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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이니스프리를 향해서


아일랜드에서 처음 노벨상을 탄 위대한 시인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가 영적 고향이라고 스스로 말한 슬라이고(Sligo)에 도착했다. 도시에서는 시적 요소를 찾을 수 없어서 시인이 찬미한 자연을 찾아 나섰다.

예이츠는 사춘기를 외가댁이었던 슬라이고에서 보냈다. 외할머니는 예이츠를 극진히 보살폈으며 예이츠는 할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슬라이고의 자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슬라이고는 이후 그의 시적 고향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 바쁜 일상을 보내야 하는 예이츠는 회색의 도시를 걷다가 맑은 하늘을 보았고 이내 가슴 깊이 묻어둔 작은 섬 하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잊고 지난 시간을 보상하듯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나는 일어나 지금 갈 거야. 이니스프리로 갈 거야]

화장품 브랜드로 간판에 걸려 익숙하기만 한 단어. ‘이니스프리(Innisfree)’. 그 섬이 어떻게 화장품의 브랜드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길 호수(Lough Gill)에 떠 있는 작고 소박한 섬은 온통 나무에 덮인 더벅머리 총각 같다. 시인은 바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 했고 그곳이 이니스프리 섬이었다고 스스로 밝혔으니 섬은 사춘기 소년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던 것이다.

십대의 소년 예이츠가 아닌 60을 바라보는 나이의 여행객에게 이니스프리 섬은 일상적이기만 하다. 하지만 예이츠에게 이니스프리는 60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 섬이었을 것이다. 그랬으니 이니스프리만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렸겠지.

누구에게나 가슴속 깊이 묻어둔 이니스프리가 있다. 나에게도 그런 장소이거나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변치 않는 그리움으로 남는.. 오늘은 꿈을 꾸어봐야겠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나의 이니스프리를 생각하며…

INNISFREE ISLAND
길 호수 위에 떠있는 이니스프리 섬

시인은 이니스프리 섬만 사랑한 게 아니었다. 슬라이고 시내를 지키고 선 거대한 석회암 암봉인 벤벌빈(Ben Bulben, 526m)산을 자주 찾았으며 산에서 깊은 열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벤벌빈을 ‘열정에 찬 가슴의 땅’으로 묘사했고 죽어서도 벤벌빈이 보이는 드럼 클리프 성당 묘지에 묻혔으니 시인은 열정이 멈추는 걸 경계한 듯하다.

벤벌빈을 조망하며 숲길 트레킹 시간을 가졌다. 6km의 평탄한 숲길은 처음 벤벌빈을 조망하며 걷는 길이라서 거대 암봉의 위압에 눌려 지루한 줄 모른다. 암릉 자락이 끝날 때쯤이면 숲길로 들어서는데, 숲은 짙은 그늘이며 울타리 속 오묘한 독립공간이라서 편안한 안식처 같다. 숲길에서 벗어나면 오른편엔 토탄이 가득한 대지가, 왼편엔 좀 전에 벗어난 짙은 숲이 펼쳐져 있어서, 두 대지의 사잇길을 걷게 된다. 걷는 내내 광활한 대지와 빽빽한 숲을 음미하며 걸을 수 있어 시원하고 좋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걷고 나니 짧은 일주 트레킹이 끝났다.

벤벌빈 정상에 오르려 했지만 짙은 안개와 간간이 뿌리는 비 때문에 발길을 돌렸다. 비면 어떻고 안개면 어떤가. 다시 못 올 열정에 찬 가슴의 땅인데… 갔어야 한다는 아쉬움에 떠나는 발걸음이 자꾸 머뭇거렸다. 하지만 오늘 숙박할 호텔을 이미 잡아 놓아서 아쉬움 반 애석함 반을 남기고 런던데리(Londonderry)로 향했다.

예이츠는 한 여성에게 30년간 수도 없이 청혼했으나 그녀와의 결혼을 이루지 못하고 60편의 애절한 시만 남겼다고 한다. 시인마저도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애절함만 남긴 땅. 슬라이고는 그런 곳인가 보다. 무언가 이루지 못해야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그런 도시인 것이다.

안개에 감싸인 벤벌빈 산

2시간을 달려 런던데리에 도착했다. 런던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가요인 ‘대니 보이(Danny Boy)’의 바로 그 대니(Danny 원곡: 런던데리의 민요 Londonderry air)이다.

어린 시절 솜사탕같이 달콤한 목소리로 가수가 불러주던 노래. 그 가수는 사연을 알고 부른 것일까..

