀 없는 분은 쥬쿵(4,730m)까지 갔다 오길 권한다. / 왕복 7시간

우리 몸이 전혀 다른 외부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런 질문은 환경과 신체가 얼마나 적응되어 있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람 개개인이 가진 신체의 특징과 능력이 변수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일반인이 3,000m 이상의 고산에 적응하는 데 15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집을 떠나 다시 집에 돌아오기까지 고작 15일밖에 주어지지 않은 칼라파타르 트레킹을 보면 어느 정도의 부적응은 처음부터 감안된 것이고 대가는 몸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고산증세다. 이런 부조화를 어느 정도 완화하기 위해 칼라파타르 트레킹 도중 두 번의 휴식이 꼭 필요하다. 물론 고산증세가 심하게 오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두 번의 휴식을 가지는 게 좋다. 휴식은 누워있는 게 아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고도에 적응하게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래서 가벼운 산보나 트레킹을 권한다.
남체에서 가벼운 샹보체 트레킹을 하였다면 딩보체에서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는 게 좋다. 하나는 다음날 투클라로 넘어가는 고개까지를 갔다 온다. 오르막이 완만하고 1시간 이내 올라갈 수 있는 거리여서 가볍게 몸을 풀기 좋다. 고개에 오르면 라마 백탑이 있다. 탑을 세 번 돌고 주변을 둘러보자 맞은편 능선에 날카롭게 다우제과 촐라체가 있다. 두 봉우리는 높지는 않지만 어렵기로 소문난 봉우리다. 특히 촐라체는 한국의 대표적인 히말라야 거벽 등반가 박정헌 씨의 조난과 생환 과정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촐라체에서 돌아와 손가락 10개와 발가락 10개 중 대부분을 잘라냈고 그와 함께 등반한 최강식 씨도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큰 부상을 입었다. 그들의 등반기록은 책으로도 발간되었다. 박정헌 씨가 구술한 등반기록서 ‘끈’을 토대로 소설가 박범신 선생이 쓴 ‘촐라체’ 다. 특히 소설 촐라체는 책으로 발간되기 전 네이버에 연재 되었는데, 이는 전문 작가로서 처음 시도한 인터넷 연재소설이었다.
촐라체는 그 이후로도 한국 산악인에게만 유독 몰인정해서 2011년에는 두 명의 한국 거벽 등반가가 촐라체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쿰부 빙하 쪽에서 보면 능선 위로 빼꼼 솟은 돌덩어리 같지만, 고교계곡에서는 90m가 넘는 거칠고 어려운 빙설 벽이 부채같이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안나푸르나 남벽을 오른 박정헌(그 후로 한국 산악인으로는 아직 아무도 오른 산악인이 없으며 2011년에 박영석 씨가 등반 중 추락하여 3명의 등반대원이 실종되었음.)씨도 벽의 위엄에 눌려 15일간이나 고산 적응을 하고서야 등반에 나섰다고 촐라체 등반기인 ‘끈’이라는 책에서 기술하고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완만한 구릉길을 따라서 비브레까지 갔다 오는 것이다. 가는 데 2시간 정도 걸리고 돌아오는 데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어 반일 트레킹으로 딱 좋은 거리다. 비브레에는 작은 롯지가 하나 있다. 차를 팔기 위해 낮에만 열어놓다가 저녁에 롯지에 묵는 사람이 없으면 주인이 문을 잠가놓고 딩보체나 쥬쿵으로 가버리는 임시 숙소다. 이곳에서 히말라야 3대 북벽(로체 남벽, 안나푸르나 남벽, 에베레스트 남서벽)중 가장 어렵다는 로체 남벽이 지척이다. 그래서인지 로체 남벽에서 산화한 산악인의 돌탑이 있다.
동판의 이름을 보면 한 시대를 풍미한 세계적인 등반가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폴란드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Jerzy Kukuczka. 1948.3.2. ~ 1989.10.24)가 보인다. 그는 라인홀트 메스너 다음으로 8,000m 14개 봉을 완등한 산악인이다. 그럼에도 메스너보다 더 유명하고 더 값을 쳐준다. 14개의 8,000m 봉우리를 오르는 데 가치를 두기보다 이전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8,000m 동계 등반을 하였고, 단독으로 올랐고, 8,000m 벽 등반을 마다치 않았다. 가셔브룸(파키스탄 카로코람 히말라야에 위치) 등반 시에는 두 개의 8,000m 봉우리를 연등하는 등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항상 새로움을 추구했다. 그 결과 그에게는 알파인 스타일 히말라야니즘을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칭송이 따랐다. 또한, 이단아 취급을 받던 아방가디스트(Avant Gardist)의 염원에 대한 가능성을 실체화했다. 그도 산에서 죽었다. 바로 여기, 로체 남벽이다. 그의 업적을 되돌아보며 밀크티를 한 잔 마신다. 그리고 이름만 남기고 간 멋진 남자들에게 차를 바친다.

