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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창탕고원 트레킹

[라닥 트레킹 지도]

오늘부터는 창탕 고원 트레킹입니다. 티베트는 라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위’라 부르고 동쪽을 ‘캄’, 북쪽을 ‘암도’, 남쪽을 ‘쫭’ 그리고 서쪽을 ‘창탕’이라 부릅니다.
캄은 비교적 기후가 온화하고 수림이 많습니다. 티베트의 가장 번성한 지역으로 마지막 왕국이 캄 왕국이니, 중국에 강제 합병되기 전 영화로웠던 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장 강성하고 사납고 저항의식이 강한 곳이기도 합니다. 달라이 라마의 호위도 캄 출신 청년들만이 맡는다고 합니다. 티베트에서 분신했다 하면 대부분 그쪽 사람들이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난 영광의 회한이 아닐까요? 반면 변화에 뒤처져 고스란히 왕국을 가져다 바친 책임도 역시 지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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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이다. 짐을 풀어놓으니 한가득이다. 말이 5마리나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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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겸 주방장 남걀, 자유분방한 히피다..]

암도 사람들은 신성한 면을 갖춘듯 합니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도 암도 사람이고, 티베트를 지배하는 마지막 종파 겔룩파의 창시자인 총카파도 암도 사람입니다. 고승이 많이 나오는 땅은 분명 뭔가 다르지 않을까?
쫭은 인도 대륙과 통하는 길목이고, 히말라야를 등진 지역입니다. 티베트의 중심에서 밀린 사람들은 쫭 지역으로 도피하여 새로운 왕국이나, 일파를 세우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쫭 지역 사람들은 큰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통치 시절부터 이들을 티베트 관리자로 키움에 따라 티베트 내에서도 쫭은 갈등의 대상인 듯합니다.
창탕은 그저 고립 무원입니다. 세계의 지붕 티베트에서도 가장 높고 가장 넓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대부분입니다. 라닥에도 이런 땅이 있습니다. 라닥의 다른 지역과 달리 고립 무원함과 아득함이 가득 서려 창탕이라고 부릅니다.
창탕 트레킹은 출발 지점과 도착지점을 어디로 두느냐, 하루 트레킹을 얼마큼 하느냐에 따라 5일에서 21일까지 다양합니다. 저는 창탕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초칼(칼 호수, 칼은 소금이라는 뜻)에서 초모리리(모리리 호수로 아낙이 야크를 데리고 호수를 건너다 빠져 죽었다는 뜻)까지 트레킹하고 창탕에서 가장 높은 멘톡 캉그리(6,200m)를 오르기로 마음을 먹고 출발했습니다.

트레킹 첫째날: 레 ~ 초칼
레에서 초칼까지는 차로 4시간 걸렸습니다. 4,200m에 달하는 초칼은 관광지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어 호숫가에 거대한 Luxury Tent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Luxury Tent는 보통의 텐트가 아닌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올 법한 거대한 텐트로 바닥에는 두꺼운 침대 매트와 하얀 침대 시트까지 깔린 침실 텐트가 있고, 식당에는 십 여개의 식탁과 의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가 되는 샤워 부스, 화장실 등 호텔 수준 뺨치는 텐트입니다.
요즘 제주도의 일류 호텔들도 장기 투숙객에게는 Luxury Tent를 해안가 잔디밭에 쳐 놓고 무료로 빌려준다고 합니다. 식사와 차를 종업원들이 직접 날라다 주는 극진한 서비스도 제공됩니다. 그런 텐트 생활, 고도가 높아 머리가 좀 불편하지만 똑같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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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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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점심메뉴]

초칼에 도착해 점심을 간단히 먹고 호수 주변을 따라 퐁구나구까지 왕복 3시간을 트레킹 했습니다. 고도가 4,200m이지만 평지 길이고 가벼운 산책이라 전혀 힘들거나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내일부터는 다르겠지만 오늘은 이로서 만족합니다.
저녁을 과하게 먹지 않고 1리터의 보온병에 가득 담긴 블랙 티를 잠들기 전까지 다 마시고 또 하나를 달라고 했습니다. 고산 적응엔 차를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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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나르는 말]

