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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라닥으로 가는길

 

델리에서 라닥으로 가는 비행기는 새벽 벽두에만 운항하기 때문에 피곤한 여정입니다. 전날 호텔에 택시를 보내 달라 요청해 놓고, 2시 30분에 알람 시계를 맞춘 뒤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12시, 1시, 1시 20분 결국 2시 15분에 지쳐서 일어난 후, 알람 시계는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야 울렸습니다. 라닥이 나를 꽤나 긴장시킨 모양입니다.
비행기는 철이 늦어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외국인은 네다섯 명쯤의 서양 젊은이들과 두 명의 일본 여자가 전부였습니다. 1시간 반 동안 날아가는 비행기는 이륙하자마자 아침을 주기 바쁩니다. 닭고기 고물이 가득한 빵은 아침으로 적당했고,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몸이 으스스해 일어나 보니 사람들은 창밖의 전경을 사진기에 담느라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고 있어 저 역시도 급하게 카메라를 꺼내 아쉬운 한 장을 찍었습니다. 마루금이 겹겹이 중첩되어 끝이 보이지 않는 대지, 저기를 티베트라 하고 여기를 라닥이라 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라닥, 중첩된 산세가 복잡하게 얼기설기 얽혀있다.]

라닥을 인도라고 하기에는 여러 면에서 모순입니다. 문화도 사람도 종교, 심지어 언어까지 전부 티베트인데, 왜 인도에 속해있을까요?
라닥의 역사를 한 번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티베트의 왕자가 와서 세웠다고 알려진 왕국은 모든 왕국의 운명을 반복하듯 본국과 시간이 갈수록 멀어졌을 것입니다. 중앙아시아와 티베트를 인도 대륙과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 잡아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니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을 것이고, 왕국의 주요 수입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때 라닥은 번성해 티베트의 토번 왕국에서 갈려 나와 차마고도 교역로에 번성했던 구게 왕국을 멸망시키기도 했습니다. 교역로의 라이벌 관계였을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실크로드를 흉노와 토번, 중국 세력인 漢, 唐나라가 번갈아 점령하며 왕조가 번성하다가도 실크로드를 잃으면 쇠퇴했듯이 라닥도 교역로를 지배하며 번성해 갔습니다. 하지만 번성이 오래갈 수는 없었습니다. 왕국의 번성은 곧 쇠퇴를 胚胎하니, 라닥도 같은 역사적 궤적을 겪습니다. 한때 라이벌인 구게 왕국을 멸망시키고 티베트와 인도를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주인이 되었지만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연결하는 길목의 잠무, 케시미르 왕국이 라닥의 번영을 시기하여 침공합니다. 라닥은 저항했지만 결국 잠무, 케시미르 군대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이어 영국이 인도 대륙을 통치하게 됨에 따라 라닥은 티베트의 영역에서 영원히 독립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습니다. 여행객 입장에서는 다행인 측면이 있습니다. 중국의 일방적이고 획일화된 문화적 우월주의에 비해 인도는 포용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가 사회 근간을 이뤄 티베트적인 문화와 풍속이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는 몇 안 되는 땅입니다. 티베트엔 티베트가 없다는 조크는 이제 식상할 정도입니다. 하나의 문명 체계로 획일화시키는 중국의 문화정책은 발전이란 떡과 정체성을 바꾸는 편리한 수단이고, 중국 세계에서 더 이상 다른 문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긴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렇게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라닥의 가치는 지켜진다는 데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라닥은 숨겨진 세상, 샹그릴라같이 보입니다. 지켜지는 땅, 그대로 존재하는 땅, 라닥을 함축하는 말이 아닐까요? 비행기는 하강을 하자마자 랜딩기어를 뺍니다. 창 높이로 메마른 봉우리가 서 있고,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내려앉습니다. 고도 3,350m, 라닥은 하늘 속의 땅인가 봅니다.
비행기는 공기 저항이 없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활주로로 미끄러지다 멈췄습니다. 아침 7시, 하루가 시작될 무렵 라닥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고 나오니 예약했던 여행사 매니저가 랜드 크루즈를 가지고 나와 반겨줍니다. 나를 태운 차는 산 아래 한적한 게스트 하우스로 달려갑니다. 도착한 게스트 하우스는 티베트 전통 가옥 형태로 지어진 깨끗한 숙소입니다. 차를 한 잔하고 일정을 검토해보니,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레 부근의 콤파를 돌아보며 강제 호흡을 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4,000m까지 올라가 봅니다. 그다음 날은 누브라 계곡으로 3일간 트레킹을 다녀오고, 그리고 난 후 본격적인 창탕 고원 트레킹을 합니다. 창탕 고원은 4,000 ~ 5,500m 사이를 오가는 고원으로 최근 몇 년 전에 개방된 매력적인 고원입니다. 4,000m 고원임에도 빙하 호수가 많고 고원 초지가 있으며 야생동물이 뛰어놀고 야생화도 많은 곳입니다. 더욱이 유목민을 직접 조우하게 됩니다.

하나, 둘 일정을 검토하다 보니 점점 몸에 힘이 빠집니다. 고산증세는 도착과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보통은 1~2시간 지나서 나타납니다. 몸이 무력해질 때쯤 1리터 보온병을 하나 부탁해 차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몸 컨디션을 조절하며 오전을 보냅니다. 경험이 많아서인지 특별한 증세 없이 약간의 압박감으로 고산증세는 진정되었고, 점심을 먹습니다. 점심 식사 후, 다시 1리터 보온병에 블랙티를 가득 채워 마시기 시작합니다. 고산에 처음 올라갔을 때는 하루에 4리터 정도 마시는 게 좋다고 합니다. 벌써 3리터를 마셨으니 잠자리에 들며 1리터마저 마셔야겠습니다.

[티벳식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밀레레파 게스트 하우스]
[첫날 묵은 밀레레파 게스트 하우스]
[게스트 하우스 벽에 걸려있는 부처가 그려져 있는 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