Tip: 휴식을 이틀 정도 계획한다면 쥬쿵에 갔다 오기 좋다. 쥬쿵엔 롯지가 있어 거기서 숙박하면 된다. 그곳에서 숙박하면 아침 일찍 쥬쿵리(5,550m)에 올라가 보자. 임자체(6,190m)에는 못 미치지만 임자 빙하 주변의 미봉 바룬체히말, 아마다브람, 로체, 마카루까지 멋진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일로 딩보체로 돌아온다.
페리체엔 뉴질랜드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있다. 딩보체에 머무는 동안 고산증세가 심해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가끔은 젊은 의사들이 고개를 넘어와 롯지를 돌며 고산증세로 위험한 사람이 없나 돌아보기도 한다.

제8일 : 로브제 → 고랍셉 → 칼라파타르 → 로브제(페리제)
시간에 쫓기는 원정대는 고소적응을 빨리하기 위해 무리한 방법을 쓴다. 약간의 고산증세를 참고 무리하게 고도를 높여 베이스캠프로 가서 하룻밤을 잔다. 그리고 고소가 심하게 오면 다음 날 새벽같이 1,000m 이상 고도를 낮추어 하루나 이틀 고산 적응을 한 후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간다. 물론 체력이 좋아야 하고, 산에 대한 경험이 많아야 한다.
원정대원들도 예외 없이 고소가 오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 유명한 산악인들도 한번은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등반에 나선다. 고산증세는 잠자는 중에 찾아오는 밤손님이다. 밤에 고산증세가 심해지는 이유는 몸의 장기도 잠자는 휴식을 하기 때문이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의 활동만 하고 70% 이상의 활동은 멈춘다. 그래서 몸에서 필요로 하는 산소를 공급하지 못한다. 깨어있을 땐 몸이 필요로 하면 강제호흡과 길고 깊은숨을 쉬며 산소를 공급하려 하지만 수면 중에는 그런 시도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잠자는 동안 산소부족으로 인해 고산증세가 악화되는 것이다. 고산엔 장사가 없다. 조심하는 게 최선이다. 무리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고랍셉에서의 숙박은 신중히 해야 한다. 고랍셉은 고도가 5,140m나 된다. 로브제까지 고도적응을 잘했다고 해도 5,000m는 또 다른 세상이다. 그래서 고산트레킹이 처음인 경우엔 더더욱 안전을 위해 고랍셉에 묵기보다는 로브제에서 당일로 칼라파타르를 갔다 오는 일정을 권한다.
로브제 ↔ 칼라파타르 당일 왕복을 계획하는 경우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고랍셉까지 가는 시간만큼 일찍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브제에서 고랍세가는 중간엔 긴 너덜지대가 있어 먼 거리가 아니지만 4시간을 잡고 출발해야 한다. 도착시각은 7~8시 정도가 적당하므로 역으로 시간을 계산하면 새벽 3~4시경 출발하는 게 좋다.
로브제를 출발하면 아침 기온이 차고 고도가 높아 움직임이 아주 느리기 때문에 옷을 단단히 입어야 한다. 불편해도 파카 등 따뜻한 보온장비는 필수다. 처음 출발할 때는 그리 추위를 느끼지 않지만 1시간 정도 지난 후엔 뼛속까지 추위를 느낀다. 특히 겨울시즌이라면 추위에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마치 냉장고에 처음 들어가면 시원함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얼어와 뼈까지 시린 것과 같은 이치다. 7시에서 8시 사이에 고랍셉에 도착한다. 잠시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지만 한없이 시간을 보낼 수 없다. 왜냐하면, 10시가 넘으면 태양이 눕체를 넘어 칼라파타르를 쏘아붙인다, 그러면 눈앞의 사가르마타를 사진에 담을 수 없다. 그래서 9시까지는 칼라파타르에 올라가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 한 장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칼라파타르에서 찍은 사진을 집는다. 숨이 멎을 듯한 감동과 여기까지 오르라 고생한 뒤안길이 선연해서 그렇기도 하고, 신에게 한발 다가간 느낌이어서 그렇다. 칼라파타르 계획을 세우며 하루하루를 채워갔던 지난 1년의 시간이 짧은 몇 분으로 끝이지만 그래도 전혀 아쉽지 않다. 꿈은 꾸어야 맛이고, 낙서는 지저분해야 걸맞고, 사가르마타는 칼라파타르에 올라야 비로소 깨닫는다.
고랍셉에서 숙박한다면 시간은 아주 여유롭다. 아침에 일어나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칼라파타르로 향하면 된다. 그리고 베이스캠프도 갔다 올 체력과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 하지만 밤새 고산 증세에 시달려 칼라파타르는 시도도 하지 못하고 하산할 수도 있다. 심한 경우엔 고랍셉에서는 수면 중 사망하거나 인사불성 되어 후송되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있다. 그만큼 짧은 시간에 5,000m까지 올라가 잠을 잔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베이스캠프는 두 곳이 있다. NEW BC는 쿰부 빙하 끝에 있어 고랍셉에서 왕복하려면 6시간 이상 걸린다. 로브체에서 시작한 하루라면 너무 벅차다. 그냥 돌아서기 아쉬우면 OLD BC에 가보자…. 왕복 2시간이면 갔다 올 수 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혼자 가지 말라는 것이다. 꼭 고용한 셀파를 대동해야 한다. 고산은 정오가 넘으면 안개가 많이 끼고 그러면 빙하에서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로브체로 돌아가는 길도 멀고 힘들다. 그 체력도 남겨 놓아야 한다.
고산에서는 가능하면 낮은 데서 자는 게 좋다. 수면에도 좋고 고산증세를 피하는 데도 좋다. 따라서 칼라파타르에서 돌아오면 피곤하지만 페리체까지 내려가 숙박하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시간은 약 2시간 30분 소요되나 대부분 내리막길이라 어느 정도의 체력만 있으면 가능하다. 단 4시 이후에는 출발하지 않는 게 좋다.

