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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P.S I Love You

 

애절한 영화를 보면 한동안 멍하니 서서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 영화를 만났습니다. 무뚝뚝한 아일랜드 남자 제리(제라드 버틀러 역)는 삶의 전부인 아내 홀리(힐러리 스왱크 역)와 이제 이별을 고민해야 합니다. 뇌종양으로 삶의 시간이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제리는 혼자 남을 아내 홀리가 상처받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꿋꿋이 살아가게끔 도와주기 위해 고민을 시작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이별과 사랑의 상실, 사랑하는 홀리가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게끔 도울 방안은 무엇일까요?
제리는 사랑하는 아내 홀리를 위해 3월부터 12월까지 한 달에 1가지씩 실천할 내용을 적어 10개의 봉투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봉투를 전하며 마지막 시간을 받아들입니다. 홀리는 제리가 남긴 봉투를 매달 첫날 하나씩 열어보고 남편의 숨결을 느끼듯 하나씩 내용을 실행해 가며, 슬픔의 껍질을 벗고 굳건히 삶을 지탱해 나갑니다. 그녀가 실행한 것 중 하나가 헤더(Heather 산철쭉과)가 가득한 동산을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 P.S I Love You(2007) 트레일러

홀리는 보랏빛 헤더가 만발한 동산에서 제리를 다시 찾아냈고 제리는 슬픔을 이겨낸 홀리를 흐뭇해하며 천천히 영혼의 안식처로 돌아갔겠죠. 영화 ‘P.S I Love You’는 그렇게 잔잔히 가슴을 두드리고 찡하게 마음을 울립니다. 홀리가 제리를 다시 찾아낸 헤더 가득한 동산을 찾아 위클로우 국립공원(Wicklow National Park)으로 향합니다.
영화 촬영지인 위클로우 국립공원은 아일랜드의 정원이라고 불립니다. 더블린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일 뿐 아니라 동산을 덮은 헤더(산철쭉과)와 짜임새 있는 수림, 보기 좋게 디자인된 초원이 마치 아름다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위클로우 국립공원으로 가는 초목 산길은 헤더가 가득한 고원 위로 옷매무새를 다듬게 하는 바람이 몰아치고 낮고 묵직한 구름까지 몰려와서 마치 폭풍의 언덕을 연상케 합니다.
바람과 마주하니 폭풍의 언덕을 마주하는 듯합니다. 채색된 대지는 음탕하게 움츠리고 철 지난 헤더는 떨어질세라 대지에 납작 엎드려 있습니다. 바람이 실어 오는 습기와 시린 냉기는 대지만큼이나 묵직합니다. 그러다 툭 튀어나온 태양 그리고 시작된 화창한 봄날로의 변신. 아일랜드의 대지는 변검(變瞼) 같이 변화무쌍한가 봅니다.
‘P.S I Love You’의 작가 세실리아 아헌(Cecelia Ahern)이 제리와 홀리라는 영혼의 결합자를 만들어 낸 건 아일랜드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서가 아닐까요.. 미치도록 변화무쌍한 인간의 마음을 사랑 안에 가두어 두려 한 저자는 아일랜드의 자연도 따사로운 햇살 아래 놓아두고 싶었을 겁니다. 불가능한 일인 줄 알면서 말이죠. 인간의 사랑만큼이나 변덕스러운 아일랜드의 날씨를 알면서 말이죠..위클로우 국립공원에 도착해 방문자 센터를 찾아 오늘 걸을 트레일을 문의했습니다.
“가장 전망이 좋은 트레일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국립공원에는 총 9개의 코스가 있고, 모두 나름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전망만을 우선으로 한다면 ‘Spinc and Glenealo Valley’ 트레일이 당신에게 맞을 거 같군요. 하얀 화살표를 따라가세요.”

흰색은 모든 색과 어울리지만 일단 다른 색과 섞이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색입니다. 모든 색을 변화시킬 때 양념같이 들어감에도 자신은 없는 색. 어쩐지 ‘P.S I Love You’영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트레킹은 어퍼 호수(Upper lake)까지는 포장된 평지를 걷고 이후에는 호수를 품은 능선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지다가 능선에 오르면 글렌달록(Glendalough)계곡과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조망과 마주칩니다. 오른 만큼 거짓 없이 보답하는 산의 정직성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힘들게 걸어온 노고를 어루만져 줍니다. 트레일은 능선 끝무리까지 작은 오르내림과 함께 이어지고 능선 끝무리에서 호수가 시작되는 계곡 상류를 거쳐 호숫가 평지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구간인 호숫가 트레킹은 넓은 길을 따라 숲길을 호젓이 걷는 건강 트레킹이며 출발지인 방문자 센터에 닿아 끝이 납니다. 즉 방문자 센터에서 시작해 방문자 센터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입니다. 총거리는 주차장에서 시작해서 주차장으로 돌아오기까지 12.5km였으며 4시간 정도 소요되는 걷기 좋은 길이죠.
걷는 자를 행복하게 하는 트레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행복한 걷기였다고 해야 할까요. 조망과 운치는 물론이고 산 너머에서 불어오는 빗방울 실은 바람까지 아일랜드를 사랑하게 만드는 트레킹이었습니다.

위클리 국립공원
글렌달록 호수옆의 헤더 동산

트레킹을 끝내고 옛 아일랜드의 수도였으며 아일랜드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이고, 전통과 문화가 살아있는 고즈넉한 중세의 소도시인 킬케니(Kilkenny)로 이동합니다.
킬케니는 우리나라의 경주같이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의 도시인 것이죠. 성이 있고 성당과 중심 광장을 가진 전형적인 중세의 도시입니다. 그런데 킬케니를 유명하게 한 건 술이라고 합니다. 술과 동떨어질 수 없는 아일랜드인이니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라는 표현 속에 술이 들어간 것은 아닐까요?
킬케니 드래프트 생(Kilkenny Draught Keg)은 아이리시 크림 에일 맥주의 원조로 맛뿐 아니라 역사도 깊습니다.
1710년 킬케니의 성내 프란시스 수도원 양조장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질소가 함유되어 맥주를 따르면 크림 헤드가 만들어져서 ‘크림 에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더블린이 기네스로 유명하다면 킬케니는 드래프트 생으로 유명하다고 하니 오늘 밤도 맥주와의 인연을 끊을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수도원에서 시작되었다는 킬케니 맥주. 아일랜드는 성직자에게도 술이 필요한 땅인가 봅니다. 그건 성직자이기 전에 아일랜드인이라는 이유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