OH DANNY BOY

Oh Danny boy,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 아, 목동아, 피리소리 들리네
From glen to glen, and down the mountain side 골짜기로, 그리고 저 산마루를 따라 들려오네
The summer’s gone, and all the flowers dying 여름은 가고, 꽃은 모두 시들어가니
‘Tis you, ’tis you must go and I must bide 그대는 떠나가야 하고 나는 머물러야 하는구나
But come he back when summer’s in the meadow 하지만 그대, 강변 풀밭에 여름이 찾아오거나
Or when the valley’s hushed and white with snow 저 골짜기가 고요히 흰 눈에 덮일 때에는 돌아와
Tis I’ll be here in sunshine or in shadow 햇빛이 비추어도, 그림자가 드리워도 나는 여기 머물테니
Oh Danny boy, oh Danny boy, I love you so 아, 목동아, 아, 목동아, 내 사랑아
You’ll come and find the place where I am lying 그대는 돌아와 내가 묻힌 자리 찾을테죠
And kneel and say an “Ave” there for me 무릎 꿇고 나에게 “안녕”이라 말해주어요
And I will hear, the soft you tread above me 난 그대 나지막히 발 디디는 소릴 들을 테죠
And then my heart will warmer, sweeter be 그러면 나의 심장은 따뜻하고, 편안해질테니
For you shall bend and tell me that you love me 그대가 고개 숙여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And I will sleep in peace until you come to me 나는 그대 내 곁에 올 때까지 평화로이 쉴 거예요
Oh Danny boy,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 아, 목동아, 피리소리 들리네
From glen to glen, and down the mountain side 골짜기로, 그리고 저 산마루를 따라 들려오네
The summer’s gone, and all the flowers dying 여름은 가고, 꽃은 모두 시들어가니
‘Tis you, ’tis you must go and I must bide 그대는 떠나가야 하고 나는 머물러야 하는구나
Oh Danny boy, oh Danny boy, I love you so 아, 목동아, 아, 목동아, 내 사랑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는 원래 켈트족의 국가였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다시 게르마니아의 왕조가 들어섰으며 그 뒤를 이어 바이킹이 침공해 마지막 왕국을 건설했다. 잉글랜드가 그렇게 격한 변화를 겪는 동안에도 아일랜드는 여전히 외부의 침략을 받지 않은 켈트의 국가였다. 하지만 12세기 들어 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왕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잉글랜드가 100년 전쟁과 장미전쟁으로 혼란기에 빠져들었을 때는 독립왕국으로 존재하기도 했지만, 잉글랜드가 안정을 되찾으면 다시 통치를 받는 악순환이 700년간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라는 땅과 민족의 구분 선이 분명해서 복종만 하면 자치를 인정했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공존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일랜드의 문제는 지배와 통치가 아닌 땅을 탐낸 잉글랜드인들의 이주가 그 시작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왕이자 통합 잉글랜드의 첫 왕인 제임스 1세는 비옥한 아일랜드 북부에 스코틀랜드인을 중심으로 이주를 추진하고 대규모 농장을 개발했다. 제임스 1세가 실각한 뒤로도 이민정책이 지속되었고 이들은 대부분 신교도였다. 새로 이주한 사람들은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아일랜드인을 하얀 흑인이라고 폄하하며 하대했고 노예로 전락한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인들에 대한 적개심이 쌓여갔다. 땅을 빼앗기고 경제적 착취를 당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아일랜드인이 독립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아일랜드는 1922년 독립전쟁에서 승리하여 아일랜드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아일랜드에서 살고 있는 영국인이었다. 그들은 영국의 통치를 원하고 로마 가톨릭을 거부하는 아일랜드 내의 영국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이라는 막강한 배후가 있으니 이들이 아일랜드에 흡수되길 원치 않았다. 결국, 이들이 거주하는 북부 6개 주는 아일랜드 공화국에 합류하지 않고 영국령을 선택하였으며 그 결과 지금 걷고 있는 데리의 성벽은 영국의 땅, 런던데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성벽은 원래 포일 강을 넘어오려는 영국인들을 막기 위해 오래전 아일랜드인들이 세운 성벽이다.

포일 강을 경계로 아일랜드와 영국이 맞서고 작은 성은 아일랜드를 지키려는 최전선이었던 것이다. 이 성에서 얼마나 많은 아일랜드의 젊은이들이 죽어 나갔으면 그런 노래가 지어졌을까.. 성벽은 그리 길지 않다. 1.6km밖에 안 되지만, 성안의 구시가는 잘 정돈되어 보인다. 성벽을 걷다 내려와 두 명의 남자가 마주 서서 손가락이 닿도록 손을 뻗고 있는 조형물 앞에 섰다.

‘Hand Across the Divide’라 불리는 조형물은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 20주년인 1992년 ‘화합’의 의미로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아일랜드인은 피의 일요일이 아니어도 아픔이 많다. 감자 기근 때 영국이 도와주었다면 200만 명이나 굶어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비참한 경험을 해서인지 아일랜드 여행 내내 주문한 음식에는 감자가 풍성하다. 언제든 감자를 못 먹을 수 있으니 미리 먹어 두라는 거 같다.

문학도 풍성한 굶주림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상상을 유도하는 폭소와 위트. 난해한 병립. 문학의 나라 아일랜드는 자연이 준 풍성함과 인간이 준 교훈이 밑바탕이 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