제9일(하산 첫째 날) : 로브체 → 도브체
온 길을 되돌아가는 긴 하산길에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많이 걸었나? 스스로에게 놀라지만 그 마음엔 그만 걷고 싶다는 희망이 배어있다. 목적이 칼라파타르였고 목적을 성취한 자로서 갖는 당연한 마음이다. 트레킹이 지루해지고 하루의 산행이 피곤하고 지치지만,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돌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여행, 칼라파타르만 생각하느라 보지 못한 사물을 하나씩 찾아내는 일, 어쩌면 감동이 없을 거 같은 하산길이 추억을 다듬는 과정일지 모른다.
너덜지대를 내려와 톨카에 닿으면 딩보체와 페리체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여기서 길을 잘 들어서야 한다. 오른쪽 계곡 길이 페리체로 이어진다. 페리체는 계곡 안에 위치해 해가 들지 않아 음습하지만 롯지들이 깨끗하고 멋지다. 페리체를 지나면 칼라파타르 향할 때 걸었던 같은 길이다. 팡보체를 지나 계곡을 건너 숲길을 오르면 도브제가 나온다.
칼라파타르 갈 때 텡보체에서 숙박했다면 내려가는 길에는 도브체에서 자자. 전망은 없어도 깊은 숲속이어서 나름 고요와 운치가 있다.

제10일(하산 둘째 날) : 도브체 → 사나사
텡보체를 지나면 풍기텡가까지 긴 내리막이다. 텡보체를 넘어 풍기텡가로 가는 동안 옷을 하나씩 훌훌 벗기 시작한다. 이제 몸을 단단히 감쌌던 겨울옷은 벗어버리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자.
풍기텡가에 도착하면 개울가로 가서 머리를 감자, 그동안 모자 안에 있느라 떡 진 머리를 감으면 시원함을 넘어 자유를 느낀다. 오후엔 사나사까지 긴 오르막을 올라 맥주 한 캔을 따며 깊은 연정을 매듭짓는다. 여길 벗어나면 그윽한 아마다브람, 로체, 머리만 보여주는 사가르마타가 사라진다. 곧 사라질 전경이기에 마지막 눈 맞춤을 하고 작은 엽서에 깨알같이 무언가를 적어보자. 그리고 주인에게 부탁하자. 주인이 언젠가 남체에 가면 우체국에서 붙여줄 것이다.
한 달이 될지, 반년이 될지 모르지만, 까마득히 잊고 살아가는 일상 속에 나를 위해 보낸 한 통의 엽서가 히말라야 기운을 다시 채워줄 것이다, 아쉬움을 잘라낼 용기가 없다면 사나사에 묵고 가자. 남체보다 롯지 시설이 떨어져도 노을은 물론 달빛에 춤추는 흰 산을 만나게 된다.