트레킹 둘째날: 초칼 ~ 누르첸 ~ 라중구루
아침이 좀 쌀쌀했지만 텐트 안은 따뜻했습니다. 침낭에서 나와 파카를 입고 식당 텐트에 앉으니 차를 내어 줍니다. 지금은 10월 1일 라닥은 겨울이 시작되어 아침, 저녁으로 쌀쌀합니다. 보통 시즌은 6월부터 9월 초순까지입니다. 하지만 성수기를 약간 비켜가니 사람이 없어 너무 좋았습니다. 10월이라지만, 해가 나면 반팔에 긴팔 하나면 무난합니다. 바람이 불면 윈드 재킷을 입으니 트레킹 하기에 아주 적당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패드 재킷을 배낭에 넣고 다녔지만 하루 종일 꺼내지 않았습니다. 버프를 코와 귀까지 덮을 만큼 끌어올리고 입으로 숨을 쉬며 고개를 하나씩 넘었습니다.
보통 5,000m에 가까운 고개를 하루에 한두개 넘습니다. 그래도 시작하는 지점이 4,500m 정도이므로 오전에 고개 하나, 오후에 고개 하나 넘는데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소요 시간은 보통 걸음으로 6시간, 점심과 휴식을 더해도 8시간이면 충분한 듯합니다. 쉬지 않고 천천히 걷다 보니 오전에 3시간, 오후에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캠프지에 2시경에 도착했는데 아직 햇살이 따갑습니다. 혼자 걷는 중간에 휴식을 취하지 않아 다음 번 일행과 함께 올 때는 조금 더 놀면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지 가이드 말로는 보통 4시쯤 도착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합니다. 자기들이 먼저 도착해 주방 텐트를 치고 차를 끓여 놓으면 그때 도착하라는 건데, 말과 함께 도착하니 그럴 시간이 없다고 미안해합니다. “나도 걷는 데는 도사야 이 사람아.. 내 직업이 등산 가이드라고 말해줄걸 그랬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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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도 넘어도 길은 계속 오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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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개가 5,000m 좀 넘는다지… 트레킹 내내 나의 복장은 이랬다.]
[내일 올라갈 고개를 바라본다. 저기도 5,000m 란다.]
[밤이되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 도착해 파카를 처음 꺼내 입어본다.]

트레킹 셋째날: 라중구루 ~ 갸마빠마
‘갸마’는 물이 있어 야영할 수 있는 넓은 초원이라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이 있는 지역을 ‘갸마’라고 붙인 지명이 많습니다.
창탕 고원 트레킹은 주름진 리틀 히말라야 안에 들어가 미로를 찾아 나가는 그런 트레킹입니다. 하나의 고개를 넘으면 다음 고개가 기다리고, 고개와 고개 사이가 완만한 계곡입니다. 고개는 일자형으로 늘어지지 않고 엇갈리기도 하고, 중첩되기도 해서 복잡합니다. 지능과 지능 사이를 요리조리 넘어가며 고원 길이 이어집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라닥의 산줄기가 떠올랐습니다.
네팔의 Great Himalaya는 명쾌한 봉우리가 불쑥 솟아오르고, 그 봉우리에서 뻗은 줄기가 지간을 이루며 산줄기 사이의 계곡을 따라 이름 높은 거봉으로 다가갑니다. 그렇게 목적지를 향해 갔다 오는 반복 노선이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면 라닥의 Little Himalaya 트레킹은 작은 장애물들이 엇갈려 있어 모퉁이 사이를 비집고 넘어가는 장애물 경기 같은 트레킹입니다. 풍경도 뚜렷한 압권이 있는 게 아니라 무던하고 비슷합니다. 마치 몽골의 대지를 연상시키는 풍경입니다. 가끔 만나는 양 떼까지도 그렇습니다. 사면은 경사가 있지만 무리하지 않을 만큼 적당합니다. 부드럽고 완만해서 걷기는 좋지만 고도가 4,500 ~ 5,400m 사이를 오가기 때문에 힘들고 지칩니다.
오늘도 3개의 고개를 넘어야 해서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으며 그중 마지막 고개는 5,410m였습니다. 창탕 고원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개일 것입니다.

[트레킹이 끝났다고 남걀이 더 좋아한다. 그도 힘들었나보다.]
[멀리 산 사이로 종착지인 호수가 보인다. 다 끝난거지?]

트레킹 넷째날: 갸마빠마 ~ 초모리리
“마지막을 가장 성대하게 미뤄두어라” 그런 시구는 없나, 창탕 고원 트레킹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지만 창탕 고원에서 가장 높은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합니다.
첫 번째 고개는 갸마발마(Gyama Barma-La 5,300)고, 두 번째 고개 사이는 물이 흐르는 캠핑장이어서 갸마라고 하는데 이곳의 높이가 4,950m이니 가장 높은 두 번째 고개도 500m만 올라가면 됩니다. 고원을 걷는다는 건 사실 피곤한 일입니다. 천천히 바람과 마주 서서 거칠게 숨 쉬며 하루 종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찬바람이라도 맞으면 콧물이 자꾸 흘러 코가 짙무르게 되고 결국에는 코가 헐게 됩니다. 장갑을 낀 손등으로 훔치지 않고 휴지로 살살 조심스레 닦아도 이틀만 지나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셀린이나 후시딘이 필요합니다. 저녁에 약을 바르고 자야 그나마 좀 나아집니다. 입술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양과 바람에 붓고 잘못하면 찢어지기도 합니다. 찢어지기라도 하면 그 고통은 말하기도 벅찹니다.
다행히 4 ~ 5일 정도의 트레킹이면 입술이 붓고 찢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에서 트레킹을 끝내는 게 좋습니다.

[말과 습지와 눈 덮힌 구릉, 가장 라닥 다운 한 컷인거 같다.]
[야크 똥을 말리는 노파, 뒷 모습이 자연의 일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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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모리리 호수와 람마백탑]

두 번째 패스를 넘으니 긴 내리막이 보입니다. 물론 가벼운 오르막이 한두 개 있지만, 긴 내리막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계곡을 따라 길게 초모리리까지 너털 걸음을 걷습니다. 초모리리가 4,400m 정도이니 약 1,000m를 내려가야 합니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내리막이라 그런지 걷는 내내 흥얼거리며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