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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티베트 불교의 마지막 보루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우리나라에는 이런 인사가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못 보게 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격동의 시기를 겪으며 생겨난 말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러한 말은 고산에 적합한 말입니다. 밤을 무사히 보냈을 리 없지 않은가요?
아침 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들어서니 하나밖에 없는 손님이라 그런지 주인장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물어봅니다.
“밤새 안녕했냐” 사람은 잠잘 때 호흡이 잠시 끊어지는 현상이 있습니다. 특히나 코 고는 사람은 더욱 심하다고 합니다. 그런 현상이 고산에서 일어나면 극심한 고산 증세를 가져올 수 있지만, 다이아막스는 부족하나마 안정적인 산소 섭취를 도와주기 때문에 그런 현상을 막아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다이아막스를 먹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레에서 유명하다는 곰파를 돌아보며, 강제 호흡을 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입니다. 강제 호흡과 곰파 방문이 무슨 연관이 있냐 싶겠지만 유명한 곰파는 대부분 산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왜일까?” 곰파를 향해 오르면서도 궁금했습니다.
신도들이 찾아오기 쉽게 낮은 곳에 자리 잡으면 좋을 텐데, 찾아오는 자체도 수행으로 삼으라는 것인가? 작년에 달라이 라마는 자신은 종교 지도자일 뿐, 정치 지도자는 아니라고 선언했습니다. 주변에서 울고불고 만류했음에도 의지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치의 리더, 종교의 리더로 절대적 권력을 갖은 존재지만 사실 왕족도, 귀족도 아닌 암도 지방(지금의 청해성) 허름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흔히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종교를 티베트 불교라고 합니다. 환생 불로가 인정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가장 높은 지존의 자리에 올라갑니다. 세습도 혁명도 아니고, 오랫동안 준비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룻밤에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우리나라도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천한 신분으로 권력을 얻은 사람이 있습니다. 고려의 무인시대가 유일했는데, 요즘 TV 인기 프로그램인 ‘무인시대 주인공 김준’이 그런 인물입니다. 그는 노예 출신으로 최고의 권력까지 올랐지만 그에겐 노예 군이라는 무력이 있었고 지위도 상국이지 국왕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평화적이고 아무런 기반 없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수직적 권력 이동이 가능한 제도는 티베트의 라마 불교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딕셰 곰파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이 듭니다. 곰파는 대부분 외부에서 접근하기 어렵게 비탈진 작은 산정에 지어져 있습니다. 짓느라고 얼마나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들었을까요, 또 구조를 보면 외벽에 붙은 창은 좁고 높은데 이는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오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곰파는 사원이기보다 성이라고 봐야 맞을 것 같습니다. 티베트의 곰파는 때로는 성이고, 때로는 궁전이고 때로는 곰파(사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곰파 중심의 도시 구조이다 보니 곰파를 빼면 외부의 침입을 막을 제대로 된 건축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유일한 건축물이 곰파인 것입니다. 그래서 곰파는 라마 불교를 믿는 땅의 마지막 보루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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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닥의 곰파 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듯하다. 외벽에 나무가지를 넣어 장식을 한다.]

라닥에서는 라마 불교를 창시했다는 파드마삼바바와 부처 상이 거대하게 모셔져 있다는 헤미스 곰파가 유명하지만 영상미는 딕셰 곰파가 압권입니다.
레에 가면 딕셰 곰파를 빼놓지 않고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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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셰 곰파, 맑은 하늘에 성을 상징하듯 지어진 딕셰 곰파는 라닥의 상징이다. 일명 라닥의 포탈라궁으로 불린다.]

오늘 고도 적응 활동은 헤미스 곰파 뒷산에 자리한 고창 곰파까지 오르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고도가 4,000m를 살짝 넘어 오늘은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고창 곰파에 오르면 히말라야를 탄생시킨 대습곡의 한 장면과 마주하게 됩니다. 두터운 지반이 V자로 휘어져있는 형태입니다. 아프리카판과 인도판이 부딪혀 히말라야가 생겼다지만 생생한 현장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고창 곰파에서 내려다 본 계곡은 지질학의 역사 표본이기도 합니다..
고창 곰파에서 돌아와 레에서 한가득 저녁상을 받았습니다. 내일은 고도를 낮추어 누브라 계곡으로 갈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전에 5,602m 카르둥라(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저는 고개 1km 전에 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1km의 내리막길도 걸어갈 생각입니다. 그러면 2차 고도 적응으로 대만족입니다. 고도 적응 행위는 왜 중요할까요? 높은 고도에서 활동하고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 잠자리가 편하기도 하고, 멋진 고개를 차로 넘는 것보다 아쉬움이 남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불편한 선택을 합니다.
라닥에서의 둘째 날, 아직 몸은 고도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도가 높아지면 하는 일 없이 머무르면 피곤하고 무력해집니다. 그래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눕거나 낮잠은 숨이 낮아지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앉아서 쉬다 보면 졸음이 자꾸 몰려오므로 몸을 털고 일어나 가벼운 산보를 합니다. 가벼운 산보는 몸이 높은 고도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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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곰파가는 길에 마주 한 계곡, 일어선 지판이 험란했던 과거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