[칼라파타르에서 본 세계]

제11일(하산 셋째 날) : 사나다 → 팍팅
남체를 지나면 ‘체’가 붙은 마을이 없다. ‘체’는 신성을 품고 있지 않을까?
고대어로 마을을 뜻한다고 하고 붓다가 지나간 마을에 붙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붓다가 여기까지 왔을 리 없지만 그들의 믿음엔 붓다가 있으니 그들이 사는 마을에 ‘체’를 붙이는 게 이상하지 않다. 남체엔 ‘바잘’이란 말이 붙는다. 매주 토요일이면 시장이 열리고 이날에 맞춰 산간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토요일에 남체를 지나면 번잡한 시장을 눈여겨보자. 조잡한 중국제 공산품 사이로 정성 담긴 토산품이 있다. 남체를 지나 가벼운 걸음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벗이라도 있으면 재잘거리고 싶을 만큼 몸은 가볍고 흥분된다.
떠나고 싶어 안달하던 내가 있었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우쭐대는 내가 있다. 다시 떠날지라도 돌아갈 집이 있고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을 주는가….
모든 이를 사랑하고 모든 일을 용서하노라, 하늘에 대고 하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다. 산이 가르쳐준 것이고 칼라파타르를 오르면 깨달은 것이다. 11일 동안 짐을 짊어져 준 나의 보호자, 포터라 불리는 친구가 정겹기만 하다. 뭐라도 꺼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말이 없어도 이젠 서로 통한다. 자연은 교감력을 키워주었다. 꼭 말로 재단해야 할까, 그저 웃기만 해도 통하는 데…. 충만한 마음으로 남체에서 내려와 행잉 브릿지(Hainging Bridge)를 건너고 조르살레와 몬조를 지나는 역순으로 길을 딛어가면 오늘의 종착지 팍팅에 닿는다.

제12일(하산 넷째 날) : 팍팅 → 루크라
잘 아는 선배는 아이거 북벽에 3일을 매달린 후 정상에 올랐다. 그는 정상에서 멍했다고 한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는지 의아했고 단 5분을 지체하기 위해 쏟은 정성과 고생이 너무 과해서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생각했단다. 그 선배는 몰아치는 바람에 쫓겨 긴 하산을 시작하면서 다신 산에 안 가겠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올라가는 것만이 아니라 내려와야 끝나는 등산은 다른 행위에 비해 더 큰 인내를 요한다. 운동은 지든 이기든 하이라이트에서 끝난다. 하지만 인생이나 등산은 내려오는 긴 여정이 동반된다. 대부분 등산사고는 내려오는 동안 발생한다. 그래서 등산은 가혹하다. 목표에 도달했음에도 피해갈 수 없는 가혹함을 감내해야만 안전이 얻어지기 때문이다. 선배는 폭풍을 뚫고 무사히 하산한 후 깊은 잠에 빠졌단다. 그리고 일어났을 때 다시 아이스 바일(얼음과 눈 벽을 오를 때 쓰는 망치 모양의 장비)을 마른 수건으로 닦으며 ‘다음엔 어디를 가지?’ 그렇게 말했단다….
루크라 마을에 들어서기 전 긴 오르막이 기다린다. 40여 분을 올라가야 하는 거리여서 ‘내가 왜 이 짓을 하지?’ 한 번쯤 후회하게 한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 세워진 쵸르텐, 문을 들어서면 루크라, 비로소 칼라파타르 트레킹이 끝난 것이다. 루크라에 들어서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이런 생각이 들진 않을까…. 힘들었지만 다음엔 어디를 가지….

Tip: 루크라는 항공취소가 빈번하다. 항공이 취소되면 이전에 취소된 사람 우선이 아니라 예약된 사람이 우선이고, 이전에 취소된 사람들을 순서대로 태운다. 그래서 정해진 날짜에 루크라로 돌아와야 한다. 만약 일정이 어긋났다면 바쁘게 항공사를 오가며 부탁해야 한다. 넋 놓고 기다리면 내 차례가 오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항 옆 롯지에 묵길 권한다. 조금 비싸지만, 공항 관계자와 라인이 닿아 수시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편의를 봐주기 때문이다.
2011년엔 비행기가 취소되어 많은 사람이 루크라에 10일 이상 발이 묶인 적도 있었다. 사이드 트렉 안내 쿰부 지역엔 칼라파타르 이외에도 전망대가 여러 곳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 고교리, 쥬쿵리(여기서 ‘리’는 Peak이라는 뜻)가 있는데, 이 세 개의 전망대를 쿰부 3대 전망대라 한다. 세 개의 전망대를 잇는다면 쿰부를 전체를 속속들이 둘러보는 트레킹이 된다.
경로: 루르라 → 남체 → 딩보체 → 쥬쿵 → 쥬쿵리 – 콩마라(5,535m) → 칼라파타르(5,550m) → 톨카 → 촐라라(5,368m) → 고교리(5,357m) → 사나사 → 남체 → 루크라
소요일수: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