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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거인의 둑길을 걷다.


아일랜드는 유난히 거인을 기다린 나라 같다. 골웨이(Galway)에서는 해안 절벽을 거인의 정원이라 불렀다. 슬라이 고의 봉긋하게 솟은 벤벌빈(Ben bulben)산은 거인 ‘핀 막 쿠월(Fionn mac Cumhaill)’이 마법에 걸린 수퇘지와 싸우다 밀려서 생긴 산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아일랜드의 북쪽 해안에 다다르니 새로운 거인의 이야기가 맞이한다. 전설적인 거인 핀 막 쿠월이 스코틀랜드에 사는 애인이 건너올 수 있게 바다 위에 둑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왜 아일랜드 사람들은 거인을 상상할까?

조나단 스위프트는 그런 아일랜드 사람들의 바람을 잘 이해한 듯 ‘걸리버 여행기’를 지었다. 주인공 걸리버는 항해에 나섰으나 난파하여 바다를 표류했으며 릴리퍼트(Lilliput)라는 소인국에 닿았다. 릴리퍼트 왕국은 이웃 나라인 블레퍼스크와 적대 관계에 있었고 블레퍼스크가 갑작스럽게 침공해오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릴리퍼트에는 거인 걸리버가 있었고 걸리버는 바다로 나가 적의 함선을 밧줄로 묶어 끌고 옴으로써 전쟁을 종결시켰다. 그렇다고 블레퍼스크를 멸망시킨 건 아니다.
단지 전쟁을 멈추게 하였고 두 나라가 잘 공존하게끔 만들었을 뿐이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그린 걸리버 여행기는 아일랜드인의 마음을 가장 잘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웃의 침공을 막고 싶고 그렇다고 이웃을 침공하려는 것도 아닌 우리 땅에서 편안히 살고 싶은 아일랜드의 희망을 그린 것이다. 영국의 오랜 침탈을 견뎌낸 아일랜드인에게 거인은 이렇듯 희망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거인을 애절하게 기다릴 턱이 없지 않은가.. 거인을 기다렸건만 기다린 거인은 오지 않았고 아일랜드인들은 스스로 거인이 되었다. 그래서 아일랜드에는 거인이 전설로 남아 있나 보다.

거인의 둑길(Giant’s Causeway)로 알려진 관광지를 찾았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지도를 얻고 영상 자료를 보고 1km를 걸어 거인의 둑길과 만났다. 그리 크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은 작은 주상절리를 너무도 과장되게 떠벌렸다는 아쉬움이 든다. 세상은 그렇게 반은 속고 반은 실망하며 지내는 게 일상이지 않은가. 현상은 초라하지만 그래도 세계의 주상절리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북아일랜드 북부 해안에 있는 자이언트 코즈웨이(Giant’s Causeway)는 세계 최대의 주상절리로 약 6,000만 년 전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생성되었으며 약 40,000개의 육각형 기둥이 거대한 지형을 이룬다.’고 소개되고 있다. 왜소하기만 한 코즈웨이가 세계 최대의 주상절리라니 명성이 무색하게 그만큼 주상절리가 지구상에 귀하다는 말이 아닐까..

숨어있는 거인의 둑길

스코틀랜드에 있는 애인이 건너올 수 있게 바다 위에 둑을 쌓았다고 해서 붙여진 거인의 둑길을 카메라에 담고 해안 트레킹을 시작했다. 해안 트레킹은 가파른 절개 면이 반듯하게 일어선 절벽 상단부를 걷는 트레킹이다. 그런데 걷는 내내 주상절리가 가득 들어찬 절벽과 만남이 이어진다. 아까 본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그것도 13km를 걷는 내내 바다를 향한 절벽에는 주상절리가 파이프 오르간같이 질서 정연하게 서 있지 않은가? 거인의 둑길은 그저 아이 장난감이었다. 거인의 둑길만 보고 돌아간 관광객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 광대한 주상절리의 파노라마를 미처 알지 못하고 돌아갔을 테니…

GIANT'S CAUSEWAY
거인의 둑길의 진면목

주상절리는 마그마가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찬 물질과 만나 급격히 식을 때에 외부의 부피가 수축하여 균열이 생기게 되고 그 모양이 육각이나 오각으로 굳어진 바위 면이다. 13km가 넘는, 아니, 오늘 내 걸은 거리가 13km 일뿐이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주상절리 절벽을 보고 있으면 이 땅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마크 라이너스가 쓴 ‘6도의 멸종’의 한 구절을 옮기면 “5,500만 년 전 지구엔 기념비적인 화산 분출이 있었고 장기간 마그마가 분출되면서 그린란드 동부엔 5km 두께로 쌓였으며 북대서양에서는 130만㎢의 면적을 덮었다.”

130만㎢면 우리나라의 13배에 해당하는 면적을 용암이 덮은 것이다. 지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용암 분출로 여겨지는 그 땅의 일부가 지금 걷고 있는 주상절리 절벽 해안이다. 그런데 용암이 찬 물질과 만나 갑작스럽게 식으며 주상절리가 되었다. 불같이 뜨거운 마그마를 식힌 찬 물질은 단지 찬 해류이거나 빙하였을까? 그렇다면 그린란드 동부에 쌓인 용암대지도 주상절리여야 하는데. 현상은 그렇지 않다. 아일랜드 해안엔 다른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주상절리의 근접사진. 자연의 웅장함이 느껴진다.

과학자들은 팔레오세-에오세 최대 온난기(Paleocene-Eocene Thermal Maximum)를 ‘PETM’이라고 압축해서 부른다. 이해할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지구 온도가 낮게는 5도에서 많게는 8도까지 급격히 올라버려 지구가 부글부글 끓어오른 시기였다. 이때 지구는 큰 변화를 겪었고 많은 생명체가 멸종되었다.

지구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그때 아일랜드 북부엔 엄청난 마그마가 분출했고 갑작스럽게 주상절리가 되었다. 말이 안 되지 않는가? 평균 기온이 5도 오르면 북극의 빙하뿐 아니라 남극의 빙하까지 모두 녹고 없어진다. 그런데 어떤 물질이 흘러내리는 용암을 식혀 주상절리를 만들었단 말인가? 아일랜드인이 꿈꾸듯 거인이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주상절리도 만들고 지구의 온도도 낮추어 지구마저 구한 건 아닐까..

메탄 하이드레이트(methane hydrate)는 심해의 엄청난 추위와 압력으로 메탄과 물이 얼음처럼 합성된 물질이다. 상상할 수 있는 가정은 마그마가 분출하며 해저 퇴적층을 밀어 올렸고 이때 메탄층의 안정이 깨지며 대거 지상으로 분출했고, 결국 뜨거운 마그마와 찬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만나 마그마는 주상절리가 되었고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용암의 열기에 녹으며 하늘로 날아가 대기를 덮어 온실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메탄의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20배에 달하니 지구가 급속도로 온도가 높아진 게 너무나 당연하게만 보인다.

지구 온도를 바꾼 주상절리. 그 해안을 걸으며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금 지구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뜨거워질까.. 정말로 아일랜드 사람들이 기다리던 거인이 필요한 시기가 되면 돌아올까? 거인의 부채가 아니고서는 지구의 미래를 구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