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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더블린에서의 첫날


아이리시 펍과 기네스 맥주만 익숙한 저에게 더블린은 문학이란 단어를 던집니다. 인구도 적고 땅도 좁지만, 조지 버나드 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사뮈엘 베케트, 셰이머스 히니 등 4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그 외에도 ‘유미주의’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 ‘드라큘라’의 저자인 브램 스토커,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인 조너선 스위프트 등 유명한 작가를 많이 배출했습니다. 아일랜드는 술이 아닌 문학적 영감이 넘치는 땅인가 봅니다. 왜냐하면, 아일랜드 작가의 작품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4명의 거장을 모두 만나볼 수 없으니 이들을 배출한 트리니티 신학 대학을 찾아갑니다. 대학 내에는 2015년 BBC가 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문학적 토양은 어쩌면 이곳에서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롱 룸(The Long Room)이라고 불리는 3단의 거대한 도서관에는 20만 권의 고서가 가득하고 하나의 서고마다 석고상이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른편의 석고상은 유럽의 정신을 만든 위인들이 조각되어 있는지 서고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기둥에 일리아드가 조각되어 있고 다음으로 관념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소크라테스, 현재 대학의 효시인 아카데미아를 창시한 플라톤, 유럽 학문의 다양한 분야를 연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도 뒤로 10여 명의 위인 두상이 거치 되어 있습니다.

저의 지식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지나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키케로에서 멈췄습니다. 반대편 조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셰익스피어부터 시작해, 영국의 근대정신을 이룩한 베이컨, 과학의 영역을 획기적으로 바꾼 뉴턴에서 다시 멈췄습니다. 그 뒤로는 알 수 없는 위인들뿐이니 저의 지식이 이만큼인 것이죠. 도서관은 말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한 발을 더 나아가려면 이 서고의 책을 모두 읽어야 한다고..

IRELAND-TRINITY COLLEGE
트리니티 신학 대학교 도서관
IRELAND STORY 2
켈트의 서

도서관은 입구부터 만원입니다. 도서관에 들어가기 위해 입장료를 구입하고도 차례를 기다리는 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불리는 ‘켈트의 서(The Book of Kells)’때문입니다. 800년경 쓰인 책으로 추정되며, 가톨릭의 복음서로서 성경 구절을 라틴어의 예술성 높은 문장과 문장을 장식하는 그림과 문양으로 치장하고 있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켈트의 서에 쓰인 기법을 켈리그라피(Calligraphy)라고 하는데 오래전부터 수도사들이 복음서를 필사하며 글자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사용하던 기술을 말합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16세기경 시작되었지만 켈리그리피가 의미하듯 켈트의 서가 모든 복음서 중 가장 아름답기 때문에 보통명사처럼 ‘그라피’에 ‘켈트’를 붙인다고 합니다.

어떻게 아일랜드는 복음서의 정수를 만들고 간직하고 있을까요. 영국의 가톨릭이 전래된 건 가톨릭을 받아들인 로마 시대부터라고 하지만 로마는 가톨릭을 받아들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잉글랜드를 포기했기 때문에 로마에 의한 전도라고 볼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게르마니아의 시대가 유럽에 열리고 로마교황청이 게르마니아에 가톨릭을 포교하던 시점에 자연스럽게 전래되었습니다. 영국보다 한 세기는 늦었을 것으로 판단되고 영국마저도 유럽대륙보다 한 세기 늦은 596년 그레고리우스 교황 때에 이르러서야 선교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일랜드의 가톨릭 역사는 그리 오래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켈트의 문학적 감성이 시간의 뒤처짐을 넘어서지 않았을까요? 노벨문학상을 네 분이나 배출한 훌륭한 문학적 에너지는 켈트의 서에도 여실히 발휘된 게 아닐까요..

IRELAND-TEMPLE BAR
금요일의 템플바 거리

트리니티 대학을 나와 좁은 뒷골목을 걸으면 1,000개의 펍이 들어선 템플 바(Temple Bar) 거리에 닿습니다. 금요일이라서 그런가요.
한낮이건만 거리에는 술이 얼큰한 사람들로 북적이고 소음으로 가득한 바에서 소리의 난잡함을 즐기는 사람으로 만원입니다. 주고받는 대화와 혼자 소리치는 아우성 그리고 찢어질 듯 뿜어져 나오는 생음악. 사람들은 복잡한 공간이 불편하지 않은 듯 미소 짓습니다.
이런 게 아일랜드의 맛이고 멋이겠죠. 아일랜드인의 삶을 주요 소재로 글을 쓴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 사람답게 펍을 꽤나 사랑했습니다. 팝을 그냥 지나친다는 건 그에게 이해할 수 없는 퍼즐이었던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술집을 거치지 않고 아일랜드를 지나는 것은 하나의 재미난 퍼즐이다.”

IRELAND STORY 4
율리시스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
IRELAND STORY 5
템플바의 내부 모습

술집에 앉은 제임스 조이스는 술잔을 들고 오늘도 “괜찮아. 와서 한잔하고 가.”라고 말하고 있네요.
아일랜드 사람들은 모두 취객이 되어서 복잡하고 난해한 더블린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취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어서 우린 취하는 거야.. 더블린은 제임스 조이스가 말했듯이 취해야만 난해함의 실마리가 보이나요.. 그는 더블린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세상은 그의 글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고 합니다.

“다 읽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은 소설, 읽는 내내 계속 읽을 것인지를 갈등하게 하는 소설.”

그의 대표작이자 더블린 사람들의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렸다는 ‘율리시스’에는 이런 주석이 붙는다고 합니다.

“율리시스를 연구해서 문학박사가 된 사람이 율리시스를 읽은 독자보다 많을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고 더블린의 삶을 이해하려는 게 어리석은 일인 것이죠.. 그러니 템플바에서는 저도 취해야 하나 봅니다. 템플바에서 이집 저 집을 전전합니다. 저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많은 탐방객이 취하고 있고 소음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게 대화하고 있습니다. 논리가 필요 없고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 없는 공간에서 서서히 더블린의 삶으로 녹아드는 거 같습니다. 그러려고 더블린을 찾아온 것이겠죠. 아일랜드의 문학 에너지도 이렇게 시작된 게 아닐까요, 난해해서 그냥 삼켜버렸더니 꿈이 되어 돌아왔듯이.. 아니면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던 아일랜드의 아픔이 문학적 에너지는 아니었을까요? 너무 아파서 맨정신으로는 삶을 이어갈 수 없는 이유였을까요?…
아일랜드에서 문학은 아픔을 안고 태어난 못난 자식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